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오크 동굴을 향해서
* * *
미묘한 적막감이 고요히 흘렀다.
메르는 창피한 듯 고개를 돌린채 푹 수그렸고, 그 곁에서 나는 이불로 몸을 가리고서 한마디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 와중에 아리네스는 어디서 가져온건지 왠 파이프 담배를 가져다가 뻑뻑 피워대면서, 고리연기를 만들어 대고 있으니 암만 봐도 정신나가서 떡치고 후회하는것만 같았다.
그때, 아리가 메르의 어깨를 부여잡고서 킥킥 거리며 물었다.
“그대여. 바보 보지는 좀 만족했나?”
“아아아아아아악!”
메르는 어찌나 수치심이 깊었던지, 그 소리를 하자마자 비명을 내지르며 제 얼굴을 가리곤 고개를 푹 묻어 버렸다.
머리에 달려있는 토끼 귀는 여전히 쫑긋대고 있지만... 뭐어, 그것도 나름 귀여워서 좋은가?
“그치만! 그치마안!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내질렀는데! 아으으으 바보 보지라니... 암만 그래도 그건 너무하잖아요!”
“그대가 한 소리다. 누가 보면 남이 한 줄 알겠구나.”
후훗 하고 웃으면서 찬찬히 구미호는 토끼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꽤나 귀여워 보였던 모양이다.
하긴 메르가 할망구라고 부를 정도면 꽤나 오래 산게 분명한데, 못해도 천년은 넘게 묵지 않았을까?
이야... 그러면 용케도 지금까지 살아 있다 싶은데. 갑자기 꼴깍 죽어 버리는건 아닌가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메르의 수치심이 가실때까지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대충 30분 정도?
한참을 내내 그녀는 부끄러움의 비명을 내지르거나, 나를 바라보며 홍조를 띄는 듯 홀딱 반해 버린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 했던게다.
떨리는 목소리로 서방님... 이라고 하다가, 내 손을 붙잡더니 달뜬 한숨을 내뱉는건 일상 다반사에. 가끔씩 눈에 희미한 색기를 띈 채로 내 귓가에 숨을 불어 넣곤 했다.
안그래도 대단한 수준의 색기가 더해져서, 이제는 도저히 발기를 멈출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나는 괴물을 만들어 버린게 아닐까.
고작 레벨 1 올랐다고 저렇게 되는거면, 20쯤 되면 무슨 요물이 탄생할지 가늠하는 것 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마침내, 진정했는지 내게 몸을 가끼이 붙인채 팔짱을 끼고서 제 맨살을 밀착 시키기 시작했다. 옆가슴이 자꾸 머리에 닿아서 어째 야시시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아리네스는 속옷조차 입지 않은채로 일어나, 창가에 몸을 기대고서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저 녀석... 부끄럽지도 않은가?
창문이 훤히 열려 있는 바람에, 등이 바깥으로 드러나 있는데. 괜히 구미호는 아닌 듯 싶다. 저렇게까지 깡이 세면... 우와, 난 감당 못할거 같은데.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알몸으로 요염하게 기댄채, 담배를 피워대던 구미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서방님? 이제는 어쩔 생각인가?”
어쩔 생각이냐니? 그야 당연히 강간 당하러 가야지!
물론 그렇게 말 할 수는 없으니 대충 그럴듯한 대답을 내 놔야겠겠지만...
“어쩌기는. 이제 마물을 잡으러 떠날건데?”
“흐음? 재밌구나. 마물을 둘이나 아내로 둔 주제에, 마물을 잡으러 떠난다고?”
읏...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왠지 모르게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못마땅한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뭔가를 잘못 한 걸지도 모르겠다 싶은 눈빛이었다. 설마하니 방금전에 메르랑 같이 떡친게 불만인건가? 하지만, 자기도 좋다고 한 주제에...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봤지만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았다. 거기다가 지가 날 덮치라고 종용 한 주제에, 이제와서 따지는 것도 이상한 일 이니까.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약간의 불만과 묘한 애정을 듬뿍 섞은 한마디를 내놓은 게다.
