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무림치매대응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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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병이 점점 진행되면서 이제 뭐 아들이고 손자고 못 알아볼 정도가 되면 2단계로 접어든다. 본격적으로 산공독도 투입하고, 미혼향이니 수면향이니 총 동원해서 기운을 뺀다. 뇌가 슬슬 맛탱이가 가면서 무공도 슬슬 까먹고, 제정신일때 의도적으로 곡기를 끊어 처박혀 있으니 피지컬도 후달리고. 이러기 시작하면 몇 가지 검증 단계를 거친후에 본가 식솔들 중 에이스만 남겨두고 철수한다. 이정도면 각 가문이나 문파에서도 감당이 가능할텐데 안 그러는 이유는 노고수들 가시는 길 편안하게 험한꼴 안보고 보내드리는게 이유라고는 하는데...... 내가보기엔 이거 백퍼 귀찮아서다.
거기서 병이 더 진행되어서 이제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만도 못하고. 아침에 밥을 처먹고 또 배고프다고 보채고, 똥을 찍어 아이섀도우를 바르는 지경이 되면 최종단계에 접어든다. 그러면 보호자도 쩌리 한 두명만 남기고 전원 철수. 치매에 걸린 환자 본인은 지랄이 나면 귀찮으니까 그냥 아편에 절여놓는다.
그리고 무림제일화께서는 현재 최종단계 중에서도 거의 최종단계다. 오늘 탈출한 팽형은 2단계의 끄트머리였고. 이쯤되면 그냥 일반인 수준의 근력과 피지컬이라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아, 어서오세요."
"예 고생 많으십니다."
보감대 1조 소속의 정소소다. 나와 마찬가지로 무명소졸이다. 사실상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 같은거지 우리 보감대는. 물론 그것만 있는건 아니지만.
1조는 거의다 여성인원이다. 여고수들도 많으니까. 아무래도 곧 죽을 양반들이라고 해도 외간남자 앞에서 아랫도리 다 까고 그럴 순 없는 거니까. 그래서 1조는 낮 근무를 서고 2조와 3조가 밤근무를 교대로 선다.
"준비물좀 부탁해요."
"네. 여기 준비 해 놨어요."
준비물이래봐야 코에 쑤셔박을 솜 하고 옷 위에 덧댈 천 쪼가리다. 이거라도 있는걸 감지덕지 해야지.
"종리소저. 저 장삼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소저는 무슨 얼어죽을. 그래도 이렇게 안 부르면 소리를 지르고 날뛰니까 드러워도 소저소저 하는거지. 똥칠하는 소저가 어디있어.
"왔구나 이 음적!"
들어가자 마자 아랫도리를 훤히 까고 있는 왕년의 무림제일화께서 덤벼든다. 하... 진짜 못볼꼴이다 못볼꼴.
"자, 일단 진정하시구요. 먼저 손 부터 씻으시죠."
"네놈의 그 세치혀에 놀아날줄 아느냐?"
"예. 예. 제가 음적 맞으니까 일단 손. 자. 빨리 이리 줘요."
그래도 오늘은 상태가 제법 양호하다. 아까 팽대협을 잡아오는게 쪼끔만 늦었어도 상태는 더욱 더 험악했겠지. 코를 솜으로 틀어막고 얼굴을 두건으로 두르고 있지만 입으로 들어오는 구릿한 냄새가.. 어우. 생각하지 말자. 장르가 스카... 아니. 음. 에이 시발 진짜.
"옷도 좀 벗어요."
"네놈이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따를 줄 아느냐!"
노망이나면 무슨 목구멍에 부스터라도 달리는건가. 하나같이 뇐네들 목청이 쩌렁쩌렁한다. 귀아파라. 입으로는 싫다고 하면서도 뭔가 내가 보호자 비스무리한걸로 인식이 되어서인지 착실하게 똥묻은 옷을 벗었다.
"나..날 어찌할 심산이냐..?"
분위기 하나는 뭐 진짜 어디 잡혀가서 느요느요 당하기 직전같다. 이상하게 내공이 흩어지고 그러면 몸도 제 나이 찾아가는데 이 할머니는 잘 쳐주면 중년쯤? 내가 뭐 중년의 알몸을 본 적이 있는건 아니지만 목에 있는 주름이나 피부의 탄력이나 이런거 보면 대충 그런 느낌이다.
"잠시만 서 계세요."
"...놈... 나에게 수치를 주더라도 내 입은 열리지 않는다..."
왕년에 저러셨으면 남자 여럿 잡았겠다. 하지만 저는 제일매화의 입을 열 생각이 없습니다... 열어봐야 노망난 소리인데. 방 중간에 가만히 서 있는 종리연의 몸을 위 아래로 흝었다. 오케이. 다행이다 똥은 손과 엉덩이에만 묻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났으면 지 몸에도 온통 칠해놨을텐데. 긍정적인 마인드. 긍정적인 마인드.
바들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는 종리연을 두고 방 안을 둘러봤다. 하도 칠갑을 해 놔서 방 안쪽에 손이 닿을 만한 곳은 천쪼가리나 다 써버린 종이같은걸로 죄다 발라놨다. 이럴 때 그냥 떼서 청소를 할 수 있도록. 일단 탈출방지용으로 쇠창살이 박혀 있는 창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오염된 벽지를 다 뜯어내버리고 장갑에 오물이 묻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뭉쳤다. 늦가을의 한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지 종리연이 양 팔로 몸을 감쌌다.
"..나를 어찌할 생각이냐."
"아니, 어떻게 안한다니까요. 가만히 좀 계십쇼."
빡치니까. 벗어둔 종리연의 옷가지까지 모두 회수 한 다음 방 밖으로 내밀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소소가 큰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밀어 넣어 줬다. 후우.
