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제5 화
* * *
어느새 아스텔은 새근새근 기분 좋은 숨소리를 내면서 레니스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레니스는 그녀가 워낙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자고 있었기에 깨우기도 미안하여,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공주님 안듯이 끌어안은 후 그녀의 거처에 가서 눕혀놓고 나왔다.
아스텔이 잠들어 있는 와중에도 깍지 낀 손을 풀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푸느라 레니스가 고생한 것은 덤이었다.
…
동이 터 오르기 시작하자 제일 먼저 아침 준비를 하러 나온 파미유들이 레니스를 보고 반갑게 인사해왔다.
“레니스님, 불침번 고생하셨습니다.”
“아뇨, 다들 하시는 건데요. 간밤엔 다들 평안히 주무셨나요?”
깊은 의미 없이 상투적인 인사를 했을 뿐인데, 돌아온 반응은 레니스를 당황케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예상 밖이었다.
어째선지 세 명 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레니스에게서 일제히 시선을 회피한다.
‘혹시 내가 뭔가 실수했나?’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레니스가 속으로 당황할 때 리카가 대표로 말해왔다.
“후후, 레니스님 덕에 안심하고 푹 잘 수 있었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아침 준비를 하러.”
온화하게 눈웃음치며 말하는 유이.
“아, 그럼 저도 거들겠습니다.”
레니스가 그렇게 돕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레아가 상냥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편하게 쉬어주세요. 대신 다음에 부탁드릴게요.”
상냥하게 말하는 레아.
대화가 더 길어지는 것도 그녀들을 방해하게 되는 거라 그렇게 되면 본말전도다.
‘여기선 순순히 호의를 받아들이고 물러나도록 할까.’
“알겠습니다. 대신 무언가 힘쓰는 일이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네! 그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파미유의 멤버들은 그렇게 활기찬 목소리로 다 같이 대답하고 그저 레니스와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침 준비를 하러 갔다.
…
파미유들이 아침 준비를 위해 떠나간 뒤였다. 혼자남은 레니스가 가만히 있기도 그래서 찌뿌둥한 몸을 풀어주기 위해 가볍게 팔다리를 풀고 있자, 이번에는 리노아가 다가왔다.
“아침 훈련 중이십니까?”
“훈련이라고 할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고, 가볍게 몸을 풀어주고 있습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같이 해도 괜찮겠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그렇게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각자 몸을 풀었다.
레니스가 두 다리를 양옆으로 쫙 벌리고 앉아서 뭉친 근육을 풀려고 할 때였다. 리노아가 레니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거들어 드리겠습니다.”
레니스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리노아는 레니스의 뒤에 서서 가녀린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레니스의 어깨를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그 후 자신의 체중을 실어 레니스의 몸을 꾸욱꾸욱 누른다. 레니스는 기분 좋은 무게감에 온몸의 근육이 나른하게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굉장히 단련된 몸이시군요.”
도중에 리노아가 레니스의 몸을 조금씩 더듬으며 감탄한 듯이 말했다. 레니스는 괜스레 의식하지 않고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레니스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교대로 리노아가 앉아 레니스에게 몸을 맡긴다.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그녀지만 그녀의 몸은 놀랍도록 부드럽고 유연해서 레니스는 자신의 도움이 딱히 그녀에게 필요한가 싶었다.
그 후에는 리노아와 서로 등을 맞대고 서서 서로의 팔을 엇갈려 잡은 후, 번갈아 가며 앞으로 구부리며 상대방의 허리를 들어 올려 서로의 등 근육을 쫙 펴주는 운동을 했다.
몸풀기 운동도 막바지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레니스가 그녀를 들어 올렸을 때였다. 레니스의 등 뒤에서 그녀가 레니스에게 말하였다.
“레니스님, 모처럼이니 혹시 괜찮으시면 이 이후에 식사 전까지 가볍게 대련을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네, 상관없습니다.”
일순(一?)을 이룬 몸에 적응하기 위해 레니스에게도 나쁠 게 전혀 없는 제안이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는 가볍게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자신의 무구인 예의 클레이모어와 롱 소드를 가지고 왔다.
‘가볍게 부탁한다던 거 치곤 꽤나 본격적이군.’
