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의 유혹에 넘어간 현자-27화 (27/47)

〈 27화 〉 제26 화

* * *

1층으로 내려온 레니스와 파미유들을 레시가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금방 내려오실 거라 생각했는데, 상당히 늦게 오셨군요.”

레니스들은 그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고 난처한 듯 수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녀는 잠시 정체 모를 한숨을 작게 내쉰 후, 레니스들을 1층 구석의 동그란 테이블로 안내했다.

어째서인지 그녀도 충분히 젊음에도 불구하고 ‘이래서 젊은 것들은…’이라며 속으로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착각이겠지?)

레시를 제외한 모두가 자리에 앉자 그녀가 테이블 한가운데에 작은 서류뭉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잠시 말을 멈춰 시선을 자신에게 모은 후 말하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의뢰의 내용은 부길드장님께 들으셔서 알고 계실 테니 지금부터는 세부적인 내용을 진행하겠습니다. 괜찮으신가요?”

다들 말없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동의의 뜻을 내비치자 레시가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지금 드린 자료는 실종자들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한 최근 한 달 사이 그들의 실종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입니다.”

“대량의 시체를 이용하여 황금사과 상회를 습격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결국 이상한 점은 없다고 결론짓게 된 보고서였기에 이제 와서는 그다지 신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만…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일단 가져와 봤습니다.”

레시의 말이 일단 끝나자 레니스는 눈앞에 놓여있는 서류들을 가볍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부길드장을 만나러 가기 전에 레시에게 간략히 들었던 내용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였다.

저번 달에 비해 실종자의 수가 대략 두 배로 늘어나긴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중요시되지 않고, 사실상 형식적으로만 조사가 진행된 데에는 남으의 이유가 있었다.

실종자들 대다수가 정말이지 스스로 모습을 감추지 않는 게 어쩌면 이상할 정도로 지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마족이 사라진 지금, 인간의 진정한 적은 인간을 습격하는 몬스터도, 그리고 인간 이외에도 인간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는 엘프와 같은 이 종족이 아닌, 같은 인간이란 건가………)

보고서에 적힌 내용이 어쩐지 그러한 사실을 다시금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레니스는 씁쓸했다.

사라진 자들은 거액의 빚을 지고 있다든가, 신체의 어딘가가 망가져 뒷골목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있다든가 다양한 이유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의 그림자 속으로 숨은 자들이었다.

대부분이 가족도 없거나 설령 있더라도 의절한 상태였기에 사라진다 한들 누구도 필사적으로 찾아보려고 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인물들뿐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오히려 가족들이 그들의 행방불명을 기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과연…사라졌다고 한들 아무런 피해가 없기에 아쉬울 게 전혀 없고, 오히려 제국의 치안에는 없는 편이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자들이라 이건가.)

(이런 상황이면 제국 경비대에서도 딱히 그들의 실종을 조사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이유가 없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 보이고 자신들이 귀찮아지기만 할 일이기에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걸 비록 떠넘기기에 불과하지만, 모험가 길드에 조사를 의뢰한 것만으로도 칭찬해야겠지.)

(그러다 보니 모험가 길드에 의뢰할 때 보수도 많이 걸지 않고 형식상의 의뢰만을 했다. 그리고 보수가 적다 보니 모험가들 역시 받은 만큼만 일한 건가.)

모험가 길드는 딱히 정의를 위해 모인 집단들이 아니다. 아니, 모험가들뿐 아니라 사람의 본성 자체가 그럴지도 모른다.

대가 없는 선행은 결국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고 언젠가는 그 사람을 망가뜨린다.

(나 자신이 그랬으니까. 물론 내가 그랬다고 해서 남들도 다 똑같으리라 생각하는 건 오만일지도 모르지만…글세…)

물론 단순히 그것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중간에 손을 썼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그자가 이 모든 일의 주모자이거나, 하다못해 배후에 있는 자에게 닿을 실마리일 것이다.

