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187화. 2nd. round one. mission 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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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2nd. round one. mission four.
유민은 서준에게 제론토필리아에 관해서 물어보았지만, 그에 대한 추가 언급은 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일상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서준씨는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죠?”
“아내가 하나 있어요.”
“부모님은?”
“어머니는 예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작년에….”
“그렇군요….”
“아내분은 잘 지내고 있나요?”
“…아내도 여기로 같이 납치되었어요. 지금은 저쪽 진영에 있죠.”
“서준씨는 아까 부부 생활에 만족하셨다고 했는데….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나요?”
서준은 유민의 비슷한 질문에 아까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대답했지만, 다시 질문이 반복되자 잠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서준은 도저히 같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흠….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문제가요?”
“아내가 저쪽 진영 마스터와 가까워지면서 나와 다소 소원해진 것 같네요.”
바로 최근 며칠 동안 서준을 계속해서 신경 쓰이게 하고 괴롭혔던 내용이었다.
유민은 여기까지 말을 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뒤에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서준씨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혹시 어딘가 불편하셨나요? 그래서 병으로 돌아가신 건가요?”
“몸이 불편하시긴 했죠. 평소에도 심장이 안 좋으셨거든요.”
“그래요…. 어느 날을 기점으로 갑자기 증세가 악화되었다거나 그러진 않았나요? 가령 아내와 결혼한 이후라든지?”
“음…. 그렇긴 한데. 연세가 있으시니 점점 나이를 드시면서 증세가 나빠진 거지 아내와는 상관없어요.”
원래 노쇠하면 면역력과 회복력이 떨어지니 어떤 병이라도 악화되기 마련이다. 특히나 심장병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석훈의 심장병이 서준이 윤서와 결혼한 뒤로 더욱 악화된 것은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석훈이 점점 늙어감에 따라서 나온 결과일 뿐 윤서와는 무관할 것이다. 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서준씨.”
“네. 마스터.”
서준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유민이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진중한 말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덩달아 긴장하며 대답했다.
유민은 서준이 아버지의 죽음과 윤서와의 관계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며 조금 더 그 부분을 집중해서 파헤치기로 했다.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런 편견을 버리고 다시 신중하게 생각해보세요.”
“네….”
“서준씨가 아내와 결혼하고 반년 뒤부터 아버지의 심장병이 악화되지 않았나요?
서준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 당시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유민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때쯤부터 아버지의 심장병이 눈에 띄게 악화되었었다.
”…대략 그쯤부터 악화된 것 같네요.“
”그리고 그때부터 왠지 아내와의 관계가 서먹해졌다거나, 아니면 아내와 아버지의 관계가 유달리 친해진 것 같지는 않았나요?“
서준은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확실히 그때부터 윤서와의 성관계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던 것 같았다.
서준은 아직 신혼이고 윤서가 거의 첫 여자나 다름없어서 매일 밤 윤서와 성관계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준은 어느 시점부터 윤서가 자신과의 성관계를 조금씩 거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시기가 이상하리만큼 아버지의 심장병이 악화된 시기와 맞물렸다.
서준은 유민과 대화를 시작한 이후로 줄곧 유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민이 하는 말이 너무나 정리되지 않고 산만했다.
갑자기 결혼 생활에 만족했냐고 묻더니, 또 제론토필리아에 관해서 물었다. 다시 결혼 생활에 관해서 물어보더니 갑자기 가족관계에 관해서 물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망 원인에 관해서 묻더니 사망 원인인 심장병과 아내와의 결혼을 연관 지으려 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내와의 관계, 아내와 아버지 사이의 관계, 그리고 심장병의 증세 악화를 연결해서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산만하게만 느껴지던 유민의 이야기가 이상하리만큼 이야기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서 서서히 그 사이에서 연관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서준은 유민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유민은 아버지의 심장병이 악화된 원인을 아버지와 아내가 친해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었다.
물론 서준도 어린아이가 아닌 만큼 그 친해졌다는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는 없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로서 친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로서 육체적으로 친해졌다는 의미였다.
서준은 이제야 왜 유민이 대화의 초반부에 이야기의 흐름과는 전혀 무관할 것만 같았던 제론토필리아에 관해서 물어보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흐름이 사실이라면, 아내는 제론토필리아라는 성적 도착증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에 영향을 받아 아버지와 성관계까지 맺는 불륜 관계에 빠졌다.
성관계만으로도 심장에 충분히 무리가 갔겠지만, 만약 거기서 발기에 관련된 약품까지 복용했다면 심장병에는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서준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모든 의문이 풀리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내가 왜 갑자기 자신과 성관계를 피하려고 하고 사이가 서먹서먹해졌는지…. 왜 아내가 철민과 그렇게 빠르게 가까워졌는지…. 자신과는 왜 더 서먹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아버지가 왜 그렇게 빨리 심장병이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했는지….
