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왕의 유혹에 넘어간 현자-5화 (5/47)

〈 5화 〉 제4 화

* * *

“자아, 그럼 레니스도령. 같이 마차에 타세나.”

그렇게 권하며 황금 사과 상회의 주인인 칼 시즈는 레니스를 데리고 마차에 올랐다.

어째서인지 레니스 앞에는 그 혼자였고, 레니스의 양쪽 옆으로 아스텔과, 리노아가 앉게 되었다. 특히 아스텔은 묘하게 레니스한테 몸을 기대어왔기에 팔을 통해 전해지는 그 부드러운 감촉에 레니스는 마족과 싸울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벌써부터 양손에 꽃이라니 너………, 너도 꽤 하네!. 그렇게 겁쟁이처럼 굳어있지만 말고, 허리에 손이라도 감아주지 그래?’라는 루아의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흥……, 그러니 평생 동정이었던 거야. 아하하.’

쿨럭……,

무시하자, 무시하자.

‘………아니, 정말 그런 걸까?’

레니스가 루아의 말에 흔들려서 진지하게 상념에 빠지려는 찰나였다.

도통 이성에 관심이 없었던 자신의 딸이 유독 레니스를 따르는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던 칼 시즈가

“얘야, 레니스도령에게 폐가 되잖니. 자리도 좁은데 아빠 옆으로 오는게 어떻겠니.”라며 점잖게 권했다.

그러자 아스텔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레니스를 밑에서부터 살짝 올려다보며 갑자기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고는───,

“혹시……, 폐가 됐나요?”라며 물어왔다.

“아하하하……, 아뇨.”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 같은 아스텔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레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리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엇흠!”

헛기침을 크게 하며 주위를 환기시키는 칼 시즈.

레니스도 자연스럽게 손을 떼어 그를 바라본다.

그러자 칼 시즈가 레니스에게 말하였다.

“어떤가, 레니스도령. 딸아이도 자네가 맘에 드는 거 같고, 한동안 우리 상회에서 손님으로 지내는 건?”

“아니, 아예 우리 상회에 소속되는 건 어떤가? 이래 봬도 대륙에서 알아주는 상회라네.”

그런 칼 시즈의 제안에 레니스는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답하였다.

“너무나도 감사한 제안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만, 아직은 어느 한 군데에 적을 두기 보다는, 자유로운 신분으로 견문을 넓히고 싶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그런가? 그래도 뭐, 아주 희망이 없는 건 아니군. 하하하. 뭐 천천히 생각해 보게나. 자네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

“네, 감사합니다.”

칼 시즈와의 대화가 일단락되자 이번에는 옆에 있던 리노아가 레니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레니스님께선 혹시 마검사이십니까?”

“마검사라고 하기엔 마도쪽에 상당히 더 치우쳐져 있습니다. 검술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눈대중으로 조금 배운 정도입니다.”

“그렇게나 굉장한 검기를 보여주셨는데, 마법이 주력이셨다니, 레니스님껜 계속 놀라게만 되는군요. 언제 한번 대련을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예, 상관없습니다만, 그땐 살살 부탁드립니다.”

“후후.”

그렇게 말하면서 밝게 미소 짓는 리노아.

그때, 이번에는 아스텔이 레니스의 소매를 꾸욱꾸욱 잡아당겼다. 레니스가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마법이 주력이라 하셨는데, 모르는 게 있을 때 물어봐도 될까요?”라고 말하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레니스는 어째선지 예전 제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흔쾌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때 마차가 멈추고 똑똑똑 세 번 마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대화가 중단되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대화가 진정되길 기다리며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중년 남성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주님, 야영지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도착했는가. 북솜 자네가 고생이 많군.”

“아닙니다. 곧 식사준비가 끝날 터이니 잠시 후 나와 주십시오.”

“알겠네. 금방 나가지.”

“레니스도령. 우리도 가세나. 아까는 서둘러 그 자리서 출발해야 했기에 경황이 없었네만, 식사하면서 다른 이들도 소개하겠네. 다들 자네에게 관심이 많을 게야.”

“알겠습니다. 저도 기대되는군요.”

그렇게 레니스들은 마차에서 내렸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이미 그곳에는 야영준비뿐 아니라 식사준비마저 끝나있었다.

빠르게 준비되었지만. 코끝을 타고 전해지는 식욕을 돋우는 맛있는 향기를 통해, 그것들이 결코 건성으로 만들어진 요리가 아님을 잘 알 수 있었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대략 십여 명의 인원들이 둥글게 앉아, 서로 식사를 하며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좀 전에 마차가 야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러 왔던 중년의 남성은 프럼프 북솜. 회주인 칼 시즈와 마찬가지인 갈색 머리에 경갑으로 가볍게 무장한 그는 상회의 호위대장을 맡고 있다 하였다.

