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제1 화
* * *
한 마도사가 있었다.
그자의 이름은 리발 프리드. 본명보다는 오기와 열등감의 마도사란 이명으로 더욱 알려진 자이다.
일설에 따르면 오기와 열등감의 마도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주변의 바보 같은 아이들을 보며 조숙한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들이 하나둘씩 자신들만의 소중한 걸 만들어가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것들을 위해 노력할 때, 자기는 좀 더 원대하고, 굉장한 것들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비웃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리발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고, 안타깝게도 그보다 뛰어난 이들은 더욱 많았다.
자신 역시 평소 비웃던 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범인에 불과하다는 무자비한 현실을 그가 마주하게 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진정한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란 점이었다.
그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였다. 그곳에는 자기보다 분명 열등하다고 깔보고 있던 자들이 어느샌가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알차고 보람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너무나 눈부시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을 밑도 끝도 없이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광경을 직시했을 때 리발 프리드는 격한 열등감과 자기 혐오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극히 소수를 제외한 누구나가 성장하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현실에 적응해가는………, 소위 말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발 프리드는 타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등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부정하는 오기를 부렸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세상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의 사고는 날이 지날수록 편협해져 갔다. 급기야 자신보다 행복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불행하게 되어 자신과 같은 열등감에 빠지길 바랐고, 그걸 위해선 자신이 한없이 불행해진다 해도 상관없다고 여기기까지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불행하거나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역시 당연히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단순히 철없는 자의 오기에 불과했던 것이 이 순간 자신만의 대의와 정의를 가지게 되면서 그것은 아집이 되었다.
아집에 빠진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신을 부정하는 작업이었다.
‘이런 부조리한 세상에 신이 존재할 리가 없다.’
‘설령 이 미친 세상이 누군가의 손에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그건 신의 탈을 뒤집어쓴 악마일 것이다.’
그렇게 그는 미친 듯이 마족 연구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자의 이러한 망상이 결실을 맺어 이때까지 존재하지 않던 마족을 만들어 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자가 마계로 통하는 문을 찾아내 연 것인가.
그 진실은 더 이상 우리가 알 길이 없게 되었지만, 결국 그자의 바람대로 미메시스 대륙에는 세 명의 마왕과 다수의 마족이 출현.
인간 세상은 그야말로 유례없는 절망과 혼돈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수십 년간 이어진 마족과의 전쟁을 끝낸 것은 한 남자였다.
절제의 현자 레니스 레인스트라.
세상의 평안을 위해 일평생 단 한 번도 여자에게 눈길을 주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오롯이 마족 토벌에 바친 자.
같은 마도사들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자.
오기와 열등감의 마도사에 의한 암흑시대를 끝낸 의인 중의 의인이며, 전설 중의 전설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야? 슬슬 일어나!”
귓가에서 울리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
‘뭐지? 기억에는 없는 목소리다.’
여자와 인연이 없기를 대략 150년. 아무리 여자가 고파도 그렇지 이 나이 먹고 주책 빠지게 여자아이가 깨워주는 환청이라니. 한창 정정할 때인 130년 전에도 이런 적은 없었거늘.
왜 이제와서………,
‘한심해. 한심하다, 지금의 나. 무심코 울고 싶어지지 않는가.’
“뭐……, 뭘 또 혼자 갑자기 이상한 독백을 하고 난리야? 의식은 틀림없이 성공했을 텐데, 마기가 뇌에 침투해 예상치 못한 악영향을 끼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비록 이러한 의식은 사실 나 역시 처음이지만 이 몸에게 그런 실수란 있을 수 없는걸. 그렇다면 단순히 150살 동정의 썩은 사고방식이겠네.”
………마지막 말의 진위 여부는 제쳐두고 귓가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신경을 건드리는 그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150살 동정이란 단어에 괜히 스스로 찔려서 민감하게 반응한 게 절대 아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거기에는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금발에 붉은 눈의 소녀가 서 있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흩뿌리던 그녀의 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의 그녀는 육체를 잃고 영체로서 간신히 존재하고 있었다.
