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마왕성으로 가기 전의 임신 야스
* * *
“여기가... 마왕성?”
솔직히 말 하자면 별거 없네 이거. 뭔가 가는길에 엄청난 위협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와 보니 평범하기가 그지 없었으니까.
딱 봐도 어두침침해 보이는 거성. 하늘은 검게 물들어 있는데다가, 먹구름이 가득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데 꽤나 고생 좀 할줄 알았더만...
“괜히 래빗이 있는게 아니구나...”
메르 누나의 공간 조종 마법으로 한번에 올 수 있는줄은 몰랐지.
그냥 손가락을 한번 딱 하고 튕기니 마왕성 문짝 앞으로 통하는 틈이 열려 버린 것이다. 그 안으로 다같이 뛰어들고 나니 도착한 곳이 다름아닌 성채 앞 이었다.
“뭐가 이렇게 간단해?”
어깨를 한번 으쓱 하면서, 별것도 아닌 양 배시시 웃어 보이는 메르 누나. 정작 문짝 앞에 있는 딱 봐도 문지기로 보이는 검은 비키니 갑옷의 기사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히익... 사, 사천왕들이 셋이나 여길... 대체 무슨 일로...?”
금방이라도 풀썩 쓰러져서는 꼴까닥 숨을 거두어 버릴 것만 같은데.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나는거 아니려나 싶다.
“아... 그냥 마왕을 쓰러뜨리러 온 건데?”
그래서 안심 시키려고 했더니, 오히려 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버리는 그녀.
“호에엑...! 쿠, 쿠데타? 반란? 아니면 혁명 같은건가요? 사, 살려주세요! 아직 죽고싶지 않아!”
이 녀석,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너무 벌벌 떨면서 엎어져 있어서 금방이라도 기절 해 버릴것만 같았으니까.
“얘야? 잠시만, 그런 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너를 해칠 생각은 조금도 없느니라. 그저 우리는 아자젤을 만나러 왔을 뿐이니라.”
“용사랑 같이요?”
“아, 젠장.”
툴툴 거리면서, 한숨을 폭 내쉬는 아리네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용사였구나.
그러니 이렇게 두려워 하는것도 당연했다. 사천왕중 셋이 용사랑 같이 마왕성 앞에 들이닥친 꼴 이니까.
누가 봐도 반란각 잡은거나 다름 없었다.
“그으... 일단 안으로 들여 보내주면 안되겠느냐? 일단 아자젤을 만나서 이야기만 좀 하면... 그 다음으로는 뭐, 굳이 여기 있을 이유도 없느니라.”
“아자젤 님을 만나려면 저를 먼저 쓰러뜨려야 할 겁니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난데없이 들려오는 의문의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네. 에스더.”
길게 자라있는 금발에, 약간 갈색으로 물들어 있는 피부. 어째서인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와는 달리 젖어있는 눈동자 까지.
한숨 소리가 꽤나 달짝지근 하게 들렸다. 아무리 봐도 그녀가 맞았다.
“애, 앨리스...?”
앨리스가 성채의 문 안쪽에 서 있었다.
꽤나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로.
솔직히 앨리스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적어도 평범한 상태는 아닌게 분명했다. 금발은 여전했지만, 피부 색이 갈색으로 물들어 있는데다가. 온 몸을 감싸고 있던 갑옷은 어디 갖다 버린건지 거의 벗어 놓은 채였으니까.
수영복 비슷한 옷 조각을 입은채로, 가만히 내 앞에 서 있는 그녀. 아랫배에 하트 모양의 음문이 그려져 있는게 보였다.
허리춤에 달려있는 작은 두 개의 날개는, 누가 봐도 기사라기 보다는 서큐버스에 가깝게 보였다.
아니, 진짜 서큐버스인데 저거?
리리스와 다른점이 있다면, 몸을 가리고 있는 옷차림의 상태가 좀 더 이상하다는 것 이려나.
가슴과 아랫도리만 겨우 가리고 있는, 옷이라고 하기도 뭣한 끈만 겨우 걸치고 있었으니까.
“어... 낭군님? 저 여자는 대체 누구인가요?”
“나랑 같이 다녔던 친구.”
한숨을 폭 내쉬면서 답해주니 그녀가 눈을 부라리면서 내게 외쳤다.
“뭐? 친구? 우리가 그런 사이밖에 안 됐어? 그때 같이 떡치기까지 했는데!”
“그대여, 저 년이 한 말 똑바로 대는게 좋을게다.”
으르렁 거리면서, 등 뒤에서 아리네스가 나긋나긋하게 물었다.
아, 이거 좆됐네. 누가 봐도 바람 핀 것처럼 보이잖아...
“대장님! 그, 그렇지만 상대는 용사입니다. 저희가 처리해야 할 문제...”
“됐으니까 물러나 있어. 내가 알아서 처리 할 테니까.”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기사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 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성채 안으로 들어가 버린 그녀는, 순식간에 어두컴컴한 성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도 오랜만인지라, 무슨 대답을 해야하는건가 싶었는데. 정작 앨리스는 내게 뭘 말하든 간에 따질 생각만 가득 해 보였다.
으르렁 거리면서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애, 앨리스... 안녕하신...”
“됐고, 저 뒤에 있는 년들 뭐야?”
