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제3 화
* * *
레니스가 눈앞에 있는 사람의 시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괴물들을 바라본다.
지금은 너무나도 그 존엄성이 훼손되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전혀 다른 괴물이 되어버렸지만, 한때는 인간이었을 그것들은───,
하나 같이 인위적으로 깔끔하게 잘려져 있는 목으로부터 거대한 팔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튀어나온 팔은 무수히 많은 눈동자로 징그럽게 뒤덮여 있었다.
또 그렇게 무수히 많은 눈동자에서 수많은 팔이 튀어나와 있는 형상은 그야말로 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방불케 했다.
누군가의 악랄한 의지의 씨앗이 발아한 시체의 나무였다.
물론, 과거 이보다 더한 광경도 숱하게 봐온 레니스였다. 허나 동시에 그런 시대를 끝내기 위해 평생을 동정으로 살더라도, 자기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모든 마왕과 마족을 토벌하는 데에 한평생을 바친 레니스였다.
그렇기에………,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한번 쓰고 버려버리는 소모품으로 취급한 후에 그 시체로 장난질까지 치는 모습을 보는 건 그다지 기분 좋은 게 아니었다.
자연히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때 레니스의 시야 한구석에 바닥에 떨어진 검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부상자가 떨어뜨린 것 같았다. 격전으로 이가 듬성듬성 빠져있는 실로 볼품없는 검이었지만───,
‘검이라………, 나쁘지 않군. 새로워진 육체에 적응하기엔 마법보다는 아무래도 몸을 움직이는 게 좋겠지.’
그렇게 레니스가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이 어느새 그 자리서 사라지고, 레니스의 손안에 쥐어져 있었다.
서늘한 감촉이 나름 괜찮다.
“잠시 빌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검에 묻어있는 피를 털어내기 위해 레니스가 가볍게 허공에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을 때였다.
이 자리에 갑자기 나타나 죽음 직전이었던 소녀를 구해내며,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이곳을 장악한 레니스에게 주변의 괴물들이 본능적인 위험을 느꼈는지, 레니스를 향해 무수히 많은 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비단 레니스뿐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까지 노리고 시야를 가득 메우며 덮쳐오는 공격.
이곳에 있는 대다수가 절망을 느낄 정도로 압도적인 폭력에 레니스의 등 뒤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을 정도였지만………,
레니스는 아무런 감흥 없다는 듯이 그저 가볍게 한번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무척이나 별일 아니란 듯한 간소한 동작이었지만, 그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순간 세상이 어긋난 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져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걔 중에는 실제로 몇 명이 무의식중에 자신의 눈을 손으로 비비려고까지 할 때였다.
마치………,
그들이 조금 전 본 대기가 어긋난 것만 같다는 현상이………,
레니스가 가볍게 사선으로 그은 검에 세상이 어긋난 것만 같다고 느꼈던 게 그들의 착각이 아니었다고 말해주듯이………,
그 순간 몬스터들의 상체가 하체와 비스듬하게 어긋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스르륵 미끄러져 지면으로 너무나도 허무하게 툭 하고 떨어졌다.
!!!
숨을 죽이고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이들이 처음에는 자신들의 상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일이 일어나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뇌가 따라가지 못해서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가 뒤늦게야 깨닫고는 레니스에게 경악해 눈이 부릅떠지고 입이 떡 벌어졌을 때였다.
레니스에겐 과거에도 꽤나 익숙했던 일이라 별일 아니라는 듯이 딱히 그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칼을 갈무리하며 그보다 중요한 일에 집중했다.
그나저나…
‘놓친 건가? 상당히 눈치가 빠른 자로군.’
시체로 이루어진 괴물들과 심령으로 이어진 자.
괴물들을 뒤덮은 무수히 많은 눈알들을 통해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자.
시체 나무를 일 검에 양단하는 동시에 공간을 격하고 그 역시 베어버리거나, 하다못해 그의 정체라도 추적해볼까 했는데, 상대방이 눈치 빠르게 상당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모든 회로를 남김없이 끊어버렸다.
