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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4화 (4/122)

〈 4화 〉 무림치매대응반 4

* * *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 작은 협탁과 함께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닭꼬치가 내밀어졌다.

“드시지요.”

소소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는 높으신 사람을 대접하는 것 마냥 뒷걸음질 쳐 방 밖으로 나갔고. 나와 종리연은 여전히 창 밖을 바라다 보았다.

“참으로, 덧 없는 인생이지요.”

“허, 무슨 그런 말씀을. 자 종리소저 어서 드시고 기운을 차립시다. 숯불에 구워내면 맛이 일품이라오.”

으 오글거려.

“내가, 이걸 먹어야. 다들 편해지는 거겠지?”

아니 아까부터 할매가 자꾸 뭔 이야길 하는거야. 진짜 정신이 돌아오기라도 한 건가? 괜히 찔리는 양심에 다시 한 번 눈을 맞추려 돌아보니 종리연의 눈가에 길게 꼬리지듯 눈물이 흘러내린다.

“소저.. 그...”

“소저라니. 언제 그렇게 불렸는지 기억도 안 나는 구만. 내 나이라면 파파가 아닌가?”

느낌이 쌔.. 하다. 당장 추포대를 호출해야 하는걸까.

“허, 허허. 소저의 나이가 어떻다고….”

“사람을 부를 것 까진 없네.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여기서 날뛰어봐야 험한 꼴이나 보겠구만.”

“그리하겠습니다.”

안이 정신이 돌아왔으면 말을 해야지. 음. 정신이 없을때의 기억이 남아 있으면 말을 하기는 좀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음. 아 복잡하다. 그냥 지금이라도 밖에 있는 정소소에게 신호를 보낼까.

“마지막 가는길에 말동무나 해 주는 셈 치게.”

그러고는 또 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소협…. 아니, 가가.”

“예..예?”

“왜, 이리 늙은 할망구에게 가가소리는 듣고싶지 않은가?”

“아니 그게 아니오라….”

거 상황 참 존나 난감하네.

“아녀자의 아랫도리를 훤히 보고 떡주무르듯이 주물렀으니 가가가 아니면 무엇으로 불러야 할꼬?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요…. 예.”

그걸 제가 주무르고 싶어서 그랬습니까. 똥 닦아야 되니까 그랬지.

“탓할 생각은 없으니 그리 얼어 있지 마시게. 아무래도 내가 이걸 얼른 입에 털어 넣어야 안심을 하겠구만.”

말릴 새도 없이 협탁에 놓여진 닭꼬치를 들어 입에 넣는다. 한 조각만 드셔도 충분할 텐데. 한 줄을 다 그냥.

“당가놈들 독이군. 먹어본 적이 있어.”

“혹시 저, 내성이 있으십니까?”

이 경우도 아주 드물지는 않다. 정말 몸에 좋다는건 다 처먹은 노괴들이 득실득실해서 막판에 보내려고 보니 만독불침이라 험한꼴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아주 그냥 각종 케이스가 다년간 착실하게 쌓였다. 그나저나 젊을 때 뭘 하고 다니셨기에 아군인 당가의 독을 맛 보신 경험이 있는거지?

“조금은 저항이 있네만 가가께서 우려할 만한 정도는 아니네. 그저 아쉬운건….”

“아쉬운건?”

“독을 너무 많이 쳐서 닭고기 맛이 느껴지지 않아. 그게 흠이구만.”

어차피 마약에 절어 있는 노친네들 보내는 약이라고 무색 무취 무미는 개나준 모양이다. 하긴 그런건 비싸지. 묘한데서 원가절감이란 말이야?

“그럼 적당히 드시고 입가심 삼아 이쪽것을 드시지요. 제가 먹는 용도이니 아마 독은 없을 것입니다.”

“흐음.. 그저 그렇구만. 그렇게 자랑을 해서 뭐 특별할 것이 있나 했더니.”

그건 제가 대한민국에서 먹었던 길바닥 닭꼬치 기준이구요. 여기서 대충 장작불에 구운거하고는 비교불가죠 어르신. 특식이라고 해도 곧 관뚜껑 덮을 양반 먹을 밥을, 가시는 길 편안하게 모시겠다고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왔을까봐.

“내가 왜 이 방에서 가만히 있었던 줄 아는가?”

“어째서입니까?”

사실 안 궁금하지만.

“매화나무가 있어서 일세.”

일찍이 종리세가 출신으로 빼어난 검재를 뽐내며 화산의 속가제자로 입문했다. 당대에 기라성 같은 사형제들을 조지고 해당 항렬에서 배출한 최고수였던지라, 별호도 그냥 빼도박도 못하고 제일매화였다. 그야말로 이 할머니 또래에서는 화산파의 아이돌이자 아이콘같은 존재. 당연히 매화나무 좋아하시겠지.

“간혹 이지가 돌아오면 명년 봄 매화를 밟고 갈 수 있나 했거늘, 보이는 것은 앙상한 가지뿐이구나.”

“보는이가 없더라도 매년 꽃은 그 자리에 피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매화는 늘 그 자리에.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뭔가, 종리연의 눈빛이. 보라색으로…. 응?

“잠시, 호법을 부탁하지.”

“예?”

“아직 죽을 팔자는 아닌가보이.”

뭔가 투웅. 하는 둔탁한 느낌으로 공기의 벽이 실내로 퍼져나갔다. 내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널마루 틈 사이의 묵은 먼지가 풀썩 하고 피어 오른다. 뭐.. 뭐지 이거?

“으으으으음….”

