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제22 화
* * *
레니스가 레아에게 목걸이를 선물로 주자 레아가 그 보답으로 레니스를 끌어안은 후 까치발을 들고 그의 뺨에 살짝 쪽 하고 가볍게 입술을 맞추고는 레니스를 향해 한번 배시시 웃은 다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후다닥 나간 방안.
방안에 혼자 남은 레니스는 한동안 레아가 입 맞췄던 부분을 손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뺨에 살짝 닿았던 소녀의 말랑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준 감질나는 감촉. 그리고 수줍은 미소와 함께 방을 나섰던 레아의 뒷모습의 잔향이 주는 여운에 깊이 잠겼다. 루아가 그런 레니스를 보고 놀려왔다.
‘고작 그 정도로 지금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감동받은 거야?’
‘이것이 젊음인가…’
‘완전 기분 나빠……’
‘…’
…
루아 덕에 주의를 환기시킨 레니스는 남아있는 목걸이가 담긴 상자를 한쪽 구석에 잘 내려놓았다.
음…어떻게 할까.
모험가 길드에 리카와 유이도 있다고 했으니, 지금 그녀들 몫의 목걸이를 들고 갈까, 아니면 갖다 와서 줄까.
그런 고민도 잠시 상자를 열어 안에 목걸이가 들어있는 작은 상자 두 개를 꺼내 상의 안쪽에 잘 갈무리했다.
‘어차피 줄 거라면 빨리 건네는 편이 좋겠지.’
그리고 방을 나오며 다른 사람은 이 방에 접근할 수 없도록 꼼꼼하게 결계를 쳐놓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1층으로 내려가 레아와 합류한다.
레아는 조금 전 수줍어했던 모습이 거짓말 같을 정도로 평소의 명랑한 그녀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심리적인 거리감이 가까워진 거 같다. 레아는 이전보다 훨씬 거리낌 없이 먼저 레니스의 바로 곁으로 다가와 같이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레아는 레니스에게 받은 목걸이가 어지간히도 맘에 들었는지 연신 레니스의 곁에서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란히 걸으며 목걸이에 달려있는 에메랄드를 매만지고 있었다.
저렇게 좋아해 주니까 선물해준 레니스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흐뭇하게 그녀의 그런 옆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음에 드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그야……, 무엇보다도 레니스님께 받은 거니까요.”
레니스 쪽으로 고개를 돌린 후 조금 쑥스러워하면서도 즉시 당돌하게 말하는 레아.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대견하게 여겨져 레니스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후…후아…레…레니스님?”
갑작스런 레니스의 행동에 놀라 당황하면서도 머리를 뒤로 빼거나 거절의 의사는 표하지 않는 레아.
“저…저기…”
레아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곤 몸을 배배 꼬면서 간신히 말을 이었다.
“레니스님…그…부끄럽습니다…”
그런 레아의 모습을 보며 레니스는 기이한 흥분을 느꼈다.
레아는 파미유에서 제일 어린 막내임에도 두 언니들이 자주 폭주해서 그런 걸까. 항상 말리는 역할을 해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되게 야무진 소녀라고 생각했는데…실제로도 야무지고.
하지만…타인에게는 무르다고 해야 할까.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타인에게는 무른 소녀.
‘레아는 의외로 가학심을 느끼게 하는 소녀구나….’
레니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레아의 머리를 좀 더 쓱쓱 쓰다듬었다.
곤란해 하거나 난처해 하면서도 강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주위의 시선에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곤, 몸을 파르르 떠는 게…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길 한가운데서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강하게 레아의 몸을 끌어안은 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저 작은 입술을 탐하고 싶다고 레니스가 생각해버릴 정도로….
하지만 이 이상은 자제하기로 했다.
짐만 놓고 곧바로 모험가 길드로 향할 예정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시간을 많이 허비하기도 했고…길 한복판에서 이 이상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좀….
아까부터 주위 남자들의 시선이 따갑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수천 번은 죽었겠지.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레니스의 몸은 레아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이번에는 레아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레아의 몸이 순간 뻣뻣하게 굳었단 걸 알 수 있었다. 레아의 입에서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귀여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우으….”