“별건 아니고... 혹시 그대는 모험을 그만두고 내 고향으로 올 생각이 없나 싶어서 말이다.”
“어... 으응? 왜...?”
하도 뜬금없는 질문이이서, 오히려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아니, 난 강간 당하는게 목적인데 굳이 자기 고향으로 오라고 하니까.
솔직히 구미호들의 고향에서 꼬리에 파묻혀 강간 당하는 것도 좋지만, 난 기왕이면 이곳에 있는 마물들 모두의 보지에 박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아리네스는 지극히 평범한 대답을 내 놓았다.
“그야... 그대는 약해 빠져서, 마물들을 제대로 이길수도 없지 않은가? 괜히 마물에게 덤비다 겁탈당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을 바에야, 모두 그만두고 내 고향에 가서 함께... 알콩달콩 사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으니...”
뒤로 갈수록 점점 목소리가 젖어 가면서 그녀는 얼굴을 붉혀 갔다.
아무래도 내게 고백하는게 창피한 것 같았다. 조금 낯부끄러운 소리기도 하고...
그녀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 주고 있었던 게다. 아니, 생각해 보면 강간 당하는건 당연히 나쁜 일 이니까.
강간 당하는걸 즐기는 내가 이상한 거지, 이곳의 기준으로는 모르겠다만...
아니네 이곳의 기준으로 봐도 이상한 거네?
으음... 그녀의 심정이 대충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마물들을 쓰러뜨리겠다고 나대는데 한번도 이겨보질 못하고 강간만 당하고 있으니 퍽이나 걱정이 됐던 거겠지.
그래서 내게 예속의 문양까지 새겨서는 감시 하는 것 일게다.
막말로 그녀가 날 납치하려고 한다면, 단숨에 구운 여우로 만들어 버릴 생각 이었다만.
다행히도 지금은 날 감시하는 선에서 그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제 고향으로 오라고 유혹하면서, 편히 살자고 하는 게다.
근데 안타깝게도 난 그리로 갈 생각이 추호도 없다.
물론 구미호는 좋지만, 다른 마물들의 보지에 마음껏 박아 대며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폭신폭신한 여우 꼬리의 유혹도 별것 아닌 걸로 보인 것이다.
나는 방긋 웃으며, 그녀의 질문에 대답 해 주었다.
“아니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위업을 세워야만 한다. 마물들의 여제를 쓰러뜨리는 것 이라면, 고향으로 돌아갈 정도의 위업으로는 충분할 터. 그러니... 나는 떠날 것이다.”
정작 그놈의 고향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메르는 묘하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간질간질 거리는 것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져 버려서, 나도 모르게 즐겨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나를 상냥하게 쓰다듬으면서, 메르는 한숨을 내쉬며 내 어깨에 제 가슴을 대었다.
“정말이지... 서방님은 강하신 분 이네요. 그렇게나 당하고 다녔으면서도, 대체 이런 분을 고향 사람들은 어째서 내쫒은건지 모르겠어요.”
으음,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고.
정작 아리네스는 이해할 수 없는 듯 뒷통수를 긁적였다.
“정말이지, 그대는 이상한 사람이구나. 계속 용사로서 있고 싶다면... 나도, 그대를 적으로 둘 수밖에 없어. 어찌 되었든 나도 사천왕중 하나이니까.”
“그런가? 그러면... 이 자리에서.”
“아니다, 지금은 됐어. 그대와 싸우고 싶지 않구나. 그저... 우후후... 내 고향에 오게 된다면, 내가 그대를 상대해야겠지. 그곳에서 그대가 패배한다면. 그대와 함께 고향에서 아이를 만들어 가며 평생을 살 수 있겠지?”
뭐야? 이미 강간 당했는데 한번 더 당할 수 있는거야?
우왕!
