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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3화 (3/122)

〈 3화 〉 무림치매대응반 3

* * *

보감대주인 당 대주는 처자식이 있어 맹 밖에서 살지만 위지조장은 모쏠이다. 매음굴이 일상화된 이 동네에서 아다는 아니겠지만. 아, 근데 답이 없다. 벌써 나간건가?

혹시나 싶어서 우리 삼조에 소속된 다른 사람들 숙소 문짝도 두들겨 보니 똑같이 대답이 없었다. 하놔. 매정한양반들 같으니라고. 어차피 가봐야 송월루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어정어정 서문으로 향했다.

"어, 삼이. 오늘은 빨리 끝났나 보군?"

"그런 말도 하던가요?"

"위지조장이 조금 넘어도 내보내 주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고."

통금이 있었다. 나가는건 대충 오후 다섯시까지 나가야 하고. 들어오는건 저녁 일곱시까지 들어와야 한다. 나가는건 유시초 들어오는건 술시초. 안 들어오면 찾으러 나간다. 이게 다, 노망난 양반들 입에서 터져나오는 소리가 워낙 자극적이라서 벌어진 일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영 아다리가 안 맞는 소리다. 이게 감시가 삼엄한건지 아닌건지. 할려면 좀 제대로 하고 말려면 그냥 무지랭이 취급을 할 것이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송월루간대."

"어차피 거기죠 뭐."

"자."

소독 하는 것 마냥 연무기에서 희끄무레한 연기가 뿜어져 나와 몸을 스쳤다. 썩 좋은 성능은 아닌 추종향이다. 만리추혼향이니 하는 그런 고급의 물품은 아니고. 혹시나 벌어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라고나 할지... 지우려면 충분히 지울 수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걸 능숙하게 지우면 큰 사건이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서. 결국 우리 목숨은 별 상관 없다는 거지.

번을 서고 있는 동급 무사와 인사를 나누고 출입명부를 작성한 다음 맹을 나섰다. 그리고 한 3분 걸어서 거창하게 송월루라는 간판을 삐딱하게 단 객잔앞에 섰다. 사실상 맹 외부에 있는 구내식당이나 마찬가지인 집이었다.

"어 왔냐. 오늘은 빨리 끝났네?"

"허릿짓을 열심히 했나보구만 삼이."

"어찌나 절륜한지 무림제일화가 지명으로 부르고 말이야!"

이 인간들 눈깔이 누렇게 뜬걸 보니 거하게 한탕 빨았구만. 마약성 안정제로 노고수들을 절여 놓는게 주 업무라 당연히, 마약을 다루기가 쉽다. 어차피 실행하는건 우리니까. 정말 약간씩 삥땅을 치면 티도 안난다. 약을 한 건 좋은데, 그런 할매한테 나를 찍어 붙이고 싶냐. 디질라고.

실제로, 노화가 더딘 무림고수들 특성상, 지 담당을 좋다고 추행하는 경우도 왕왕 터지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러다 걸리면 끔살이다.

"거 뼈 삭는다니까."

"이봐! 여기 소면 하나 더 내주게!"

한심한 놈들.같은 조원들이 마약에 쩔거나 말거나, 내 알바 아니었다. 알아서 적당히들 하겠지. 못하면 결국 신경계가 맛탱이가서 실려 나가는거고. 이 안정적인 직업의 은퇴사유로 첫 손에 꼽히는게 마약이다. 비교적 멀쩡해보이는 얼굴의 위지조장이 점소이를 불러 음식을 추가로 시켰다.

"또 소면입니까?"

"술 마시기도 아까운 돈이야."

"아까 제법 묵직하던데요."

"알잖아?"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손가락으로 흘깃 윗쪽을 가리켰다. 아, 당가놈이 또 슈킹했구나. 쪼잔한 새끼. 그거 해봐야 몇 푼이나 된다고.

"것 참."

"오늘 육수가 아주 괜찮아. 우리팔자에 그만하면 호강이지."

딴은 그랬다. 맹 내에 있는 식당에서 우리같은 동급 무사들이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신다는건 꿈도 못꾸니까. 물 대신에 나오는 누룩찌꺼기 둥둥 뜬 탁주나 한 사발 온전히 얻어 먹으면 다행이다.

"여기 죽엽청 하나 더!"

죽엽청은 무슨. 그냥 대충 쌀이나 조같은거 쑤셔넣고 푹 띄운 황주지. 대나무 통에만 들면 다 죽엽청인가.

"그래, 별 말씀은 없으셨고?"

"있을게 있나요. 상태 아시면서."

"그냥 의례적인 확인이지."

그렇게 이야기 하고 위지조장이 쭉 술잔을 비웠다. 새로온 대나무통의 봉인을 뜯고 또 한잔. 따르는 동안에 나도 목이 타서 한 잔 마시고 통을 받아서 한 잔 더. 주변을 둘러보고 약과 술에 취해 헤롱거리는 조원들의 잔에도 첨잔을 해 줬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뭐, 곧 아니겠습니까."

아마 그녀에게 남은 시간을 묻는 거겠지. 요 단계에서는 약 때문에라도 곧 황천 간다.

"다른방은?"

"뭐, 금방이죠."

"무림제일화.보내야될 것 같은데."

보내야한다. 날이 갈 수록 각 파의 노고수들이 노망이나서 남경지부 하나만 가지고는 카바가 안되는 수준이다. 입원 대기 인원이 가득해서 밀어내기 식으로, 어지간히 기력도 줄어들고 그렇다면 이제 그만 저승길 보내자는 소리지.

"날짜 나왔습니까?"

"이번 달 안에."