‘……상당한 실력자군.’
다른 게 아니라 조금 전의 과감한 결단력은 실로 칭찬받을만한 것이었다.
‘………귀찮은 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뭐 그건 그때의 일이고.’
어쨌든 핏빛 결계를 이루고 있는 시체 나무들의 대부분을 레니스가 처리함으로써 결계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게 되어 깨져버리게 되었고, 그에 따라 결계에 의해 움직임에 상당히 제약을 받던 리노아라는 금발 여검사의 행동 역시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나머지는 맡겨두면 되겠지.’
레니스의 판단대로 그 뒤는 순식간이었다. 금발의 여검사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자기의 신장만큼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사용함에도 잔상이 보일 정도의 빠른 속도로 남아있는 몬스터들 사이를 이동하며 순식간에 도륙해내어 상황을 종료시켰다.
그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레니스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의 시대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현재에도 손에 꼽히는 검의 재능과 실력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좀 전의 은발의 소녀를 떠올린다. 그녀의 마도 재능도 결코 이 여검사의 검의 재능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다.
딱히 정식으로 사제관계를 맺은 적은 없지만, 어쨌든 날 스승으로 모시던 마도사들 중에서도 특히 특출났던 7명의 젊은 시절이 떠오를 정도니.
흠………, 어쩌면 그들 중 하나와 연이 닿은 소녀일지도 모르겠군.
지금도 규모가 큰 상회 같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
사령이 발생하지 않도록 괴물의 사체를 한곳에 모은 후 태워버린다든가 뒷정리가 끝날 동안 레니스는 루아와 함께 조용히 한쪽 구석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문득 루아가 자못 유쾌한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흐음………, 이건 또 이거 나름대로 흥미롭네. 정말로 흥미로워. 우스울 정도로.’
‘뭐가 말이지?’
‘너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저건 인간을 몬스터 아니, 어쩌면 마족으로 만들려고 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일 거야. 마족을 이 세상에서 퇴출하기 위해 그렇게 애썼던 인간들이었는데, 마족이 사라진 세상에서 스스로 마족이 되길 원하거나 혹은 마족을 소환하려는 자가 나타나다니…재미있지 않아?’
‘하나도 재미없다만……….’
‘사람이 기껏 고생고생해서 모든 마왕과 마족을 몰아냈는데, 그걸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려 하다니, 농담으로라도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얘기다.’
‘뭐, 다른 사람도 아닌 너에겐 적어도 그렇겠네.’
레니스와 루아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레니스를 향해 이 집단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갈색 머리의 중년의 남성과, 은발의 마도사 소녀, 그리고 금발의 여검사, 셋이 집단을 대표로 하여 다가왔다.
‘루아, 이 얘기는 일단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그래.’
레니스가 자세를 다잡고 먼저 고개를 숙여, 중년의 남성에게 인사를 하려 했을 때였다.
그보다 빠르게 중년의 남성이 붙임성 있게, 레니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처음 뵙겠네. 나는 이 황금사과 상회의 회주를 맡고 있는 칼 시즈라고 한다네. 좀 전에는 상회와 내 딸애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다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황금사과 상회라………….’
기억에 없는 이름이다. 분명 새로이 생겨난 신흥 상회일 텐데 벌써 이 정도 규모라니. 굉장하군.
“나중에 따로 정식으로 사례를 하겠네만, 일단 이 자리서 다시 한번 감사의 예를 표하도록 하지. 정말로 고마웠다네.”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딸뻘인 레니스에게 무척이나 정중하게 고개를 깊숙하게 숙이며 감사를 전하는 칼 시즈.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레니스는 칼 시즈에 이어 자신을 소개를 하려할 때 찰나지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름을 뭐라고 대야할 지 순간 고민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저는 레니스 프라비. 새내기 모험가입니다.”
그렇게 레니스가 자신을 소개했을 때, 루아가, 루아 프라비가 우쭐해하며 레니스에게 말을 걸었다.
