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치매대응반-1화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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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무림치매대응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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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장 삼. 장씨네 셋째. 해남 어름의 이름도 거창한 장천무관의 셋째.

아버지께서는 무림맹 남경지부의 하급무사로 젊은 날을 보내시고 어디서 이상한 운기토납법을 주워와서는 고향동네에 무관을 차리셨다. 상승의 절학은 절대 아니고 숨겨진 뭔가도 없다. 그냥 동네사람들 힘 쓸일 있으면 도와주고 마적떼가 구걸하러 내려오면 얼굴팔이나 하는 정도.

내 나이는 올해로 스물 넷. 이 무림속으로 들어온 지 이십년쯤 되었다.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말년병장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왔다. 트럭에 치인것도 아니고 수상한 노친네에게 뭘 받은것도 아니고 비슷한 내용의 무협지를 봤다거나 그런것도 없다.

"돌아 갑시다."

"가면 어쩌시려고요?"

"어차피 우리가 뭐 할 수 있는것도 없지 않소?"

인적 드문 야산. 무림맹 남경지부에서 어떤 특수한 임무를 맡은 나는 마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탈영했던 김일병놈을 수색했을 때 처럼 낙엽으로 뒤덮인 산자락을 나무 막대로 푹 푹 쑤시고 있었다.

"일이 벌어지자 마자 기별은 했으니 곧 추포대가 올거요."

"내 그러게 인원의 충원이 더 필요하다 했거늘."

"이미 터진일을 어쩌겠소?"

"갑시다."

"전원! 맹으로 돌아간다!"

"충!"

나도 크게 충! 하고 외쳤다. 병정놀이도 아니고 거 참. 보감대의 대주인 당인섭과 우리조의 조장인 위지분이 인원을 끌어 모았다. 몸을 돌려 다시 산 비탈을 내려가려고 커다란 바위 옆을 나무 막대로 짚었더니. 어머나.

­ 물컹

당황해서는 안된다. 미친놈을 자극해봐야 나한테 이로울 것은 없었으니까. 이빨이 빠졌다고 해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사실은 귀찮은게 더 크지만. 마치 아무것도 못 느낀 척 막대끝에 체중을 싣고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걸으면서 막대를 빼서 옆에다가 꾹. 아 씨벌 여기도.

"클클클클...."

등골이 쭈뼛. 온 몸의 솜털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진짜로 클클클클 하고 웃네.

"놈! 노부가 몸을 숨긴곳을 정확하게 짚어내다니 제법 한 수가 있는 놈이구나!"

"찾았다!!! 찾았다!!"

­ 삐이이이익!

호각 소리가 울려퍼지고 주변이 부산스러워졌다. 대주와 조장, 내 주변에 있던 우리 조 사람들이 급하게 모여든다. 그리고 내 목에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클클클. 그래. 아해야. 살 날이 많이 남은 것 같은데... 억울해서 어찌할꼬?"

"어르신 저기.. 진정하시고..."

"내가! 이 칠절신도 팽운혁이 네놈의 세치 혀에 놀아날 것 같으냐 이놈드으으을!"

아오 쉬벌 고막 터지겠네. 진짜. 뭔가 인질극을 벌이는 테러리스트를 보는 느낌으로 내 정면에 있는 보감대주 당인섭의 눈빛이 흔들린다. 하아. 어떻게좀 해 보쇼 진짜.

"내 칠절도가 없어도 여기 있는 마졸놈들 정도야 저승길에 데려갈 수 있지!"

누가 마졸입니까...

"마교주 현승악의 모가지를 내 손을 딸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일이나, 풍류남아로 태어나 죽을 자리를 피하진 않을 것이다! 오너라 이놈들!!"

[소협 그대로 계시게.]

귓가가 간질간질하니 제법 근처에서 전음을 날린 모양이다. 작은 소리라 목소리를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 추포대가 온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흐압!"

­ 뻐억!

"끄...으으으... 이.. 원통한..."

"어휴... 할아버지 또 이러시네."

내 목에 닿아 있던 서늘한 느낌이 사라지고 풀썩 하는 소리가 났다. 허우. 영감님 입냄새가 심해서 시껍했네 진짜.

"고생하셨소이다."

"아닙니다. 빨리 와 주셔서 다행입니다."

쓰러진 팽운혁을 받아 들고 있는 이는 무림맹 남경지부에 파견되어 있는 추포대 2조장 팽수기. 하북팽가의 전대 가주 칠절신도 팽운혁의 손자였다.

"참.. 누구보다 든든하신 분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나도 씁쓸해진다. 팽운혁은 팔 다리가 앙상하게 말라 이제는 뭘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내 목에 닿아있던 서늘한것도 밥먹던 나무 숟갈이었다. 낙엽 가득한 초겨울이라 쌀쌀했던 거지.

"자, 돌아들 갑시다. 조장님. 이걸로 술이라도 한 잔 하시지요."

팽수기가 팽운혁을 어깨에 들쳐업고 손을 흔들어 위지분 조장에게 은자를 하나 던졌다. 오. 오늘은 목에 기름칠좀 하겠는데.

"저희 임무입니다. 이러지 않으셔도..."

"개인적으로 고마워서 그러죠. 자 그럼 먼저."

파밧. 하는 소리와 함께 팽수기의 신형이 쭉쭉 멀어져갔다. 아 경공. 씨바 나도 경공 배우고 싶은데 개부럽다.

"자, 철수!"

탈출 한 사람이 팽운혁이기도 해서 다행히 그렇게 큰 사건 없이 마무리가 되었다. 무림맹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임무가 뭐냐고?