그런 낌새를 다른 이들도 느껴서일까. 어느새 그들의 주변으로 구경꾼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가벼운 무복을 입은 리노아가 레니스에게 한손검을 건네면서 말해왔다.
“이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레니스님?”
“네, 충분합니다. 딱히 정해둔 무기는 없으므로.”
“후후, 역시 굉장하시군요. 무기에 구애받지 않으시다니. 그럼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리노아가 진심으로 존경 어린 눈빛으로 레니스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 후였다.
그녀의 모습이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동시에 레니스는 제자리서 살짝 고개를 뒤로 젖혔다.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칠 머리카락 한 올 정도의 간격을 두고 클레이모어가 베고 지나간다.
풍압으로 레니스의 앞머리가 살짝 흔들렸다.
리노아가 그 커다란 검을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휘두른다. 일격 하나하나에 그녀의 투기가 담겨있어, 은백의 섬광이 눈부시게 번쩍였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거기서 다시 횡으로. 종횡무진 끊임없이 이어지는 참격이 허공에 검의 꽃을 수놓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절도 있으면서도,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레니스의 모습에 더욱 경악했다.
레니스는 리노아가 휘두르는 무수한 잔상을 남기는 수많은 참격 속에서도 산보라도 나온 것처럼 태연하게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피하고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스치지도 못하는 거에 분함을 느낄만도 했지만, 리노아는 오히려 즐겁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검을 크게 들어 올리곤 큰소리로 외쳤다.
“천검(??)!!!”
그러자 그녀가 들고 있는 클레이모어에 그 3배는 됨직한 거대한 기의 검이 덧씌워졌다.
그것은 검기로 이루어진 극한의 강검.
지금 리노아가 낼 수 있는 전력이 담긴 일격이었다.
‘흐음, 어떻게 할 거야? 저것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릴 거야?’
레니스에게 묻는 루아.
‘아무래도 그건 맛이 없겠지.’
루아에게 그렇게 답하며, 줄곧 공격을 흘리기만 하던 레니스가 처음으로 검을 잡았다. 그리고────,
단 한 번이었다.
그저 단 한 번 검을 살짝 휘두른 것만으로 고요한 수면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이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가듯이 리노아의 검기를 모조리 지워버렸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정적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레니스와 리노아가 서로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검을 집어넣으며,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리노아는 마음껏 힘을 발산하여 자신의 한계를 확인해본 것에 만족했는지, 얼굴에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잃게만들 정도의 아름답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레니스에게 말했다.
“손속에 사정을 둬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니스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뇨, 저야말로.”
...
“정말이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소년이군. 대체 어디서 저런 자가 갑자기 나타났을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관전하던 칼시즈가 자신도 모르게 의문을 입밖에 내고 말았다.
“조사해볼까요?”
“아닐세. 괜히 섣부르게 건들 필욘 없겠지. 솔직히 두렵다는 느낌이 더 크군. 괜스레 건드렸다가 뭐가 튀어나올지 짐작도 가지 않으니까 말일세.”
‘하지만 그래………, 어느 정도 시야에 둘 필요는 있겠어. 완전히 자유롭게 두기엔 부담스러운 힘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황금사과 상회,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상회를 이끄는 회주인 칼 시즈는 “레니스님 멋져……….”라고 중얼거리는 자신의 딸을 흘끗 봤다.
한편
“꺄아 꺄아!!! 지금 레니스님 봤어, 봤어?”
흥분해서 레아의 멱살을 잡고 미친 듯이 뒤흔드는 리카.
그에 질렸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얼굴이 발그레한 레아가 체념했다는 듯이 말한다.
“네에, 네에, 봤어요. 그러니까 일단 좀 놔주시지 않겠습니까, 언니.”
“어머 어머, 우후후훗.”
'으음………, 어젠 워낙 위급한 상황이라 경황이 없기도 했고, 순식간에 끝난 일이라 레니스님의 활약을 제대로 못 봤지만, 이렇게 보니까 레니스님이 얼마나 초 우량주인지 소름이 돋을 정도네요. 역시 어젯밤 무리해서라도 레니스님에게 침 발라놓을 걸 그랬나요. 다음에 기회가 오면 반드시.‘
그리고 그런 둘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레니스에게로 시선을 돌린 유이가 자신의 윗입술을 할짝 요염하게 핥으면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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