‘헤에, 내가 그렇게도 좋았어? 에………? 설마, 첫눈에 반해버렸다든가. 그런 건 나 좀 곤란한데.’
그런 루아의 말에
‘……어떤 의미로는 너에게 부여받은 삶이고, 그런 점에선 분명 고마워하고 있다.’
레니스가 솔직하게 진심을 말하자 루아는 조금 부끄러운 듯이 레니스에게서 고개를 돌려 콧잔등을 긁으면서
“흐…흥…좋, 좋은 자세네. 앞으로도 내게 계속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고!’ 라고 말하였다.
“내 딸아이 또래인데, 말도안되는 굉장한 실력이로군.”
“과찬이십니다.”
“아니, 아니……, 내가 이래 봬도 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보고 들은 것도 많고 그만큼 아는 사람도 많아서 말야. 하지만 자네 나이에 이런 실력자는 듣도 보도 못했다네. 상상조차 못했다는 게 정확하겠지. 직접 보지 않고 누군가 내게 여기서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면 허튼 소리 그만하라고 호통을 치며 들고 있던 서류를 던졌을게야. 하하하.”
“아하하……”
칼 시즈의 칭찬에 레니스가 머쓱해하고 있을 때, 그동안 대화에 참견하지 않고 조용히 있던 은발의 소녀가 레니스에게 들키지 않도록 노력하며, 칼 시즈의 소매를 꾸욱꾸욱 잡아 당기는 모습이 레니스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칼 시즈는 호탕하게 웃으며
“하하하, 아차 내 정신 좀 보게나. 상인이란 게 그렇지. 정말 좋은 물건을 본다면 넋을 잃어. 그게 사람이라면 더하지. 굉장한 소년과 만나서 그런지 말이 길어져서 소개가 늦어졌군.”
“좀 전에 자네가 구해준 이 애는 내 딸인 아스텔 시즈라네. 부족한 딸내미지만 친하게 지내주게나.”
그러자 아스텔 시즈라고 소개받은 소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레니스에게 인사를 해왔다.
“저는 아스텔. 아스텔 시즈라고 합니다. 조금 전에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아스텔 시즈.
레니스는 그에 온화하게 웃으며 응답했다.
“아닙니다. 너무 그렇게 맘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모험가라면 그 상황에서 누구나가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 너무 큰 은혜를 입어서. 이 은혜를 갚는 법은 이제 시집가서 레니스님을 평생 모시는 수밖에…”
“……….”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루아 스승님. 어떻게하죠?’
‘내……, 내, 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무나 중간을 확 건너뛴 아스텔의 발언에 150년간 동정이었던, 이성과 그다지 인연이 없던 레니스는 물론이거니와 마왕인 루아마저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얼어붙었을 때였다.
칼 시즈가 그런 레니스와 루아보다도 더욱 화들짝 놀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하…우리 딸 농담이 매섭구나. 이 아빠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멎을 뻔했잖니. 제발 장난으로라도 시집간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렴.”
“바보 아빠…나…진심….”
그런 딸의 핀잔에 딸 바보 아빠는 순간 충격으로 휘청거리면서도, 의지를 다잡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말을 억지로 돌렸다.
‘사이좋은 부녀의 모습은 솔직히 눈이 부시는군.’
“자자, 그리고 이쪽은 리노아 카렌이라네. 우리 상회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이자, 나와 내 딸아이의 호위를 겸하고 있지.”
“칫!” 하고 아스텔 시즈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린 거 같지만 일단은 무시하고 넘어가자.
그러자 리노아 카렌이라고 소개를 받은 검사가 절도 있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아름다우면서도 늠름한 목소리로 레니스에게 인사해왔다.
“좀 전에는 주인님과 아가씨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래라면 제가 해야 할 일이건만…….”
“아닙니다. 너무 괘념치 말아주십시오.”
그런 레니스의 말에 황송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는 리노아.
서로 간에 어느 정도 통성명이 끝나자 칼 시즈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레니스님은 목적지가 어디인가?”
