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제44 화
* * *
아스텔에게 안겨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소녀 특유의 싱그러운 살 내음을 만끽하던 레니스는 그녀의 허벅지와 등을 손으로 받쳐 공주님처럼 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품 안에 얌전히 안겨있는 아스텔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깨끗하게 해드릴게요.”
“네…”
아스텔은 조금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지만, 이내 수줍은 미소와 함께 얼굴을 살짝 내리며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레니스는 그대로 아스텔을 안고 욕실로 향했다. 욕조에는 이미 물이 받아져 있었다.
불의 이치를 손가락 끝에 담아 차갑게 식은 물을 다시 따스하게 덥힌 다음 아스텔과 함께 욕조에 들어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아스텔의 아름다운 나신이 레니스의 눈에 새겨졌다. 그리고 레니스는 그녀의 알몸을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정면에서 차분히 바라보게 되며 작은 죄책감에 빠졌다. 그녀의 한 점 티 없고 새하얗던 나신에는 간밤의 격렬했던 정사의 흔적들이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특히 목 언저리와 가슴은 붉은 키스 마크와 잇자국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어서 엉망이었다. 이렇게 자신이 그녀의 몸에 엉망진창으로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물어뜯듯이 남겨놓은 욕망의 흔적들을 바라보자 그녀에게 심한 짓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그러한 자신의 모든 행위들을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전부 받아 들여준 아스텔에 대한 사랑스러움이 그의 안에서 더욱 커졌다. 그런 마음을 담아 손에 물을 묻히고 부드럽게 그녀의 몸에 새긴 흔적들을 어루만진다.
“아…응…”
“읏…”
아스텔은 작은 신음성을 흘리며 몸에서 힘을 빼고 그의 손길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였다.
츄릅…츄릅…
할짝
그리고 그녀의 목에 그가 새겼던 흔적들을 보듬어주듯이 부드럽게 혀로 핥는 동시에 다시 한번 손에 물을 묻힌 후 그녀의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집어넣어 그녀의 등을 손바닥으로 씻어주었다.
“아…아…”
아스텔의 얼굴에 다시금 열기가 감돌고 달콤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등을 깨끗하게 물로 씻어준 후 이번에는 아스텔의 팔과 겨드랑이를 씻겨주었다.
“응…”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아스텔이 긴장을 풀며 살며시 눈을 감고 레니스의 손길을 즐기기 시작했다. 아스텔의 몸은 밤새 그가 그녀에게 쏟아낸 욕망을 있는 그대로 전부 받아들이느라 엉망이 되어있었기에 그녀가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온몸에 피로가 쌓여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레니스는 그녀의 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주기 위하여 정성껏 아스텔의 온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하듯이 주무르면서 씻겨주었다.
“읏…아…응…”
“레니스님 그거…기분…좋아요….”
그녀의 겨드랑이를, 가슴을, 허리를, 배를. 그리고 밤새 그의 물건을 받아들이느라 빨갛게 충혈 되어 부풀어 오른 그녀의 허벅지 안쪽 은밀한 부분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애무하며 씻겨주었을 때 아스텔이 현기증을 일으키며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몸을 뒤틀며 허덕였다. 그러다가 두 손으로 레니스의 가슴팍을 꽉 쥐며 몸을 기대왔다. 그리고 가벼운 절정에 이르러 그의 품 안에서 작게 온몸을 부르르 떤 뒤 축 늘어졌다.
그 후 레니스는 그의 가슴 안에 축 늘어진 아스텔의 몸을 돌려 자신의 무릎 사이에 앉게 했다.
그리고 뒤에서부터 그녀를 끌어안고 욕조에 느긋하게 등을 기댔다. 아스텔은 그런 레니스의 가슴팍에 살포시 머리를 기댔다. 레니스는 자신의 몸에 등을 기댄 채 여운에 잠겨 꼼짝도 못하고 있는 아스텔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아스텔은 더욱 그에게 몸을 기대오며 그의 손길을 아무 말 없이 즐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따스한 욕조 안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
방으로 돌아온 레니스는 재빠르게 자신의 몸을 먼저 수건으로 닦은 후 옷을 입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아스텔의 머리를 새 수건으로 말려주었다.
“자, 아스텔양. 팔요.”
“네…”
레니스가 머리를 말린 후 어느새 그에게 아기처럼 응석을 부리는 아스텔의 몸을 닦아주기 위해 아스텔에게 팔을 벌려달라고 하자 아스텔은 아무런 레니스가 그녀의 몸을 닦아주기 쉽도록 팔을 벌려주었다. 그녀가 그렇게 전혀 의식하지 않자 오히려 레니스가 의식을 하게 되어 그녀의 몸을 닦는 행위가 묘하게 부끄러웠다.
어쨌든 레니스가 다시 한번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싶단 욕망을 자제하며 그녀의 몸에 묻어있는 물기를 깨끗하게 전부 닦아주자 그녀가 발돋움하여 레니스의 뺨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레니스님 그럼 먼저 나가볼게요.”
“네.”
슬슬 아침이라 사람들이 깨어날 때가 됐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잠시 후 볼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조금을 떨어지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서로를 꼭 껴안은 후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채 떨어졌다.
“그럼…, 좀 있다 봬요.”
“네.”
