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151화. other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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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화. other side.
철민은 지금도 자신의 곁에 서 있는, 한때 3선이나 했던 국회의원인 조상원, 그리고 대형 연예 기획사 사장인 최재진 등을 먼저 끌어들이기로 했다.
“조 의원, 잠시 이야기를 나누죠. 재진. 자네도.”
“네. 장 회장님.”
“알겠습니다. 장 회장님.”
철민은 상원과 재진을 데리고 다른 이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풀어 놓았다.
“우선 이곳이 어디인지. 뭘 하는 곳인지는 모르지만, 위험한 장소라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장 회장님.”
“네 맞습니다. 방금 건장한 남자가 갑자기 바닥을 뒹구는 것만 봐도 뭔가 장치가 있는 게 분명해요. 손목에 끼워진 이 팔찌 탓이 아닐까요?”
모두 느끼는 바는 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특히 재진은 비교적 정확하게 팔찌의 기능을 알아챘다.
“네. 아무튼, 당장 편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스터라는 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스터 권한을 들으니 꼭 되어야겠더군요.”
“여자들 옷을 벗길 수 있고 핸드잡을 명령할 수 있다니 대단한 권한이더군요….”
이것에 대해서도 이견은 없었다. 다만 재진은 마스터의 실질적으로 중요한 권한보다는 성적인 권한에 더욱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말인데….”
철민은 잠시 뜸을 들이며 상원과 재진의 표정을 관찰했다.
이 둘 역시 철민과 마찬가지로 욕망에 솔직한 인물들이었다. 그저 쉽게 철민에게 마스터의 자리를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가 그 마스터가 되려고 합니다.”
“장 회장님께서?”
“음…. 마스터라….”
철민은 둘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 눈빛 속에는 권력에 대한 욕심과 함께 성적인 욕망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이 낙원이라는 곳에서 우리가 언제까지고 있을 리는 없습니다.”
철민은 미리 생각해두었던 말들을 풀어내며 상원과 재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가 누굽니까? 사성 그룹의 회장 아닙니까? 제가 갑자기 납치당했는데 우리 애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장 회장님의 아드님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겠죠.”
“맞습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역시 일선에서 물러났어도 아직은 철민이 사성 그룹의 회장이자 대표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것은 이 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곳에서 짧은 시간 동안 있으면서 쓸데없는 욕심을 부릴 것인지, 아니면 길게 인생을 바라볼 것인지…. 어떤 게 더 이득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시겠죠?”
“당연하지 않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장 회장님 외에는 마스터가 될 인물이 없다고 생각했던 참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눈치가 빠르고 이득에 민감한 상원과 재진은 곧바로 철민에게 붙었다.
물론 천사에게 들었던 마스터의 권한은 달콤했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신기루 같은 권한에 불과했다.
하지만, 철민이 줄 수 있는 혜택은 그런 권한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철민은 비록 구두 계약에 불과하긴 했지만, 둘을 완전히 포섭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조 의원은 공금 횡령 건으로 요즘 많이 힘들죠?”
“네. 그 일로 정말 골치가 아파 죽겠습니다. 남들 절반 밖에 안 해 먹었는데…. 딱 걸려서는…. 그 때문에 4선도 물 건너갔죠….”
“저만 믿으세요. 조만간 조 의원이 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될 테니….”
“정말입니까?”
“공금 횡령 따위는 다른 큰 사건 하나 터트려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그사이에 조금씩 돈으로 해결해 나가면 문제없습니다.”
“전 정말 장 회장님만 믿겠습니다…. 장 회장님 저에게 말 편하게 하십시오. 전부터 항상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군요. 저보다 형님 되시지 않습니까?”
“음. 그럴까? 조 의원?”
“물론이죠. 저…. 장 회장님을 형님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그러게나.”
“네. 형님.”
상원을 충분히 구워삶은 철민은 이제 재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재진은 아직 철민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대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재진 자네도 요즘 연예인 성 접대다 뭐다 하며 한창 골치가 아픈 것 같던데?”
“네 맞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요즘 애들은 말을 잘 들어 먹질 않아서…. 이번 건이 좀 크게 터져서 기획사 이미지도 상당히 실추되고 회사 주가도 폭락했습니다.”
“내가 상세히 말 안 해도 잘 알겠지? 세상 모든 일은 기브 앤 테이크야. 자네가 얼마나 성의를 보이냐에 따라서 내가 해줄 일도 달라지겠지.”
“물론입니다. 저도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러게나. 아니 그보다 자네들 둘도 호칭을 정리하지그래?”
상원과 재진은 서로를 살펴보며 서로의 가치를 매겼다.
재진은 생각했다. 철민이 뒤에서 받쳐만 준다면 상원이 다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4선 국회의원을 알아두어서 나쁠 리는 절대 없었다.
상원 역시 재진을 보며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대형 기획사의 사장을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파릇파릇한 어린 애들을 접대받기에는 그만한 위치가 없었다.
“그럼 조 의원님. 아니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되면 장철민 형님이 큰 형님이 되시는 거네요.”
“그러세. 재진 앞으로 잘해보세. 큰 형님도 잘 부탁드립니다.”
철민, 상원, 재진은 완전히 의기투합하며 거의 의형제 비슷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셋은 지금의 이 만남이 과거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도원결의를 연상케 하는 것 같았다.
“큰 형님. 지금 살펴보니 제가 안면이 있는 사람이 몇 보입니다. 그들에게도 큰 형님의 뜻을 전해 보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지인들이 보이는군요. 저도 미리 작업 좀 쳐야겠습니다.”
이제 철민과 한배를 타게 된 상원과 재진은 철민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 철민이 마스터가 되지 못한다면 철민이 약속했던 구도 계약권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 둘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둘이 그렇게 발 벗고 나서주니 듬직하군.”