리노아가 회주와 아스텔의 직속 호위라면, 그는 상회 전체를 통괄하여 지키는 입장이랄까.

그와 가볍게 통성명이 끝나자 이번에는 상당히 특이한 모험가들을 소개받았다. 상회에서 모험가 길드 ‘하루살이’에 의뢰하여 고용한 모험가들로 그들의 길드명은 파미유.

3명의 의자매로 구성된 파티로, 그 무엇보다도 가족애를 중요시하기에 붙인 길드명이라고 한다. 그녀들의 복장은 하나같이 검은 메이드복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특히 짧은 치마에, 허벅지를 감싼 가터벨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허벅지를 강조하는, 참된 매력이란 무엇인가를 잘 아는 자가 만든 실로 바람직한 복장이다.

모험가인 그녀들이 저러한 복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그녀들이 모험가가 된 원인에 있는데. 그녀들은 자신들만의 음식점을 차리는 게 꿈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험가 활동을 통해 빠르게 큰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고. 저 복장은 나중에 가게를 차렸을 때 자신들이 입고 다닐 복장인데, 미리미리 홍보해두려는 거라 한다.

‘………확실히 끝내주는 홍보 효과다.’

파미유의 구성원들은 개개인의 전투력은 평균적으로 강하지 않지만, 모험가 길드에선 그녀들을 평균 이상인 골드 등급으로 분류했는데, 그 이유는 복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녀들은 전투뿐 아니라 여행 전반에 걸쳐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레니스들이 마차에서 내리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야영준비와 식사준비까지 다 한 것도 그녀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때, 칼 시즈가 레니스에게 조용하게 속삭였다.

(………남자 모험가들은 그저 그녀들과 같이 파티를 맺기만 해도 3배는 빨라지고, 3배는 쎄진다고 하더군요.)

‘뭐야? 그 사기 버프는?’

칼 시즈의 말에 어이없어하는 루아.

‘뭐………,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루아의 반응에 레니스는 담담하게 답했다.

“나는 파티의 리더를 맡고 있는 리카 파르바티. 아까는 굉장히 멋있었어. 앞으로 잘 부탁해.”

연보라색 머리카락의 20대 초반의 여성은 그렇게 자신을 레니스에게 소개했다. 메이드복의 앞 단추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큰 가슴의 소유자다.

상큼하게 윙크를 하며 레니스에게 악수를 권해온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레니스 역시 잘 부탁한다며 리카에게 손을 내밀자 리카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꺄악꺄악 거리며 레니스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그 리듬에 맞춰 커다란 가슴도 위아래로 붕붕 흔들린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 지 난감하군.’

“자자, 레니스님이 난처해하시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폭주하는 리카를 레니스에게서 떼어낸 여성은 리카와 마찬가지로 20대 초반의 찰랑거리는 에메랄드색 긴 웨이브 머리의 여성이었다. 리카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가슴의 소유자였지만. 온화한 어조와 부드러운 분위기 때문인지 ‘다소 무리한 응석을 부리더라도 다 받아주지 않을까?’

가령 ‘죽기 전에 가슴 한 번만 만지게 해주세요.’라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마에 피가 날 정도로 있는 힘껏 머리를 바닥에 찧으면서 부탁하면 ‘어머 어머, 정말이지 어쩔 수 없네요. 이번 한 번만입니다? 하면서 허락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무심코 들고 마는 모성애가 넘치는 여성이었다.

‘모성이 아니라 이미 그건 마성인데 말이지.’

레니스가 유이에게 품은 첫인상에 날카롭게 수정을 하는 루아.

“저는 유이 안테. 잘 부탁드려요, 레니스군.”

“네, 저야말로.”

“후훗, 편하게 유이 누나라고 불러도 된답니다?”

“네, 유이 누나.”

레니스가 약간의 뜸을 들인 후, 살짝 수줍어하며 그렇게 부르자

“어머, 어머”

두 눈을 빛내면서 유이가 갑자기 레니스를 꽈악 껴안았다.

그러자 리카가 유이를 황급히 떼 내며

“나보고 폭주하지 말라더니, 네가 폭주하면 어떡해!”라며 유이에게 면박을 준다.

‘……이런 폭주라면 언제든지 대환영이건만.’

레니스가 반쯤 사고를 포기한 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아……! 하아……!”

옆에서 무척이나 위험한 소리가 들려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리카가 거칠어진 숨결과 먹이를 노리는 짐승과도 같은 무서운 눈빛으로

“자, 나한테도 리카 누나라고 불러보렴.”이라며 유이보다 한술 더 떠서 뭔가 무척이나 위험한 상태로 레니스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언니들도 차암……이제, 그만하세요.”

