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136화. 1회차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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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1회차 종료.
벽면에 떠오른 내용을 모두 살펴본 유민은 대략 감이 왔다.
롤플레잉 게임에 비유해 설명하자면 지금까지 유민은 마치 레벨 업을 하면 능력치가 늘어나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특권”이라는 패시브 스킬을 하나씩 늘려왔었다.
그리고 유민은 그런 능력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고난이도의 미션들을 모두 클리어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유민과 유민의 일행들만 남게 된 지금, 낙원이라는 필드는 모두 정리되며 게임이 클리어되었다. 다시 말해 1회차가 종료되었다.
앞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스테이지는 롤플레잉 용어로 따지면 2회차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유민은 “특권”이라는 패시브 스킬을 모두 삭제당하고 초기 상태로 돌아가 2회차를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2회차에서는 무엇보다 V.P 상점을 통해 구매한 아이템이 중요해질 거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1회차에서는 “특권”이라는 패시브 스킬이 중요했다면, 2회차부터는 아이템 빨이 중요해질 거라는 의미였다.
물론 현재 유민의 미스터 등급으로는 2성급 아이템에 해당하는 미션 미리 보기 (일회성) 외에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스터 등급을 하나씩 올려 나가다 보면 더 상위의 아이템들도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마스터 등급을 올리는 데 치중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일상생활을 해나갈 공간인 캠프의 등급을 등한시할 수도 없었다.
다만, 문제는 그 가격이었다.
1성 등급에서 2성 등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마스터 등급, 캠프 등급 모두 50의 V.P가 필요했다. 포인트로 환산하면 5000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거기다 미션 내용을 단 한 번 미리 보기 위해서도 100이라는 어마어마한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 상위의 아이템은 보지 않아도 이보다 훨씬 비쌀 것이다.
유민이 한참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난감해져 갈 무렵, 천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럼 이제, 미뤄뒀던 포상 부분의 이야기를 마무리할게요.]
[참가자 이유민은 지금까지 힘겹게 획득한 특권을 모두 잃고 새로운 스테이지로 들어서게 되었죠.]
[따라서 지금까지의 모든 미션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에 대한 포상 겸 특권을 모두 상실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300 V.P와 V.P 상점 무료 이용권 3장을 드립니다.]
[게임에서 소위 말하는 2회차 특전 같은 거로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천사의 말은 유민의 고민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1회차의 특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과 지금 천사가 말한 특전의 가치가 어느 쪽이 더 높은지는 지금의 유민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유민은 새롭게 시작하는 스테이지에서 낙원에 처음 왔을 그때처럼 맨땅에 헤딩하면서 하나씩 다시 일궈나갈 생각이었다.
이로써 출발선이 상당히 앞당겨졌다. 물론 저 특전을 받는다고 해도 앞으로 이뤄나가야 할 것들이 훨씬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수고가 줄어들고 편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유민은 저 특전을 어떻게 사용할지 잠시 고민했다. 굳이 아낄 필요는 없었다. 당장 필요한 것은 마스터 등급과 캠프 등급의 상승이었다.
1성에서 2성으로 올리는 데 필요한 V.P가 50, 2성에서 3성으로 올리는데 필요한 V.P가 100이니 300 V.P면 두 개를 모두 3성까지 올릴 수 있는 점수였다.
“천사 누나. 마스터 등급과 캠프 등급을 3성까지 올릴게요.”
[네. 그럼 참가자 이유민의 V.P가 300점 소모됩니다. 현재 유민이 보유한 V.P는 0점, 포인트는 490점입니다.]
[마스터 3성 등급과 캠프 3성 등급의 옵션을 벽면에 띄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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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터 등급 ♠♠
★★★☆☆ 주당 지급 포인트 +200 추가
모든 유사 섹스 명령 가능(1일 3회, 30분)
캠프 인원 간 스킨십 수위 조절 가능 (금지 또는 비 성적인 접촉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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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 등급 ♠♠
★★★☆☆
일반 침대
공동 목욕실+사우나. 비데 설치 개별 화장실 5개,
주방. 의료실. 휴게실. 도서실. 3성 자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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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은 마스터 등급 3성의 권한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일단 확인할 것들이 많이 남아서 우선은 패스했다.
캠프 등급 3성은 이미 확인했던 캠프 등급 2성과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휴게실과 도서실을 다시 돌려받은 것은 물론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추가된 시설들도 상당히 유민의 마음에 들었다.
유민이 받은 특전은 V.P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민은 이제 마스터 등급이 3성으로 오른 만큼 V.P 상점을 바로 확인하기로 했다.
그렇게 새롭게 확장된 V.P 상점을 확인하던 유민의 시선을 끄는 아이템이 두 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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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P 상점 ♠♠
★★★☆☆
식사 개선 – 15000포인트
당신은 VIP 고객입니다. (구매 및 소모 포인트 90퍼센트 DC) 20000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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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누나. 이거 과 에 관해 설명 부탁해요.”
[네. 우선 은 일회성이 아닌 영구 지속 아이템으로 진영 참가자에게 하루에 한 번 지급하는 생수 한 병과 빵 하나 대신 세 끼 식사가 제공되는 아이템입니다.]
[그때 제공되는 식사는 지금까지 참가자 이유민이 특권으로 받았던 5성급 호텔 음식들에는 못 미치지만, 기본 식사보다는 조금 더 고급 식단으로 제공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사실 낙원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유민이 특권을 얻기 전에도 전혀 불만이 없었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높은 식단이 제공된다면 원래 서민 입맛이었던 유민에게는 충분히 고급이었다.
[그리고 아이템은 말 그대로 V.P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매하는 비용이나 여타 V.P가 소모되는 상황에서 90퍼센트 비용을 할인받는 아이템입니다.]