순간 가슴이 찡하고 울렸다. 좀 더 언제나 언니들 뒤처리를 하는 야무진 레아의 이런 의외의 표정을 더 보고 싶어서, 그리고 단순히 레아의 부드러운 감촉이 좋아서 레아의 부드러운 귓불을 집중적으로 만지작거렸다.
“아…우…레…레니스님…그…그만…”
그리고 이렇게 입으로는 부끄러워하며 떠듬떠듬 거절의 말을 내뱉지만, 레아가 레니스를 보는 시선 속에 깃든 기이한 열망과 그의 손짓에 반응하여 흠칫흠칫 파르르 떠는 몸짓이 레아가 말과는 반대로 좀 더 큰 자극을 원하는 것 같아 레니스가 더 대담한 행동을 하도록 부채질했다.
레아의 귓불을 매만지던 손으로 이번엔 레아의 촉촉한 뺨을 쓰다듬어본다.
“읏…”
귀를 만졌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레아. 그리고 그녀의 뺨의 감촉은 귀를 만졌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쫀득쫀득하니 손에 착 감기는 게 중독성 있어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잡고 잡아당겨 보기도 하며 그 감촉을 한동안 즐겼다.
“우…읏…”
레니스 옆에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다소곳하게 걷는 레아의 뺨을 만지작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새 레니스와 레아 두 사람은 모험가 길드 하루살이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아쉽지만 레아의 뺨에서 손을 뗐다. 손안에 허전함이 감돈다. 그런 레니스에게 레아가 볼멘소리로 작게 항의 했다.
“레니스님…정말이지…부끄럽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죄송합니다. 레아양이 너무 귀여우셔서 그만…”
그런 레니스의 솔직한 대답에 레아는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은 후 웃으면서 말했다.
“읏…다…다음에는 정말 화낼 거예요?”
“네. 앞으론 조심하겠습니다.”
“아…아뇨…그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달까…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라면 그…더한 것도 괜찮달까…아니…가…가끔씩이라면 남들이 보는 앞에서 더한 것도…”
“네?”
“아, 아뇨!! 얼른 들어가죠! 언니들도 안에 있을 거예요.”
…
모험가 길드 안으로 들어오자 잠시 레니스와 레아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시선의 대부분은 남자들이 레아에게 보내는 순수와는 거리가 많이 먼 사심이 가득찬 시선들 뿐이긴 했지만, 어쨌든 굳이 분류하자면 호의적인 시선이었다.
그런데 걔 중에는 정말 의외로 레니스에게도 레아에게 보내는 시선과 같은 시선을 보내는 남자들이 꽤 있었다.
‘뭐지…?’
레니스는 순간 의아해 했다.
물론 모험가란 족속들에게는 언제나 위험이 함께 하기에, 그들은 강한 자에게 환호한다. 그리고 레니스가 모험가 길드서 보여준 힘의 편린은 조금 과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긴 했다.
‘뭐……, 정의나 도리 같은 것보다 힘의 논리가 훨씬 우선인 세계라 약하다고 업신여겨지는 것보다는 수십 배 낫긴 하다만….’
(그렇더라도 이건 뭔가 좀.)
(그……, 그러게.)
덩달아 같이 당황해하는 루아.
지금 레니스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은 단순히 강자에게 보내는 호기심이나 호의적인 시선과는 명백하게 그 질이 달랐다. 훨씬 끈적끈적한…무심코 닭살이 우둘투둘 돋아나며 소름끼치는 시선이었다.
그중 유독 그런 끈적끈적한 시선을 레니스에게 강렬하게 보내고 있는 길드 구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식겁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웃통을 벗은 채 한 테이블에 앉아있는 몇 명의 우락부락한 남자들이었다. 실전에서는 그다지 효용이 없는 단순히 부풀리기만 한 과시용 근육. 하지만 시각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어서 보기만 해도 징그러웠다.
오싹!
순간 소름이 레니스와 루아의 온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남성들이 일제히 느끼한 미소를 지은 후 레니스에게 윙크를 하며 자신들의 입술에 손을 살짝 댄 후 떼면서 쪽 하고 키스를 날렸기 때문이었다.
‘히이익!’
‘히이익!’