"후후... 가가께서 직접 씻겨주시려구요?"
종리연의 모드가 바뀌었다. 노망난 늙은이야 뭐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니까. 내가 가가소리만 들어본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형 소리도 들어보고 엄마 소리도 들어봤다. 이런거 하나하나 반응하면 피곤해서 이 일 못한다.
"가만히 좀 계십쇼.... 하아..."
"지금, 저한테, 한숨.. 쉬신 건가요?"
"한숨이 안 나오게 생겼습니까..."
말 해봐야 어차피 계속 아무말 대잔치다. 내가 뭘 말한다고 알아듣고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저 나에게 남은 일말의 연민에 기대서 대야 안에 쭈그려앉은 종리연을 씻겼다.
그렇게 대야가 세번 정도 나갔다 들어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해진 종리연의 뒷처리가 끝났다. 흐... 그래도 오늘은 잘 끝났네. 방에 들어서자 마자 온 몸에 똥칠을 하고 달려들 때도 있었던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지.
왜 때려치지 않느냐? 라고 한다면 그냥 딱히 먹고 살 만한 일이 없어서? 나도 처음 여기 떨어지고 나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안 해본건 아니다. 말도 배우고, 글도 어째어째 대충 읽고 쓰는 정도는 배우고. 현대인스러운 생각으로 뭔가 막 혁명적인 뭐시기를 개발해서 주지육림을 꾸리고 중원을 정복하는 뭐, 그런 꿈을 꾸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 쉽게 안 변한다. 적응하고 나니 귀찮아서 못하겠더라. 당금의 무림은 한 발 걸치는 것 만으로도 대충 먹고 살 만큼 평화로웠고, 나는 현대에서도 그렇게 뛰어난 재원이 아니었듯이 여기서도 그냥 그저 그런 장삼이었다. 막 천무지체니 하는 개쩌는 무재가 있는것도 아니었고. 누가 들었다 하면 뒤로 넘어가는 시를 지을줄 알거나, 웅혼한 기운이 살아 넘치게 일필휘지로 붓을 놀릴 재능도 없었다.
그냥 적당히 포기하고 살기로 한 거지 뭐. 내가 어찌어찌 오래 살다 보니 나이에 비해 정신연령이 좀 높고 그런거야 있겠지만. 보통의 현대인을 이세계에 던져놔 봐도 어차피 특별할 게 없는거다.
"제가 잘 때 까지 옆에 계실거죠?"
"예. 예. 그럽지요."
똥칠을 하고 씻겨주고 나면 몸이 따끈따끈해지면서 꾸벅거리고 존다. 슬슬 얌전해지는 과정인데 이럴때 자리를 비우면 어린애들 잠투정 하듯이 또 개지랄병이 난다. 소소도 힘들고 나도 귀찮으니까 그냥 재우는게 나았다.
"우리 만났을 때 이야기 해 주세요."
"그게... 또 듣고 싶소?"
"몇 번을 들어도 좋은걸요."
몇 번을 들어도 기억을 못한다. 남편이 있었고, 자식도 있었고 손녀도 있었던 종리연에게 나는 그동안 거리의 악사도 되었었다가, 무림맹의 금(금)급 무사도 되었었다가. 온갖 약을 다 팔았다. 그래도 기억을 못하니까 아무말 대잔치 하는거지 뭐. 얼른 잠이나 들었으면 싶었다.
딱히 이 사람이 싫다거나 한건 아니었다. 유독 나를 찾아 대긴 해도 나한테는 수많은 환자들 중 하나였으니까. 그냥 오늘처럼 밖에 나가서 도망친 뇐네 잡아 놓느라 뛰어다니고 한 날은 힘에 부친다. 나는 일반인 보다 약간 나은 수준의 무사였으니까.
"고생하셨습니다."
"빨리 불러주셔서 살았네요."
"그게 서로 편하니까요."
어떻게 어떻게 간신히 재우고 방을 나섰다. 방 밖에서는 정소소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내놓은 빨래가 많았는데 그냥 뭉쳐놨나보다. 하기사. 매일같이 똥빨래니 지칠만도 하겠지. 눈에 아주 그냥 피곤함이 줄줄 묻어 나온다.
"아마 오늘은 이대로 주무실 것 같네요."
"그러길 바래야죠."
그녀는 곧 있으면 하번이고, 나는 오늘 저녁 비번이다. 그 사실이 그나마 우리가 서로 악다구니를 쓰지 않을 수 있는 작은 위안이었다. 오늘 야간은 2조니까 아까 위지 조장이 받아온 주머니를 혼자 꿀꺽 하지 않는다면 간만에 술 한잔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또..."
"네."
어차피 종리연할매가 조용해 진 이상 내가 여기서 더 뭉개고 있을 이유도 필요도 없어서 잽싸게 몸을 돌려 빠져나왔다. 소소는 나를 보고 뭔가 더 노가리를 까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진짜 피곤해 뒤질것 같다.
일단 몸에 찐하게 베어있는 냄새부터 지워야했다. 이 시대에 욕실딸린 개인 숙소를 일하는 사람에게 제공한다는건 정말 드물었지만 여기는 어쩔 수 없었다. 일이 일이니까. 숙소로 돌아와 받아 놓은 물을 퍼서 온 몸을 벅벅 씻었다. 비누를 저자에서 팔긴 하는데 아직 나같은 무지렁이들이 쓸 물건은 아닌지 잿물이나 뭔 이상한 가루 뭉친거 같은 세재를 줘서 그걸로 몸도 씻고 옷도 빨고 그랬다. 이게 빠는건지 물리적으로 옷을 패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장님. 조장님."
말려 놓은 옷을 꺼내 입고 조장님 숙소의 문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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