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의 유혹에 넘어간 현자-39화 (39/47)

〈 39화 〉 제38 화 제2 장 프롤로그

* * *

타인에게 고통 주길 즐기는 자가 정작 자신이 고통받게 될 경우엔 한없이 고통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평소 타인을 내려다보며 멸시하는 자는 자신이 남에게 업신여겨지는 것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어 한다.

아스텔을 내려다보며 아스텔의 의지를 꺾고 자신에게 비굴하게 굴도록 만들기 위해 그녀의 손가락을 차례대로 정성껏 확실하게 하나하나씩 분질러 뜨리고, 그다음 팔과 다리의 관절을 하나씩 빼내 버리던───, 새하얀 나신 위로 붉은 뱀을 휘감고 있던 여인은 아마도 여인이 아스텔에게 그다음에 행했을 팔과 다리를 자르는 행위를 레니스에게 당하게 되었다.

때문에 팔과 다리가 절단된 채 땅에 고꾸라져 굴욕으로 눈동자를 파르르 떨면서 증오스런 눈으로 레니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 혹은 그것은 여기 있는 것이 비록 본체는 아니더라도 이 세계에 구현된 자신의 일부에 본신의 의식은 깃들어 있었기에 비참한 모습으로 레니스를 올려다보게 된 상황 자체에 매우 큰 굴욕을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이것으로 자신을 이겼다고 생각하지 말라든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고작해야 자신의 편린이라는 것을 특히나 레니스에게 강조하며 레니스가 아니라 그녀 자신을 열심히 납득 시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니스가 붉은 뱀의 여인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여인의 머리를 짓밟아 여인의 머리를 산산조각 터뜨린 순간이었다.

여인 안에 깃들어 있던 삐뚤어지고 일그러진 의지는 육체가 파괴되는 순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이 세계에 충만해 있는 저주에 노출되어 소멸될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자신에게 이렇게 커다란 굴욕을 준 레니스와 조금이라도 자신의 굴욕적인 모습을 본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없애기 위해 하늘을 뒤덮을 거대한 붉은 뱀으로 현신했다.

그리고 상공에 똬리를 튼 거대한 붉은 뱀이 어두운 밤하늘을 붉게 태우며 여기 있는 자들뿐 아니라 제국의 수도 자체를 모조리 불태울 것 같은 붉은 섬광을 그 입안에 응축한 다음 쏘아냈을 때 레니스는 공중으로 이동하여 그 섬광을 일수에 소멸시킨 후, 붉은 뱀을 마력으로 만들어진 둥근 구체안에 격리시킨 후 오른쪽 위에서부터 왼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공간째로 일도양단하였다.

지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정적 속에서 매끈하게 사선으로 잘린 공간과 함께 뱀의 잘린 단면들이 비스듬하게 미끄러지며 어긋나더니 잠시 후 눈부신 대폭발을 일으키며 소멸한 후 레니스는 그만한 위업을 선보였음에도 이 정도는 그에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레니스가 다시금 황금사과 상회의 앞마당 위로 착지하자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아스텔과 리노아, 그리고 파미유들을 제외한 그 자리의 전원이 지금까지와는 그 정도가 차원이 다른 경악 어린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루아가 말을 걸어왔다.

‘이러다가 이번엔 네가 괴물 취급받는 것 아냐?’

‘뭐……,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 어쨌든 후회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런 레니스와 루아의 대화를 무척이나 겸연쩍게 만들 정도로 곧바로─

“과…과연 레니스님!”

“저희들이 하지 못할 일을 태연하게 해내세요!”

“그 점이 흥분돼요! 동경하게 돼요!”

리카, 유이, 레아가 순서대로 열광하며 뜨겁게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레니스를 찬양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가 조금 겸연쩍어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아스텔이 타닥타닥 뛰어와 레니스의 품 안으로 뛰어들어 그의 허리를 두 팔로 꼬옥 껴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고마워요…, 레니스님…”

“아뇨. 아스텔양이야말로 잘 이겨내셨어요.”

“오늘 일은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결코 굴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예요. 저는 그저 약간 거들었을 뿐입니다.”

