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제8 화
* * *
레니스와 파미유들이 여관 ‘은의 눈물’을 나와서 번화가로 나오자 수없이 많은 가게들이 줄지어 서서 물건을 팔고 있었고, 그 몇십 배는 많은 인파들이 활기찬 얼굴로 거리를 가득 매우며 각자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던 레니스는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빛바래지 않을 너무나도 눈부시고 찬란한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삶을 구원할 기회입니다. 바로 당신과 내가 말이에요.”
그것은───,
가까운 미래, 모두에게 용자라고 불리게 될 자와의 첫 만남. 그는 필사적인 표정으로 호소하며, 레니스에게 손을 내밀었었다.
‘젊었지, 그땐 나도. 그도.’
이렇게 평화로워진 세상과 사람들의 밝은 얼굴을 보니, 다시금 자신의 과거에 긍지가 생겼다.
‘후……, 150세 동정이면 뭐 어때.’
레니스가 엣헴 하고 살짝 가슴을 펴며 그렇게 생각하자 루아가 지그시 레니스를 바라보았다.
그에 기가 죽은 레니스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아니………, 사실 문제가 많긴 하지만.’
쓴웃음을 짓던 레니스는 그 뒤 루아가 한소리 하며 핀잔을 줄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히 있어서 의아해했다.
‘그녀는 그녀대로 눈앞의 번화한 성도를 보며 뭔가 느끼는 바가 있는 건가………?’
“레니스님?”
레니스가 그렇게 멍하니 멈춰서 있자 이상하게 여긴 레아가 말을 걸어와 레니스는 상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굉장히 활기찬 도시구나……라고 생각해서.”
“우후후, 현재 세계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국의 수도니까요. 사실 이 정도는 약과랍니다. 그래요, 가령 천년제 같은 커다란 축제가 열리는 기간엔 제국뿐 아니라 대륙 곳곳에서 사람들이 오니까 비교할 바가 못 되지요.”
그렇게 말하며 은근슬쩍 자연스럽게 레니스에게 팔짱을 껴오는 유이.
“그럼 가시죠, 레니스님.”
그리고 리카 역시 유이에게 질세라 반대편에서 레니스에게 팔짱을 껴왔다.
“므웃……!”
‘하아~~’
리카와 유이의 약삭빠른 행동에 선수를 뺏겨 혼자 남은 레아가 볼을 귀엽게 살짝 부풀렸다가 이내 체념했는지 한숨을 한번 푹 쉬고는 레니스의 곁으로 다가와서 지금부터 갈 옷가게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가 지금부터 갈 가게의 이름은 ‘미육의 향기.’라고 해요.”
“네………, 네에!?”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답하던 레니스가 너무도 관능적인 이름에 깜짝 놀라서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고 레아에게 되묻고 말았다.
배덕감이 풀풀 나는 자극적인 이름이다.
“미………, 미육의 향기요……….”
레아도 그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레니스에게 다시 한번 가게 이름을 말하면서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 조금, 사실 조금이 아니지만, 여하튼 무척 관능적인 이름이라 수상쩍게 느끼실지도 모르실 텐데요. 그래도 솜씨는 확실하니까!!!”
“저희들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맞춰주신 것도 거기 주인 언니시거든요!!!”
“과연………, 그런 거라면 분명 믿고 맡길만 하겠군요.”
새삼 레아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본 뒤 레니스는 수긍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레아의 말에 깊은 동의를 표했다.
리카, 유이, 레아. 파미유들 자체가 워낙에 미소녀라 뭘 입어도 어울리겠지만, 지금 입고 있는 옷들은 세 사람의 매력을 한층 더 확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런 레니스의 시선을 받은 레아는 쑥스럽기도 하고, 묘하게 기쁘기도 해서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 실례했습니다.”
딱히 불순한 의도가 있던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시 숙녀를 너무 빤히 바라본 건 실례가 아닌가 싶어서 재빨리 사과하는 레니스.
“아, 아뇨! 괜찮아요! 오히려 기뻐요. 더 잔뜩 봐주세요.”
“………네?”
“아……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무서운 아이네.)
루아가 이마에 식은땀을 한 방울 흘리며 레니스에게 그렇게 속삭이자 레니스도 그에 수긍하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잠시 후───.
레니스는 파미유의 멤버들에게 이끌려 ‘미육의 향기’에 도착했다.
‘뭐랄까………, 여긴 내가 와선 안 되는 곳이 아닐까?’