마왕인 루아와 인신의 영역에 오른 레니스가 드물게도 동시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한때 마의 정점에 앉아있던 루아가 레니스보다 더 큰 혼란에 빠져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뭐…뭐…뭐야 방금 그건? 내가 도대체 뭘 본 거지? 이 얼마나 무서운 정신계 공격이야?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나를 이렇게나 두려움에 떨게 하다니. 아니 애초에 저 징그러운 생물들은 대체 뭔데?)
(나…나도 몰라…뭐야. 이거 무서워.)
레니스 역시 루아와 마찬가지로 혼란에 빠져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루아는 지금 레니스와 대치했을 때 못지않게 전율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생리적인 혐오였다.
그렇게 공황상태에 빠진 레니스와 루아 앞으로 구원의 여신이 내려왔다.
레아는 평소의 야무진 표정으로 레니스의 앞을 막아서서 그들로부터 쏟아지는 시선을 막아주더니 전부 이해한다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레니스님과 친해지고 싶어서 그래요. 너무 나쁘게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네…”
레니스는 레아의 말에 말잘 듣는 아이처럼 답할 수밖에 없었다.
레아는 그런 레니스의 손을 잡고 길드 안쪽의 게시판 앞으로 끌고 가며 말하였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추구자일지도 몰라요.”
“…네?”
레아의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레니스는 바보같이 되묻고 말았다.
묻고 나서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든다.
“결국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육체적 욕망에 좌우되는 것도 꽤 크다고 할까요. 종족의 보존을 위한 약속된 행위인지라 본능에 충실한 짐승이랑 다를 게 없다는 시각도 있어요. 물론 애정이나 사랑이란 그런 단순한 게 아니기 때문에 조금 극단적인 말이긴 하지만요.”
(구원의 여신이라도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나만 지금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루아의 그런 의문에 레니스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한편 레니스의 침묵을 어느 정도 자신이 하는 말에 동의한다고 생각했음인가 그런 레아는 점점 열정적으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이기 때문에 비로소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야말로 타고난 성별마저 뛰어넘고 종족 보존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진실 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이성을 가진 인간이기에만 가능한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순수한 행위인 거지요. 레니스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그게…어…음…”
레니스의 그런 반응이 재밌는지 루아가 놀렸다.
(아하하하!! 왜 아무런 대답도 못해? 저렇게 귀여운 여자아이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뭐라도 말 좀 해봐.)
(아니. 무슨 말을 하든지 늪에 빠질 거 같은데.)
긍정이든 부정이든 둘 다 사지란 생각뿐이 안 들었다.
이 주제에 관해 이성적인 대화를 하기엔 레아의 눈이 너무 무서웠고, 또 레니스의 경험이 미천했다.
하지만 레아는 그런 레니스의 대답 따윈 역시나 처음부터 상관없었다는 듯 두 눈을 빛내면서 레니스의 손을 꼭 쥐더니 말했다.
“언젠가 레니스님께도 ‘남자라서 좋아하게 된 게 아니야. 우연히 좋아하게 된 녀석이 남자였을 뿐이다. 성별 따윈 신경 쓰지 않아!’라고 말해줄 운명적인 남성분이 나타나기를 바랄게요!”
“…”
“하아…하아…”
레아는 스스로 한 말에 자기 자신이 도취 되었는지 살짝 호흡이 흐트러졌다. 하지만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뜨겁게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게 된 사람이 같은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몇 날 며칠을 고뇌에 빠지지만 결국 끓어오르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억지로 덮친 뒤, 한바탕 거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
“꺄아! 꺄악! 어떡해! 어떡해! 그나저나 나는 레니스님 앞에 그런 운명의 남자가 나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지?”
“…”
무슨 상상을 했는지는 알고 싶지 않지만, 레아는 그렇게 귀여운 소리를 내며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자신의 두 뺨에 손을 댄 채 몸을 꼬았다.
(가급적 그런 사람은 평생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런 레니스게 동조하듯이 루아가 말했다.
(그, 뭐랄까. 세상 참 흉흉하네.)
(그러게…마족도 사라졌는데…대체 어쩌다가…)
이러려고 자신이 과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족 토벌에 일생을 바쳤는지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지는 레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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