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185화. 2nd. round one. mission four.
* * *
185화. 2nd. round one. mission four.
소영은 옷을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준은 여전히 멍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서 움직일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아저씨…. 미션 끝났어요. 어서 옷 입어요.”
“어? 아…. 그래.”
소영은 상당히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그동안 서준이 보여준 모습을 보며 상당히 맹하고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서준은 절대 맹하거나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준은 국내 최고 의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유학으로 선진 기술까지 습득한 실력 있는 의사였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소영은 서준이 옷을 모두 입은 것을 확인한 뒤에 아무래도 서준이 못 미더워서 서준의 손을 잡고 유민 진영 쪽으로 이끌었다.
통합 미션룸의 문은 미션 시작 전에는 양쪽으로 열렸지만, 지금은 유민 진영 쪽의 문 하나만 열려있는 상태였다.
소영이 서준을 데리고 광장으로 나서자 소영의 승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소영을 둘러쌌다.
“소영아. 잘했어.”
“미션에서 이겨서 정말 다행이야.”
“소영 언니, 정말 수고했어요.”
만약 이번 미션에서 소영이 졌다면, 소영의 소속이 유민 진영에서 철민 진영으로 바뀌어버릴 위험도 있었다.
따라서 미션을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 모두는 소영이 걱정되어서 상당히 긴장되고 불안한 상태였었다.
지금 일행들은 소영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중이긴 했지만, 사실 상당히 김이 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미션룸 내의 상황 때문이었다.
일행들 모두는 소영의 승리를 미션이 어느 정도 진행된 초반부터 이미 예상하였다.
소영의 미션 경쟁자인 서준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으니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소영이 미션룸에 진입할 때까지만 해도 소영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유민은 일행들 모두가 소영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혼자 그 틈에서 빠져나와 서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유민 진영의 마스터인 이유민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류서준입니다.”
서준은 내민 유민의 손을 맞잡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서준은 이미 철민을 통해서 낙원에서 마스터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지 실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서준은 유민이 상당히 어려 보이긴 했지만,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정중하게 대했다.
그렇게 유민만이 서준과 통성명을 한 채로 유민의 일행들 모두는 <캠프>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유민만이 서준과 인사를 나눈 것은 모두가 상의해서 미리 정해둔 행동이었다.
유민과 일행들은 이번 미션 전에 소영의 승리를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면서 소영이 승리했을 때 추가로 늘어날 인원을 어떻게 대할지도 미리 정해두었다.
유민과 일행들이 정한 새로운 인원에 대한 대응은 우선은 다소의 격리와 방관이었다.
타 진영에서 넘어온 인원에게는 전에 있었던 진영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물어볼 수가 없다.
따라서 지금의 서준에게는 철민 진영에 대한 정보를 물어볼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만약 소영이 미션에서 졌다고 해도 철민은 소영에게서 유민 진영의 정보를 캐낼 수 없었다.
앞으로 이런 미션이 또 나오게 되고, 그때 서준이 상대 진영으로 다시 넘어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서준은 유민 진영에서 보고 들은 정보를 철민 진영에 누설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서준을 경계하며 정보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유민과 일행들이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쓸데없는 정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실 유민과 일행들은 성격이 유하고 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쉽게 말해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많았다.
유민과 일행들이 평범하게 서준과 섞여서 지내다 보면 쉽게 친해지고 마음을 주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리되면 또다시 지금과 같은 미션이 나오고 누군가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올 때 그 대상이 서준이 된다면 소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걱정하고 근심하고 슬퍼하게 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실 이쪽의 이유가 훨씬 중요했다.
유민은 1회차 때 포상을 통해 낙원에 있는 모든 인원의 개인 정보를 확인했었다. 그리고 그중 과반수가 소위 말하면 인간쓰레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민은 여기까지 오게 되니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낙원은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을 주로 납치한다는 사실을….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무조건 확신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취사선택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격리를 해두고 이 사람이 친해져도 되는 선량한 사람인지, 아니면 버리는 카드로 써도 되는 악한 사람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포인트가 풍부한 유민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V.P. 상점에는 진영 소속 참가자의 개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개인 정보="" 확인="" (1회="" 용)="">이라는 1000포인트 가격의 3성급 아이템이 있었다.
이미 3성급 마스터이고 <당신은 VIP="" 고객입니다=""> 아이템으로 구매 포인트에 90퍼센트 DC를 받는 유민에게는 크게 부담이 가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이 아이템은 같은 진영 소속의 참가자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장점 쪽이 훨씬 많았다.
유민은 이 아이템을 통해서 새로이 진영 참가자로 합류하는 인원들의 개인 정보를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 인원이 선인인지 악인인지 파악하는 것을 넘어 잘 하면 상대 진영의 정보까지도 얻을 가능성이 생겼다.
유민이 서준의 입을 통해서 직접 서준의 개인 정보나 상대 진영의 정보를 얻어낼 수는 없지만, 서준에게 아이템을 씀으로써 그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니 유민과 일행의 계획은 우선 서준을 격리해둔 상태에서 아이템을 통해서 서준을 파악하고, 그 이후로 다시 서준에 대한 처신을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캠프>에 도착한 일행들이 각자 볼일을 보기 위해서 흩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민과 이번에 새롭게 <캠프>에 합류한 서준만이 남게 되었다.
서준은 <캠프>에 들어선 순간부터 너무나 놀랐다. 철민 진영과는 너무나도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바닥에서 자는 것보다 나을 뿐인 매트리스가 아닌 제대로 된 침대가 있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곳곳에 비치된 의자나 빨래건조대 등의 가구에도 놀랐다.