그는 다시 한번 그렇게 말하며 아스텔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줬다.

“네…”

아스텔은 그렇게 말하며 살며시 눈을 감고는 레니스를 끌어안은 두 팔에 힘을 주며 천천히 그의 가슴팍에 몇 번이고 고개를 비볐다.

그런 레니스와 아스텔을 복잡한 표정으로 보는 칼 시즈와, 훈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며 남편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은 레이윈 시즈가 다가왔다. 그들에게 대략의 상황을 말한다.

“당분간의 위협은 없을 거 같으니 한동안은 안심하시고 편하게 지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칼 시즈는 레니스의 그런 간단한 말로도 납득했는지, 그 이상의 자세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만큼 내 판단을 신뢰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렇지만 정말로 그 이상 궁금하지 않을 리 없기에 레니스는 간단한 설명을 보충하기로 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모험가 길드 하루살이의 의뢰로 최근 행방이 묘연한 자들에 관하여 조사하던 중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해주며, 그정도 대규모로 준비한 것들이 무위로 돌아간 지금 적들도 지금 당장 무언가를 벌일 여력은 더 이상 없을 것이란 얘기를 해줬다.

대략적인 레니스의 설명이 끝나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칼 시즈가 말했다.

“정말이지 레니스 도령에겐 계속해서 신세만 지게 되는구먼. 면목이 없네.”

그렇게 말 한 후 레니스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칼 시즈.

레니스는 딱히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마찬가지로 가벼운 목례로 답했다.

이쯤 되면 레니스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너무 사양하는 형태가 되어 기만이나 가식이 될 수도 있었다. 차라리 그것뿐이면 다행이지만 칼 시즈가 레니스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빚을 갖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인간관계에 상하관계가 생겨버리고 만다. 그런 것은 레니스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여기서는 그의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줘야겠지.’

레니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칼 시즈가 레이윈 시즈를 바라보자 레이윈 시즈가 그런 남편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칼 시즈가 반지 하나를 레니스에게 건넸다.

뱀과 같은 기다란 몸뚱이를 가졌지만 뱀처럼 사악하다거나 요사한 느낌이 아닌 위엄이 가득 넘치는 용이 입안에 사과를 물고 있는 모습이 루비에 멋들어지게 새겨져 있는 반지였다.

“레니스 도령 그 반지는 황금사과 상회 회주 대리를 나타내는 징표라네. 우리 상회의 지부는 대륙의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지. 자네가 어딜 가든 우리 상회의 정보망과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걸세. 또 자네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곳에 있는 자금들을 써도 되고.”

“감사합니다. 꼭 필요할 때만 신중하게 사용하겠습니다.”

레니스는 칼 시즈에게 감사의 예를 표했다.

“하하…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쓰게나. 나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목숨을 구해줬는데. 이 정도도 못 해줘선 이 바닥에서 못 살아남는다네.”

그러면서 파미유 멤버들을 슥 하고 보며 그녀들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에 잠시 시선이 멈추더니 레니스의 어깨에 팔을 걸치곤 유쾌한 어조로 속삭였다.

“그래, 마음을 다 잡았나보구먼.”

“네. 조언 덕분에.”

그런 레니스의 겸손한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칼 시즈는 그의 어깨에 두른 팔을 내린 뒤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레니스 도령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자네와 자네의 여인 될 자들이 앞으로 같이 지낼 집이로군. 마침 떠오르는 곳이 몇 개 있다네. 오늘은 연회도 할 겸 여기서 묵고 가게나. 그리고 내일 오전에 같이 보러 가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레니스는 딱히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칼 시즈의 호의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레니스의 대답을 만족스럽게 들은 후 칼 시즈가 파미유들에게도 말했다.

“아가씨들께도 오늘 큰 신세를 졌소. 방을 따로 준비해 둘 테니 아가씨들도 오늘 묵고, 내일 같이 레니스도령의 집을 보러 가지 않으시겠소?”

“네! 회주님! 꼭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리노아가 아스텔과 파미유들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부러운 듯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와중에 어느새 상회의 앞마당에 작은 연회가 준비되었다.