만약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서준은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니 그 전에 정말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마스터는…. 뭔가…. 알고 있는 건가요?“
”글쎄요….“
유민은 최대한 핵심 부분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서준이 알아서 진실에 닿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유민은 그 유도가 어느 정도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자 이제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시점이 왔다.
유민은 마음을 가다듬을 겸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다면…. 서준의 아버지와 서준의 아내가 정말로 불륜에 빠졌다면…. 둘의 사랑을 이루는데 서준씨는 상당히 방해되지 않았을까요?“
”흐음…. 정말 그렇다면 그랬겠죠….“
서준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유민의 질문에 대답했다.
서준은 지금까지만 해도 유민의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그 이상 무슨 말을 꺼내려고 저러나 싶어서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 서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민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서준씨의 아내가 서준씨와 이혼을 한다고 해도 한국의 법으로는 서준씨의 아버지와 재혼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니 오히려 한집에서 살던 때보다 더욱 만나기 어려워지겠죠.“
”아마도…. 그렇겠죠….“
”연변에 사는 조선족 중에는 돈만 주면 뭐든지 다 해주는 해결사들이 있어요.“
서준은 또 이야기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유민에게 다소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이제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흐름에서 벗어난 듯 보이는 이야기조차도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준은 목울대를 크게 움직이며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과 다이렉트로 연결되기는 힘들죠. 다만 국내에는 그런 해결사와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는 조폭들이 있어요.“
”…그런가요?“
”그리고 그 조폭들에게 서준씨의 아버지가 접촉을 했다면?“
서준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었다. 유민이 하는 말들이 그저 망상에 불과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준은 지금까지 유민이 했던 모든 말들이 실제 정황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서준이 생각할 때 아무래도 유민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유민이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진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서준은 지금까지 들은 말만으로도 정신이 없고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나올 내용이 어느 정도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서준은 속으로 유민의 말이 여기서 끝나기를 기도했지만, 잔인하게도 유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작년 9월 12일경, 서준씨의 아버지는 그 조폭들과 접촉하기 위해서 오랜만에 집을 비웠을 거예요. 물론 서준씨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독단으로 처리하지는 않았죠. 서준씨의 아내와 많은 상의 끝에 결정한 일이었죠.“
서준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질어질한 와중에도 작년 그 시점에 항상 집에만 있던 아버지가 몇 년 만에 외출했던 게 떠올랐다.
아버지의 심장병이 상당히 악화된 상태에서의 외출이라서 서준은 그날 다소 충격을 받았던 터라 확실히 기억이 났다.
그리고 서준은 그 시점 근처에 뭔가 아버지와 아내가 자주 속닥거리기 시작했고, 자신을 보는 시선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는 기억도 떠올릴 수 있었다.
서준은 다 거짓말이야! 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유민의 말은 어느 하나 진실에서 어긋나는 점이 없었다.
물론 유민은 직접 모든 것을 확실히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주변 정황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서준은 진실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유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서준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사실, 서준 못지않게 유민의 인생도 흔하지 않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유민이 아직 어린 시절, 괴한에게 강간을 당한 어머니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유민이 시간이 흐르며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어 갈 때쯤에 아버지가 재혼하며 사랑스러운 새 가족이 생겼다.
유민은 이제는 정말 행복만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뺑소니 사고를 당하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유민은 남들은 평생에 한 번 겪기도 힘들 불행을 두 번이나 겪었다. 다만 서준의 불행과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최소한 유민은 심각한 불행을 겪긴 했지만, 가족으로부터는 사랑을 받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 돌아가신 친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 그리고 새로이 가족이 된 새어머니와 여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준은 피가 섞인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신을 당했다. 아니 배신을 넘어 죽임을 당할 뻔했다.
유민은 누구의 불행이 더욱 심각한지 불행 배틀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유민은 자신보다 서준이 조금 더 불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유민은 어느덧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서준을 달래 주며 몇 시간을 함께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서준이 유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스터…. 제게 진실을 알게 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저 때문에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 더욱 괴로워진 건 아닌가요?“
”……그렇군요. 마스터의 그 말도 맞습니다. 몰랐다면 이렇게 괴로울 일도 없었겠죠…. 하지만 마스터에게 감사한 마음만은 진심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저도 감사하네요.“
서준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냥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유민의 말도 진심이었다.
유민은 서준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할지 말지에 대해서 상당히 고민했었다. 그 고민 끝에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도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민은 지금 서준에게 감사의 말을 듣고 나니 이야기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유민은 아침 식사 전에 서준을 만나기 위해서 의료실을 다시 찾았다.
”서준씨….“
”아~ 마스터 오셨군요….“
”잘 잤나요?“
사실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서준의 불게 충혈된 두 눈만 봐도 분명 한숨도 못 자고 밤샘을 한 것이 일목요연했다.
”네. 뭐…. 마스터에게 걱정을 끼쳐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유민은 지금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만, 지금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러는 것이 현재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을 서준을 위해서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서준씨.“
”네. 마스터.“
”우리는 서준씨를 일행으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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