하지만 서준이 정말 놀라기에는 아직 한참 일렀다.
유민은 서준을 데리고 <캠프> 내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주방부터 이동했다.
“여기서 하루 세 번. 아침 8시, 점심 오후 1시. 저녁 오후 6시에 식사를 해요.”
“세…. 세 번요? 그 작은 빵을 세 번이나 나눠서 먹는 건가요? 아니 포인트로 구매한 식료를 다 함께 모여서 먹는 건가요?”
유민의 설명에 서준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전 <캠프>에서도 어느 정도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지키는 경우는 드물었다.
먹을 것이 어느 정도 있어야 식사 시간을 지킬 것이 아니겠는가?
작은 빵 하나와 포인트로 산 통조림이 다인 식사다 보니 식사 시간은 극히 짧았고 하루에 한 끼의 식사만 하는 이도 드물지 않았다.
“아뇨. 저기 보이는 요리 운반용 작은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하루에 세 번 식사가 제공돼요.”
“…네? 식사가 나오는 건가요?”
“네.”
서준의 놀라움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많은 책과 한 대뿐이긴 했지만, PC가 있는 휴게실. 시설이 좋은 화장실. 대형욕조까지 갖춰진 목욕실까지 안내를 받은 서준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서준은 이제 완전히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준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계속 머릿속을 복잡하게 채우며 자신을 괴롭히던 윤서의 얼굴도 잠시 잊을 정도였다.
유민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쓰이지 않고 있던 의료실로 서준을 안내했다.
“호오~ 대단하군요. 이런 시설까지 있다니….”
“그러게요. 시설은 좋아 보이긴 하지만…. 아직 사용한 적은 없는 시설이죠.”
“왜죠? 이렇게 훌륭한 시설인데…. 아~ 약제가 없어서인가요?”
서준이 보기에는 이렇게 좋은 시설을 놀려두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까웠다.
다만 서준은 지금 너무 놀란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시설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보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물론 인터넷으로 어느 정도 찾아보긴 했는데 영 쉽지가 않네요. 그리고 아직은 크게 아픈 사람도 없었고요.”
“그렇다면 제가 이 시설을 사용해도 되는 건가요?”
“사용할 수 있으세요?”
“네. 제가 의사거든요. 산부인과 전문의이긴 하지만…. 다른 분야도 어느 정도 지식은 있어요.”
“호오~ 그래요?”
이건 의외의 소득이었다. 서준이 좋은 시설을 놀리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유민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유민 역시 좋은 시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따로 인터넷을 통해서 공부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는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서준의 직업이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유민으로서는 상당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유민은 서준 같은 사람이 <캠프>에 있다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것은 서준의 개인 정보를 확인한 뒤의 일이었다.
“서준씨는 우선 여기서 지내도록 하세요.”
유민은 서준을 일행에게서 다소 격리할 생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어딘가에 묶어두거나 <캠프>에서 추방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지금까지 전혀 쓰이지 않고 있던 의료실이었다. 의료실은 환자를 위한 침대까지 갖춰져 있어서 지내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서준으로서는 전혀 불만이 없었다. 아니 무슨 불만을 느끼겠는가? 의료실의 침대만 해도 이전 <캠프>의 매트리스보다는 훨씬 안락했다.
오히려 서준은 오랜만에 고향에 온 것 같은 의료실의 친숙한 환경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한 기분마저 느꼈다.
유민은 의료실의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한 서준을 놔두고 의료실을 나섰다. 그리고 바로 마스터 룸으로 향했다.
마스터 룸의 침실에 도착한 유민은 곧장 천사를 찾았다.
“천사 누나!”
….
[네. 마스터 이유민.]
“V.P. 상점 띄워주세요.”
[네. 알았어요.]
유민은 V.P. 상점에서 <개인 정보="" 확인="" (1회="" 용)=""> 아이템을 구매한 뒤에 바로 사용했다.
[누구의 정보를 원하죠?]
“이번에 새롭게 <캠프>에 합류한 ”류서준“의 정보를 원해요.”
[네. 저녁 식사 뒤에 받아볼 수 있도록 처리할게요.]
“네. 부탁드려요. 천사 누나.”
PM 6시가 되며 유민 진영의 모든 인원이 식사를 위해서 주방에 모였다. 물론 서준도 함께였다.
유민과 일행들은 익숙한 모습으로 요리 운반용 엘리베이터로 옮겨지는 식사를 받아들고는 각자의 자리로 이동해 앉았다.
서준도 상당히 어색하긴 했지만, 다른 이들이 하는 걸 보고 자신도 제법 훌륭한 식단이 갖춰진 식판과 국그릇을 받아들고 빈자리에 대충 앉았다.
아직은 서준에 대한 개인 정보를 확인하기 전이라서 일행들과 서준의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다 보니 왠지 서준을 따돌리는 분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내일이면 달라질 것이다.
서준의 개인 정보가 어떠냐에 따라서 일행으로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더욱 배척하게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식사를 마친 유민은 마스터 룸의 침실로 돌아갔다. 그러자 침대 위에 1회차 때 익숙하게 받아보았던 서류 봉투가 놓여있었다.
유민은 항상 이 시간이 되면 기대감, 호기심, 불안함, 긴장감 등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유민은 한 차례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제발 안 좋은 내용이 적혀있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만큼 유민은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서준이 마음에 들었다.
유민은 서류 봉투를 개봉해 안의 내용물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