앞마당에 다같이 서서 먹기 편하게 기다란 테이블이 여럿 펼쳐지고 그 위로 훈제 돼지고기와 오리고기가 각각의 테이블마다 놓였다. 그리고 고기에 곁들여 먹을 구운 마늘과 샐러드들이 놓이고 마지막으로 연회의 꽃인 시원한 맥주와 포도주가 놓였다.

칼 시즈는 ‘그럼 늙은이들은 이만 빠지겠네. 젊은이들끼리 즐기게나.’라고 말하며 오늘 붉은 뱀의 여인이 강림할 당시 상당히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이들을 부인과 함께 위로하러 갔다.

가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힘내게! 라는 말을 레니스에게 남기고 떠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리고─

레니스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파미유의 멤버들인 리카, 유이, 레아가, 왼쪽으로는 아스텔과 리노아가 있었다.

어째선지 숨 막히는 어색한 침묵 속에 서로 자기 접시에 먹기 좋게 약간의 고기를 덜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에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거북한 침묵에 목이 타는 듯 가끔씩 포도주만을 찔끔찔끔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었다.

루아가 남의 속도 모르고 이 상황이 실로 흥미진진한지 즐거운 어조로 레니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공감 가는 것이었다.

(실로 숨 막히는 긴장감이네. 너와 처음 대치했을 때가 떠오르는걸.)

(동감이다.)

레니스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다. 백 년 이상의 긴 경험 중에 이 상황서 도움 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그저 묵묵히 잔을 비웠다. 그리고 그의 잔이 비자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처음에는 아스텔이 레니스의 잔을 채워줬고, 그다음에는 레아가 채워줬다.

그리고 그동안 찔끔찔끔 목만 축이는 정도로 마시던 모두가 레니스를 따라 잔을 반복해서 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스텔과 레아가 번갈아 가며 잔을 채워주길 반복하여 얼마나 그렇게 빈속에 포도주를 들이켰을까.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새 다들 취기가 돌아 모두의 얼굴이 살짝 불그레해졌다. 그때 레니스에게 잔을 채워주면서도 자신도 포도주를 틈틈이 마시던 아스텔이 파미유들을 향해 말했다.

“아스텔, 앞으로는 아스텔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그런 아스텔의 말에 리카와 유이가 유독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귀…귀여워. 여동생이 하나 더 생긴 거 같아.”

“후후, 그러게요. 아스텔도 저희를 언니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네.”

아스텔이 작은 다람쥐처럼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리카와 유이가 아스텔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스텔이 잠시 후 유이와 리카에게서 풀려나자 레아가 아스텔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저도 레아라고 부르며 편하게 대해주세요.”

“네.”

그렇게 서로 손을 맞잡는 아스텔과 레아. 그리고 그런 그들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아직 어쩔 줄 몰라하는 리노아에게 레아가 말했다.

“저…앞으로 리노아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런 레아의 말에 아스텔도 말했다.

“리노아도 이제 나한테 아가씨 금지.”

그런 두 사람의 말에 리노아가 조금 당황스러워했지만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레아와 아스텔을 꼬옥 껴안으며 말했다.

“네………, 아니 응 레아도 날 리카나 유이처럼 편하게 대해줘.”

그리고 두 사람에게서 떨어진 후 리카와 유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새삼스럽지만 잘 부탁해.”

그런 리노아의 손을 리카가 붙잡으며 말했다.

“후후…뭘 이제 와서요.”

아무래도 리노아와 리카, 유이는 예전부터 서로 교류가 있었나 보다. 하긴 나이대도 비슷하고, 서로 황금사과 상회의 상행을 하며 같이 지낼 일도 많았을 테니.

정말이지 훈훈한 광경이었다. 이 뒤에 이어질 유이의 말만 없었더라면.

“이중에서 제일 내숭쟁이였던 리노아마저 이렇게 대담해질 정도로 함락시켰었다니 장래가 두렵군요. 레니스님.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소녀들을 울리실지.”

그렇게 소녀들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레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레니스님은 다소 무리한 응석도 다 받아주시지만 의외로 가차 없을 때가 있단 말이죠.”

“그러게. 특히 전투 중에 정말 아슬아슬한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니면 결코 도와주지 않으셨지.”