[단, V.P 상점의 아이템 할인은 3성급과 그 이하의 아이템에서만 그 효력이 적용됩니다. 4성 등급 이상의 아이템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유민은 잠시 고민한 후에 V.P 상점 무료 이용권 2장을 사용해 저 두 가지 아이템을 구매하기로 했다.
사실 아이템을 먼저 구매한 상태에서 아이템을 구매하면 15000포인트가 아닌 단 1500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었지만, 지금 유민에게는 그 정도의 포인트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 후에나 미션이 재개되는데 1000이 넘는 포인트를 어느 세월에 벌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 긴 시간 동안 하루에 식수 한 병, 빵 하나로 버티기는 어려웠다. 유민 혼자라면 어떻게든 버텨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일행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남은 V.P 상점 무료 이용권 1장은 미래를 위해서 남겨 두기로 했다.
이제 유민은 특전의 사용을 마치며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앞날에 희망이 보이며 계획을 잡기에도 수월해졌다.
유민은 복잡 미묘하던 머릿속이 정리되며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지금까지 계속 신경이 쓰였던 부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천사 누나.”
[네. 참가자 이유민.]
“말투가 왜 그렇게 딱딱해요? 왠지 천사 누나랑 남처럼 여겨져서 서운하네요….”
[그게…. 그러니까…. 혼났어요….]
“누구한테요?”
[세경 언니한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 말투에 위엄이 전혀 없대요…. 너무 촐싹대고 방정 맞대요…. 특히 앞으로 새로운 참가자까지 오게 되는데…. 그래서 고치려는 중이에요….]
유민은 지금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낙원이라는 시설은 지금의 유민에게는 조금 의미가 달라지긴 했지만, 실제로는 세상 그 어떤 감옥보다도 더 엄중하고 훨씬 위험한 곳이었다.
처음 강제로 납치된 것을 시작으로 강력한 물리적인 통제까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통제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과장을 하면 천사가 푼수기 넘치는 말투로 “당신. 죽일 거야.”라고 말해봤자 그 말을 듣고 눈 하나라도 깜짝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유민은 그런 상황이 충분히 이해는 되었지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천사 누나.”
[네. 참가자 이유민.]
“천사 누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나랑 둘만 있을 때만이라도 예전처럼 말해 줘요. 전 그런 천사 누나가 훨씬 좋았는데….”
[그래요? 참가자 이유민이 정 그렇다면 그러죠. 뭐….]
[사실 이렇게 위엄있게 말하는 것도 체질에 맞지 않아서 내가 말하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어요….]
천사는 곧장 예전의 말투로 돌아갔다. 사실 유민에게는 연상의 누나라기보다는 한참 어린 여동생 같은 느낌이 드는 말투였다.
[그럼. 내일 아침 식사 후 새로운 캠프로 이동하도록 해요. 그때 다시 공지할게요. 알았죠?]
“네. 천사 누나.“
이제 혼자 남게 된 유민은 침대에 드러누워 한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민은 내색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사실 특권을 모두 회수당하고 조금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당히 안심되었다.
유민은 다시 침대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지금까지 계속 미뤄두었던 서류 봉투를 손에 들었다.
평소와 달리 봉투가 상당히 얇게 느껴졌다. 유민은 곧장 봉투를 열고 그 속에 들어있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봉투 내에는 두 장의 서류가 들어있었다. 뭔가 복잡한 내용이 적혀있었지만, 그 내용을 모두 읽을 필요도 없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유민“과 ”이가영“이 더 이상 친남매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였다.
일본 같은 경우는 자식이 딸린 두 남녀가 재혼할 경우, 그 두 남녀 사이에서 새롭게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면 피가 섞이지 않은 자식 사이에서 결혼도 가능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러기는 힘들었다.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한 가족이 된 두 남녀가 다시 남이 되어 결혼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낙원이 어떤 곳인가? 유민은 낙원의 대단함을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실감해왔고 실감하는 중이었다.
낙원의 능력으로는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유민과 가영은 친남매에서 남이 되었다.
서류를 내려다보는 유민의 심정이 상당히 복잡 미묘했다. 쓸쓸함, 허전함 등의 감정이 유민의 가슴 속에서 아련하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서류상의 남이 되었다고 해서 유민에게 가영과의 추억이나 가영에 대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유민은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가슴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조금 다른 감정, 즉 반가움과 기대감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유민은 가영이 갓 중학생이 될 무렵의 어린 나이 때부터 친여동생으로 함께 해왔다.
유민은 어디를 가든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고 자신을 의지하는 갑작스럽게 생겨난 이 여동생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며 세상을 떠나게 된 후부터 유민은 가영을 더욱 아끼고 보살펴주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영은 어린 소녀에서 어엿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유민은 여전히 가영을 어린 여동생으로만 봐왔다.
유민이 가영을 조금씩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가영이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원서를 넣기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바쁜 유민은 물론, 한창 고 3 수험생으로 학업에 열중하던 가영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빡빡한 시간을 보내느라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상당히 짧았다.
하지만 수능을 치른 후의 가영은 조금 시간의 여유가 생기며 예전처럼 유민이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졸졸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유민이 아직 어린 애라고만 생각했었던 가영은 어느새 가슴이 제법 부풀어 있었고 잘록한 허리와 늘씬하게 쭉 뻗은 두 다리는 어느덧 여자의 몸매가 되어있었다.
유민은 마치 어린 시절 그때처럼 자신의 옆에 바짝 달라붙어서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가영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유민은 물론 가영이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팔에 와 닿는 가영의 부드럽고 봉긋한 젖가슴과 탐스러운 두 허벅지가 계속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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