“그리고 레니스님도 너무 언니들 응석받아주실 필요 없어요. 저 두 사람 그렇게 한번 받아주면 끝도 없는지라.”

두 사람의 폭주를 보다 못했는지 검은 리본으로 금발을 양옆으로 단정히 묶은 소녀가 두 여성을 레니스에게서 부드럽게 떼어냈다.

“저는 레아 라헬입니다, 레니스님. 언니분들께서 사실 레니스님께서 구해주신 것에 굉장히 감사하고 계셔서 저러시는 거랍니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아뇨,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후훗, 정말로 상냥하시네요, 레니스님은.”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루아. 교수님 도와주세요.’

레니스가 급하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루아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자 돌아오는 대답은

‘사………, 상냥함이라니 마왕과 세상에서 제일 거리가 먼 단어 아니겠어? 나한테 물어서 어쩌겠단 거야?’

...

그 후 시끌벅적하고 유쾌한 저녁식사를 끝낸 후, 레니스들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 각자에게 분배된 임시거처 안에서 쉬다가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

그리고───, 여기는 황금사과 상회의 회주 칼 시즈가 거하는 막사.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잠자리에 들지 않은 채 정갈한 자세로 앉아서 서류를 훑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일단락을 내고 한숨 돌렸을 때였다.

타이밍 좋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상대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딱히 확인도 하지 않고, 칼 시즈는 들어오라고 명하였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상회의 경비를 총괄하는 프럼프 북솜과 리노아 카렌.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회주에게 예를 갖추며 말하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주님.”

“그렇다네, 뭐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고. 조금 자네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지.”

“의견이라 하심은 그 소년에 관한 것입니까?” 그렇게 되물은 것은 프럼프 북솜.

“그렇다네.”

칼 시즈는 북솜에게 그렇게 대답한 뒤에, 시선을 리노아에게 주었다.

“무인의 시선에서 레니스도령에 관한 솔직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군.”

“알겠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났던 일이라, 저도 레니스님의 밑바닥까지 본건 아닙니다만, 그 정도라도 괜찮으시다면.”

“상관없다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리노아는 회주에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비록 제가 목격한 건 레니스님의 편린 뿐이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시대를 대표하는 13명의 절대자들조차 저 나이에 저만한 실력을 가졌을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이셨습니다.”

그리고 리노아의 말에 뒤이어 프럼프가 자신의 의견을 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경스러운 점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레니스님의 인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 나이에 저 정도 실력을 가지고 계시면 대체로 오만해지거나 하다못해 자신을 좀 더 내세우기 마련인데, 무척이나 겸손하신 게.”

“그렇지.”

몇몇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에 격하게 동의한다는 듯이 칼시즈는 북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프럼프 북솜은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레니스를 소년이라고 부르지 않고 레니스님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또한 그는 더욱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레니스님께서 베어버린 괴물들의 사체를 태우는 과정에서 깨달은 겁니다만, 그 괴물들의 절단면이 어찌나 매끄럽게 잘려있던지 혹시나 하고 분리된 상체와 하체를 붙였더니 진짜 붙어버리지 뭡니까?”

“어쩌면……, 설마 그럴 일은 없겠습니다만, 순간이나마 그분은 이미 절대자들과 같은 경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조차 들더군요.”

“자네 입에서 이렇게 남을 칭찬하는 말을 듣게 되다니, 놀랄 일이로군.”

“하하. 아무래도 그만한 광경을 눈앞에서 보면 아무리 저라도 가슴이 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그렇게 말하며 칼 시즈 역시 자신이 본 광경을 떠올렸다. 착각이 아니었다면 레니스의 일검은 순간이나마 세상을 어긋나게 했다.

북솜의 말대로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그 광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가슴이 뛸 광경. 그 정도로 전율적인 모습이었다.

‘북솜은 아무리 레니스 도령이라도 절대자들과 같은 경지에 오르진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글쎄. 어르신이 누군가에게 지는 모습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지만, 레니스 도령도 그건 마찬가지군.’

“뭐가 어떻든 간에 레니스님에 관해서라면 걱정할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사람 보는 눈이 매우 뛰어나신 영애님이나 리노아가 이렇게 만나자마자 따르는 거 보면.”

북솜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리노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북솜은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자신이 무척이나 존경하는 회주가 순간 눈물을 글썽거렸기 때문이다.

“나……, 나에게도 딸아이가 그렇게 응석 부린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건만!!! 최근엔 아예 예전과 달리 대화자체가 확 줄어들었다네!!!”

“뭐……, 딸자식 둔 아버지들의 피할 수 없는 시련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거기다 레니스같은 초우량이라면. 솔직히 레니스님 이상가는 남자는 앞으로도 없을 거란 걸 누구보다도 회주님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프럼프 북솜은 한숨을 푹 쉬며 품속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왠지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해서 미리 준비해온 것이었다.