그런 레니스의 생각을 뒷받침하듯이
‘확실히 마왕 성에 돌아온 것만 같은 그리운 느낌이 드네.’라며 루아가 옆에서 기운차게 말하였다.
레아에게 가게의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불길할 정도로 짙은 관능의 향기가 났다만, 실제로 와보니 이건 상상 이상이다.
가게가 두르고 있는 공기 자체가 질적으로 다르다.
금남의 구역이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만 레니스.
리카와 유이에게 정말 여기서 남자인 자신의 새 옷을 맞추는 게 맞냐는 무언의 시선을 보낸다.
그런 레니스의 시선을 받은 두 사람은───,
“자, 레니스님 들어가시죠!”
“우후후후……,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그러자 두 사람 다 레니스의 시선에 대답은 하지 않고 입가를 요염하게 핥으면서, 레니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시 한번 팔짱을 꽉 낀 후 가게 안으로 연행해갔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주위를 가득 메운 선정적인 옷들 때문에 시선을 둘 곳이 없어 난처했다.
그리고 곧이어 가게의 주인으로 짐작되는 나른한 표정의 관능적인 미인이 레니스와 파미유들을 반겨주었다.
연한 갈색 긴 웨이브 머리에 앞가슴이 다 파이고 배꼽마저 드러난 선정적인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었다.
“어서오세요~. 어라, 파미유 아가씨들이구나. 벌써 돌아온 거니?”
“네, 굉장히 보람찬 의뢰였답니다.”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내며 말하는 리카에게
“그러게, 굉장히 좋은 소재도 가져온 거 같고. 후후후. 그 애의 옷을 맞춰주러 온 거니?”
“네, 평소처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 전에 몇 벌 시착해봐도 될까요?”
“그러려무나. 어떤 자극적인 작품이 튀어나올지 나도 궁금하고. 후훗, 소개가 늦었구나, 귀여운 도련님.”
자연스럽게 레니스 곁으로 다가와 익숙한 손길로 레니스의 겉옷을 훌렁훌렁 벗기면서 그녀가 말했다.
“나는 미사 엘리자티. 앞으로도 잘 부탁한단다.”
그렇게 말하면서 레니스의 볼에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애정을 표하듯이 쪽하고 입을 맞췄다.
“저는 레니스 프라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후훗하고 웃으면서 자신의 손에 들려진 레니스의 옷을 별생각 없이 보다가 점점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더니 이내 경악했다.
“소년, 투박하고 간소한 디자인과는 다르게 말도 안 되는 재료로 만들어진 괴물을 가져왔구나. 어떤 인연인지는 몰라도 소년이 이곳으로 온 것은 정답이란다. 후후.”
‘마룡의 수염으로 자아낸 국보급 옷이라니. 대체 이 소년의 정체가 무엇일까?’
미사 엘리자티는 잠시 고민했다.
‘위에 알려야 하나?’
그러나 그녀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은 이미 은퇴한 몸. 그리고 이런 범상치 않은 소년이라면 설령 그 자신이 싫어도 머지않아 주목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옷이 그렇게 대단한 재료로 만들어진 옷인가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묻는 파미유의 멤버들에게 미사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대신에………,
“입혀보고 싶다는 옷이 있다는 거 아니었니?”
대답을 꺼려하는 미사의 신호를 눈치 빠르게 잡은 레아가
“그, 그렇죠!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레니스님께 이 옷을 꼭 한번 입혀보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옷은, 파미유 멤버들의 유니폼인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짧은 치마에 가터벨트가 특징인 검은 메이드 복이었다.
‘여……, 여긴 미쳤어. 난 여길 벗어나야겠어!’
하지만 그런 레니스의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했다.
어느샌가 한 손에 하늘하늘거리는 순백의 드레스라든가, 등이 전부 파인 검은 가죽 옷이라든가, 여러모로 위험한 의상들을 잔뜩 든 리카와 유이에게 퇴로를 막힘없이 포위당했기 때문이다.
…
“이……, 이건 좀 위험할지도.”
얼굴에 연분홍빛을 띄우면서 말하는 리카.
“정말이지 남색에 빠지는 자들이 이해되는군요.”
평소처럼 온화하지만 사냥감을 노리는 매와 같이 예리하게 실눈을 뜬 채 말하는 유이
“그……, 그냥 이대로 저희 멤버로 들어오시는 건?”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팔을 파닥파닥 거리면서 말하는 레아
거울 앞에는 검은 단발머리의 단아한 미소녀 메이드가 하반신이 허전한 듯 치마를 살짝 쥐고 수줍게 서 있었다.