제국의 경비대에 이 사건에 관해 대충 조사하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었을까? 아니, 그렇다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꼬리가 잡히기 너무나도 쉽다. 실종자들의 선별에 이 정도로 공을 들인 자들이 그랬을 거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했다는 건데…그렇다면 여기 적혀있는 실종자들에 관한 흔적들은 이미 전부 사라졌을지도.

(…이번 의뢰는 과거 실종자들에 대한 재조사에 관한 의뢰가 아닐지도. 그럼에도 이러한 보고서를 보여준 진짜 의미는 일종의 시험인가. 아마도 이번 의뢰와 관련된 건 아닐 것이다. 뭔가 따로 맡기고 싶은 일이 있나보군.)

레니스는 순식간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에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곤 자료를 테이블 위에 살며시 내려놓으며 레시에게 말했다.

“자료를 훑어본 결과 재조사는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겠습니다. 저희는 이제부터 페블 위크에 대해 조사하면 됩니까?”

레니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묻자 레시가 조금 놀라는 척을 하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시험해 보는 게 아니라 단순히 확인해보려는 것이었나보다.

“과연, 레니스님. 거기까지 읽어내신 겁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레시는 페블 위크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페블 위크.

낮에 황금사과상회의 회주 칼 시즈로부터 혹시 실종된 게 아닐까라고 말해졌던 남자. 아무래도 길드에서도 황금사과 상회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 그를 이번 실종사건의 피해자로 판단했나 보다.

소식이 끊긴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을 정도로 가장 최근에 실종된 자이기 때문에 어쩌면 뭔가의 단서가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레니스는 이곳 지리에 익숙한 파미유 멤버들과 함께 페블 위크의 집으로 향했다.

길드를 나서자 루아가 레니스게 말을 걸었다.

(너 치고는 꽤 대담하게 행동했네. 그래봤자 거기서 키스만으로 끝낸 게 또 너답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거야?)

(너무 아픈 배려는 배려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달까….)

(흐음…좋아, 이 몸에게도 어리광을 부려 봐. 오늘만큼은 응석을 받아줄게.)

(허나 거절한다.)

루아와 그런 말장난을 하고 있더니 레니스는 왠지 모르게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조금 앞서서 일행을 인도하던 리카가 잠시 걸음을 멈춘 후 뒤를 돌아 레니스를 보며 말했다.

“레니스님, 이 골목 안으로 들어가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인 페블 위크의 집이에요.”

레니스의 눈앞에는 지금까지 파미유들과 걸어오면서 지나쳐왔던 깨끗하고 활기찬 거리와 같은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골목이 있었다.

안으로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햇빛이 들지 않는 곳 특유의 퀴퀴한 곰팡내뿐 아니라 술 취한 인간의 토사물이나 사람이나 쥐의 배설물 등이 섞인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파미유 멤버들이 그 불쾌한 냄새 때문에 살짝 그 고운 눈썹을 찡그린다.

레니스는 상상하였다.

자신과 파미유 멤버들을 감싸며 신선한 공기만을 통과시키는 보이지 않는 얇고 투명한 막을 상상하였다.

그러자 레니스의 의지에 마나가 감응하여 레니스가 원하는 바를 구현시켰다. 신선한 공기만이 레니스와 파미유 멤버들에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놀라며 레니스에게 물었다.

“이건 레니스님이?”

“네. 마법을 약간 응용해봤습니다.”

“레니스님은 뭐랄까…마법을 일상생활에 참 유용하게 쓰시는 거 같아요. 일전의 요리도 그렇고.”

그렇게 레니스와 파미유들은 아직 해가 떠 있는데도 빛이 들지 않는 인적 없는 스산하고 어두운 골목 안을 걸어나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기가 무거워져 자연스레 파미유 멤버들에게서 말수가 줄어들고, 그녀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쩐지 점점 꺼림칙해지네요.”

아마 다른 두 명도 같은 기분이겠지.

레니스 역시 조금 놀라고 있었다.

이곳에는 일종의 결계가 펼쳐져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효과를 가진 결계라도 레니스가 주점 ‘은의 눈물’에서 나올 때 자신의 방에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펼친 것과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저 한 사람의 비탄과 절망감의 자국만으로 여기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꺼림칙함을 느끼게 해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 정도라니…)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려야 이렇게 될까. 아마도 그자는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편할 정도로 괴로운 상태에 놓이게 됐을 것이다.)