“일개 모험가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아니, 아니 은인에게 그럴 수는 없지. 나는 아마도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네. 흐음…그래도 그런가. 은인이 부담을 느낀다면 그 또한 실례일터. 레니스 도령이라 부르겠네. 괜찮겠는가?”
“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레니스 도령은 목적지가 어디인가?”
“딱히 아직 구체적으로 이렇다 할 정해진 곳은 없습니다. 다만 일단은 근처의 도시로 갈까 정도로는 막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가는 것은 어떤가? 마침 여기서부터 그렇게 멀지 않다네.”
“감사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현시대의 정세에 아직 어두운 레니스에겐 매우 좋은 조건이라 레니스는 칼 시즈의 제안에 별 고민 없이 바로 승낙했다.
그러자 칼 시즈가 호탕하게 하하하 웃으며 “고맙네. 덕택에 딸아이에게 혼나지 않아도 되겠어.”라는 소릴 하였다.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레니스님.”
레니스에게 다시 한번 예를 표하는 리노아 카렌.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레니스의 곁에 밀착하는 아스텔 시즈.
레니스는 자신의 팔에 닿은 익숙하지 않은 부드러운 감촉에 등으로 살짝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그녀들을 향해 말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리노아님, 아스텔님.”
레니스가 그렇게 말하자 아스텔 시즈가
“아스텔”
이라고 레니스에게 말하였다. 무슨 말인지 몰라 곤혹스러워하는 레니스. 그런 그에게 다시 한 번 아스텔이 힘주어 말하였다.
“아스텔요!”
‘이건 혹시 아스텔‘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아스텔이라고 불러 달라는 걸까….’
레니스는 어째선지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부드럽게 미소 지으려 노력하며,
“잘 부탁드립니다. 아스텔양.”
이라고 말하였다.
아무래도 150년 가까이 이성과 인연이 없던 레니스에게 대뜸 이성을 편하게 이름만으로 부르라거나 애칭으로 부르라는 건 난이도가 너무 높다.
그러자 아스텔은 조금 불만스러운 듯했지만, 이윽고 지금은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듯이
“네!”
하고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
그리고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레니스가 이름 모를 숲에서 몬스터들을 일 검에 베어버렸던 그 순간, 숲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마기로 물들어 있는 어두운 밀실에 한 남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가 눈을 번쩍 떴다.
빛 한 점 없이 어두운 밀실 안에서도 검은 후드로 몸을 푹 뒤집어쓰고, 얼굴마저도 검은 가면을 써서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 그는 초점 없는 눈만을 밖으로 내놓고 있었는데, 그 두 눈은 지금 빨갛게 충혈된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눈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시선을 자신의 손으로 내렸다. 그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역시, 끝까지 보지 않고, 곧바로 회로를 끊은 것이 정답이었군요. 아주 한순간,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느껴졌던 살기만으로도 이 정도라니.”
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고민에 빠졌다.
‘비록 황금사과 상회의 회주를 죽이거나, 그 딸을 납치하는 것은 실패로 끝났지만, 사실 그쪽은 말로는 제1 목표였다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요. 정말 중요한 것은 실험의 성공을 확인한 것이겠습니다만………. 이것만으로도 분명 만족할만한 성과건만, 조금 아쉬운건 어쩔수가 없네요.’
‘게다가……….’
‘언제 등장했는지도 모른 채 어느새 그 자리에 있던 정체불명의 꺼림칙한 소년.’
남자는, 조금 전의 소년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명 어린 소년이었건만, 공간을 격하고 전해져왔던 폭발적인 살기나, 마나는 분명 절대자의 그것이었지요.’
‘솔직히 저로서는 서로 간에 이대로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만…….’
‘……아마 그건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요. 이미 그가 황금사과 상회와 얽힌 이상.’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한 남자를 떠올렸다.
‘성격이 워낙 삐딱하고, 자기 욕망에 충실해 같이 일하기 힘든 타입이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어쩔 수 없겠네요.’
‘조금 더 지켜보다가, 정 안되겠다 싶으면 그에게 부탁해 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남자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순간 남자는 어느새 그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