종리연은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떠 오르더니 그대로 가부좌를 틀었다. 아니 잠깐만. 사람이 저게 된다고? 나도 물론 이 바닥에 와서, 한 줌도 안되는 내공이나마 아침저녁으로 몸에 돌리고 있는 처지기는 하니까 못 믿을거야 없다지만. 이 정도 급의 고수는 본 적이 없다.

“합!”

이제는 양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기운을 다루고 계신다. 어떻게 아냐면 그 뭔가 반투명한 느낌의 뭉텅이진 기운이 온 방안을 휘젓고 있는 중이니까. 호법을 서 달라고 하셨는데 내가 지금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당장 다리가 풀려서 땅바닥을 기는 상황이거든.

­우득. 우드드득.

길가다 나무 줍는 소리와 함께 종리연의 온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이게 그. 클리셰적인 그런, 그거지? 내가 막 되도 안하는 개소리를 쌌더니 노고수가 갑자기 펑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경지가 쓔와아악 하고.

­파아앙!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잡생각을 늘어놓는 사이에 허공에 뜬 종리연의 몸을 기준으로 충격파가 터져나왔다. 그것도 연속적으로. 딱히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버팅기려고 했는데 불가능했다. 속절없이 데굴데굴 굴러 방 구석에 처박히면서 시야가 어두워졌다.

아오 뒷통수야.

“…가가.”

“끄으응….”

꾀꼬리 같은 목소리다. 여기서 좀 오래 살았더니 자꾸 표현이 이상해.. 아닌가? 내가 이제 정신연령으로는 40대가 지났으니까 대충 적절한가?

“정신이 드시는지요?”

“…누구…십니까?”

뭐지? 또 이세계인가? 분명히….

“딱히 상처는 없으니 괜찮으실 겁니다. 일어나실 수 있으신지요?”

눈만 굴려서 주변을 돌아본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종리연의 방인데. 대체 내 눈앞의 이 기가막히게 잘 빠진 미모의 여인은 대관절 누구신지. 여기 출입할 젊은 여자라면 정소소 말고는 종리혜 밖에 없는데, 아무리 내가 빡대가리라도 두어번 본 종리혜를 기억 못 할리는 없다. 걘 이 정도 클라스가 아니었다.

“아, 예. 저기 그런데 대체….”

“흠. 생각보다 둔한 남자로고. 이렇게 까지 이야기를 해야겠는가?”

목소리는 여전히 그대로지만, 억양이나 말투가. 에…예?

“혹시 저.. 제일매화….”

딱히 부정은 하지 않고 씨익 쪼갠다. 젊은 여자들이 지을법한 수줍음 섞인 그런 풋풋한 미소가 아니라, 의기양양하고 일말의 흉포함마저 느껴지는 그런 웃음이다.

“이걸, 탈태환골이라 해야할지, 반로환동이라 해야할지 잘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자네 덕인듯 하구만.”

얼굴은 진짜 윤기가 흐를 정도로, 아기피부처럼 투명하고 팽팽한데 표정이나 말투가 저 모양이니 느껴지는 위화감이 장난없다. 잠깐만 그러면 이거 어떻게 되는거야? 치매는?

“혹시, 이지나 기억에는 문제가….”

“딱히 느껴지지 않네.”

“일단 옷부터 좀….”

눈 둘곳이 없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뒷통수에 닿은 푹신한게 허벅지고 뺨따구에 눌리던게 가슴인줄 일어나보고 알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일어나지 말걸.

“무어 어떤가. 지아비 될 사람 앞에서 부끄러울 것 없네.”

“지아비라뇨?”

“허, 그럼 뭔가? 아녀자를 희롱하고 그대로 팽개칠 심산인가? 사람 참.”

아니,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

“희롱이라뇨? 어디까지나 병구완과 위생차원에서….”

“어쨌거나 말일세.”

“아니, 바깥어른도 계실테고 자녀분들도 있을거 아닙니까?”

이런 시대에서 일흔이면 증손까지 있어도 이상할게 없다. 좀 빨리 갔으면 고손도 쌉가능한 나이대다.

“그 영감은 보낸지 오래고, 자손들은 신경쓸 것 없네. 다시 살아난 인생 과거에 얽매어 무엇하겠는가? 하물며 이런곳에 처박아놓은 것들을.”

딴에는 그렇다.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는거였지. 여기서 하루하루 죽을날만 기다리는 입장에서 괘씸하겠지.

“일단 옷부터 입고 이야기 하시죠.”

“그것도 신경쓸 것 없네. 많이 봐 두게. 늙어지면 참으로 볼품없더란 말이지. 가치가 있을 때 써먹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빙글빙글 웃으며 침상에 걸터앉아 보란듯이 다리를 처억 하고 꼰다. 아니 보라면서 거 가릴곳은 다 가리….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게 아니다.

“허면, 지금 몸 상태가 어떠하신지요?”

“확인해 보겠는가? 신체가 재구성되었으니 청백지신일세.”

확인을…. 아오 진짜. 이보쇼 심기체 중에 체만…. 또 옆길로 샌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말씀 해 주시지요.”

“…걱정도 많은 남자로고. 뭐, 세간에 알려진 내 전성기보다 갑절은 되겠구만. 날아갈 것 같네.”

자꾸 시선을 잡아끄는 종리연의 나신에서 눈을 돌리고 짱구를 굴렸다.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바깥이 아직 밝은걸로 봐서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당장에 의심 받을 상황은 아닐 것 같은데, 이걸 보고를 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쨌든 정파 무림의 큰 어른이 노망을 털고 회복하신 거니까 경사겠지?

“일단 회복을 감축드립니다. 옷을 입고 계시면 사람을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무림맹으로서도, 종리세가로서도 큰 경사가 될 것입니다.”

“…글쎄. 과연 그럴까?”

종리연은 턱끝을 손으로 매만지며 요요롭게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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