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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용사님은 패배 중독자-13화 (13/94)

〈 13화 〉 앨리스와 패배 미약 야스

* * *

여관에 돌아 왔을때는 어느새 밤이 어두워져 있었다. 의외로 곳곳에 가로등이 놓여 있어서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우우우우~ 대는 늑대가 울부짖는 소리. 그러고보니 원작 게임에서는 이 마을에 늑대 인간이 살고 있다는 설정이 있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보름달이 뜰 때마다 변신하는 늑대 인간이 아니고, 말 그대로 털이 좀 나있는 데다가 머리에 귀가 달려있는 늑대 인간 이었지만. 일러스트 상으로는 꽤 볼만했었지...

실제로 보면 어떨까 싶은데. 뭐, 만나는 방법은 알고 있으니까. 나중에 천천히 강간 당하면 되지 않을까.

거기다 앨리스가 있는 이상, 그 늑대인간에게 강간 당하기는 어려운 일 일게 분명했다. 그야, 내가 당할 것 같으면 알아서 검으로 썰어 버릴테니까.

일단 그 년을 떼어 놓는게 급선무였다.

“아무도 없지? 그럼...”

여관 문을 슬그머니 열고 안에 고개를 들였다. 안쪽에는 텅 빈채로 천장에 달린 램프만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 빛이 벽을 겨우 비추는 모습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음산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스르르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어쩐지 소름이 쭉 끼치는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삐걱­ 삐걱­ 거리면서, 은근히 배어 들어오는 날카오운 소음에 나도 모르게 숨소리조차 죽인채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렇게 겨우 계단에 도착했을 때...

“야, 너 뭐하냐?”

“갸아앍!”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버리고 말았다. 급히 뒤를 돌아다 보니, 익숙한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꽤나 훤칠한 외모의 엘프 여인이, 속옷만 덜렁 입은채로 제 뒤통수를 벅벅 긁어 댔... 여인?

“누, 누구세요?”

“누구긴, 사무원이지. 근데 너... 옷차림이 왜 그러냐?”

사무원? 그 맨날 퍼질러 다고 있던 엘프 아저씨 말 하는 거야? 아니, 그 인간이 왜...

지금 보니 남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얼핏 봤을때는 양복에 머리까지 짧게 깎아 놓고 있어서, 누가 봐도 남자 같았는데. 정장을 벗은 데다가, 속옷만 입고 있으니 훤칠한 외모의 누님이 되어 버렸던 게다.

“뭐냐... 너 왜그래?”

“아, 아뇨... 좀 놀라서.”

“어라? 존댓말을 하네? 너 이 꼬맹이 자식. 드디어 예절이 뭔지 알았구만.”

그리 말 하며 능숙하게 주저앉아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손에 들고있는 정액 섞인 꿀은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근데 너 몸에 꿀냄새가 흠뻑 배어 있는데... 샤워실은 저쪽이야.”

엄지 손가락을 뒤로 치켜 들면서 볼을 붉히며 답하는 엘프 누나. 음... 아까 한 말 취소, 아무래도 모를 수가 없는 모양이다.

몸을 씻고 나오니, 그녀는 정액 섞인 꿀이 들어있는 나뭇잎을 탁자 위에 둔 채로 다리를 꼬아 대고 있었다.

저걸 톰보이 라고 하나? 피곤에 절어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풍겨오는 색기는 도무지 줄어들질 않았다.

제 손톱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서, 다리를 까딱거리며 눈을 흘긴다. 그리고는 한숨은 폭 내쉬면서 다가 오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그 모든 동작이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퇴폐적으로 보였다. 어두컴컴한 그늘 아래 있어서인지, 그런 침침한 색기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로 다가가자, 엘프는 말없이 제 건너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털썩 그 위에 주저 앉았다. 침묵이 내려 앉은채,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서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만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으려나, 한시간 정도가 됐을 것 같은때에 결국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왜 자꾸만 바깥에 나가는 거냐?”

“부족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군... 대충 알겠어. 네 녀석 꼴을 보아하니 외곽에서 온 녀석 같으니까.”

어라, 이거 의외로 순순히 받아 들이는데?

당연히 말도 안돼는 소리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 같은 사람이 꽤 있는건가?

대놓고 외곽에서 온 녀석이라는 말을 하는거 보니, 의외로 흔한 일인 모양이다.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 하고 있는데, 그녀가 슬쩍 제 눈앞에 있는 꿀이 담긴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하지만, 암만 그래도 너 같은 애가 그렇게 굴러 다니는 꼴을 보면... 나도 좀 슬플 수 밖에 없거든. 거기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니까.”

솔직히 말 하자면 어지간해선 죽을 일 없는데. 아니, 죽기나 할는지 싶다. 까놓고 말 해서 마왕에게 개겨도 번개 한방이면 태워 버릴 수 있지 않을까.

반면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눈앞에 있는 엘프 누나는 걱정스러운 듯 반쯤 감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네가 뭐라고 하든, 난 명예를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방해 하지 마라.”

“이미 몇 번이고 실패했잖냐. 솔직히 너, 살아 있는게 신기한 수준이라구.”

“그, 그건...”

틀린 말은 아닌데... 그치만 레벨 99라서 마구 쥐어 짜여도 죽을 일은 절대로 없다고 고백하기도 좀 그렇구...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려나. 아니, 변명을 듣기나 할까?

솔직히 나라도 그딴 소리는 믿지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길드의 도움 없이는 이젠 이곳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는 마을 바깥에 나갈수도 없을 확률이 높았다.

의외로 마물을 찾는데 길드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내가 나가서 알라우네에게 강간 당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알라우네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고 있어서 당할 수 있었던 거지. 아니었으면 길드에서 의뢰를 받아 찾아 나서야 했을 터 였다.

