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제18 화
* * *
복원 마법 리커버리 레스토라.
손상된 물건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주는 마법이다.
다만 그 말처럼 그렇게 만능은 아니다. 예를 들어 포션과 같은 소모성 물건의 경우 내용물을 다 마신 후 그 병에다가 복원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다시 포션의 내용물이 가득 차거나 그러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마법은 시간을 역행할 수 없다. 마나의 특성 자체가 대자연의 기운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대자연의 이치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흐음……그럼 수리 마법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레니스에게 그렇게 묻는 루아에게 레니스는 조금 난처하다는 듯이 콧잔등을 살짝 긁으면서도 친절히 답했다.
(뭐,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
(근데 왜?)
(왜 복원 마법이라고 칭하냐면………, 단순히 대다수의 마도사들이 그게 더 멋있는 표현이라고 합의했거든.)
(뭐야, 그게)
(이래 봬도 마도사들은 신비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니까……, 다들 조금이라도 남들이 볼 때 더 그럴싸하고 멋있는 걸 좋아한단 말이지….)
(하나도 멋있지 않은걸? 유치해.)
(하하…….)
루아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대범하게 웃어 보이며 그 자리를 넘긴 레니스였지만, 속으로는 진땀을 흘리며 정말 멋있지 않은 건가? 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지었지만, 꽤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아스텔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복원마법으로 최대한 고친 후 레니스에게 넘겨주면, 엘프들이 새겨 넣은 마법진 같은 복잡한 것들만 레니스가 고치는 식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규칙적인 리듬감마저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레니스는 아스텔과 묘한 일체감을 느꼈다. 마치 한 몸이 된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레니스가 무의식 적으로 아스텔을 보았을 때, 아스텔 역시 레니스를 몰래 보고 있었다.
그리고 레니스와 시선이 마주치자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부드럽게 미소 짓고 다시 마법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주위에서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져서 레니스는 조금 등골이 간지러웠다.
물론 아스텔의 아버지인 칼 시즈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뭐랄까…딸을 둔 아버지는 여러모로 복잡하네.)
라고 루아는 어딘가 남 얘기가 아니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대충 손상된 물건들의 복원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언제나처럼 루아가 레니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어째서 이렇게 빙빙 돌아가는 거야?)
(음?)
(혼자서도 순식간에 전부 원상태로 만들 수 있으면서, 어째서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으로 오랜 시간 걸려서 하는지 궁금해서. 어울리지 않게 은근히 힘든 척 연기까지 하면서.)
루아의 질문에 레니스는 잠시 하던 작업을 멈추더니, 잠깐 생각을 정리한 후 차분하게 답했다.
(내가 그들에게 해로운 존재가 되길 바라지 않으니까…….)
(흐음……, 정말이지 150살 동정다운 복잡한 심리네. 기껏 이 몸과 계약까지 해놓고…….)
(누군가 한 명에게 모두가 의지하여 그에 의해 세상이 좌우되기보단 가급적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세상을 보다 좋게 만들었으면 싶으니까…….)
‘물론 황금사과 상회의 인물들은 나에게 쉽게 의지하려 들지 않고, 본인들이 최선을 다 할 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레니스는 과거에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연인을 만들었단 걸 알게 됐을 때 도저히 그곳에서 버티지 못했던 걸 떠올린다.
‘이것도 아마 그것과 비슷하겠지.’
(사람은 나약하다. 나 역시 나약했다. 주위에 자신들이 힘들게 할 수 있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을 쉽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점점 그 사람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싶어진다든가,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것은 서서히 사람을 죽이는 치명적인 독과 같다. 될 수 있는 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피해야겠지.)
(흐음……….)
레니스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뭔가 납득가지 않는게 있어서 석연치 않아하는 루아에게 레니스가 가볍게 덧붙였다.
(뭐…단순히 작은 귀찮음으로 큰 귀찮음을 피한다. 그런 이유뿐일지도.)
그렇게 언제나처럼 루아와 대화를 하는 사이 모든 물건의 복원이 끝났다.
레니스가 아스텔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자 칼 시즈가 레니스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정말이지……, 레니스도령에겐 계속해서 신세만 지는구려.”
“아닙니다.”
“후…정말이지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고민이로구먼.”
“딱히 보답을 바라고 한 게 아니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아니면 나중에 또다시 맛있는 식사라도.”
“허허…정말이지. 레니스도령은 욕심이 없구먼. 그래도 이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니 부디 날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뭔가 원하는 걸 말해주지 않겠나? 내 최대한 힘써보겠네.”
“그렇습니까….”
바라는 거라…….
회주의 말을 듣고 레니스는 새삼 떠올렸다. 자신이 뭐 때문에 루아의 유혹에 넘어가 계약을 하고, 천리를 거스르는 마기를 뒤집어쓰면서까지 젊어졌는지를.