“뭐야, 마왕이었냐. 그나저나 뭐냐 그 꼴은?”
“너 때문이잖아!!!”
“………그건 미안하게 됐군.”
짐작 가는 바가 없긴 한데 저 격렬한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날 속이려는 건 아닌 것 같았기에 미리 사과해두기로 했다.
노인의 얄팍한 지혜랄까. 아니나 다를까 내 빠른 사과에 마왕도 기분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는지 약간이나마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뭐, 딱히 화난 건 아니니까 괜찮아. 앞으로는 계속 같이 지낼 테니 딱딱하게 마왕이라 부르지 말고 루아라고 불러.”
“……그런가. 그럼 너 역시 레니스라고 부르도록. 그편이 서로 편할 테지.”
“알겠어, 그렇게 할게.”
내 말에 어딘가 마왕이 기뻐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평생을 고독하게 보낸 것과 마찬가지로 마왕………아니, 루아도 그렇지 않았을까.
의식의 영향 때문일까. 나와 루아의 영체는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끈 같은 거로 이어져 있었다.
정확히는 내 의식 한 편에 루아가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서로의 영혼이 이어지다시피 한 지금 내가 루아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단 게 루아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평생을 고독하게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증거였다.
뭐, 그런 건 제쳐두고.
“그래서 의식은 성공한 건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비록 처음 하는 의식이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되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거울을 보면 아마 나한테 엎드려 절하면서 감사하게 될걸?”
‘아니, 갑자기 더없이 불안해지는데.’
몹시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그 말에 주위를 둘러보며 거울을 찾다가, 이제야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 의식이 미쳤다.
‘여긴 어디지?’
분명 의식을 행한 곳은 마왕성 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낯선 숲 한가운데에 멀뚱히 서 있었다.
“이봐, 루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날씨가 좋네. 새 출발을 하기엔 딱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루아는 내 질문을 회피하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엉뚱한 소릴 늘어놓기 시작했다.
“…….”
그다지 재미있는 얘길 하는 것도 아니기에 내가 더는 못 들어 주겠다는 듯이 지그시 노려보자 그녀는 끝내 무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실토하기 시작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렇게 노려보지 마. ……사실을 말하자면 조금 위험한 상황이었달까.”
“조금?”
“그런 세세한 걸 따지니까 네가 동정인 거야. 알았어?”
“후후, 동정의 상상력 맛 좀 볼래?”
머릿속으로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촉수를 떠올린 다음 그대로 소환해서 그녀의 몸을 순식간에 휘감는다.
“히……히익! 뭐야, 이거 기분 나빠! 항복! 항복!”
“처신 잘하라고.”
“아……, 알았어. 알겠으니까 이거 좀 빨리 풀어줘. 미끈거려서 기분 나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읏, 응……”
“하앙………”
“응……, 앗……!”
“하아……, 하아……”
일방적으로 나한테 질 생각은 없는지 내가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게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너무 자극이 강한 민망한 상황이길래 어쩔 수 없이 재빨리 그녀를 휘감고 있는 촉수를 해제하고 말았다.
그러자 루아가 얼굴을 붉게 물들인 나한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뭐야, 뭐야 고작 이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거야? 흐으응~~~. 뭣하면 좀 더 들려줄까?”
“……알았으니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해라.”
‘이거야 원 본전도 못 건졌군.’
“흐흥, 처신 잘하라고.”
“…….”
다시 한번 촉수를 소환해서 예절(?)을 주입할까 고민하고 있자 그녀가 약삭빠르게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장난은 이쯤 해두고. 본론을 말하자면 처음 하는 거긴 했지만, 의식 자체는 완벽했어. 다만 네가 도달한 경지가 내가 상정했던 것보다도 까마득하게 높았다보니 그 혼마저 아득하게 순수했단 게 문제였지.”
“사람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 혹은 정령에 가까운 상태였다고 해야 할까. 금방이라도 대 정령이라도 될 거 같았지. 그래서 네 육신이 대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기 위해서는 너한테 내가 지닌 마기를 있는 대로 때려 박을 수밖에 없었어.”