그것에 관해선 아무리 그녀들을 위해서라지만 내심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심판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후후, 그래도 저 그렇게 무자비한 폭력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너덜너덜 해진 후에 레니스님의 따스한 기운이 온몸을 관통했을 때,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극상의 쾌락을 느꼈어요. 버릇될까 두려울 정도여요.”

“사실, 저도요……….”

“자…잠깐 유이, 아스텔. 지금 발언은 소녀로서 무척이나 문제가 많은 게 아닐까 싶은데…”

“어머, 리카는 안 그랬어요?”

“아니…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으면 어느 쪽이냐면…으….”

“그…그 정도로 기분이 좋아?”

대화를 듣다가 흥미진진하게 묻는 리노아에게 리카가 곤혹스러워했다.

“에…에잇, 몰라.”

대답을 회피하는 리카 대신 아스텔이 리노아에게 답해주었다.

“네…손가락…하나 까딱 못할 정도로 온몸이 축 늘어졌을 때…레니스님 다정하게 대해주면…읏…하아…”

말하는 도중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는 아스텔 때문에 다른 소녀들이 당황했다.

“자…잠깐 아스텔?”

잠시의 소란이 있은 후……, 다시 소녀들의 대화가 재개되었다.

“후우…다른 부분에서도 이렇게 가차 없으시면 더 좋을 텐데…”

“그쵸…”

어째선지 갑자기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소녀들이 다 같이 한숨을 깊게 쉬었다.

“레니스님은 상냥하고 너무 신사적인 게 문제란 말이지.”

“네…. 하지만 그래도 같이 있으면 안심되고 따스해요.”

“물론 그 말도 맞지만, 너무 사양하신 달까…이쪽은 언제든지 준비 완료인데….”

“그러게요, 언니. 아까도 저희들에게 그렇게 거칠게 키스하며 있는 대로 몸을 달아오르게 하시더니 그 이상은 결국 하지 않으시고….”

아까보다도 더 대화에 끼기 어려운 분위기라 그저 멀뚱히 듣고만 있다가 얘기가 점점 이상해져 대화에 끼어들어 과열되는 분위기를 좀 진정시키려 할 때, 레아의 어마어마한 발언에 리노아와 아스텔의 눈이 커지며 동시에 레니스를 바라보았다.

“저한테도 오늘 밤 해주세요…….”

라는 아스텔의 말과 그리고 리노아는 조금 부끄러운 듯 꼼지락꼼지락 거리면서 그녀답지 않게 우물쭈물 주저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눈을 한번 꽉 감았다가 뜬 후 말했다.

“저…레니스님…”

레니스는 그녀가 지금 하려는 말이 얼추 짐작이 갔다. 그리고 그게 그녀 스스로 말하기도 힘들단 것도 알 수 있었다. 누구나 엎드려서 절 받는 건 싫을 거다.

그래서 그동안 계속 말하길 주저했던 거겠지. 그러다가 그녀가 이렇게 직접 민망함을 무릅쓰고 그녀가 원하는 걸 말하려는 모습은 그동안 늠름하게만 여겨졌던 리노아를 몹시 귀엽게 보이게 만들었다.

(나중에 따로 리노아와 둘만의 시간을 내려 했지만……, 지금 주는 것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니스는 주점 은의 눈물 최상층에 있는 자신의 방을 떠올렸다. 그리고 모험가 길드에 가기 전에 한쪽 구석에 잘 놓았던 목걸이가 들어있는 상자를 떠올렸다. 그가 가볍게 한번 주먹을 쥐었다가 펴자 레니스의 손안에는 어느새 그 목걸이가 놓여있었다.

레니스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리노아를 바라보더니, 리노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채워주었다.

어째선지 리노아는 얼굴을 붉게 물들일 뿐 아니라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이더니 레니스를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하고 가볍게 입을 맞춘 후, 지금까지 그녀에게선 볼 수 없는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언제나 회주인 칼 시즈와 아스텔을 경호하며 한 치의 긴장도 풀지 않고, 늠름한 검사의 일면만을 보여주던 그녀의 그런 미소는 레니스의 마음을 몹시 흔들리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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