보고 있는 같은 여자들마저 순간 심장이 크게 뛰게 만들 정도로 레니스의 청순한 반응에 본격적으로 탄력이 붙었는지 리카와 유이, 레아가 레니스의 눈이 핑 돌아갈 정도로 소녀스러운 옷들을 가져와서 신나게 레니스한테 입히기 시작했다.
...
‘더……… 더럽혀졌어.’
(아하하하, 잘 어울리지 않아? 아예 이대로 입고 다니는 게 어때?)
루아의 말에 힘없이 대답한다.
(좀 봐주라……….)
(혹시 계속 이대로 입고 다니면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될까 봐 그런 거야?)
(설마…….)
레니스가 녹초가 되어 기진맥진하고, 파미유의 여성들도 흥분했던 열기를 잠시 식힐 무렵 미사가 레니스와 파미유들에게 다가왔다.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어.”
“네, 정말이지 보람찬 시간이었어요!”
열띤 얼굴로 말하는 레아.
“간만에 눈 호강을 해서 그런지 좋은 영감이 떠올라서 이쪽도 잘 만들어졌지 뭐야.”
그렇게 말하면서 미사는 레니스에게 옷을 건넸다. 이제 와서 새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스스로 갈아입으려니 어색해서 탈의실로 가려는 레니스에게───,
“뭘, 이제 와서 쑥스러워 하는 거야, 후후후후.”
그렇게 말하며 미사와 파미유의 멤버들이 레니스가 지금 입고 있는 무척이나 청초한 새하얀 원피스를 벗긴 후, 완성된 옷을 입혀주었다.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그림이 되는군.”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는 미사.
“괴……, 굉장하군요. 정말 잘 어울려요. 레니스님.”
“멋져요, 레니스님. 여자아이 같은 귀여운 옷도 좋지만 역시 레니스님껜 이런 멋진 옷이 제일 잘 어울리네요.”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입맛을 다시면서 말하는 리카와 레아.
“후후, 납치해서 저만의 것으로 만든 다음 강제로 봉사해드리고 싶어지는군요.”
뭔가 무서운 소릴 작게 중얼거리는 유이.
‘………못 들은 척하자.’
“감사합니다. 멋진 옷을 만들어주셔서.”
레니스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곤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답했다.
“아니, 신경 쓰지마. 나도 충분히 즐거웠으니 후후, 그래도 받을 건 받을 거지만. 재단하고 남은 약간의 재료를 대금 대신으로 받아도 괜찮을까?”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정말 아주 조금 남은 재료. 새끼손가락 정도 뿐이 안 되는 재료를 내밀면서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딱히 상관없기에 수긍했다. 오히려 이런 것마저 황금사과상회 앞으로 청구서를 보낸다면 자신의 맘이 편치 않다. 빨리 어느 정도 자금을 마련해야겠다고 레니스가 마음을 먹은 순간이었다.
“후후, 고마워. 자 그럼 이건 서비스.”
그렇게 말하면서 미사는 레니스에게 작은 꾸러미를 주었다. 안을 들여다본 레니스는 식겁했다.
거기에는 레니스에게 딱 맞춰서 제작된 파미유의 메이드복이 들어있었다.
“저한테 이런 취미는 없습니다만?”
“후후, 너무 잘 어울려서 개인적으로 주는 선물이니까 받아두도록 해. 언젠가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가급적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우선은 호의를 감사히 받겠습니다.”
“후후, 그럼 다음에 또 와!”
“네, 그럼.”
파미유의 멤버들과 함께 인사를 한 후 가게를 나왔다.
“정말 좋은 분이시죠?”
그런 레아의 말에 조금 엉뚱한 면이랄까, 장난기가 있는 여성이었지만, 결코 악의는 없었기에
“네”라고 레니스는 순순히 답하였다.
“언젠가 저희가 가게를 차리면 레니스님도 오늘 받으신 옷을 입고 같이 일했으면 좋겠어요. 레니스님이라면 분명 업계 최고가 되실 수 있을 거예요.”
신이 나서 그렇게 덧붙이는 레아에게 레니스는 그저 힘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레니스와 파미유의 멤버들은 옷가게 ‘미육의 향기’를 빠져나와 드디어 원래의 목적지였던 모험가 길드로 향하게 되었다.
모든 모험가들을 통괄하는 모험가 길드 ‘하루살이’
본래 모험가들이란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인생.
때문에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 하루만 산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날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서 살자는 모험가들의 각오가 담겨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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