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제7 화
* * *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공손히 말한 점원에게 레니스가 안내받은 방은 파미유들이 주문한 대로 최상층에 있는 가장 큰 방이었다.
유이의 요구대로 넷이서 나란히 자도 충분할 만큼 커다란 침대와 방 안쪽에 있는 욕실이 눈에 띄었다.
‘잘도 이런 방이 준비되어 있네.’
방을 둘러보면서 어이없어하는 루아.
그리고────,
‘그나저나 정말 같이 지내려는 건가?’
레니스 역시 호화스런 방을 둘러보며 그런 의문을 가졌을 때였다. 그런 레니스에게 답하듯이 리카와 유이는 자신의 짐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레아는 짐을 풀지 말지 망설이는 게 적어도 그녀는 레니스의 눈치를 보고 있나 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이미 흐름은 자기 손을 떠났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보다 못한 레니스가 레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로 했다.
“계속 그렇게 들고 있기도 무거우실 텐데, 일단 내려놓으시죠. 레아양.”
“네,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레니스가 갑자기 자기를 불러서 순간 당황한 레아였지만, 이내 기쁜 목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조심조심 한쪽 구석에 짐을 피는 레아.
“어머 어머, 이렇게나 멋진 욕실이. 레니스님. 모처럼 욕실도 있고 하니 안에 들어가셔서 먼저 여독을 풀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저희는 짐 정리를 마저 끝내놓겠습니다.”
그런 레아의 풋풋한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 보고 있던 유이가 언제나의 온화한 어조로 레니스에게 권해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레니스의 경우 정화 마법으로 언제나 옷과 몸을 청결하게 유지했기에 굳이 씻을 필요는 없었지만, 커다란 욕조의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푸는 것은 그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단순한 기분 문제지만, 인간에겐 그 기분이라는게 무척 중요했으므로………….
‘그나저나 세상 많이 좋아졌네. 나 때는 귀족이 아닌 이상 이렇게나 손쉽게 뜨거운 물에 몸을 담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레니스가 욕조에 등을 깊숙이 기대면서 욕조 물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는 마도구를 신기하다는 듯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 언니들. 정말 들어갈 건가요?”
“어머 어머, 레아에겐 아직 이르려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우리끼리 들어갈 테니까 레아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렴.”
“자……잠깐! 누…누가 안 들어간다고 그랬어요? 그……, 그러니까 제 말은 그게…….”
“흐흥~늦으면 자리 없다?”
“아……, 알았어요!! 들어가면 되잖아요, 들어가면! 에……에잇! 이젠 저도 몰라요!!”
문밖에서 그런 대화가 오가더니 레니스가 뭐라 하기도 전에 이내 문이 활짝 열렸다. 그나마 다행히 레니스는 재빠르게 근처에 있는 수건으로 하반신을 가린다.
“저……, 저기?”
레니스가 당황해하며 문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속이 비칠 것만 같은 얇은 수건으로 알몸을 감싼 채, 리카, 유이, 레아가 차례로 들어오고 있었다.
“짜잔~, 들어오고 말았답니다, 레니스님!!!”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레니스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리카.
“우후훗, 역시 친목을 다지는 데에는 알몸의 교제만 한 게 없죠.”
“저희는 레니스님과 좀 더 친밀해지고 싶답니다.”
그렇게 말하며 요염한 몸짓으로 탕에 들어온 유이가 가녀린 손가락으로 레니스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런 두 언니를 보며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다소곳이 탕에 들어오려던 레아가 긴장했는지 발을 헛디뎌 레니스의 가슴팍으로 넘어지려 했다.
레니스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다치지 않게 손으로 레아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 안아주었다.
“괜찮으신가요?”
“네……, 네에. 더……덕분에,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따스해.”라고 작게 중얼거리면서 현기증이 난 척 비틀거리더니 레니스의 가슴팍에 그대로 얼굴을 파묻는 레아.
“아뇨. 별말씀을”
레니스가 레아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말했을 때였다.
“어머 어머, 레아도 참. 조신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꽤 하네요. 후후후”
“아무리 레아라지만, 언니들을 놔두고 새치기를 하면 못쓰지.”