그녀는 여전히 창가에 등을 기댄채로 다리를 꼬고 있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보지가 엿보였는데, 진짜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것 같았다.
나만 이상한게 아니고 저 녀석도 맛이 좀 간게 분명했다.
“그러면, 네 고향에서 다시 보자. 아리네스.”
“그러지, 그동안 나도 그대를 계속 지켜보고 있겠다. 만약에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적이 아니라 아내 된 자로서 그대를 내 고향에 데려 갈 터이니 부디 몸 조심하거라, 나의 서방님...♥”
끝맺음과 함께, 손을 들어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그날 그랬던 것처럼, 구미호는 단풍잎으로 산산히 흩어져 바스라져 가며 바람결에 날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몹시도 아름다운 가을 향을 풍기며 구미호는 사라져 버렸다.
잠시, 바람소리만이 겨우 들려오는 방 안에서 나도 메르도 한마디도 하지 않은채 가만히 열린 창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연 것은 다름아닌 메르였다.
“저 할망구 변태짓 한 주제에 멋지게 보이려고 애 쓰네요.”
“그러게.”
솔직히 사실이잖아!
아리네스가 떠나 버리고 나서, 나는 메르의 손을 잡고 길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별것도 없이 아래층으로 가면 그만 이었지만 말이다.
“아, 밤은 평안히 보내셨습니까? 그런데 어제 그 아가씨는...?”
“어... 할 일이 있다면서 아침 일찍 나갔다네.”
“이런, 안됐네요. 식사는 하고 가시지. 모험가 분들을 위해서 저희 여관에서 무료 식사를 제공하거든요.”
“어음... 그런가?”
왠지 모르게 한끼 먹고 가라는 것 마냥, 그 사무원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뭐시냐... 꼭 노숙자 무료 식사 같은데?
“그건 됐고. 혹시, 받을만한 의뢰가 있을까요?”
분위기가 조금 미묘하다는걸 알아 챘는지, 메르가 앞으로 나서서 그 사람에게 의뢰를 요청했다.
그러자 사무원은 아까운 것 마냥 나를 내려다 보면서, 왠 종이를 하나 내밀었다.
“의뢰가 하나 있긴 하죠. 여긴 아무래도 마물들이 있는곳 과는 좀 떨어진 곳이라서 많이 평화로운 편 이랍니다. 그래서 모험가님들이 온 것도 거의 몇 년만이네요. 아무튼, 이겁니다.”
그리 말 하며 내민 쪽지에는 오크 무리를 퇴치 해 달라는 의외로 적혀 있었다.
정확한 숫자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저급 의뢰인걸 봐서는 아무래도 많지는 않은 듯 했다.
“뭐... 이거면 되겠지?”
“저는 서방님의 뜻이라면 뭐든 따를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하면서, 메르는 살며시 제 원피스의 치마를 잡고 허리를 숙였다. 어쩐지 야시시하다기 보다는 묘한 세련됨이 배어 나오는 몸짓 이었다.
“그럼, 이걸로 하겠다.”
“다행이네요. 오크들이 딱히 마을에 해를 주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면 곤란해지거든요.”
어쩐지 한숨 덜었다기 보다는 귀찮은 일을 떠맡겨서 다행인 것처럼, 그 남자는 가지런히 손을 놓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는 묘한 활기를 띈 채로 말했다.
“그럼, 다녀오세요. 마치고 오면 보수는 두둑하게 드리겠습니다!”
으음... 솔직히 실패 할 게 뻔한데. 난 강간 당하러 가는 거니까.
메르가 이 사실을 알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심하게 실망 할 지도 모르겠다.
나 같아도 경멸할게 뻔하지만, 뭐어... 어제 바보 보지 같은 소리나 하면서 앙앙 대던 녀석이 메르였으니 딱히 상관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함께 오크 굴을 향해 나아갔다.
무슨 일이 벌어 질지 감히 상상도 못 한 채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