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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9화 (9/122)

〈 9화 〉 무림치매대응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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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라고 할 만한 거창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무림맹에서 우리 둘은 말소가 되었고, 적당히 그럴싸한 신분을 주워 섬기면 딱히 문제될 것은 없는 시대다. 종리연의 말대로 그냥 천천히 하나하나 즐길것들 다 즐겨 가며 수수께끼를 풀면된다. 혹시나 만약 암약단체가 있어서 지켜 보고 있다 하더라도 거짓 죽음으로 감시망을 빠져나왔으니까.

우리는 며칠동안 동굴에서 짐승처럼 뒹굴다가 슬슬 말린 과일과 육포가 질려갈 때 쯤, 동굴을 잘 정리해서 폐쇄하고 산을 내려왔다.

“상공, 나도 이제 부터는 말하는 투를 좀 바꿔볼테니, 상공도 자꾸 그렇게 상전모시듯이 그럴필요는 없네.”

“그치만, 상전인데요.”

“누가?”

“종리소…저께서요.”

“연매라니까.”

“그런데, 이름도 바꿔야 하는거 아닙니까?”

“나는 괜찮네. 종리씨를 쓰지만 종리세가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되니까. 제일매화 종리연은 전대도 아니고 전전대의 인물이나 마찬가지니 이름이 같아도 문제될 것은 없을터.”

“그렇게 치면 저도 무진장 흔한 이름이라서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중원 무림에 장삼이 몇명이나 있을것 같은가? 아마 어마무지하게 많을거다. 뻥좀 보태서 지금 시대의 조선인구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장삼과 종리연을 조합하면 우리가 딱 연상되니까 하는소리 아닌가. 자네 이름은 바꿔야지.”

“그렇게 치면….”

“나는 괜찮다니까.”

말 참 안들어먹는다. 이러면서 상전취급을 하지 말라고 하면 이게 말이야 방구야. 나는 나폴거리는 연분홍색의 경장을 입은 종리연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젠장. 예쁘다. 예뻐죽겠다. 특히 걸을때 마다 찰랑거리는 윗가슴이 언뜻언뜻 보여 가만히 지켜보는 맛이 있다. 옷이 너무 가볍지 않은가 물어봤더니 이미 한서불침의 경지에 올라 상관이 없다나. 나는 슬슬 추워지는 날씨때문에 종리연이 준비해 놓은 무복 위로 푹신한 솜옷을 덧 입고 있는데.

“자네는 적당히 일인전승 문파의 계승자라고 둘러대도록 하게.”

“제가요?”

“사부님께서 돌아가시며 하산을 명하셨다 하고 대충 그럴싸한 이름을 주워섬기면 다들 그냥 넘어갈걸세. 그게 무림의 예의야.”

아…. 그러니까 대충 모른척 해 준다는거지?

“나는 자네의 정혼자이면서 문주를 암중호위하는 여검사로 하지.”

이 할머니 그렇게 안 봤는데 제정신이 들고나서는 머릿속이 꽃밭이다. 원래 이런 성격인건가?

“예 뭐 그런 설정으로 하시지요.”

“말을 할 때는 사람의 가슴이 아니라 얼굴을 보는걸세.”

“험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네요.”

“산을 내려가면 덧옷을 입을걸세.”

종리연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으며 슬쩍 옷자락을 끌어 올렸다. 아니 그걸 아깝게 왜 가려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시선을 끌고 다녀서는 암약단체를 잡기에 좋을것이 없으니 그냥 고개만 끄덕거려 주었다. 지금 많이 봐 놔야지.

“아참,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갑니까?”

“말 안했던가?”

안 하셨는데요. 종리연은 내려갈 거라고 이야기만 하고는 어제 저녁부터 엄청 신이나서 옷을 이리 입었다 저리 입었다 바빴다. 오늘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내 머리를 곱게 빗어 상투를 틀어주고 수염 정리나 무복의 품을 줄이는 등 자잘한 준비로 엄청 바빴고.

“일단은 가까운 소주로 갈 생각일세. 내가 알고 있는 선이 아직 남아 있는줄은 모르겠네만, 하오문과도 접촉을 좀 해보고 전장에서 돈도 좀 마련해야지.”

“오…. 소주. 말로만 들었지 가 본적은 없네요.”

“자네는 대체 남경에서 근무하면서 소주도 가 보질 않고 무얼 한겐가?”

“돈이 있어야 말이지요.”

정확히는 시간도 없었지. 똥 치우느라고.

“하늘 아래 소주 항주라지 않는가(上??? 下??). 기루도 많고 하니 즐겨 보시게.”

“기루를 왜 가요?”

“꼭 기루에서 그런것만 하는게 아닐세. 하여간 생각하는거 하고는….”

안이 덮치기는 그쪽이 먼저 덮치셨거든요?

“자 빨리 연매라고 불러보게.”

“그, 좀, 아무래도.”

“어허….”

목소리야 하이톤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지만 말하는 투가 저승문턱 간보는 늙은이 말투라 아무래도 위화감이 가시질 않는다. 입을 달싹 거리다가 그냥 우물거리고 말았다.

“그럼 그냥 자…아니 상공도 말을 편하게 해.”

“예?”

“그 얼빠진듯이 되묻는 것좀 하지 말라니까.”

