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의 유혹에 넘어간 현자-38화 (38/47)

〈 38화 〉 제37 화 제1 장 에필로그 비극의 탄생

* * *

레토의 앞에서 시종일관 야비한 웃음을 입가에 띄운 채로 레토를 내려다보던 남자가 허공에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딱 하고 부딪히자 레토를 구속하고 있던 밧줄들이 동시에 끊어졌다.

그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밧줄을 끊어보려고 밧줄에 피부가 벗겨지며 피가 흐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의자가 덜컹덜컹거릴 정도로 격하게 몸을 뒤흔들던 레토가 갑자기 찾아온 신체의 자유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하아…하아…”

두 무릎이 땅바닥에 닿으며 두 팔로 간신히 상체를 지지한 레토의 아래에는 남자가 던진 단검이 놓여있었다.

“우웁…퉤…허억…허억…”

레토가 그대로 한 손으로만 지면을 짚고 다른 손으로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그의 목구멍을 막고 있던 내 더럽혀진 팬티를 빼낸 후,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느라 깊고 거친 호흡을 반복했다.

“허억…허억…”

그리고 레토의 눈앞에 있는 단검을 거칠게 역으로 주웠다.

그리고 고개를 올려 남자를 쳐다보고 다시 날 쳐다보곤 아무 말 없이 다시 레토의 손아귀 안에 거꾸로 쥐어져 있는 단검을 응시했다.

“허억…허억…”

레토의 거친 숨소리만이 조용한 실내에 울린다.

레토가 다시 날 쳐다본다.

그리곤 레토가 눈을 질끈 감더니 단검을 들고 있는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레토를 향해 그러지 말라는 외침이 어째선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레토의 치켜진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극히 짧은 순간 레토의 안에서 무수한 상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명예로운 죽음은 비굴한 삶보다 낫다.’

‘내 목숨으로 레라의 몸과 마음과 명예를 지킬 수 있다는데, 나는 무엇을 지금 망설이지?’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던 레아의 웃는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레라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훌륭한 남자가 되기 위해 그녀의 곁에서 떨어져 자신을 갈고닦을 때, 혹시 자신이 없는 사이 레라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진 않을까하고 얼마나 가슴 졸였던가.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혹시라도 레라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알몸에 눈물범벅인 채로 울고 있는 레아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가자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입술이 터질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왜 자신은 이렇게 약한 걸까.

죽일 수만 있다면 눈앞의 남자를 몇 번이고 죽인 후 레라를 구하여 레라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비참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왜 하필 자신과 레라가 이런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 이런 부조리한 운명에 분노했다.

더욱 분하고 화가 치미는 것은 설령 자신과 레라가 비굴하게 살아남는다하여도 눈앞의 남자에게 복수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후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던진다고 남자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 살아남아서 증오와 분노로 내 몸을 태운다 한들 저 남자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우리가 오늘 잊던 일을 잊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로 시간이 우리의 고통을 달래줄까?

그리고…나는 저 남자에게 더럽혀질 레라를 과연 지금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에 관해서 레토는 자신 있었다.

레라가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잘못한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자신의 사랑은 레라가 레라여서 사랑한 것이지 다른 조건을 본 게 아니었다. 레라보다 아름다운 여인도 세상에 있을 수 있고, 레라보다 어쩌면 마음이 착한 사람도 있고, 계속 살다 보면 레라보다 어쩌면 나를 더 좋아해 줄 여자가 나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어제 레라에게 오늘 고백하기 위해 인연의 나무 아래로 와달라고 한 것은 나에겐 레라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마음이 평생 갈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레라가 아니면 안 된다.

하지만 가끔씩 오늘 일이 떠오를 것이다. 그때 나는 자책하겠지. 오늘 레라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그런 날이면 밤새 스스로의 한심함에 괴로워할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런 만큼 레라에게 더 잘해주자고 스스로를 고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평생 반복됐을 때, 내 정신이 과연 마모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날 보며 레라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을 탓하지 않을까? 그런 레라의 모습에 나는 또다시 상처입을 것이다.

차라리 나를 원망해주면 좋으려만.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 어쩌면 스스로 내 앞에서 모습을 감출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제일 컸다. 내가 아는 레라라면 분명 그럴 터였다.

레토의 꽉 감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뜨거운 가슴으로 행동하지 못하는구나.’

레토는 자신의 그런 구제할 수 없는 나약함에 다시 한번 화가 치밀었다. 스스로가 역겨웠다.