죽는 건 무섭다.

남들보다 배는 오래 살은 레니스였지만, 그래도 죽음이 무서웠다.

삶에 미련이 미치도록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뛰어넘어서 죽는 게 편해지고 싶을 정도의 좌절감이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사람의 감정은 전염된다. 밝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밝게 만들어주고, 침울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을 침울하게 만들며 기운 빠지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사람에게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다.

과거 용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그 무엇에도 꺾이거나 흐려지지 않을 밝은 빛을 품고, 자신 안에 있는 빛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을 밝혀 마족을 땅끝까지 몰아내었다.

여기에 있는 것은 그것의 반대였다.

한 사람의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 왜 자신은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별거 아닌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없는지에 대한 처절할 정도의 삶에 대한 한탄.

그러한 너무나도 강렬한 탄식의 흔적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마저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파미유의 멤버처럼 밝고 생의 기쁨으로 충족한 자들마저 본능적으로 저러한 인간의 깊은 어둠에 침식되는 것을 꺼려하여 이 자리를 기피하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의지가 약하거나 마찬가지로 세상을 증오하며, 희망이라곤 없는 자들이었다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법했다.

절망감에 빠져 자신을 스스로 포기할 뿐 아니라 타인 역시 파멸에 빠뜨리려 범죄에 손을 댄다든가, 그것이 비록 한순간의 신기루와 같은 쾌락일지언정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자극적인 쾌락으로 도피한다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무언가에 의존한다든가.

끼익…끼익…

“힉!”

파미유의 멤버들이 일제히 무심코 작은 신음성을 흘렸다. 지금 그녀들의 눈앞에는 한 채의 다 쓰러져가는 흉가가 있었다.

외벽은 여기저기 거미줄처럼 금이 쩍쩍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로 검은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유리창에는 정체 모를 뿌연 손바닥 자국이 덕지덕지 찍혀 있었으며,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녹슨 철문이 규칙적으로 끼익 끼이익 귀를 거슬리게 하는 불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바싹 마른 무수히 많은 바퀴벌레의 시체들이 있었는데, 무수히 많은 구더기들이 그것들 위에 붙어있었다.

파미유 멤버들이 그걸 보더니 본능적인 혐오감에 안색을 새파랗게 물들이며 질색을 했다.

레니스는 그녀들에게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굳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겠군요. 장소를 옮기죠.”

동시에 루아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헤에, 이것은?)

루아에게 호응하듯 레니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것은───, 이제는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기운이었다. 과거 자신이 평생을 싸워온 너무도 익숙한 기운. 그리고 루아와의 계약으로 이제는 레니스의 안에도 있는 그것이 반응하여 어떤 장소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레니스가 한참을 걸어 도달한 장소는 깊은 숲의 안쪽이었다.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인간들의 시체가 목을 매달고 있었다.

몹시도 어두운 숲속임에도 불구하고 새하얗게 보여 불길하게 밖에 보이지 않는 나무에 목을 매단 채 불규칙적으로 바람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피와 배설물들이 대지를 더럽히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마의 영역.

하나의 마계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시체들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일제히 기괴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설령 귀를 막는다 해도 심령 그 자체를 뒤흔들어버리는 심연의 밑바닥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저주로 가득 찬 영혼의 절규였다.

그리고 시체의 목으로부터 몸이 서서히 찢어지기 시작하더니 절단면으로부터 사방으로 썩어서 검게 된 피를 흩뿌리면서 땅으로 털썩 떨어진다.

검은 핏방울들이 대지에 닿자 닿은 곳이 타들어 가며 녹아내린다.

땅에 아무렇게나 떨어졌던 몸통들이 온몸의 관절을 뒤틀면서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한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시체를 뒤집어쓰고 억지로 움직이려는 그 기괴한 모습은…

마치 온몸을 무수히 많은 바퀴벌레들에게 파 먹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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