〈 10화 〉 무림치매대응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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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왔다. 남경에 있을때는 번화가쪽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남경 자체가 워낙 역사가 깊은 도시라 무림맹같은 나름 신생(?) 단체가 대규모로 입주할 곳이 마땅찮아서 제법 외곽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동(?)급 무사였다면 근무가 끝나고 나가서 술이라도 한 잔 했겠지만, 우리는 통금이 걸려 있는 부서였으니까.
“오라버니, 뭐 해보고 싶었던거 없어?”
“글쎄? 너 뭐 볼일 있다고 했으니까 그거 부터 하고 움직이지 왜.”
“으흐음. 그건 그거고 오라버니가 하고싶은 건 하고 싶은거지. 젊은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니까?”
“아는 사람 중에 젊은 날이 다시 돌아온 사람이 있어서 글쎄다.”
당연히 종리연 이야기다. 종리연은 몸매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두툼한 덧옷을 입고 얼굴도 면사로 가렸다. 반짝거리는 눈은 여전히 밖으로 나와 있어 오히려 면사 아래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꼴이었지만.
“나는 특수 상황이니까.”
“일단 짐부터 내려 놓자.”
“뭐 얼마나 들고 다녔다고.”
그렇게 말하면 좀 찔린다. 소주로 오는 가도를 걷는 중에는 거의 종리연이 짐을 들고 왔으니까. 기운의 수발이 자유롭고 내공이 끊임없이 솟아 올라 격공섭물같은건 그냥 생활보조 기술 같은 느낌으로 써도 문제가 없단다. 내공으로 불도 피우고, 허공에서 물도 뽑아 올리고. 극상으로 익힌 무공은 마법과 구분이 불가능한 건가? 씻고 밥먹고 오만걸 다 한다. 어지간한 문파 하나는 너끈하게
“그런데 누가 무공을 알아본다거나 그런 경우는 없어?”
“그런거야 초식명을 소리높여 외친다거나 그런게 아니라면…. 솔직히 내가 이제 형(?)이라는 걸 신경쓸 수준도 아니고.”
“아, 그래?”
“오라버니? 누차 말 하지만 나는 이미 출수가 형을 만드는 수준의 고수라구? 진심으로 검을 내면 그것 만으로도 누군가는 심득의 조각을 얻어갈 수 있는 경지란 말야.”
그런 여자를 밤마다 깔아대고 앙앙거리게 만드는 기분은 솔직히 좀 특별하다. 내가 깔릴 때도 많지만.
“ 화산파의 당대 장문인이 온다고 해도 몰라. 걱정하지마. 아, 방금 또 응큼한 생각했지?”
장난기 어린 미소로 옆구리를 쿡 쥐어박지만, 하늘에 맹세코 매일 밤 먼저 달려드는 건 종리연이다. 단 하루도 나를 가만히 재운적이 없다. 지금 내가 지고 있는 등짐에는 현대 한국의 완전군장 저리가라 할 정도로 온갖 기물이 다 들어 있었다. 천막도 포함이고. 밤마다 가도에서 벗어나 천막을 치고는 기막을 둘러 기척을 지웠다며 신나게 뒹굴었다.
왠지 종리연과 뒹굴 때 마다 내공이 쑥쑥 늘어나고 있는 느낌이지만 뭣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무공 수련을 그렇게 열심히 했던 적도 없고.
“좋아. 우리 오라버니 어깨 아프면 못쓰니까 빨리 하오문 부터 들렀다가 짐을 풀자.”
“편하신대로 하세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젊어진 몸으로 인생을 다시 사시는 우리 종리연 소저께서는 소위말하는 욜로족이 되신것 처럼 느긋했다. 남경에서 소주로 내려오는 길이 그렇게 멀지 않았음에도 가도를 벗어나 천막을 쳤다 하면 최소 이틀은 뒹굴거렸던 것 같다. 꼭 관계를 가지지 않더라도 천막을 활짝 열어 놓고 낙엽내음 섞인 초겨울의 찬 바람을 온 몸으로 즐기며 가만히 누워있기도 하고, 늘어지게 낮잠도 잤다. 그러다 배고프면 사냥해다 먹고. 나를 안아들고 경신법을 펼친다면 순식간에 도착 할 거리였지만 급할 것이 없다는 듯 시종일관 태평하시다.
“여기야?”
“내 기억에는 여기인데.”
하오문에서 운영하는 점포는 특유의 표식이 있다고 했다. 나는 잘 못 알아 보겠는데 종리연의 눈썰미야 당연히 나랑 비교불가하니 알아봤겠지. 주변건물과 거의 차이없는 모습과 진룡이라는 간판이 들어왔다. 여기에 들러서 정보를 사려는 걸까.
“뭘 사?”
“뭐 의심가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그래서 그런 정보를 구매 하려는 거…아냐?”
“이 오라버니 상상력이 아주 풍부하시네. 뒷조사 해다가 남들 정보 파는 사람들이 큰 길에서 장사하고 있으면 대체 누가 가만히 놔둬 그걸?”
“그…그런가?”
아니 다들 뭐 막 하오문가서 누구누구에 대한 정보를 주시오 이러던데.
“그런건 하는 애들이 따로 있고, 하오문에 그런 소문들이 많이 왔다갔다 하긴 하지만 그걸 돈받고 팔았다가는 그날로 장사 종 칠텐데. 아 이게 중요한건 아니고. 여튼 여기는 사람 만나러 온거야.”
