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태양 파괴자 일족 오크에게 패배
* * *
솔직히 오크 동굴이라고 해서 조금은 걱정했는데, 그렇게나 험한 곳은 아니었다.
고작 해 봐야 누군가가 살고 있던 흔적이 남아있는 동굴일 뿐이다.
곳곳에 놓여있는 낡아빠진 이부자리나, 어쩐지 불길한 기운이 팍팍 풍기는 무기가 놓여있는 곳일 뿐 이었으니까.
물론 방심 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오크에게 강간 당하는거, 솔직히 한번쯤은 해 보고 싶었으니까.
물론 난 게이가 아닌지라 남자에게 당하는 취미 따위는 추호도 없다.
이곳에 마물은 모두 다 여성 뿐이므로, 오크도 당연히 녹색 피부의 근육녀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이빨이 좀 크고... 체취가 좀 심하게 풍기는 데다가, 말투가 좀 어눌하고...
음,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메르? 그런데... 오크에 대해서 뭐 알고 있는거 없나?”
혹시나 싶어서 마물인 메르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제 머리에 달린 토끼귀를 가리고 있는 모자를 덮어 쓰더니 답했다.
“알고 있는거라... 옛날에 도시에서 살았을 때 오크가 연 빵집이 있었는데 맛있었어요.”
“그게 다야? 아니, 그게 아니고 마물한테 도시가 있어?”
그런건 처음 듣는데? 게임에 나온건 마물들과 마왕성 정도 뿐 이었으니까. 생활상이라고 해 봐야, 숲에서 살고 있는 마물 정도가 끝이었는데...
“저희를 뭘로 보시는 거에요! 당연히 도시가 있죠! 거기에 마물들이 모여 살곤 하는 거에요.”
“그럼 마왕성은 뭐야?”
“말 그래도 왕성이죠. 인간은 왕성에만 사람들이 사나요?”
읏... 그렇게 말 하면, 딱히 대꾸 할만한게 없는데...
잠깐, 그러면 이 녀석 오크랑 같은 곳에서 살았다는거 아냐? 그럼 오크들이랑 어느정도 알고 있을수도 있는거 아닌가?
“저기... 그럼, 혹시 오크들과 아는 사이는 아니지?”
“뭐어... 녹색 오크들과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진 않았어요. 옆집에서 하도 보채고 난리를 피워 대서, 하지만 흑오크들과는 오래 각별한 사이로 지냈죠. 그러고 보니 그 친구들 이사간다고 하던데 어디로 갔을까요?”
흑오크와 친한 사이였다니... 조금은 아쉬웠다. 내가 게임에서 본 오크들은 하나같이 녹색 이었고, 갈색 피부의 오크는 중간보스급 캐릭터였으니까.
쩝... 인맥으로 날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강간 당하는게 목적이니 상관 없나.
그리 생각하며 동굴을 찬찬히 둘러보고 있었다.
의외로 꽤 고즈넉한 것이 지낼만 한 것 같은데, 이런 곳에서 살면 빛만 좀 보면 꽤 살기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오크 녀석들은 어디에 있는거야...”
“글쎄요? 좀 더 둘러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 말 하며 지팡이로 벽을 툭툭 치기 시작하는 메르. 한번씩 귀가 쫑긋 거리면서 머리에 뒤집어쓴 뾰족 모자가 이따금씩 꼼틀 거렸다.
으음, 저거 의외로 귀여운데...
괜히 모자로 가렸나 싶었더만, 통통 거리며 모자가 움직이고 있으니 그것도 나름 볼만 했다.
찬찬히 벽에 손을 대고서 훑어 나가며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벽 한켠에 뭔가 이상한 것이 손에 집혔다.
“으음...? 이거 뭐야?”
“네?”
뒤에서 메르는 여전히 벽을 지팡이로 두들기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내 말에 대답해 준건 완전히 정신을 빼 놓지는 않았다는 증거이리라.
뭔가 몽클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벽이라기 보다는 진흙에 가까운 감촉이 느껴졌다. 손에 쥐고서 안쪽으로 꾹 눌러보니 벽 속을 향해 손이 천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응...? 뭐여 이거.”
암만 봐도 수상한데.
그리 생각하며 그대로 벽에 몸을 대고서 있는 힘껏 밀어 보았다.
안쪽으로 몸이 스르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미묘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져서 뒤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벽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는 몸은 도저히 되돌리기에는 깊이 들어가 버렸던 게다.
“메, 메르! 이거 뭣...!”
그대로 도움을 요청 하기도 전에, 반쯤 끌려 들어간 몸은 고스란이 벽으로 녹아 들어가 버렸다.
