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102화. STAGE TWO. round five.
102화. STAGE TWO. round five.
유민은 그 짧은 소영의 말을 통해 소영이 하고 싶어하는 말이 뭔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은 당연히 지금의 위험한 미션을 성공하게 해줘서일 테고, 미안하다는 말은 과거의 일에 대한 사과일 것이다.
“그래….”
하지만, 유민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소영의 간절함에 비해 다소 빈약했다.
유민은 그때 그렇게 소영과 헤어지며 소영에게 품었던 악감정이 지금은 많이 잊힌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준영이 사라진 지금, 어쩌면 소영과의 문제는앞으로도 계속 해결해 나가야 할 유민에게 주어진 숙제 같은 것이었다.
유민은 반짝반짝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영에게서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있는 준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유민 역시 소영처럼 준영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진 않았지만, 소영과는그 의미가 많이 달랐다.
유민이 준영에게 가장 크게 품고 있었던 감정은 바로 배신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 있어 믿음과 신뢰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유민에게 있어 배신이라는 건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가장 나쁜 행위였다.
물론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정치적 또는 사업적인 견해의 차이나 이득이 걸리며 부득이하게 동업자나 직장에 대한 배신의 행위를 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이득이 아닌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만 이어질 수 있는 친구, 선후배, 연인 등의 관계에서의 배신은 정말 인간성의 끝을 보여주는 최악의 행위였다.
유민은 정말 준영을 믿을 수 있는 선배로, 친한 형으로 생각했다. 유민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여자 선배가 수지였다만, 그와비슷할 정도의 존재가 준영이었다.
그 당시 준영에게 배신당했던 유민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준영의 자리에 수지를 대입해 본다면 쉽게 감이 올것이다.
하지만 유민은 이렇게 어이없이 죽어 버린 준영이 너무나 측은해 보였다. 지금의 준영에게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던 대학 시절의 모습을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유민은 준영에게 배신당하며 느꼈던 아픔과 준영에 대한 악감정을 훌훌 털어버리기로 했다.
준영이 죽은 다음에야 의미 없을지도 모르지만, 유민은 마지막으로 준영을 용서하기로 했다.
[그럼 미션 시간도 종료되었으니 정식 공지를 할게요. 미션 참가자 이유민,미션 참가자 서소영에게는 미션 성공 포상으로 각각 10포인트를 드립니다.]
[그럼 낙원 참가자 여러분. 각자의 개인실로 복귀하세요.]
오늘은 뭔가 어설픈 천사였다. 아니 평소에도 그렇게 딱 부러지는 스타일은 아니었었나?
아무튼, 유민은 천사의 미션 성공 공지를 들으며 자신의 옷을 주워서 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래라면 이 타이밍에 강한 쾌락에 취해 침대에 늘어져 있었어야 할 소영은 준영의 갑작스러운 난입으로 이제는 완전히 제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따라서 소영 역시 유민의 옆에 바짝 붙어서자꾸 유민을 힐긋거리며 자신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침대에늘어져 있는 소영을 무시하고 그냥 광장으로 향했을 유민이었지만, 지금은 뻔히 말똥말똥 눈을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영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럼…. 나갈까….”
유민은 그 한마디만을 소영에게 건넨 후 그대로 소영에게서 몸을 돌려 광장으로 향했다. 지금의 유민이할 수 있는 소영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였다.
“네. 유민 오빠.”
소영 역시 불만은 없었다. 갑자기 유민에게 용서를 받을 거란 헛된 기대를 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영은 그저 자신에게 한마디라도 건네준 유민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유민을 따라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에서 유민을 기다리던 유민의 일행들은 정호와 수지의 주도로 빠른 해산을 했다.
그 둘이 아니었더라도 이번 미션에서 사망자가 나왔으니 여기서 오래 있고 싶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뭔가 심경이 복잡한 유민으로서도 다행이었고 유민에게서 조금 떨어져 어쩔 줄 몰라 하던 소영으로서도 다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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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민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유민이 개인실로 복귀하자마자 바로 천사가 등장했다.