“아…아…”

순간 레토는 두 눈을 있는 힘껏 꽉 감아 눈 앞에 펼쳐진 짙은 어둠 속에서 한 알의 밀알이 땅으로 떨어지는 환상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보는 순간 레토는 눈을 번쩍 뜨더니 자신의 심장을 향해 있는 힘껏 단검을 찔러가다가 가슴 바로 앞에서 단검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레토는 절규했다. 짐승처럼 처절하게 절규했다. 그리곤 떨어뜨린 단검을 다시 한번 줍더니 자신의 허벅지를 미친 듯이 찌르면서, 허벅지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두 눈에서 눈물을 끊임없이 흘리면서 레라에게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라는 말만을 반복해서 말했다.

레라는 그런 레토에게 전부 이해한다는 듯이 마찬가지로 울면서 사랑해, 레토. 사랑해, 레토. 사랑해, 레토 그 말만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것보라는 양 비열한 남자의 야비한 웃음소리만이 커다랗게 장내에 울렸다.

잠시 후 레라는 주인을 대하는 노예처럼 그의 앞에 공손히 두 무릎을 꿇었다. 가녀린 손가락을 덜덜 떨면서 천천히…터질 듯이 팽창해있는 그의 바지와 팬티를 내리자 그 안에 고여 있던 땀에 절은 겨드랑이나 발 냄새와는 차원이 다른 우유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와 또다시 레라의 속을 매스껍게 했다.

“아…아…”

레라는 눈앞의 너무도 징그러운 광경에 숨을 멈추고 말았다. 레토를 바라보자 자신의 상처를 너무도 헤집어 출혈 때문에 바닥에 쓰러진 채 의식을 잃기 전의 멍한 눈으로 레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흑…”

레라는 남자의 양 허벅지를 두 손으로 잡은 후 눈을 감았다.

“이런 거…눈만 감으면 누구에게 하나 똑같아…”

필사적으로…필사적으로 레라는 눈을 감은 채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자가 레토라고 자신을 속였다. 물론 의미 없었지만….

혀를 살짝 내민 채 고개를 천천히 앞으로 내밀어 남자의 징그럽고 딱딱하게 커진 하반신을 정성스럽게 핥았다.

할짝…할짝…

필사적으로 눈앞의 남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봉사했다. 처음에는 남자의 음경 끝을 핥거나, 한손으로 음경 끝을 살짝 잡고 고개를 음경 옆 부분으로 갖다 댄 뒤 혀로 음경전체를 훑었지만, 어느새 남자가 자신의 코로 고환을 갖다 대어 남자의 고환을 입에 넣고 천박하고 추잡하게 빨거나 입안에 남자의 고환을 넣고 혀로 부드럽게 굴렸다.

“우읍…웁…웁웁…”

입안에 도는 침을 도저히 삼킬 수 없어서 입안에 있는 모든 침이 턱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려 내 몸을 더럽혔다.

레라가 남자의 고환에서 입을 떼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했을 때 몸에서 지독한 침 냄새가 올라와서 자신의 처지를 또 한 번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입을 벌려 남자의 역겨운 것을 입안으로 뿌리까지 삼켰다.

“웁…우우웁…”

목 안쪽까지 범해진다. 입으로는 더 이상 숨을 쉬기 어려워 코로 작게 숨 쉴 때마다 콧김에 남자의 사타구니에 난 털들이 움직여 내 얼굴을 스쳤다. 그때마다 울고 싶을 정도로 온몸에 징그러운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든 남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입에 머금은 남자의 양물에 혀가 닿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정성스럽게 혀로 굴리는 한편, 양손으로 남자의 두 허벅지를 꽉 붙잡고 격렬하게 머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턱이 빠질 것만 같았다. 남자의 하반신에서 나는 짐승 같은 냄새와 자신의 침 냄새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얼마나 그랬을까…입과 턱에 감각이 사라져갈 무렵 뜨겁고 미끈거리며 지금까지 중에 가장 매스꺼운 냄새를 풍기는 텁텁한 액체가 입안을 더럽혔다.

“웁…우웁…웨에에엑…커헉…컥…”

차마 삼키지 못하고 재빨리 입을 빼낸 뒤 바닥에 전부 토해냈다. 구역질이 또다시 올라왔지만 하도 토해내서 더 이상 토할게 없어 헛구역질만을 반복했다. 위액조차 이제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면을 향해 헛구역질하고 있는 레라의 머리카락과 얼굴 위로, 가슴 위로, 몸 위로 하얗고 탁한 그 냄새나는 액체가 쏟아지며 레라의 온몸을 더럽혔다.