“자아~, 레니스님. 저희들도 잔뜩 귀여워해 주세요.”
뭘 어떻게 잔뜩 귀여워해달라는 건지.
당황한 레니스를 아랑곳 하지 않고, 레아와 유이가 각자 레니스의 손을 붙잡은 뒤, 자신들의 몸으로 가져가려할 때였다.
그때, 리카와 유이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하더니 두 사람의 몸을 가리고 있던 수건이 풀리면서 욕조로 떨어져 내렸다.
레니스의 눈앞에 훤히 드러나는 두 사람의 나신.
“어머 어머!”
말로는 어머 어머! 거리면서도 전혀 어머 어머! 하지 않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앞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는 유이.
“꺄아아아악~~♥ 레니스님, 변태!!”
마찬가지로 꺄아아아악~ 거리면서 당장이라도 주저앉으면서 두 손으로 앞을 가릴 것처럼 비명을 질렀으면서도 즐거운 표정으로 오히려 자신의 나신을 과시하듯이 당당하게 서 있는 리카.
“어……? 어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죠? 저……, 저도 언니들처럼 벗어야 하나요?”
레니스 못지않게 패닉에 빠져 어쩔줄 몰라하며 횡설수설하는 레아.
“머……,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레니스는───, 결국 그곳의 공기를 버티지 못하고 먼저 도망치듯이 재빨리 나오고 말았다.
…
‘하아아~, 지친다. 범신(??)의 이치인 순응(??)을 터득하기 전에 북쪽 하늘의 마왕 토벌전에 참여했을 때가 떠오를 정도니 이거야 원.’
먼저 욕실에서 나온 레니스가 옷을 갈아입고 방구석에 놓여있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정말이지, 언니들!!! 아무리 레니스님이 마음이 넓다지만, 너무 응석 부리는 거 아니에요?”
“어머 어머, 레아가 그런 말을 해도 그다지 설력이………, 리카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금 전 레아의 발언에 대해.”
“응응, 레니스님의 몸을 보고 넋이 나가선 레니스님의 하반신을 힐끗힐끗 훔쳐보려던 엉큼한 레아가 그런 말을 하면 안되지.”
“자……잠깐만요!!! 제………제……, 제가 대체 언제……….”
“그럼 아니야”
“아닌가요?”
“무……무읏!!!!”
레니스가 떠난 욕실에서 그런 대화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못 들은 거로 하자.’
‘아하하하하하!!’
레니스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녹초가 되어있고, 영체화 된 루아가 그런 레니스 옆에서 웃고 있을 때였다.
다 씻었는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면서 욕실에서 나온 리카가 레니스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레니스 옆에 사뿐히 앉으면서 말하였다.
“레니스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계세요?”
“아뇨. 그다지 이렇다 할 생각은.”
“그러고 보니 모험가 길드에 가시기로 했었죠.”
“네에, 그렇습니다만.”
“그럼, 모험가 길드에 가시기 전에 옷가게에 들러서 옷을 새로 맞추는 건 어떻겠습니까?”
뒤따라 나온 유이가 눈을 빛내면서 말을 받는다.
“이것저것 레니스님이 입어 봐주셨으면 하는 옷이 많이 떠오르는군요. 후후후. 정말이지 상상력을 자극하시는 나쁜 분이셔요.”
“저……. 저도 이번만큼은 리카 언니에게 찬성이에요. 아뇨, 리카 언니때문이 아니더라도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레니스님께 정말 정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옷이 있어서!”
“분명 레니스님도 마음에 드실 거라 생각해요!”
셋중에서 평소 자신의 주장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레아까지 모처럼 강하게 권하기에 레니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150세에서 한창 성장 중이던 16~17세 정도의 육체로 돌아왔기에, 아무래도 지금 레니스가 입고 있는 옷은 그에게 좀 큰 감이 없지 않았다.
‘딱히 불편한 점은 없긴 하다만, 이 기회에 한두 벌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흔쾌히 수락하는 레니스.
그렇게 레니스와 파미유들은 모험가 길드에 가기 전에 옷가게에 들러서 새 옷을 맞추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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