[참가자 이유민. 이번 미션 성공을 축하드리고 5라운드 미션 최다참여에 성공한 것도 축하드려요.]
“네…. 뭐…. 감사해요….”
이럴 때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등장해도 되지 않나?
유민은자신의 감정을 추스를 조금의 시간조차 주지 않고 바로 등장한 천사에 대해 속으로만 악담을 퍼부었다.
[그럼 5라운드 미션 최다참여에 대한 포상으로 특권을 하나 드릴게요. 이번에드릴 특권은 <보너스미션> 특권이에요.]
“<보너스미션>?”
유민의 경험상 보통 보너스라면 대부분 좋았다. 그 내용이 금품이 되었든 기회가 되었든 어쨌든공짜가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가정주부의 역할까지 맡고 있었던 유민은 보너스에 다소 민감한 편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상품도 1+1 상품일 정도였다.
[네. <보너스미션>은 현재 진행 중인 메인 미션 외의 추가 미션을 수행할 수있는 특권이에요.]
[보너스 미션이 진행되는 시기는 메인 미션의 다음 날, 메인 미션이 진행되는 시간과 같은 오후 3시에요.]
[다만. 이 <보너스미션> 특권을 통해 진행되는 미션에서는 현재 참가자 이유민이 보유한 그 어떤 특권도 사용할 수 없어요.]
“아니. 그럼…. 그건 특권이 아니라 벌칙 아닌가요?”
유민은 바로 반박을 했다. 유민의 말대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특권 없이 미션에 참여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부담이 컸다.
미션을 추가로 수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메리트가 뭐가 있을까? 일행과 즐거운 섹스의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과 포인트를 더 얻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그런 메리트에 비해 디메리트가 너무나 컸다. 섹스의 쾌락과 조금의 포인트를 목숨과 바꿀 수는 없었다.
[아니에요. 참가자 이유민.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고 말씀하세요. 쳇.]
“네…. 죄송해요….”
유민은 뭔가 자신의 말을 중간에 끊어서 삐진듯한 천사에게 일단 사과를 했다. 그러자 천사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다만. <보너스미션> 특권으로 추가된 미션에는 메인 미션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어요.]
[우선 참가자 이유민이 가장 걱정하는 벌칙이 전혀 없어요.]
[미션에 성공하면 포인트를 받게 될 것이고 미션에실패해도 포인트를 받지 못한다는 거 외에는 아무런 벌칙이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중요한 차이점은 미션의 남성 참가자는 당연히 <보너스미션> 특권 사용자인 참가자 이유민으로 고정되겠죠?]
[여성 참가자의 경우는 랜덤으로 결정되는데 그때 그 여성 참가자에게 개별 공지를 하게 돼요.]
[그리고 미션의 참여, 미참여 여부를 묻게 되죠. 거기서 여성 참가자가 미션 참여를 거부하면 보너스 미션은 이루어지지 않아요.]
[보너스 미션은 말 그대로 보너스로 진행되는 만큼 강제성이 전혀 없다는 말이죠.]
[마지막으로 보너스 미션에서는 <특수미션>이 발동하지 않아요. 그 외의 모든 사항은 메인 미션과 같아요.]
[참가자 이유민 이제 아시겠죠? 왜 <보너스미션>이 특권이 되는지를? 참가자 이유민이 방금처럼 그렇게 투덜거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죄송합니다….”
뒤끝이 오래가는 천사였다. 유민은 또다시 천사에게 사과해야만 했다.
아무튼,천사의 설명대로라면 <보너스미션>은 말 그대로 유민이 평소에 좋아하던 보너스가 맞았다.
설령 위험하다거나 하기 어려운 미션이 나오면 안 하면 그만이었다.
아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션의 내용 자체가 위험하다거나 하기 어려운 경우는 <특수미션>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보통 미션의 위험수위와 난이도를 올리는 주요 원인은 바로 실패 시의 벌칙이었다. 벌칙이 없다면 미션의 난이도는 대폭 내려간다.
거기다 막말로, 미션의 달성 목표를 무시하고 미션 제한 시간 내에서 미션 참가 여성과 느긋하게 즐겨도 그만이었다.