뭐야 그럼. 정보를 주고 받기는 한다는 이야기 잖아?
“아, 거 참.”
“아냐아냐, 들어 가자. 빨리.”
한 마디 더 했다가는 두들겨 패겠네. 종리연은 불만스럽다는 눈초리로 혀를 한 번 차고서 그대로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하오문이라기에 기루같은거라도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란다. 술집에 술먹으러 오는 놈들 말고 시커멓게 드나들면 술맛 나겠냐고.
“옛날에 한창 마교나 세외랑 치고 받을때는 그런식으로 돌아갔던 적도 있었다고는 하던데, 생각해봐 오라버니.”
“으응?”
“얘들 다 점조직이야. 말하자면 어디가서 돈 받고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 떼몰살을 당할 수도 있는데, 무림을 위한다는 대의같은게 없으면 그거 감당될 것 같아? 힘도 없는 놈들이 온갖 치부를 다 들고 있는데?”
하기사, 그런게 누구나…는 아니겠지만 돈을 주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형태로 남아있다는걸 용납 못 할 사람들이 훨씬 많지. 어느 정도 선 까지는 서로서로 견제하고 이용해 먹겠지만 딱. 선을 넘었다고 판단되는 순간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큰 업계다. 하물며 하오문이라면 집단의 무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여기 죽엽청 하나하고, 소면과 간단한 안줏거리좀 내 주게.”
종리연의 설명을 듣고 끄덕거리며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주문을 했다. 종리연은 목소리 하나로도 주변의 시선을 끌어모을 만 한 마력이 있기에 주문은 내가 했다. 값을 치르고 나니 돈주머니가 이제 슬슬 바닥이다. 종리연이 만날 사람을 만나고 나면 돈 찾으러 간다고 했으니까 일단 오늘은 또 오늘의 밥을 맛있게 먹어야지.
“오라버니, 천천히 먹고 있어. 나 아까 만난다는 사람 좀 만나고 올게.”
“응? 혼자 가도 괜찮아?”
“무슨일이 생기면 오빠는 그냥 냅다 뛰어서 어제 우리 잤던데 가 있어 알았지?”
응. 무슨일이 생기면 나는 그냥 뛰기만 하면 되는구나. 나의 약함이 안타깝다기 보다는 이미 인간의 궤를 벗어난 듯한 종리연의 무력이 든든했다. 고개를 끄덕거려주자 면사 밖으로 나와 있는 눈으로 웃어주고 종리연이 윗층으로 발을 옮겼다.
“음식 나왔습니다.”
“아, 여기로 주시게.”
점소이가 놓아주는 음식을 받아들고 대나무통에서 길쭉한 중국식 저분을 빼 들었다. 불과 얼마전에 죽을 뻔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솔직히 좀 많이 불안했었는데 종리연에게서 느긋함이 옮기라도 했는지 며칠사이에 많이 안정된 상황이었다.
후루룩 소리가 나도록 따끈한 국물을 들이키고 소면을 한 젓가락 입에 집어넣었다. 이제는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현대의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투박한 맛이지만 겨울 날씨에 굳어진 몸을 풀기는 충분했다. 2층 밖으로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안주로 나온 고기채소볶음도 한 입 집어 넣었다. 맑으면서도 살짝 노란기운이 도는 술을 한 잔 따라서 쭈우욱 들이키는데….
와장창!
푸웁! 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이야?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윗층에서 나무파편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이게 그 무협지라면 빠짐없이 나온다는 객잔깽판씬인가? 그 와중에 옷이 펄럭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하얀색의 인영이 떨어져 내리고 뒤이어 종리연이 날아내렸다. 과연 고수. 먼저 떨어진 사람과 다르게 바람소리 하나 없이 천천히 무슨 에스컬레이터 탄 것처럼 내려오고 있다. 술잔을 들고 있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한 쪽 눈을 찡긋거리는 여유까지.
“네년! 누구냐!”
올라간지 얼마 안 된것 같은데 빨리도 문제가 터진다. 슬쩍 2층 안쪽 난간쪽으로 가 1층을 내려다 봤다. 이게 종리연이 말한 무슨 일이 생기면 잽싸게 튀라는 상황인지 봐야하니까.
“진정해요 화란.”
종리연과 대처하고 있는 흰 옷의 노파. 노파는 관리를 안 했었는지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장검을 빼 들었지만 종리연은 느긋하게 뒷짐을 진 채로 서 있었다. 위험하지 않나 싶지만 종리연이 칼을 들고 다니는걸 한 번도 못봐서. 이제 필요가 없다나 뭐라나.
“진정? 얼마나 나를 업수이 여기면 그리 여유를…. 으음?”
깜짝이야. 눈 마주쳤다.
“네놈이구나? 네놈이 산공독을 풀었어!! 노오오오오옴!!”
흰 옷의 할머니가 2층에 있는 나를 올려다보며 경공을 펼치려고 호쾌하게 식탁을 밟고 다리를 크게 찼…는데 그냥 바닥에 풀썩 하고 떨어져 버린다. 아니, 산공독이라뇨 그 무슨 흉흉한 말씀을. 웅성거리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주목하기 시작한다. 이거. 잠깐만. 익숙한 감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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