눈앞에 있는 엘프녀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어딨는지 모르는 마물은 찾아 나설 수 없었다.

가만히 내 눈을 마주보고 있는 엘프의 눈빛은, 마치 나를 꿰뚫어 보고 있는것만 같았다. 잘못하면 내가 강간 당하고 싶어서 일부러 져주고 있다는걸 알아 버리지 않을까 무섭기도 했다.

잘못해서 알아 차려 버린다면, 차라리 그녀를 기절 시켜 버리고 나서 혼자 마을 바깥으로 나가는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면 최소한... 마음껏 강간 당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면서 손에 슬쩍 마법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내게 말했다.

“너 같은 녀석들은 종종 봐서 알고있어. 무슨 명예를 위한다느니 뭐니 하며, 목숨 바치는 것도 아까워 하지 않는 것들이거든. 그런데... 도무지 막을수가 없단 말이야. 오히려 막으면 나만 귀찮아 지고.”

어쩐지 투정부리는 것 같은 어투였다. 그동안 당한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하긴, 처음 봤을때도 왠 이상한 의뢰인과 대판 싸우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난 책임지기 귀찮거든. 네 녀석이 운이 좋아서 살든 말든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다 이 말이야.”

뼛속까지 공무원 정신이 깃들었다고 해야 하나. 귀찮은 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게 공무원의 기본 원칙 이니까.

그리 말 하며 한숨을 내쉬는 그녀는, 곧 내 눈을 바라보면서 마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하나만 약속 해 주라.”

갑작스럽게 태도가 진지하게 변했다. 눈동자에 스며들어 있던 귀찮음도 사라져 버리고, 진심으로 약조 해 달라는 것처럼 내 손을 마주잡는다.

“무, 뭔데요?”

그 모습에 왠지 나도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최대한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는 식은 한숨과 함께 답했다.

“만약에 네가 죽더라도... 날 원망하지는 말아 주라.”

와 진짜 쓰레기 같은 년이네 이거...

“그렇게만 해 주면, 대신에 니가 원하는 의뢰는 다 내 줄테니까.”

아까 한 생각 취소. 이제 보니 귀찮음이 한계까지 달해도 괜찮은게 있었다.

딱히 거절 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나한테도 좋은 이야기였다. 그녀가 원하는건 내가 괜히 자길 원망하질 않는 것 뿐이니까. 내가 일을 당해서 생기는 귀찮음 보다는 마음의 짐을 떠안는게 더 싫은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언제나 그랬듯 탁자 위에 팔을 얹고는 제 고개를 놓아 버렸다.

“후우... 그거면 충분해. 고맙다 임마. 그래도... 나중에 나 원망하면 진짜 안된다. 니가 한마디만 해 줬어도 살 수 있었다든가, 그런거 정말 싫거든.”

“원망같은건 절대로 하지 않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너 이새끼, 갑자기 말이 좀 짧아진다? 이제 받을건 다 받았다 이거구나?”

안심한 듯 목소리가 한결 편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제 몸을 깊이 묻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고개를 까딱이면서,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있던 그녀는 곧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난 아메스라고 한다. 넌 이름이 뭐냐?”

이미 알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소개는 왜 하는건지. 하지만, 이걸 쳐내는 것도 좀 그러니까. 그녀에게 방긋 웃어 주면서 대답했다.

“에스더.”

“에스더? 외곽에서 온 녀석 치고는 이름이 꽤 고급지구만. 뭐, 나야 상관 없나?”

그리 말 하며 하릴없이 자기 혼자 킥 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일이 잘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때, 그녀가 내게 한마디를 내뱉지만 않았으면 그럭저럭 괜찮았을 텐데.

“아, 그리고... 앨리스가 널 맡겠다고 하더라.”

“뭐?”

아니, 그년은 또 왜...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 여기서 지내고, 내일부터는 앨리스 집에 가던가 해.”

“아니, 그럴 필요는 없는데. 그냥 여기서 살면...”

“너, 돈 있냐?”

앗... 망할 자본주의가 또...!

돈 한푼 없는 거지 신세인데 여관에 머무는 것도 이상하긴 한데. 그 년은 나한테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거지?

어떻게든 떨쳐 버려야 하는데, 그래도 이번에 미약 초를 이용해서 그 년에게 강간 당해 버리면. 죄책감에 나를 놓아 주지 않을까 싶었다.

으헤헤... 그래도 몸은 좋은 편 이니까. 마침 내가 순 약골인줄 알고 있으니, 일부러 당해 주는 척 하면서...

“너, 표정이 왜그러냐? 어디 아픈거 같은데.”

“아, 아니... 별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라.”

급히 고개를 저으면서,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방금 한 말도 있어서인지 괜히 묻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불안해 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저 눈, 너무 날카로워서 마음 속까지 꿰뚫어 보는 것 같으니까.

지레 겁먹은 건지, 아니면 감이 좋아서 내가 불안해 하는건지 궁금했다..

뭐, 알아 차린다고 해도 뭘 할수 있을리는 없고. 오히려 귀찮은 일 줄었다고 좋아하지 않을까?

지금도 자기 원망하지 말라면서, 알아서 사지로 걸어 들어가겠다고 하는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녀석이니까.

그나저나 저 녀석 여자인줄은 몰랐는데. 역시, 저 짧게 깎은 머리가 원인인가 싶었다.

“그럼, 나는 자러 갈 테니. 너도 푹 자라.”

“네이, 알겠습니다.”

비꼬듯이 툭 내던지자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웃음소리. 다행히도 꿀은 가져가지 않았다.

이제, 일을 시작 해 보실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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