그 미션 참가 여성이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 남은 낙원의 여성 참가자 중에서 유민과의 섹스를 거부할 여성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보너스 미션에서 랜덤 결정된 여성 참가자의 거부로 보너스 미션이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의미였다.
지금의 유민은 미션에 많이 익숙해져몇몇 미션을 제외하고는 벌칙에 상관없이 진심으로 여성 참가자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션의 참가자로서 미션 실패 시의 벌칙을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 벌칙이 아예 없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낙원에 오기 전까지 동정이었던 유민은 미션을 통한 섹스 외에는 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연인이 평범하게 하는 다른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서로에게만 몰두하는 섹스라거나,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하는 섹스의 경험이 유민에게는 아예 없는 것이었다.
유민은 벌써부터 보너스 미션이 기대되었다. 그리고 그 미션에서 하게 될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진심으로 몰두할 수 섹스를 생각하니 흥분되었다.
어김없이 그런 유민의 잡념을 눈치 없는 천사가 방해했다. 아니 이렇게 매번 타이밍이 좋은 걸 보면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너무나 빠른 게 아닐까?
[참가자 이유민.]
“……네.”
[낙원 참가자의 개인 정보는 누구 걸로하겠어요?]
그러고 보니 그것도 있었다. 이제 남은 낙원 참가자라고 해봐야 유민의 여동생인 가영을 제외하면 민서뿐이었다.
소영도 남았다고 볼 수 있지만, 유민은 지금까지의 소영은 잊기로 했다. 어차피 소영과의 관계는 이제부터 바꿔나가며 쌓아가야 한다.
“민서로 할게요.”
결국, 유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한집에서 살며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가영을 굳이 이런 것에 의지해 다시 알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톡톡 튀는 듯한 성격 때문에 더 그렇지만, 유민이 보기에 민서는 왠지 알기 힘든 여성이었다.
유민은 이번 기회를 빌려 뭔가 얌체 볼 같은 민서에 대해서 조금 더 아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네. 참가자 신민서 말씀이죠. 광장개방 시간 후에 받아볼 수 있도록 처리할게요.]
“네. 감사해요. 천사님.”
[네. 그럼 저는 이만….]
천사가 물러나며 유민은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유민은 개인실로 복귀하면 준영에관한 것…. 그리고 소영에 관한 것 등, 복합한 생각을 정리하고 심란한 감정을추스를 생각이었다.
하지만,천사가 정신없이 한번 휘젓고 가는 바람에 유민의 복잡하던 머릿속도, 심란하던 마음도 어느새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유민은 왠지 쓴웃음이 지어졌다. 이런 건 천사에게 감사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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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개방 시간이되며 유민은 광장으로 향했다. 유민의 일행들 역시 광장으로 모였다.
유민과 유민의 일행들이 차지한 8인용 테이블 곁으로 놓인 4인용 테이블에는 각각 소영과 미경이 앉아있었다.
그러고 보면 처음에는다소 북적거리던 낙원도 이제는 제법 허전해졌다.유민의 일행이 7명, 거기다 소영과 미경을 포함해도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사람이 북적거리다 사라지면 외로움이나 쓸쓸함을 느껴야정상이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기에는 사라져간 인원들의 면면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광장을 천천히 둘러본 유민 역시 마이너스 감정보다는 오히려 편안함과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기…. 유민오빠….”
평소에는 멀리서 준영과 함께 있거나 아니면 혼자서 유민과 유민의 일행을 바라보고만 있을 소영이 유민의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왜?”
유민 역시 조금 뜻밖이라 조금 대답이 늦었다.
유민은 오늘 미션 이후로 소영에게 상당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바로 말을 걸어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죄송한데….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소영은 두 손을 앞으로 곱게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유민을 살며시 훔쳐보며 말했다.
그런 소영의 모습이 마치 무서운 학생주임 선생님 앞에서 혼나고 있는 죄지은 학생처럼도 보여 유민도 차마 거절하기 힘들었다.
“유민아. 소영이 이야기 한번 들어 주는 게 어때?”
유민이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옆에서둘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던 수지가 나서서 유민에게 권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