이게 나도 여기 살다보니까 이래저래 느껴지는거지 사실은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서 거의 정리되는 부분이라 말을 깐다고 해서 딱히 뭐 크게 부담될 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칠순넘은 노친네에게 야자를 트….

“방금 또 나이 생각했지?”

“아니…요.”

“하여간 말을 편하게 해. 나도 그렇게 할테니까. 솔직히 어린애들 혀짧은 소리내는 것 같아서 나도 조금 민망해.”

“알았…어.”

“연이라고도 부르고.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내가 무슨 특별한 사람이라고 티내는 꼴이잖아.”

“그…그래 연아.”

연매는 건너뛰고 그냥 연이로 가나보다.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더니 제법 떨떠름한 내 목소리에도 종리연의 얼굴이 화악 붉어진다. 이건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습성일거다. 나도 모르게 손을 올려서 종리연의 볼따구를 만지작거렸으니까.

“흠흠. 자 그럼, 오라버니. 갈까?”

“대뜸 오라버니…야?”

“상공도 좋지만, 오라버니가 있었으면 했어. 장단 좀 맞춰 주라.”

말투에서 노티를 빼는게 금방 익숙해져 가는지 방실방실 웃으며 팔짱을 끼고 품속으로 파고 든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근데 연이…. 너, 으흠….”

“왜?”

“산을 내려가면 얼굴을 좀 가려야 하지 않을까?”

“왜에?”

제길. 귀엽다! 귀여운데! 이건 무의식 레벨의 브레이크인지 자꾸 칠순넘은 할멈의…아니, 근데 그때도 그렇게 늙은 상태는 아니었다고! 뻥좀 보태면 미부인쯤 되는 레벨이었는데 왜….

“끄악!”

“또, 또.”

“뭐하는 거…야 정말.”

옆구리를 꼬집었다. 이 요망한 할망구가. 아우 아파. 내공…을 실었으면 이미 옆구리가 뜯겨 나가서 장기자랑을 하고 있었겠지. 쓰으…. 아프다.

“연이는 오라버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요. 응? 또 그럴거야 응?”

“아니 그게 그렇게 단박에 되는게 아니라니까. 아우 아파.”

다짜고짜 본인을 3인칭으로 칭하시면 됩니까 안됩니까? 나잇값도 못하고. 아우 쓰려.

“표정으로도 별별 정보를 다 읽어 내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 시선에서 나한테 뭔가 있다는 정도는 금방 들킬걸?”

“알았어. 조심할게.”

“진심으로 나를 귀엽고 사랑스런 정인으로 대해야 한단말이야.”

“근데 정인이 되는것도 설정이야? 암중호위 아니었어?”

이미 사실 이렇게 팔짱까지 끼고 꽁냥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암중’이란건 물건너간것 같긴 하지만.

“하지만 오라버니는 나를 남몰래 연모하고 있는거지.”

“아…. 그래…그럼….”

젊은 시절의 종리연도 이렇게 재잘거리고 깔깔거리며 웃었을까? 여전히 내가 반로환동을 시킨건지 그런건 잘 모르겠지만, 출입도 막힌 골방에 갖혀 죽을날만 기다리던 그때 그 눈빛보다야 훨씬 보기 좋았다.

“왜? 또 불끈거려? 하여간 남자들이란.”

“아니 이야기가 왜 거기로 튀어.”

솔직히 불끈거리긴 한다. 정말 며칠동안 촛불만 일렁거리는 동굴안에서 짐승처럼 철퍽거렸으니까. 확실히. 음. 그냥 잠깐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묵직해지는게….

“참아. 소주에 가서 하자구.”

“여기서 뭘 바로 하자는 것도 아닌데, 참아야 하는건 본인이 아닐런지?”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그 안에서 하루하루 변함없이 사는것도 나쁘진 않았겠지만, 이렇게 화창한 겨울날에 미인과 손을 잡고 웃으며 걷고 있는것도 충분히 좋다. 상황이야 뭐 매번 변하는거고 종리연이 하고 싶어하는게 있으니 그냥 이렇게 묻어가며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팔꿈치에서 느껴지는 종리연의 말랑말랑한 가슴을 즐기면서 걷고 있는데 무심히 지나가는 말투로 종리연이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무슨 사명감이라도 있는 것 처럼 그렇게 살았지만, 왠지 이렇게 덤으로 사는 기분이 되니까.”

“응?”

“내 옆에 있어줄 사람이 제일 소중한 것 같아.”

“그렇긴 하지.”

“삼 오라버니. 오라버니도 빨리 고수로 만들어줄게.”

“에이 나는 무공은 좀.”

무공에 자질이 있었다면 이러고 살고 있을까. 무림에 떨어졌지만 무공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게 있어. 그리고 만약에 안되더라도 무슨수를 쓰든 오라버니를 고수로 만들어서 오래오래 살게 할거야.”

“왜?”

“느낌에 나 엄청 오래 살것 같거든.”

아, 그러니까 나도 오래 살아야 한다? 뭔가 간질간질하면서도 등줄기로 땀이 한 방울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허, 지금 나 버려두고 먼저 죽겠다는거야?"

"아니 뭐, 그때 가 봐야 아는거지 죽고 사는거야."

"말이라도 좀 호쾌하게 알았다고 하면 되는거지 그걸 꼭."

"알았다. 알았어. 오래 오래 살자."

참 나. 반로환동이라고 정신연령까지 되돌아 온 건 아닐텐데 작정하고 이러는 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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