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050화. STAGE ONE Complete.
050화. STAGE ONE Complete.
선정은 어이없고, 억울하고, 현재 자신의 처지가 한심했다. 어머니에게 사실을 밝히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니 이런 어머니에게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믿어 줄지도 의문이었다.
선정은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에 대해서도 딱히 부모의 정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어머니에 대한 정도 모두 사라졌다.
선정은 그날 바로 간단한 짐을 싸서 가출했다. 그리고 놀면서 알게 된 언니의 집으로 찾아가 얹혀살게 되었다.
당장돈을 벌어야 했던 선정은 언니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선정은 보도나 유흥업소 등을 전전하며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선정은 그렇게 몇 년을 지내며 남자를 유혹하는 말과 행동, 남자를 만족시키는 섹스 테크닉 등을 익히며 보다 고급 업소로 옮겨가게 되었다.
선정은 이런 쪽으로 선천적인 재능이 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단골이 생기고 고액의 스폰 제의까지 받게 되었다.
선정은 생각했다. 남자는 강한 힘과 권력과 돈으로 여자를 자기 뜻대로 주무른다면 여자는 그렇게 남자들이 원하는 몸을 써서 남자들을 마음대로 해줘야 형평성이 맞지 않을까?
선정은 에이스로 근무하던 업소를 그만두고 꽃뱀으로 일하던 언니들 밑으로 들어가 일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선정 역시 꽃뱀으로 전직했다.
선정은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까지 자신을힘과 돈과 권력으로 거짓 웃음을 짓게 하고, 다리를 벌리게 하고, 강제로 범해왔던 수많은 남자에게 복수하는 것 같아서 통쾌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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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은 가정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니 나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 친어머니는 강간의 충격으로 자살했고, 새롭게 생긴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뺑소니사고로 사망했다.
유민은 그 이후로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새 여동생을 챙겨주느라 먹고 싶은 것도, 입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유민은 금전적으로는 쪼들리긴 했지만,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친어미니부터 아버지, 새어머니, 새 여동생까지 모두에게 가족의 정을 주고받았다.
유민은 선정의 자료를 쭉 읽어보았다. 선정의 비참한 가정환경과 그 이후의 행보들. 선정에게 비참한 가정형편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렇다고 선정의 꽃뱀 활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선정의 꽃뱀 실력은 제법 좋았는지 피해자의 수는 상당했고 벌어들인 금액이 컸다.
선정은 가정이 있는 남자를 유혹해 성관계를 맺고 그걸 빌미로 금품을 뜯어냈다.그것까지는 용서는 못 해도 그러려니 넘어갈 수는 있었다. 왜냐면 피해를 본 가정이 있는 남자 역시 잘한 것은 없으니까.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례도 제법 있었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힘들고 외로워 보이는 남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술 취한 남자와 어떻게든 함께 모텔로 진입. 이후 모텔에서 술 한 잔을 더 하자며 수면제 탄 술을 먹이고 재움. 실제로는 성 관계없이 남자에게 불리한 증거 사진을 남긴 후 협박.
한국에서는 남녀가 완전 합의 하에 성 관계를 하더라도 그 이후 갑자기 여자가 강간을 당했고 신고하면 법적으로 남자 측이 상당히 불리하다. 법정 공방까지 가게 되면 높은 확률로 남자는 징역형을 맞거나 합의금을 물어야 한다.
남자 측에서 재심에 삼심까지 가서 어떻게든 어렵게 누명을 벗더라도 그동안 직장을 잃고, 가정은 파탄 나고, 사회에서의 신용을 잃어 인생이 끝장난다.
하지만 그렇게 한 남자를 파멸로 몰고 간 허위 신고를 한 여자는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는다. 겨우 명예 훼손 정도로 민사 소송을 걸 수 있을 뿐이고 그것마저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하다.
이런 우리나라의 법은 꽃뱀이 활동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제공해준다. 실제로 선정의 사례를 봐도 남자들에게 뜯어먹은 돈은 많았지만, 역으로 당한 경우는 없었다.
선정의 꽃뱀 활동에 피해 본 남자들 역시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금품 적으로나 다양한 피해를 봤다.