“자자, 오늘은 간만에 남자들끼리 한 잔하시죠.”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이 아끼고 아끼던 양주를 내놓았다. 동시에 미안하다는 듯이 리노아에게 눈짓을 하였다. 리노아는 이해한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

같은 시각 여기는 길드 파미유의 막사.

암묵적으로 금남의 장소가 된 그곳에 아름다운 여성들은 나란히 잠자리에 들어 누워 있었다.

그때 문득 천장을 바라보던 리카가 말하였다.

“레니스님, 무척 멋있었지.”

그러자 유이가 나른하지만 살짝 들뜬 어조로 답했다.

“네, 꼬옥 안아드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분이셨죠.”

“너는 참지 못하고 실제로 안았지만 말야. 어땠어?”

리카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유이는 말을 쏟아냈다.

“얼핏 여자로 오해받을 것만 같은 곱상한 외모와 달리, 굉장히 다부진 육체였죠. 거기다 그……,”

잠시 몽롱한 눈빛으로 말끝을 흐리는 유이.

“그……?”

무척이나 드문 유이의 반응에 리카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얼른 대답을 재촉했다.

“흠흠……, 그 굉장히 마음이 편해지는 좋은 향기도 나고. 밤새 꼬옥 레니스님을 끌어안고 같이 자고 싶다고 저는 지금 강하게 생각한답니다.”

황홀한 시선으로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며 몸을 살짝 떠는 유이.

“후후후………, 그것도 매력적인 의견이지만 난 꼬옥 안겨서 고양이처럼 응석 부리고 싶은걸~”

“어머어머………, 역시 리카. 뭘 좀 아시네요.”

“자………, 잠깐. 언니들 지금 어디 가세요?”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듣고 있던 레아는 두 언니가 부스럭 부스럭 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에 당황하며 물었다.

“후후……, 얘는 꼭 그걸 언니들 입으로 말해야겠니?”

“레니스님이랑 좋은 거 하러 간답니다.”라고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가슴을 활짝 펼고 당당하게 말하는 리카와 유이.

그 말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두 사람을 말리는 레아.

“제발 언니들 자제하세요.”

“어머 어머, 그러고 보니 우리 동생은 레니스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저……, 저는 딱히.”

“혹시 주인님으로 모시고 싶다든가, 그런 앙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아냐?”

“무……,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요!!!”

정곡을 찔렸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레아를 보며 두 언니는 짓궂은 미소를 짓더니 소녀를 꽈악 껴안고 가슴을 주무르며 장난치기 시작했다.

“꺄아!! 간지러워요 그만, 그만 저 정말 화낼 거에요? 읏!!!”

...

그리고 밤은 더욱 깊어져 야심한 새벽녘

레니스는 홀로 중앙의 화롯불 앞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다들 굳이 레니스가 불침번을 설 필욘 없다고 했지만, 남들이 다 교대로 불침번을 서는데 자신만 푹 자는 것도 맘이 불편해서 그냥 서기로 했다.

그렇게 한동안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상념에 빠져있을 때였다. 돌연 뒤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음? 아직 교대시간은 한참 멀었는데.’

레니스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려보자, 거기에는 아스텔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스텔양.”

레니스가 그렇게 묻자 아스텔은 아무 말 없이 레니스 옆에 쪼그리고 앉아 몸을 기대어왔다.

그러더니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레니스의 오른손에 자신의 손바닥을 겹친 후 레니스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깍지 껴왔다.

순간적으로 척수를 찌릿하게 만드는 근질근질함에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은 걸 간신히 참아낸다.

그런 레니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스텔은 앙증맞은 입술을 살짝 열며 고혹적인 미소를 띠고 레니스에게 말했다.

“가르쳐 주세요.”

“네………?”

레니스가 영문을 몰라 어쩔 줄을 모르자 그녀는 설명을 덧붙였다.

“레니스님, 아까 모르는 건 언제든지 물으러 와도 괜찮다고 하셨죠?”

“네. 분명 그랬습니다만…….”

‘그렇지만 그건, 분명 마법에 관련된 거라고…….’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레니스.

“후후. 그럼 낮에 제게 했던 거 가르쳐주세요. 어떻게 하신 건가요?”

그렇게 아스텔은 레니스와 깍지낀 손에 힘을 꼬옥 쥐어왔다.

혹시 낮에 부족했던 마력을 흘려 보내줬던 걸 말하는 걸까?

레니스는 그녀의 부탁대로 맞닿은 손을 통해 아스텔에게 은은하게 그녀의 몸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듯이 마력을 흘려 보내주었다.

“후아……, 응……, 읏……, 따스해.”

“이렇게 상냥하고, 기분 좋은 마나 처음이에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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