그 소리를 들은 메르가 뒤를 돌아다 보는 것이, 내가 본 마지막 광경 이었다.
순간 메르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잠시나마, 귀 한쪽은 끌려 들어가지 않고서 남아 있었던 게다.
“뭐어, 그 애들도 몸보신 좀 해야 하니까. 조금 있다가 봐요 서방님.”
역시나, 마물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야.
그래서 더 좋은거지만!
어째서인지 시야가 붉었다.
마치 빛이 가득 한 것처럼.
내가 들어왔던 곳은 분명히 벽 속이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대낮인 것 마냥 밝은 끼가 가득했던 것이다.
그 빛을 가리려고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슬그머니 배어 들어오는 어둠에 한결 눈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너, 일어나라. 깨어 있는 주제에 뭘 자는 척 하는거냐.”
그때, 곁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이빨에 문제가 있는 것 마냥, 약간 새는 발음은 희한하게도 험악하다거나 무섭다기 보다는 허스키하게 들려왔다.
묘하게 쿨하다는 느낌이 물씬 드는 음성이어서, 천천히 눈을 뜨고서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폈다.
“으으음... 오크...?”
오크라고 해야 하려나?
키가 나 보다 훨씬 커서 올려다 봐야 하는 데다가 송곳이가 바깥으로 비죽 튀어 나와 있었다.
요염하다기 보다는 튼튼해 보이는 몸을 가지고 있는 오크였다.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복근에, 팔 근육만 해도 뻥좀 보태서 내 몸 정도는 되지 않으려나 싶을 정도.
거기다 허벅지가 어찌나 듬직하던지, 저 사이에 목을 내어 줘 버리면 단숨에 골로 가지 않을까 싶었다.
갈색 피부의 근육질 여성이지만, 희한하게도 묘한 색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마 가슴과 하반신만 겨우 가리고 있는 치마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길게 자라있는 흑발은 오크 치고는 희한하게도 곱게 땋아 놓은 상태였다.
“그냥 오크가 아니다. 태양 파괴자 일족이지. 나를 녹색 형제들과 같은 취급 하지 마라.”
“어... 피부색 말고 다른게 있어?”
“이빨 크기도 다르고, 키도 다르다.”
“그렇구만.”
그렇다니 딱히 할 말이 없는데. 이 갈색 피부의 오크는 녹색 오크와는 다른 취급을 받고 싶은 것 같았다.
흐음... 뭐, 딱히 종 차별 주의자는 아니니까 원하는 대로 해 줘야겠지.
근데 태양 파괴자 일족이라니, 이름 한번 험하네!
그리 생각하며 주변을 쭉 둘러 보았다. 눈을 부시게 만들던 빛은 천장에 달려 있던 램프의 불빛 이었다.
바닥은 딱딱했지만 얇은 담요를 덮어 놓아서 땅바닥은 아니었다. 오크들 치곤 나름대로 배려도 해 주는 것이, 썩 나쁘지 않은거 같은데...
정작 나를 이곳에 데려 온 것이 분명한 그녀는, 나를 내려다 보면서 고개를 갸웃 거리고 있었다.
“그으... 근데,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하도 얼떨떨해서 비명이라든가, 도망치려고 할 생각조차 못하고 그녀를 바라만 보고 말았다. 저 오크 년, 이제 나한테 마구 능욕을 가하는 건가 싶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몸이 탄탄한 주제에 가슴도 꽤나 큰 편이라 의외로 덮쳐지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오크녀가 내 손을 잡고서 말 했다.
“무기를 들어라. 너는 우리 부족에 무단으로 침입했으니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어? 아, 아니! 무슨 댓가를 치루는 건데!”
“그야 당연히 전투가 아니겠는가?”
“잠깐만! 나 지금 도저히 이걸 이해를 못하겠는데! 설명 좀 해 줄래?”
하도 갑작스러워서 설명을 요구하니, 오히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의문을 담아 내게 물었다.
“너는 오크의 관습을 모르는 건가? 다 알고 있는거 아니었나?”
“난 인간인데 그딴걸 어떻게 아는데!”
“그런가? 나는 당연히 모두 다 알고 있는줄 알았다. 그럼 설명 해 주마.”
그리 말 하며 내 앞에 순순히 주저 앉는 거구의 오크녀는, 이내 제 설명을 끄집어 내기 시작했다.
하도 말이 짧은데다가 종종 왜 모르냐고 묻기까지 해서, 정확한 사정을 알기 어려웠지만 어떻게든 이해 할 정도로는 알아 낼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이 태양 파괴자 일족의 오크들은 일족의 오크들 끼리 전투를 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날이 되면 포로도 전투에 무조건 참여 해야 하는데, 승리하게 되면 포로 신세에서 풀려나 자유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패배하면?