아스텔은 그렇게 말한 뒤 레니스의 방에 처음 올 때와 마찬가지로 긴 수건으로 몸을 가린 후 그의 방을 나섰다.
아스텔이 방으로 돌아가고 혼자만 남게 되자 벌써부터 아스텔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녀의 부드러운 몸이, 따스한 체온이 그리워졌다. 그때 그런 레니스에게 지금까지 한마디도 없이 존재감을 죽인 채 조용히 있던 루아가 말을 걸어왔다.
“뭐…뭐야…그렇게 밤새도록 짐승처럼 해대고서도 부족한 거야?”
역시 전부 보고 있었던 건가.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게다가 어째서인지 루아에게라면 딱히 부끄럽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레니스가 있었다. 오히려 루아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떨린다고 느껴졌다.
(뭐냐…너…설마 부끄러워하는 거냐?)
레니스가 의아해하며 그렇게 되묻자 루아가 화를 내며 말했다.
(흐…흥. 감히 누가 누구에게 부끄러워한다고 말하는 거야.. 이 내가 설마 네 서툰 행위를 보며 흥분이라도 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니…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는 말하진 않았다만…)
그나저나 다른 사람이 볼 땐 그렇게 서툴렀던 걸까…
레니스가 조금 풀이 죽자 루아가 허둥지둥 그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뭐…그…그렇게 서툴진 않았으니 너무 기죽지 마. 오히려 처, 처음치고는 굉장했다고 생각하니까.)
루아가 듣는 사람이 다 부끄러울 정도로 부끄러워하면서도 끝내 부끄러운 말을 하는지라 괜히 듣고 있던 레니스까지 어색해져버렸다.
(그…그래…뭐랄까. 배려해줘서 고맙다.)
(흐…흥…알면 됐고. 정말이지…그…그런…그렇게…)
(응?)
(아…아무것도 아냐!!!)
…
그나저나 아침 식사 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려나. 가볍게 시원한 아침 공기를 쐬고 싶었다. 왠지 좁은 방안에만 있으면 계속해서 어제의 여운에 사로잡혀 밑도 끝도 없이 야한 기분에 빠져 오늘 하루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래…, 내친김에 조금 이르지만 카렐렌과 아침훈련 하기로 약속한 장소라도 가볼까.
너무 일찍 나와서 당연히 카렐이 없을 거라 짐작한 레니스의 생각과는 달리 언제나와 같은 붉은 포니테일 머리에 건강미 넘치는 팔과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활동하기 편한 짧은 옷차림의 그녀가 거기 있었다.
그녀는 레니스를 보더니 반가워서 환하게 웃다가 이내 토라진 표정을 하더니 “하루 만에 이렇게 스승을 기다리게 하는 제자가 어디 있느냐.”고 레니스의 뺨을 꼬집으며 말했다.
“대답은?”
“자…잘못했습니다.”
레니스는 그녀에게 뺨을 꼬집히면서도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뭐 그녀도 진심으로 화가 난 건 아니고 일종의 두 사람 사이의 인사치레 같은 거였는데…
어라?
어쩐지 카렐이 갑자기 얼굴을 확 붉히며 시선을 회피했다. 지금까지와는 너무도 다른 반응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반면…
레니스가 카렐이 평소와 약간 다르다며 의아해하는 것은 카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카렐렌은 카렐렌대로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불과 하루 만에 레니스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레니스의 미소에는 그 나이 대의 소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묘한 여유가 넘치는 소년이었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한 꺼풀 벗어 경륜이 느껴진다고 할까.
레니스를 처음 봤을 때는 그의 몸을 더듬어 보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여자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카렐렌은 레니스가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렇게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허나 이제는 어째서인지 확실하게 남자라고 느껴졌다. 여전히 곱상한 외모였지만 두르고 있는 분위기가 묘하게 여심을 자극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의식을 한순간 새삼 부끄러워졌다. 그 이유가 몹시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본능이 애써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그것의 답을 찾는 것이 두려워서였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녀는 고개를 휘두르며 잡념을 털어낸 뒤 평소의 그녀로 돌아왔다. 그리고 밝은 어조로 레니스에게 말했다.
“오늘 이렇게 일찍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이유는 한동안 못 만나게 될지도 몰라서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했기 때문이었어. 혹시라도 이대로 안 오면 어쩌나 했는데 와줘서 다행이야.”
카렐렌은 다정하게 레니스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혹시 도와 드릴 수 있는 거라도?”
“으응, 아냐. 이건 무척 개인적인 일이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 안에 순간 짙은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살기를 진정시킨 뒤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조금 탐탁지 않지만 검후께서 조력자도 구해놨다고 하셨고. 정말이지 도움따위 필요 없다고 했건만. 뭐…어쩔 수 없지.”
“네.”
“그럼 가볼게. 나 없다고 훈련 빼먹지 말고 매일매일 해.”
“하하…”
뭐…그녀도 보기 드문 실력자고, 그녀에겐 그녀의 삶이 있는 거겠지. 그 의지를 일단은 존중하기로 하자. 만약을 대비한 보험 역시 들어놨고…. 그럼 슬슬 아침준비도 끝났을 테니 황금사과상회로 돌아가도록 하자.
모두를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미안하고 말이지.
레니스는 황금사과 상회에서 어떠한 악몽과도 같은 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무런 생각 없이 홀가분한 걸음걸이로 황금사과 상회를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