이번 달 이면 개코나 며칠 남지도 않았다. 내 손으로 많이들 보내드렸지만 나를 이렇게 콕 찝어서 의지하는 환자는 처음이었던 탓인지 나도 모르게 속이 쓰리다. 가만히 있다가는 뭐가 불쑥 올라올 것 같아서 술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흥. 제들 좋자고 애비애미 처박아 놓고 패륜은 못하겠다니. 이미 패륜이 아니고 무어란 말이오?"

섬서에서 온 갈씨성의 조원이 구시렁 거린다. 당연히 이런 소리를 백주 대낮에 했다가는 경을 치겠지만 안 보는 데에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데.

"요번에 잘 마무리 하고 나면 고향이나 좀 다녀오게."

"사람이 없어서 되겠습니까?"

절여놓은 야채쪼가리를 안주 삼아 집어먹으며 인상을 썼다.

"어떻게든 굴러가게 되어 있어. 자네 쉰지 한참 지나지 않았나."

그러고보니 작년 춘절쯤 쉬고 계속 근무 했으니 1년반은 넘었네. 가끔 표국으로 서신이야 띄운다지만 이쪽 세계의 부모님을 뵌지도 오래 되었으니,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고향이나 한 번 갔다 와야겠다. 말을 타고 미친듯이 달려도 두달은 잡아야 하는데. 나도 개쩌는 경공이나 배웠으면 좋겠다.

"약은 아마 내일 나올걸세. 한 두번이 아니니 알아서 진행하게."

보감대가 무력도 시원찮은 주제에 무림맹의 한 귀퉁이에 개인 숙소까지 받아가며 자리를 잡고 있는 이유. 패륜을 대행하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받은 이 약으로.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당가에서 제조한 극독이다. 먹으면 저승으로 한 방에 간다. 말로는 고통없이 잠들듯 간다는데 먹어보질 않아서.

대충 술을 먹다 들어와서 다음날. 나는 예고된 대로 약을 받았다. 오늘은 야간조 근무지만 보낼거라면 그냥 가서 보내고 밤에 쉬면 된다. 약을 손에 쥐고 방을 나섰다.

"약은 받았나?"

"예 조장."

"그래 고생하게."

아직 숙취가 가시지 않은 머리를 휘저으며 조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미 뭐 윗선에서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 그냥 단순 보고만 하면 된다. 이 독을 가지고 장난을 칠것도 아니고. 나에게 배당된 최종단계의 환자들 몇을 찾아보고 마지막으로 종리연에게 왔다. 소소가 문 앞에 있다가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네기에 대충 고개를 꾸벅거려 받았다. 음. 야간근무인데, 똥칠때문에 부른것도 아닌데 온걸 보면 대충 눈치는 깠겠지. 친인척도 아니고 애정이 있어서 올리는 없으니까.

"오셨어요?"

"오늘은 어떠세요?"

"조용히 창 밖만 보고 계시네요."

"혜 아가씨는요?"

난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젓는다. 또 놀러나갔나보구만. 영 발걸음이 무겁긴 하지만 별 수 없다. 결국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니까.

"소저, 장삼입니다."

"들어오세요."

문을 슬쩍 열어서 안쪽을 살펴보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소저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좀 있지만 까짓거 곧 갈 양반인데 소저 소리가 뭐 그렇게 비싸다고 아낄까.

"오늘은 좀 어떠십니까?"

"늘 아프던 머리가 오늘은 좀 괜찮군요. 가가께서는 오늘도 많이 바쁘신가요?"

아, 가가 모드구나.

"뭐, 드시고 싶으신거 없으십니까?"

시간 끌 필요 없다. 마음 써봐야 나만 속 쓰리니 오늘 보내드리기로 했다. 보내기 전에는 무슨 사형수들처럼 특식이 나온다. 먹고 싶어하는건 가급적 먹여준다.

"예전에, 가가께서 저자에 있다고 했던 고소한 닭고기 꼬치구이가 먹어보고 싶네요."

"비슷한거라도 준비하겠습니다."

문을 살짝 열고 소소에게 대충 닭고기를 꼬치에 꿰고 소금을 쳐서 숯불에 구워 오라고 주문했다. 특식임을 직감한 소소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지만 한 두번 하는것도 아니니 금방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자리를 비웠다.

"오늘인가요?"

"...예?"

"오늘 여기서 나가는건가요?"

뭐지? 제정신이 돌아온건가? 치매 환자들이 죽기 직전에 정신이 돌아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던데 그런건가?

"그..그래요 종리소저. 닭고기를 드시고 기운을 차리면 오늘 함께 저자에 나갑시다."

"그럴까요?"

가만히 앞에 앉아서 눈을 맞춰봤다. 뭐지? 눈빛이 평소의 맛탱이 간 눈매가 아닌데. 일단은 상태를 좀 살펴봐야겠다. 일이 빠다리라도 나면 약먹고 편하게 갈 수 있는걸 온갖 험한 꼴 다 보고 가야하니까. 간혹가다 죽기 직전에 정신을 차리고 한 줌 남은 진원을 불태워 개판을 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가만히. 가만히 안아주세요."

"그...그리하리다."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 앉아서 어깨를 감싸듯이... 어정쩡한 자세로 몸을 밀착시켰다. 노인네 특유의 냄새가 슬쩍 올라오지만 그냥 할머니 냄새다 생각하면 편하다. 난장칠때 나는 똥내도 아닌데 뭐. 한참을 그러고 가만히 있었더니 밖에서 소소가 왔는지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시오."

"식사하셔야죠. 닭고기를 준비해 왔습니다."

소소는 내가 종리연을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내 뒤쪽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창 밖을 보고 있는 종리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어깨를 안고 있는 반대편 손으로 품 안의 약을 꺼내 소소에게 넘겼다. 알아서 약을 치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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