유민은 별첨 자료의 어떤 부분에서 시선이 멈췄다. 피해 남성의 이름은 이민석. 바로 유민의 아버지였다.
이민석이 재혼 전 홀로 아들인 유민을 키우며 한창 힘들고 외롭던 시기에 선정에게 걸렸다. 직장을 마치고 혼자 술 한 잔을 마시고있을 때 접근한 선정과 함께 모텔을 가게 되었고 그 이후로 작업을 당했다.
그 당시 민석이 선정에게 뜯긴 돈은 5천만원. 어떻게 보면 그것이 낙원을 오기 전 유민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유민은 선정에게 화가 나긴 했지만, 이전의 백성엽, 임지윤, 오주석 등에 비하면 그래도 괜찮았다. 너무 쓰레기 인간들을 많아 봐서 이 정도는 약과로 느껴지는 걸까?
유민은 기껏 1스테이지 마지막 미션에서 선정과 조금은 가까워졌는데, 이런 상황이 되니 난감했다. 앞으로 선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참가지 이유민.]
유민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니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일이지? 포상과 개인 정보는 이미 받았는데…. 더 할 말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유민 역시 천사에게 볼일이 있었다. 유민은 천사의 용건이 끝나면 잊지 않고 물어보기로 했다.
“네. 천사님. 왜 그러시죠?”
[추가 포상을 드리기 위해서 찾아왔어요.]
“무슨 추가 포상요?”
[지금까지 줬던 포상은 각 라운드별 최다 미션 참여에 대한 포상이었잖아요. 지금 드릴 것은 1 스테이지 전체의 미션 최다 참여에 대한 포상, 즉 일종의 보너스 포상이라고생각하면 돼요.]
“그렇군요. 감사해요.”
유민은 일단 공짜로 준다고 하니 고마움을 표시했다.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이곳 낙원에서 포상은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유민이 받았던 포상들도 어느 하나 쓸데 없는 것이 없었다.
[추가로 1인의 개인 정보를 더 드리며, 포인트 300을 제공할게요. 포인트는 팔찌에 저장되며 자판기와 시설의 입구에 부착된 단말기를 통해 이용할 수 있어요.]
유민의 예상대로 포인트 지급과 사용에는 팔찌를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또 한 명의 개인 정보는 누구의 것으로 해야 할까? 유민은 잠시 고민 후 천사에게 생각했던 인물을 이야기했다.
“남상미로부탁해요.”
[참가자 남상미 말씀이죠. 알겠어요. 내일 광장개방 이후로 받아볼 수 있도록 조치할게요.]
유민은 이제 일행을 빼면 개인 정보를 알지 못하는 이는 최준영과 서소영 그리고 남상미밖에 남지 않았다. 최준영과 서소영도 다소 궁금하긴 하지만, 남상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인간쓰레기였던 장우혁이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설치고 다닌 뒤에는 항상 같은 고교의 선생님이었던 남상미가 있었다.
유민은 지금도 대략적인 남상미의 악행을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확실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야 앞으로 어떤 일이 있었을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
[그럼 좋은 밤 되세요.]
“아! 잠시만 천사님.”
[왜 그래요? 참가자 이유민. 아하~! 이제부터 자위할 생각인 거죠? 그래서 제 목소리를 딸감으로 삼을생각? 그렇다면 이건 폰섹도 아니고 그렇군요. 스피커섹인가요?]
“아뇨!! 그보다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네. 꽉 물어봐요. 아니 너무 아프게는 말고. 살살. 혀도 쓰면서….]
“흠흠…. 이 포인트라는 것은 양도가 가능한가요? 아니면 포인트로 구매한 물품만이라도?”
[포인트 양도는 불가능해요. 그리고 포인트를 이용한 상품 구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요. 바로 자판기에서 현물을 구매하는 것, 상품 구매만 하고 현물은 개인실로 배달이 되는 것.]
[자판기에서 바로 구매 가능한 품목이라면 그 자리에서 양도할 수 있겠지만, 그 외의 배달 품목들은 양도할 수 없어요.]
역시포인트 양도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자판기에서 바로 현물 구매가 가능한 각종 음료나 기호식품 등은 그 자리에서 함께 나눠 먹거나 양도할 수 있지만, 그 외의 옷이나 가구 등은안 되는 모양이었다.