그렇지…….
일단은 하렘 만들기였던가. 아스텔을 힐끔 바라본다. 자신을 잘 따르며 레니스에게만 유독 풍부한 표정을 보여주는 은발의 미소녀.
…
(뭐야, 저지르려는 거야? 하려는 거냐? 지금 이 타이밍에! 따님을 달라고!)
흥분해서 레니스 주변을 방방 뛰며 호들갑을 떠는 루아에게
(아무리 그래도 지금 ‘그럼 따님을 주십시오. 저는 아스텔만을 원합니다.’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음? 괜찮지 않아? 상당히 가능성 높아 보이는데.)
(아니, 아무래도 그건 좀….)
(쯧쯧쯧, 네가 그러니 그 오랜 세월 동안 동정이었던 거야. 이대로라면 또 반복할걸?)
(…상당히 아픈 곳을 찔러오는군.)
‘과연 한때 마의 정점에 군림하던 루아다. 비록 계약의 의식 도중 의도치 않게 나에게 마기를 다 흡수당해서 지금은 이렇게 나한테 의존하고 있다지만,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해야 할까. 마족의 정점에 섰던 자 특유의 정신계 공격만큼은 건재한가 보네.’
‘그나저나 농담은 이쯤 해두고 진짜로 어떻게 한다.’
레니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황금사과 상회는 수많은 힘 중에서 재물의 힘을 사용해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하였다.
그래서일까…그곳을 이끄는 칼 시즈는 누구보다도 재물의 한계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값을 매기기 어려운 것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선의에 값을 매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선의에 값을 매길 때, 그것은 결코 높아서도 낮아서도 안 되니까.
무상의 봉사이기에 고귀한 것이지 만약 거기에 가격을 낮게 매기면 비록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더라도 선행을 한 자의 자존심이 훼손되고, 거꾸로 대가가 너무 높으면 선행을 한 사람에게 오히려 아첨하는 것처럼 돼버려 부담을 주게 된다.
그래서 칼 시즈는 직접적으로 금전적인 보상을 주는 게 아니라 식사를 같이하면서 친목을 다진다든가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연이어진 도움에 그것도 한계에 달해 무언가 가시적으로 보답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마음이 불편하다고 여긴 거겠지.
그리고 보통은 이런 경우 상대방에게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일까를 생각한 다음 그것을 보답으로 하면 되지만 칼 시즈는 레니스에게 직접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달라고 했다.
덕택에 레니스가 조금 난처해졌다. 이 경우 레니스 역시 너무 과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자신한테 정말 필요한 것을 말해야 하기에.
하지만 칼 시즈는 레니스가 난처할 것까지도 염두에 두면서까지 그가 생각하는 레니스한테 필요한 게 아니라 정말로 레니스가 원하는 걸로 보답하길 선택했다,
‘내가 너무 좋은 쪽으로만 깊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크게 틀리진 않았을 거다. 역시 이러한 배려에는 배려로 답해야겠지.’
뭐가 좋으려나….
…
안 되겠다. 루아 때문에 한 번 의식해서 그런가. 역시 따님을 달라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아.
그렇게 결국엔 아스텔에게로 생각이 귀결됐을 때였다,
레니스는 무엇을 요구하면 좋을지를 간신히 떠올리고 칼 시즈에게 말하였다.
“혹시 목걸이 남는 게 있으시다면 하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목걸이 말이요, 레니스도령?”
“예. 너무 화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알겠소. 목걸이라…음…마침 좋은 게 있다오.”
그렇게 말한 후 칼 시즈가 근처에 있는 하인에게 무언가를 지시하자 잠시 후 하인이 상자 하나를 가져와 칼시즈에게 공손하게 내밀었다.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확인한 후 칼시즈가 레니스에게 상자를 건넸다.
“이걸로 괜찮을지 모르겠소, 레니스도령. 혹시 맘에 안 든다면 편하게 말해주시오.”
“충분합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칼 시즈에게 건네받은 상자를 열어 안을 확인하자, 그 안에는 전체적으로 화려한 치장 없이 금으로 된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무척이나 섬세하고 세심하게 가공된 에메랄드가 박혀있어 단순함 속에 몹시 고급스러운 절제미가 담겨있는 목걸이였다.
기대 이상으로 레니스가 원했던 이미지에 딱 맞아 몹시 흡족하여 레니스는 회주에게 솔직하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이렇게 귀중한 목걸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오, 레니스도령. 또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부담 없이 말해주시구려.”
레니스는 칼 시즈의 진심이 느껴지는 호의에 짧게 고개를 숙인 후, 목걸이에 손을 얹어 부여마법을 시전 했다.