내 말을 자르면서 등 뒤에 있는 넷을 가리키는 그녀. 꽤나 성질이 나 있는 것 같았다.
“흐음? 자기 소개 시간인가? 이몸은 사천...”
“다 알고 있거든. 사천왕 구미호 아리네스, 서큐버스 퀸 리리스, 어둠의 화신 테메브리스. 그런데... 저 래빗은 누구야?”
“어머, 저는 메르랍니다. 서방님의 본처이지요.”
방긋 웃으면서, 언제나처럼 나긋나긋 하게 눈치도 없이 등 뒤에서 나불거리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아니, 근데 저 녀석은 여기 왜 있는거야?
“그 표정 잘 알고 있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한거구나?”
우후훗 하고 웃으면서 등을 벽에 기대는 그녀. 그리고는 다리를 살짝 꼰채, 고개를 갸웃 하면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너를 찾고 있었어. 찾고 또 찾았어.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를 않아서. 그러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린거야.”
섬뜩하리 만치 차갑게 식어있는 목소리로, 나를 내려다 본채 그녀는 계속 제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그러면 아예, 마왕에게로 가면 되는게 아닐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네가 알아서 찾아 올 테니까. 그래서, 이곳에서 그분께 몸을 바치고 너를 기다렸어. 계속, 계속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너는 내가 지켜줘야 하니까.”
싸늘하게 식어 있는 목소리로, 내게 다가오는 앨리스. 하지만 아리네스가 나서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어느샌가 나를 뒤에 놓아두고서 앞을 막아서는 그녀는, 짐승 특유의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아이에게 손 대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어느샌가 다같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아니, 잠깐만... 꼭 내가 보호 받는거 같잖아!
앨리스 정도는 혼자서 얼마든지 처치 할 수 있는데! 생각해 보니 이 녀석들 앞에서는 줄창 패배하기만 했구나?
이런 젠장.
“걱정하지 마세요. 저런 타락한 기사 따위, 저희가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으니까요.”
“에헤헤... 이제야 남편을 찾았는데. 이렇게나 황당하게 놓아 버릴수는 없거든...!”
이 녀석들 너무 나한테 집착하는거 같은데...
조금은 소름이 쭉 돋는다고 해야하나. 어쩐지 미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앨리스가 무슨 반응을 내 놓으려나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꽤나 집착 해 온 것 같은데. 어쩌면 이 참에 날 갖겠다면서 난리나는게 아니려나.
그런데, 조금 의아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묭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가, 제자리에 털썩 주저 앉더니 눈을 적시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임신 시켜 놓고서 달아나려는 거야?”
“어... 뭐?”
잠깐, 뭐라고? 임신 시킨건 내가 아니고 네 녀석이잖아! 아니, 미약초를 이용해서 강간하게끔 만들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니 쓰레기 같네 이거.
“그대여...? 대체 저 녀석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아니, 별거 없는데. 그냥 옛날에 같이 다녔다가 실수로 토끼굴에 떨어져서 헤어졌거든.”
“섹스하고 나서요?”
“그, 그렇지...”
와아... 진짜 개 쓰레기가 따로 없네 이거. 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뭔가 영 이상하구만.
사방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시선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 들고 말았다. 이윽고 한숨을 포옥 내쉬면서, 슬그머니 내 앞에 주저 앉는 아리네스가 귓가에 속삭였다.
“그냥 저 녀석도 네 아내로 치는게 어떠냐?”
“뭐? 아니, 그치만...”
“그치만?”
“이, 인간이잖아!”
인간이 일부다처제를 어떻게 받아 들여? 마물이야 그렇다 쳐도 앨리스는 어쨌든 인간인데...
“저, 저기... 나, 인간 그만둔지 오래 됐는데.”
그런데 앨리스는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다. 바닥에 주저 앉은채로 슬쩍 눈을 돌리고서 부끄러워 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이거 은근히 야하네... 갈색으로 적당히 타 있는 몸뚱어리가, 희한하리만치 음탕해 보였다. 리리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으니까.
거기다 아랫배에 그려져 있는 하트모양 음문까지.
제 아랫도리를 손으로 가린채 주저 하면서, 등 뒤로 악마 꼬리와 날개를 나풀나풀 흔들어 대는 그녀. 이윽고 볼을 붉힌채 앨리스가 내게 말 했다.
“그으... 솔직히 네 아내라면... 얼마든지 될 수 있는데. 거기다 이제는 마물이니까...”
이 녀석 인간을 그만두더니 돌아 버린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노려보고 있으려니,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버리는 앨리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앞에 서 있던 누나들이 오오 하고 묘한 탄성을 흘렸다.
“새로운 아내라... 꽤 보기 좋구나.”
“저 녀석, 나랑 같은 서큐버스잖아. 겹치는건 싫은데...”
“후후... 저는 아무래도 상관 없어요. 낭군님의 아내가 늘어나면 오히려 좋아요. 저는 여자도 가능하거든요.”
메르는 그런 취향이었구나. 어쩐지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안 하더라...
“저... 저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좀 늦은거 같지만... 받아 줄 수 있을까?”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질척한 집착이 엿보였다가 갑자기 이러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미친 듯이 싸울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풀렸으니까.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렸다.
아무려면 어때. 그냥 따먹히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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