치매 노친네들 돌보는 일이다.

"정리들 하고 쉬어 두게."

"예. 대주."

무림맹 남경 지부. 호북의 무림맹 총본산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해남 출신이긴 했지만 코딱지만한 장원은 어차피 장일이형에게 물려줄 게 결정되어 있어서 똑같이 여기서 동(동)급 무사로 무림맹 생활을 했던 아버지의 연줄을 타고 동급 무사로 들어왔다.

위지분 대주의 해산령을 듣고 담벼락에 찰싹 달라붙은 숙소로 돌아왔다. 씨부럴거. 그나마 다행인게 1인실이라는 점일까. 여기서 만약에 다른 사람과 같이 방을 써야 했다면 애저녁에 때려치웠을거다.

언제부턴가, 무림에 치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야 현대에서 얻은 지식이 있으니까 뇌 문제라는건 알아서 그냥 늙어서 그런갑다 했지만, 이야기를 듣고보니 확실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애초에 노고수라는 것들은 괴물같은 놈들이라서 노망이 나는 일이 없었다고 했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같은 느낌으로 벌어진거다.

아, 물론 그건 무림이 평화로운것도 한몫했다. 명 초에 백련교애들하고 푸닥거리하고 무림 내에서도 매일같이 세력싸움이 벌어질때는 다들 제 명에 못 죽었으니까. 상대적으로 표본이 적었던 것도 있겠지. 하여간 지금부터 한 50년쯤 전에 무당파 전전대 장문인이 금분세수(???手)를 하는날 대야에 똥을 가득 담아서 금분세수(???手)를 해 버린 이후로 노고수들의 노망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고 하더라.

"이봐, 장삼 안에 있나?"

"아, 예 조장님."

나갔다 온 옷가지를 정리하며 한 숨 돌리고 있는데 방 밖에서 위지분 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또. 뭐 시킬려고.

"오늘 그, 말일세, 제일매화께서..."

제일매화 종리연. 종리세가 자체야 뭐 지금도 별 볼일 없었지만 어째 천고의 기재가 툭 하고 튀어나와서 화산의 속가제자가 되었다. 그 빼어난 미모로 무림제일화의 칭호를 받았다지만 지금은 그냥 노망난 할머니다. 그래도 쌓아둔 공부가 어디 가는건 아니라서 일흔이 넘은 지금도 몸만 보면 중년같은 느낌이었다.

"...또요?"

"손녀도 필요 없다고 꼭 자네를 데려오라는구만."

손녀도 필요 없다... 라고 하지만 종리혜는 보나마나 어디로 도망갔을거다. 직계는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후기지수들이 그득한 무림맹에 왔는데 할머니 똥수발이나 들게 생겼나.

"...그건 아니죠?"

"그걸세..."

늙으면 애가 된다고 하던가. 소싯적의 무림제일화께서는 또 온 벽에 똥칠을 해놓고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후우. 거 참 이제 최종 단계라 어지간하면 그럴 기력도 없을텐데.

"부탁좀 하지."

"뭐... 제 일이니까요 금방 채비하겠습니다."

못내 미안한, 하지만 그 안에는 안도의 기색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위지분 조장이 떠나갔다. 쒯더뻑이다 이 개새끼들아.

투덜거림 반, 안타까움 반. 짜증 200프로 상태로 발걸음을 옮겼다.최종 단계. 우리끼리는 쉬쉬하지만 참 어디가서 입에 올리기 힘든 이야기다.

당연히 이 시대에 뭐 치매검사가 있을리도 없고, 그나마 요즘엔 어느정도 경계를 하고 있으니까 빨리 발견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치매를 발견하면 그래도 비교적 제 정신이 있을 때 여기로 온다.

거의 호송 수준으로 삼엄한 경계를 붙여서. 해당 가문에서도 붙이고 무림맹에서도 인원을 지워해준다. 아 물론 그 정도 끕이 안되는 노친네들은 각 가문에서 알아서들 처리한다. 방계 장로나 뭐 이런 양반들. 후기지수들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면 가문 내에 폐관수련동이나 이런데 적당히 처박아서 보내는 모양이다. 안그래도 넘쳐나서.

여기로 오는건 제어 안되는 전술핵 급. 왕년에 삼황(三?)이니 오제(五?)니 타이틀 붙어있던 네임드 양반들이다. 늙을대로 늙어서 내공은 심후하고 초식은 무의식중에도 뻗어 나오며 심심찮게 이기어검이니 뭐 그런걸 발톱깎을때 쓰는 수준의 노괴들. 솔직히 한 번 떴다하면 혈겁이 벌어지는 인물들인데 제 아무리 명문가라도 혼자서 감당이 되겠냐.

그런 상태일때는 제 아무리 점혈을 해 놔도 소용이 없다. 아혈이고 마혈이고 짚어봐야 물 흐르듯이 해혈해버리고 미쳐날뛴다. 그래도 비교적 제정신일때가 많기는 하지만 이때가 제일 위험하다. 이게 1단계. 여기서는 약종류도 거의 못쓴다. 아직 내공이 싱싱하게 살아 있어서.이게 제일 위험한 이유는 제정신이 아닐때 가문의 상승절학을 유출시킬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번 그런 사고가 터졌다고 한다. 남궁가주가 들어왔다가 요강비워주는 친구를 붙들고 벌모세수를 시킨다음에 비장하게 창궁무애검법을 전수해버려서. 천만 다행인게 남궁가의 방계라서 사태를 어찌어찌 잘 수습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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