“아닙니다. 동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맞습니다. 형님. 큰 형님은 그냥 편하게 발 뻗고 쉬고 계십시오. 나머지는 우리 동생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하. 그러지.”
첫날 이후. 천사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간혹 천사를 큰 소리로 부르며 찾는 이들도 있었지만, 천사가 다시 등장하는 일은 없었다.
뭔가 이정표를 제시해줄 천사가 모습을 보이지를 않으니 낙원 참가자들은 각자 알아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에서의 생활은 정말 열악했다.
하루에 한 번 지급되는 식수 한 병과 작은 빵 하나도 문제였지만, 환경 그 자체도 최악이었다.
잘 곳이라고는 딱딱한 바닥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전혀 풀리지 않는 기분이었다. 아니 오히려 온몸이 더욱 찌뿌둥해졌다.
특히, 깊은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밝은 전등이었다. 구석구석 빈틈없이 비추는 그 전등 빛은 피할 곳조차 없었다.
이 비교적 넓은 에는 중앙에 서 있는 1층짜리 건물인 지금은 진입할 수 없는 외에는 두 개의 공중 화장실이 다였다.
각각의 공중 화장실에는 5개의 변기 칸과 2개의 세면기가 있었다.
딱히 남녀 구분이 나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의 오른편에 있는 공중 화장실은 여성 전용, 왼편에 있는 공중 화장실은 남성 전용으로 정해졌다.
이 공중 화장실은 소변과 대변 등의 생리적인 볼일을 해결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몸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했다.
아무리 공중 화장실이 두 개라도 남녀가 각각 13명이나 되다 보니 2개의 세면기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24시간 전등이 꺼지지 않는 탓에 시간 개념이 점점 희박해져 가는 바람에 서로 겹치는 일은 그나마 적었다.
에서 큰 집단을 이루고 생활하는 이들은 철민 일행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그 외의 대다수는 따로 떨어져 혼자서 생활하거나 많아 봐야 두세 명이 모여 있을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꺼리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이름은 정한나로 올해로 24살이 되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한나의 직업은 어린이집 교사였다.
한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낯을 많이 가리다 보니 유아나 어린이를 상대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한나의 외톨이 근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애들조차 꺼리게 되며 심각한 문제에 처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낙원으로 납치되었으니 한나의 은둔 성향은 더욱 심각해졌다.
한나는 오늘도 공중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한나는 우선 세면대의 밸브를 틀어 세수부터 했다. 다소 온도가 높은 라서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뭔가 정신이 바짝 드는듯했다.
에서 유일하게 씻을 수 있는 곳인 이 세면대로 목욕까지 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몸을 씻지 않고 버티는 것은 너무나 힘겨웠다.
한나는 다시 한번 주변을 살펴본 후 상의를 벗었다.
낙원에는 속옷이 지급되지 않다 보니 다소 펑퍼짐한 셔츠를 벗자 곧 젖가슴과 함께 알몸의 상체가 드러났다.
한나는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을 손바닥으로 받아 상체를 적셨다. 그리고 다시 손바닥에 비누 거품을 낸 후 상체를 씻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씻어내기는 무리였지만, 그래도 비누 거품을 칠하고 깨끗한 물로 씻어내자 몸과 마음이 조금은 개운해지는 듯했다.
한나는 이번에는 하의를 벗었다. 역시나 폭이 넓은 바지를 벗자 팬티조차 입지 않은 알몸의 하체가 드러났다.
한나는 상체를 씻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체 역시 물을 적신 후 비누 거품을 칠하고 다시 깨끗한 물로 씻어냈다.
마땅히 몸을 닦아낼 수건조차 없는 이곳에서 흠뻑 젖은 채로 옷을 다시 입기는 무리였다.
한나는 적당히 몸이 마르길 기다리며 소용량 치약을 적당히 칫솔에 짜낸 후 양치를 시작했다.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으로 인해 한나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현재 알몸인 한나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고가 정지되어 옷을 다시 입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한나는 녹이 슨 기계 장치처럼 빳빳해진 고개를 겨우 돌려 인기척이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물론 소리가 들린 방향에는 공중 화장실의 입구가 있었다.
지금 공중 화장실로 들어서는 이를 확인한 한나는 너무나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들어선 이가 같은 여성이라도 대인기피증인 한나는 상당히 놀랐을 텐데, 더군다나 지금 들어선 이는 남성이었다.
그것도 인상이 험악하고 덩치가 커서 딱 봐도 전혀 순하거나 착해 보이지 않는, “나는 나쁜 놈이다”라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남성이었다.
지금 막 여성들이 쓰는 공중 화장실로 들어선 이는 추성철이었다. 첫날, 통제를 따르지 않는 본보기로 천사에게 제재를 당했던 바로 그 남성이었다.
성철은 세상을 제멋대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성철은 정해진 규칙을 따르거나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천사가 괜히 본보기의 첫 타깃으로 성철을 지목한 것이 아니었다.
성철은 그렇게 첫날 크게 당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30년 넘게 살아온 본성이 쉽게 바뀔 리는 없었다.
성철은 정신을 차린 둘째 날부터 계속해서 천사를 찾았다. 큰 소리로 계속 천사를 불렀던 인물이 바로 성철이었다.
성철이 이렇게 천사를 찾았던 이유는 첫날 당한 것에 대한 분풀이로 천사에게 쌍욕이라도 해주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천사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성철은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첫날 천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통제를 따르지 않았을 때는 바로 제재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천사가 보지 않는 동안에는 통제를 따를 필요가 없지 않을까? 통제를 어겨도 제재를 가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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