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제36 화 막간(??) 더럽혀진 소녀 (5)
* * *
츄릅……
츄릅……
응……
읏…
더럽혀져간다.
몸도, 마음도.
아직 순결만 잃지 않았을 뿐.
그러한 사실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영혼 저 밑바닥까지 유린당했다.
비열하고, 증오스런 남자 앞에서 스스로 알몸이 된 후, 남자의 무릎에 올라타 레토를 대하듯이 정성껏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은 후, 그 뺨을 핥고 입을 맞췄다.
혀와 혀가 얽히며 맞닿은 입술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남자의 타액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하염없이 눈물만이 흘렀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결국 미처 목구멍으로 삼키지 못한 남자의 타액이 턱을 타고 목으로 흘러내려 남자의 이빨자국과 피멍이 여기저기 나 있는 내 가슴 위로 떨어져 번들번들 빛났다.
미지근하고 끈적끈적한 타액이 가슴 위를 흐르다가 점점 식으면서 마르는 감촉은 산에 올랐을 때 등 뒤로 거미가 들어갔을 때보다 더 소름끼쳤다.
나와 레토의 행복의 절정의 순간에 난입해와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뜨린 이 증오스런 남자는 단순히 내 몸을 유린하는 거로 모자라서 레토에 대한 내 사랑을 시험대에 올린 후 자존심까지 산산이 부서뜨렸다.
그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선택지였다.
어쨌든 그는 나에게 레토를 구할 수 있으면서도 레토에 대한 정절을 지킬 수 있는 선택지를 주었다. 그렇게 순결이 중요하고 레토를 사랑한다면 레토의 안위를 보장할 테니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랑을 증명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레토를 나 자신보다도 소중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 사실에 직면하자 자기혐오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나는 어차피 이것밖에 안 되는 이기적이고 약한 여자니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체념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사랑하는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그 어떤 수모와 능욕을 당하더라도 단 하나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건 내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이 더럽혀지고, 레토 곁에 있으면 언제나 레토가 오늘을 떠올려 레토를 괴롭게 할 것이기에 더 이상 레토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되더라도 내가 레토를 죽이고 나 자신이 멀쩡하게 돌아가는 선택지만큼은 고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금빛으로 밝게 빛나는 긍지’만은 언제까지나 내 질척하고 추악해진 몸과 마음 깊은 곳에서도 희미하게 빛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레토가 나 같은 여자가 아닌 레토에게 어울리는 여자와 행복하게 살게 되더라도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축복한 후 레토가 곁에 없는 세상에서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기력을 줄 것이다.
분명 그럴 터였다…
“웁웁…우웁…”
남자가 갑자기 내 턱을 치켜들게 해서 남자의 타액을 흘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억지로 계속해서 자신의 타액을 내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이 부릅떠지며 저항하려 했지만, 남자가 다른 손으로 가슴을 세게 쥐자 고통과 동시에 이곳에 오기 전에 겪었던 무자비한 폭력과 공포가 떠올라 이내 체념하고 꿀꺽꿀꺽 남자의 타액을 목구멍 뒤로 억지로라도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삼켰다.
“하아…하아…”
“우욱…"
“웨엑…웨에에엑…허억…헉…허억……"
그리고 남자가 입술을 떼자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구역질을 억눌러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하다가 전부 토하고 말았다.
비참했다.
서러웠다.
도대체 왜 하필 나란 말인가란 생각만 하게 될 뿐이었다.
부조리하다.
나보다 맘씨가 나쁜데도…
행실이 나쁜데도…
제멋대로인데도 나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여자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걸 안다.
지금까지 그런 여자들을 억지로라도 보려고 하지 않았었다. 어떻게든 그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가끔 자신의 부르튼 손을 보며 저런 여자들도 저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왜 나는…이라는 질투를 안 하려고 있는 힘껏 그런 부조리들로부터 시선을 돌려왔었는데, 지금은 왜 저런 여자들을 놔두고 하필 나란 말인가란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했다.
나보다 나쁘고, 제멋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원하는 건 다 가지는 것도 모자라서 세상에 해를 끼치는 여자들도 많지 않은가.
그런데 왜 고작 시골에서 사치라는 사치는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그나마 유일하다고 해도 좋을 삶의 즐거움이 좋아하는 남자와 서로 사랑을 나누며 몸과 마음을 충족시키는 것뿐인데, 왜 그것마저 나에게서 빼앗아가는 걸까…….
자신의 이런 신세가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이러한 일의 모든 원흉인 눈앞의 비열한 짐승 같은 남자보다도, 다른 평범한 여자들에 대한 질투가 더 커졌다.
다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행복을 손에 넣는데 왜 나는 모든 것을 빼앗겨야 할까. 저들도 나처럼 불행해지고 모든 것을 잃어봤으면 하는 추악한 생각이 마음속에 퍼져갔다.
“히익…읏…”
그리고…나는…계속해서 남자의 손길에 온몸이 유린당하며 온몸을 지네가 기어가는 소름 돋는 감각에 몸서리쳤다.
“읏…흐윽…”
찔꺽 찔꺽
남자가 실금하여 노랗게 젖은 내 축축한 팬티를 거칠게 쥐어뜯어서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때 음부에 나 있는 털 몇 가닥도 우악스럽게 같이 뜯겨져나가 나는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굳은 살이 박혀있는 딱딱한 손가락이 내 허벅지 안쪽을 거칠게 휘저었다.
스스로 할 때도 무서워서 겉에만 문질렀지 손가락을 넣어본 적은 없기에 공포 때문에 몸이 경직되고 저도 모르게 남자의 몸을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남자에게 매달리고 말았다.