유민은 여동생인 가영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소 실망스러웠다. 여동생에게 생필품 등을 챙겨줄 수 없다면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초콜릿이나 사줘야 하나? 하지만 천사의 말은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특권이 있는 참가자 이유민이라면 광장개방 외의 시간에 양도하는 것은 인정해줄 수 있어요.]
“그런가요? 정말 감사해요.”
포인트를 직접 양도할 수는 없지만, 포인트로 구매한 상품을 이런 식으로 양도할 수 있다면 포인트를 직접 양도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시설 사용까지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유민은 이 정도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참가자 이유민도 잘 알겠지만, 특권에 관한 것은 특권을 포상으로 받는 참가자에게만 알리는 일종의 비밀 사항이에요.]
[가급적이면 다른 참가자에게는 알리지 않는 편이 좋아요. 친분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네. 알겠어요. 그런데 알리게 되면 무슨 제제 같은 것이 있나요?”
[그런 건 없지만, 남들에게 널리 알릴수록 참가자 이유민이 피곤해질 거예요.]
유민도 천사가 말한 피곤해진다는 의미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현재 유민은 몇 가지의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특권들은 미션과 상황에 따라 “사망”해야 했을 대상을 바꿔버리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민이 가진 다양한 특권이 낙원 참가자들에게 밝혀진다면? 피곤한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굳이 그런 것이 아니라도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해갈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 일행 중 하나의 희생을 선택해야만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민이 이런 다양한 특권을 가졌다는 것은 다른 낙원 참가자는 물론, 일행에게도 솔직하고 떳떳하게 밝힐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천사와의 대화를 마친 유민은 곧장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선은 처음 봐두었던 팔찌 업그레이드를 확인했다.
[팔찌 업그레이드]
1단계 – 시계 (10포인트)
2단계 – 잔존 포인트 (20포인트)
정말 소소한 업그레이드였지만 너무나 필요한 업그레이드였다. 낙원에서 살며 가장 답답한 것 중 하나가 현재 시각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창문도 없어서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유추할 수도 없었다.
낙원 참가자가 현재 시각을 알 수 있는 것은 3끼배식, 광장개방, 미션 시작, 소등 등을 통한 대략적인 파악이 다였다. 그마저도 정확한 시각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소등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개인실의 모든 전등이 온·오프가 가능해진 만큼 소등을 통한 시간 체크도 불가능했다. 특히 특권이 있는 유민에게는 필수 업그레이드였다.
유민은 1단계에 이어 2단계까지 팔찌를 업그레이드했다. 곧 정말 시계처럼 팔찌의 앞면에 현재 시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시계가 뜬 부분을 터치하니 잔존 포인트로 바뀌었다.
다시 터치하니 시계로 바뀌는 걸 보면 터치할 때마다 시계과 잔존 포인트로 바뀌어 표시되는 모양이었다.
이것은 잔존 포인트가 많은 유민에게 나름 괜찮은 방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보다 격이 다르게 많은 잔존 포인트를 계속 공개하고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대학 선배가 만나는 후배마다 밥을 사다가 한 달 용돈이 순식간에 다 털려버리는 것과 비슷한 사태가 생길지도 모른다.
유민은 이어서 삼푸, 린스, 바디샤워, 로션 등의 생필품과 초콜릿, 과자, 음료 등의 기호 식품도 구매했다. 그리고 여성 잠옷도 한 벌 구매했다. 총 65 포인트가 들었다. 이것은 여동생인 가영에게 줄 물품들이었다.
유민은 이어서 본인이 쓸 생필품과 트레이닝복을 한 벌 구매했다. 트레이닝복은 운동복도 되고 잠옷으로도 쓸 수 있으니 효율이 높았다. 이렇게 55포인트를 사용했다.
‘내가 너무 충동구매를 했나….’
어느새 잔존 포인트는 300에서 절반인 150으로 줄어있었다. 유민은 실제로 포인트를 써보니 미션 한 번에 10포인트는 너무 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달에 기껏 2~3번 참가가 힘든 다른 낙원 참가자는 기호 식품이나 시설이용 커녕 정말 생필품만 사도 모자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