“내가 이렇게 육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영체로서 너한테 깃들어 한동안 신세를 지게 될 정도로.”
‘……그렇게까지 해준 건가.’
“고맙군.”
내가 속으로 조금 감탄하며 루아에게 순순히 고마워하자 그녀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물론. 약속을 깨는 건 인간들이나 하는걸. 오히려 계약에 관해선 마족이 더 철저하다고?”
“어쨌든 한계까지 마기를 쥐어짜 간신히 의식을 성공시킨 나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어떻게든 아공간을 펼쳐 그 안으로 너와 함께 피신할 순 있었어. 하지만 아공간에 들어선 순간 나 역시 곧바로 힘이 다해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지. 그랬다가 조금 전에 눈을 떴더니 이 상태였단 거지.”
“그래서 지금이 그때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고, 또 여기가 어딘지는 나도 잘 모르는 상태야. 그거 외엔 딱히 네 몸에 안 좋은 일이 있거나 한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뭐, 과거의 인연에 딱히 미련이 있는 거도 아니고, 몸에도 딱히 이상이 있는 거 같지도 않다.
오히려 온몸에 활력이 감도는 게 스스로의 육체가 젊어졌음이 확실하게 체감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루아의 말마따나 오히려 새 출발을 하기엔 이게 제일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해 보기 위해 거울 대신으로 사용할 물의 장막을 소환했다.
거기에는 17세 무렵의 내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은발이었던 머리가 마기에 물들어 새까맣게 변해있었고, 두 눈이 루아처럼 붉은빛을 띠게 되었다는 거다.
“머리는 마기를 뒤집어쓴 영향일 테고, 눈은 너와 계약한 증거인가?”
“맞아, 멋지지? 그건 일종의 낙인이야. 낙인은 좀 표현이 천박하니 성흔이라고 해야 할까. 마왕인 나와 계약했다는 멋들어진 증거니까 조금 더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무엇보다 보기 좋으니 괜찮지 않아? 좋게좋게 생각하자고.”
“……분하게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군.”
“그리고………, 이건 네 선물인가?”
내 안에는 내가 본래 지니고 있던 대자연의 기운 못지않은 대량의 마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의식을 행하면서 루아가 내 안에 있는 대로 때려 박은 마기를 그대로 내 걸로 흡수했나 보다.
“맞아.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아마도 네가 도달한 범신(??)의 깨달음이 마기에 반발하긴커녕 어느 순간부터 포옹함으로써 완벽하게 네 것으로 받아들인 결과겠지.”
‘포옹이 아니라 순응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에 있는 나무에 가볍게 오른쪽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가 살며시 뗀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루아가 내게 곧바로 말을 걸어왔다.
“마음에 들었어?”
“아아……기대 이상이로군.”
“……서로 상반되는 기운을 이렇게나 완벽하게 다루다니. 대체 뭐 하는 괴물이냐고. 정말이지 마왕 따윈 귀엽게 보일 괴물인 너와 싸우지 않고 재빠르게 꼬드겨서 계약하자고 한 과거의 날 다시 한번 칭찬해주고 싶어지는걸.”
“너무 띄워주는군.”
“그치만 뭐 사실이니 어쩔 수 없는걸.”
어깨를 으쓱하며 곧바로 즉답하는 루아. 나는 그녀의 익숙치 않은 솔직한 칭찬에 머쓱해져 살짝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서 할 건 더 이상 없는 거 같으니 슬슬 이동할까.”
“정해둔 곳은 있어?”
“그래.”
“그럼 얼른 가자.”
“그러도록 하지.”
그렇게………,
숲속에서 레니스와 루아가 모습을 감춘 뒤였다.
조금 전 레니스가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가 곧바로 떼어냈던 나무가 급격하게 성장하더니 무성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또 금방 말라비틀어져 썩더니 결국에는 다시금 처음의 본래 그래야만 할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마치 이곳엔 처음부터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었고, 때문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하지만───, 무성하게 자랐다가 순식간에 시들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나무를 중심으로 어느샌가 원을 그리며 무수히 쌓여있는 마물의 시체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레니스가 이 자리에 있었음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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