“히익…으…아…”
찔꺽 찔꺽
전혀 기분 따위 좋지 않고 아프고 무섭기만 한데도 몸이 어떻게든 고통을 줄이려고 하는지 허벅지 안쪽에서 미끈거리는 액체를 분비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천박하고 추잡한 소리가 나면서 내가 올라탄 남자의 무릎이 내가 흘린 액체로 젖기 시작했다.
싫어…이젠…더는…
그리고 나는 정말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원망까지 하게 되었다.
왜 레토는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 거야?
왜? 왜? 왜? 왜? 왜?
나는 이렇게 온몸을 능욕당하고 유린당하고 있는데 레토는 편하게 의식을 잃고 있는 거지?
레토가 이런 내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마는 스스로가 싫었다.
역겨웠다.
정말이지 최악의 여자 아닌가.
이렇게 레토를 원망하게 될 바엔 아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이 나았어.
그런 생각마저 들었지만, 이제서라도 그걸 실행에 옮길 용기 따위는 내게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 때문에 스스로에게 더 혐오감이 생기고 점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어쭙잖게 생각 따위를 하니까 괴로운 거다. 그저 짐승처럼 아무 생각 없이 지금 하는 행위에 몸을 맡기면 오히려 편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였다.
레토의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는지 레토가 낮은 신음성을 흘린 것은…
나는 레토가 눈을 뜨고 모든 것을 알기를 바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레토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내가 모든 것을 끌어안고 혼자서 이 모든 비극을 짊어지고 싶은 걸까…
하지만 내가 정말로는 어떻게 되길 바라고 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황은 무자비하게만 흘러갔다.
레토가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레토가 의식을 차리려 하자 나는 남자에게 하던 굴욕적인 봉사를 멈추고, 남자에게서 떨어져 바닥에 다리를 오므리고 두 팔로 가슴을 가린 채 주저앉았다.
남자가 그런 내 태도에 나나 레토에게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남자는 딱히 제지하지도 않았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레토가 눈을 뜬 후 처음에는 기절했다가 막 정신을 차려서 조금 레토의 눈동자가 흐릿해 보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레토는 내 무참한 모습을 보더니 곧바로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여 눈에 핏발이 선 채 분노로 가득 찬 절규를 내지르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남자가 어느새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내 팬티를 집어 들어서는 그걸로 레토의 입을 틀어 막아버렸다.
“사내놈의 비명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덜컹 덜컹
“읍읍…읍읍”
덜컹 덜컹
레토가 자신의 손발을 구속하고 있는 밧줄을 끊으려고 밧줄에 묶여있는 손목이 밧줄에 격렬하게 긁히며 피가 날 정도로 몸부림쳤다.
남자는 그런 레토에게 여보란듯 과시하면서 내 앞에 섰다. 남자의 부풀어 오른 하반신이 눈앞에 있었다.
레토를 한번 쳐다본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모습 레토에겐 역시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반면 내가 레토를 위해서 이런 짓도 했다는 걸 레토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했다.
“흑…”
왜 하필 이런 일을 당하는 게 나와 레토일까…
지금까지 몇 번이고 했던 원망이 또다시 뇌리를 스치면서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이 흘러나왔다.
레토가 보고 있지 않았을 때는 그래도 한두 방울씩 눈물이 눈가에 고이다가 흘러내리고 끝이었는데,
레토가 보고 있는 지금은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넘쳤다.
“읍읍읍읍”
그리고 내가 손을 덜덜덜 떨며 천천히 남자의 하반신으로 손을 가져가자 레토가 다시금 몸부림쳤다.
그러자 남자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 손이 남자의 하반신에 닿기 직전 내 앞에서 사라지더니 어느새 레토의 앞에 있었다. 레토가 평소 그의 온화하고 상냥한 모습으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와 증오를 담아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남자가 재밌다는 듯이 레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너처럼 주제 파악 못 하는 건방진 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지. 하지만 너한텐 손을 대지 않겠다는 약속도 해서 말야. 이거 참 곤란하군, 곤란해.”
그러더니 레토에게서 내게로 오더니 보란 듯이 천천히 오른발을 들었다.
“히익!”
여기에 오기 전에 남자에게 배를 걷어차였던 통증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몸을 수그리려 했지만.
퍼억!!
“아아아아악!!!!!!”
무자비하게 다시 한번 내 배를 걷어찼다. 너무도 큰 고통에 또다시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실금하여 하반신을 더럽혔다.
“아…으…”
자신이 저질러 놓은 실금 위에서 몸을 수그린 채 헐떡이는 나를 두고 다시 남자는 레토에게 갔다.
“자아…, 이제 어느 정도 상황파악이 됐으려나? 자네가 주제 파악을 못 하면 자네의 소중한 여자가 대신 고생하니까 아까처럼 건방지게 노려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좋아 좋아, 아까보다는 훨씬 낫군. 말이 통하는 친구는 좋단 말이지. 이건 그런 자네에게 주는 내 호의라네.”
그러면서 레토의 발아래로 단검을 툭 하고 던졌다.
“기회는 역시 공평한 게 좋겠지. 일방적으로 한쪽이 희생하는 건 좋지 않아. 자아…이제 자네의 사랑을 증명해 보게나.”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웃었다. 타인을 내려다보며 그 운명을 희롱하는 것이 즐거워 견딜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나는…바닥에서 고통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쉬고 헐떡이고 있으면서도 레토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가 나와 같은 시험대에 올랐을 때…그는 어떤 선택을 할지…정말로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그래 줬으면 좋겠다. 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동시에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나는 레토를 어떻게 생각할까?
레토를 그래도 계속 지금까지처럼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지금의 상황이 미친 상황이란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하지만…
아아…나는 절망했다.
이것은 레토를 시험하는 것뿐 아니라 또다시 나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그러자 그런 내 상태를 알았는지 남자가 더욱 즐겁게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