레라의 몸이 마른 침 냄새와 남자의 사타구니에서 나던 역겨운 냄새로 물들어간다.

그럴수록 레라의 정신은 절망에 빠졌다.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히익…무…무슨 짓을…너무해…너무해…아아아악!!!!”

“죽일 거야, 반드시 죽일 거야, 살아남는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당신을 죽이고 말거야!!!”

레라의 머리카락 위에서부터 얼굴과 온몸을 적시며 내려오는 노란 물줄기.

레라는 너무도 굴욕적일뿐 아니라 더러운 노란 액체가 코와 입을 타고 들어오며 입안과 코에서 지린내가 진동해 결국 망가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억눌렀던 남자를 향한 억눌렀던 분노의 말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더 이상 이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자의 오줌세례를 받으며 의식을 잃고 말았다.

방안에는 레토의 다리에서 흘러나온 피 냄새와 수컷의 진하고 역한 냄새들이 섞여 그야말로 더러운 뒷골목의 시궁창을 연상하게 하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거듭되는 가혹한 능욕 끝에 견디지 못하고 현실서 도피해 의식을 잃고만 레라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혀끝을 한번 차더니 의자에 털썩 거만한 자세로 앉으며 허공의 한쪽을 향해 말했다.

“후우…취미가 나쁘군, 그래. 언제까지 숨어서 엿보고 있을 생각이냐. 네놈은.”

그러자 남자와 레토, 레라뿐인 줄 알았던 방안에 어느새 한 인영이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칠흑의 어둠 속에 숨긴 ‘사제’였다.

“제가 왔을 때는 한창 즐기고 계시기에. 좀 더 즐기시지 그러셨습니까….”

“네 녀석 덕에 흥이 식었다.”

“한참을 찾았습니다.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신듯해서 다행입니다.”

사제의 그런 말에 남자는 의외라는 듯 유심히 사제를 쳐다봤다.

“반면 네놈은 고생 꽤나 했나보군.”

“예.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리리스님께서 비록 완전한 상태가 아니셨다지만,그렇더라도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사슬을 억지로라도 끊어버리시며‘강신(??)’까지 썼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당한 끝에 쓰러지셨습니다.”

사제의 그 말에 남자는 조금 놀란 눈을 하며 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건 꽤나 매력적인 사냥감이군.”

그리고 사제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뗀 후, 바닥에 쓰러져있는 레토와 레라를 쓱 훑어봤다. 그리고 남자에게 말했다.

“낮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황금의 정신’을 가진 자들을 용케나 이렇게도 ‘칠흑의 의지’로 물들이셨군요. 이 둘을 제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들이라면 ‘질투’와 ‘분노’의 그릇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사제의 그 말에 남자는 여자를 잠깐 내려다본 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모처럼 범할 맛이 나는 감칠맛 나는 여자. 재료 손질을 끝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맛볼 차례만 남아서 이대로 놔주기엔 너무나도 아까웠지만, 그는 곧 사제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평소 사제가 자신을 대신해 자잘한 일들을 많이 해줬으니, 가끔은 자신이 사제의 편의를 봐주는 게 장기적으로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제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저 둘이 그릇으로써 맘에 들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것은 자신에게도 나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범할 여자야 뭐, 차고도 넘쳤다. 저 정도로 질 좋은 여자는 분명 드물겠지만, 찾아보면 또 못찾을 것도 아니고. 게다가 질이 안 되면 양으로 승부 보면 그만.

한 명을 범해서 충족되지 못한다면 열 명 스무 명을 범하면 그뿐일 단순한 문제였다.

“아아…맘대로. 저들과의 계약도 내가 손을 대지 않는다는 거였으니, 자네가 손대는 건 상관없겠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거이거 나도 의외로 달변가군.”

“감사합니다.”

남자에게 그렇게 말한 후 사제가 허공에 가볍게 손짓하자 의식을 잃고 있는 레토와 레라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떠올랐다.

그리고 사제와 남자의 앞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며 하나의 문이 생겼다.

남자가 당연하다는 듯이 먼저 성큼 걸음을 옮겨 들어가고, 뒤이어 사제가 허공에 떠 있는 레토와 레라를 데리고 들어가자 방안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듯한 숨 막히는 적막감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피 묻은 칼과 레토가 흘렸던 깊은 피 웅덩이가…,

그리고 레라가 흘린 토사물과 실금의 흔적들이 이 방안에서 일어났던 능욕의 참상을 어렴풋하게나마 나타내주고 있을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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