동시에 에메랄드가 밝은 빛을 발하며 주위가 한순간 눈부신 빛에 삼켜졌다. 그리고 부여마법이 끝나 빛이 잠잠해졌을 때, 레니스는 손에 든 상자를 아스텔에게 내밀며 말했다.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수호마법을 걸은 목걸이입니다. 받아주시겠습니까, 아스텔양?”
혹시 있을지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그 어떤 공격이라도 한번은 막을 수 있는 절대적인 수호마법을 걸은 목걸이를 아스텔에게 건네기로 하였다.
이러면 조금은 자신이 곁에 없어도 안심이다.
아스텔은 자신의 눈앞에 놓인 목걸이를 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상의 윗 단추를 풀어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목이 잘 드러나게 한 후 나직하게 내게 말했다.
“레니스님 채워주세요.”
레니스는 무심코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그렇게 레니스가 당장이라도 깨질 것만 같은 섬세한 유리장식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아스텔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는 장면을 주위 사람들이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어머, 젊네요, 두 사람 후후후.”
두 사람을 보고 두 눈을 빛내며 즐거워하는 아스텔의 어머니인 레이윈. 반면 리노아는 어딘지 부러운 눈길로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띄우며 아스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칼 시즈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레니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
뭔가 장내에 묘한 긴장감과 야릇함이 흐르는 가운데 아스텔에게 목걸이를 채워주자 칼 시즈가 레니스에게 말했다.
“레니스도령. 어떤가, 몇 시간 후면 저녁인데, 저녁까지 하고 가는 건.”
꽤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레니스는 아침에 나올 때 파미유 멤버들에게 저녁 때쯤 돌아올 거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녀들의 성격상 레니스가 늦어도 먼저 저녁을 먹지 않고 계속해서 기다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해야 할 것도 있고….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오늘은 아무래도 이만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 언제든지 오세요, 레니스 도련님.”
레니스의 대답에 칼 시즈를 대신해 상냥하게 말해주는 레이윈.
“네, 감사합니다, 부인.”
레니스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리노아가 내게 인사했다.
“그럼, 레니스님 또 뵙길!”
“네, 리노아님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스텔이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의 에메랄드를 꼬옥 쥐며 레니스에게 말했다.
“목걸이 고맙습니다. 소중히 여길게요.”
“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레니스가 황금사과 상회의 따스한 배웅을 받으며 돌아가려고 할 때 칼 시즈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레니스도령 잠시만 기다려주시게나.”
그리고 하인에게 뭔가를 지시하자 잠시 후 하인이 돌아와 상당히 큰 고급스러운 상자를 정중하게 칼 시즈에게 내밀었다.
칼 시즈가 상자를 받은 후 안을 확인하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레니스에게 다가와 건네주며 주위에는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레니스도령, 다정함의 반대말이 뭔지 혹시 아는가?”
“네?”
레니스가 너무도 뜬금없는 질문에 영문을 몰라 되묻자 칼 시즈가 호탕하게 웃으며 친근하게 등을 두드리더니 말했다.
“바로 우유부단이라네. 껄껄껄.”
“…”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나……, 나한테 묻지마 바보야! 것보다 네 취향의 개그 아니었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뜬금없는 중년의 개그에 루아와 레니스가 동시에 혼란에 빠졌을 때, 칼 시즈가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라면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네. 이건 그런 자네에게 내가 보내는 미약한 선물이라네, 그럼 힘내게!”
그리곤 한쪽 눈을 윙크하며 엄지를 척 내미는 칼 시즈.
문맥을 따라갈 수 없어 어안이 벙벙하였지만, 일단 레니스는 그런 그에게 감사하다고 예를 표한 후 황금사과 상회를 나섰다.
…
그렇게 레니스가 떠나간 후 황금사과 상회의 회주 칼 시즈의 부인인 레이윈이 그녀의 남편 칼 시즈에게 물었다.
“그래서…, 당신 레니스군에게 뭘 준거에요?”
그런 부인의 말에 칼 시즈는 레니스 앞에서 보여주던 사람 좋은 표정과는 전혀 다른 진지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그의 부인에게 말했다.
“줬다기보다는…맡겼다고 해야겠지.”
너무도 진지한 남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여 목소리를 낮추고 묻는 레이윈.
“뭘요?”
“꿈을…남자라면 젊었을 적 누구나 한 번쯤은 꿔볼 하렘 건설이란 꿈을 말이지.”
“당신 미쳤어요? 우리 레니스군한테 이상한 물 들이지 마요.”
“아…아니, 여보. 나…나는 진지하게.”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그렇게 괜히 남편의 바보 같은 생각도 모르고 진지해져서 손해 봤다는 식으로 핀잔을 주며 투덜거린 레이윈이었지만, 한편으론 남편의 생각도 꽤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만 레이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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