“잠깐, 지면 그럼 어떻게 되는건데?”
설마 약한 포로는 필요 없다면서 죽여 버리는 건가?
혹시나 싶어서 물어 봤더니, 그녀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거야 당연히 따먹히는 거지.”
“아니, 그게 왜 당연한건데! 오크들은 보통 강자를 숭상하는거 아닌가?”
“그건 맞다만, 기껏 잡은 포로를 가만히 놀려 둘 수도 없는거 아닌가? 그러니 어떻게든 써 먹어야지.”
“그러니까! 왜 따먹히는 건데! 약한 사람의 자식을 가지면 안돼는거 아냐!”
“응? 왜 안돼는건가? 어차피 나오는건 같은 일족인데. 오히려 강자를 억지로 안으려고 하다가 큰일이 날 수도 있는거 아닌가?”
그제서야 이 오크라는 녀석들이 왜 약한 포로를 따먹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녀석들은 강한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일단 따먹어서 임신 해 버리면 같은 오크가 나오는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괜히 어줍잖게 강한 사람을 범하다 반격당하는 참사를 겪느니 약한 사람을 덮쳐서 확실하게 임신 하겠다는 기적의 논리를 전개 해 버린 게다.
아니, 나한테 나쁜건 아닌데. 그래도 좀 괴상하지 않나?
“싫으면 노동형을 할 수도 있는데. 너 같은 조그만 아이가 대장간에서 10년을 일하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나?”
“그냥 싸울게요.”
대장간에서 10년 동안 일하라니. 그냥 따먹히는게 훨씬 낫지. 사실 바라는 거 기도 하고.
그녀는 비죽 튀어나온 송곳이가 인상적으로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출발하자. 포로.”
여전히 묘한 단답형 대답을 내뱉으며, 그녀는 내 손을 잡고서 앞으로 나아갔다.
가는 길에 보이는 오크 동굴은... 뭐랄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문명적이었다.
벽마다 일정 간격으로 놓여있는 방문들, 그리고 방문 사이 사이에 타오르는 램프가 하나씩 걸려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깡 깡 대는 소리는, 아무래도 이 오크가 말한 대장간의 소음인 것 같았다. 그렇게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가니 곧 널따란 방이 하나 나타났다.
둥근 광장처럼 보이는 방은, 주변으로 두 개의 통로가 하나씩 더 이어져 있었다. 가운데에 있는 둥그런 원을 중심으로 주변에 길게 네모난 바위가 놓여 있다.
그 위에 앉아 있는 갈색 피부의 오크들은, 하나같이 근육이 굳은 여성들 이었다.
다만 일족이라고 한 주제에, 오크들이 열댓명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건 착각이련지... 숫자가 좀 적은거 아닌가 싶다.
그래도, 그녀들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괜찮게 생긴지라.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저런 오크들에게 강간 당할 수 있다니... 이거, 생각보다 좋은데?
내 손을 마주잡은 그녀가 나를 가운데에 있는 원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반대편에서, 다른 오크 하나가 손에 큼지막한 방망이를 든 채로 원 안에 들어왔다.
“저 소년이 무단 침입자인가? 암만 우리가 신생 부족이라고 해도 저 아이는 너무 어린거 아닌가 대장?”
“상관 없다. 어차피 남자니 정액만 싸면 된다.”
“뭐,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은 없지만.”
그리 말 하며 약간의 불만이 있는 듯 제 몸만한 방망이를 바닥에 턱 하니 대고서 몸을 굽혀 나를 바라보았다.
묵직한 가슴이 흔들리는게 언뜻 보였다.
오오... 찌찌 개쩔어!
“먼저 덤벼라 소년. 가만 보니 꽤 괜찮게 생겼구나.”
그러면서 입맛을 다시며, 그녀는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으읏... 내가 못 이길 것 같으냐!”
그리 말 하며, 양손에 망치를 들고서 그녀에게로 덤벼 들었다.
“으아아아아!”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바라만 보고 있더니...
“으럇!”
냅다, 방망이를 휘둘러 나를 후려 쳐 버렸다.
“커헉...!”
꽤나 강한 충격에 그대로 뒤로 엎어져 버렸다. 물론 고통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은 채 였다.
정확하게 패배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10초. 이거, 녀석들이 좀 실망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오... 저정도 약자라면 괜히 얻어 맞을 일도 없겠다.”
“그리고... 썩 귀엽게 생겼는데... 크흐흐...”
실망은 개뿔,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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