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013화 STAGE ONE. round one.
013화. STAGE ONE. round one.
유민은 하루 종일 기운이 없었다. 어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중앙광장이 개방된 후 일행들과 모여서도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유민이 여성들에게 요령 좋게 말을 붙이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런 남자는 아니었지만, 여기 모인 지인들은 다르다. 어쨌거나 유민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이니 유민은 알게 모르게 이 자리의 분위기를 주도했었다.
그랬던 유민이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당연히 지인들은 걱정했다. 특히나 수지는 자신 때문이 아닌지 미안해하기까지 했다. 자신과 섹스 후에 갑자기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기운이 없어졌으니 그렇게 착각할 만도 했다.
”혹시…. 나랑 했던 게 마음에 안 들었어?“
“아뇨. 절대 아니에요. 좋…. 좋았어요. 수지 누나랑 했던 건…. 수지 누나 때문이 아니라 살짝 배탈이 나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해서 그래요.”
유민은 이렇게 많은 지인들, 특히 여성들 앞에서 어제 했던 섹스가 좋았었다고 말하는 건 너무나 눈치 보이고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걱정하는 수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별수 없었다.
“그랬구나. 그래도 배탈이 났다니 걱정이네.”
“이제 다 나았어요. 괜찮아요.”
유민은 억지로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사실 유민은 구석 자리에 나란히 앉아있는 백성엽과 임지윤이 계속 신경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만약 몰랐던 부모님의 원수를 알게 되면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 기쁠까? 부모님의 원수를 갚을 수 있게 되어서 반가울까? 아니면 차라리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다고 한탄할까?
유민의 마음은 복잡했다. 경찰들도 밝혀내지 못해 묻혔던 사건에서 부모님의 원수를 찾아준 낙원에 감사했다. 상당한 인력과 시간과 돈이 들었을 것이다. 유민은 처음으로 낙원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여기는 낙원이다. 말이 낙원이지 행동의 자유도, 외부와 연락도 할 수 없는 감옥과 같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부모님의 원수를 알게 된다 한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뺑소니 관련 증거자료들을 경찰에 넘겨 사건의 재조사를 받게 하거나, 지금 웃고 있는 백성엽의 안면에 주먹을 날릴 수도 없는 곳이다.
가서 따지는 건 더욱 의미 없는 짓이다. 그래서? 상대가 인정하고 뉘우치면 용서하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걸까? 반대로 시치미를 떼면 윽박질러야 할까? 그랬는데 어쩌라고 라며 강하게 나오면 싸워야 할까?
아무 의미가 없다. 말 몇 마디로 용서할 수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서류에 들어있던 자료에도 나와 있지만, 백성엽은 그날 사고를 인지하고 사건 현장을 빠르게 벗어났다. 지금 와서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한다 해도 백성엽은 뺑소니로 인한 살인범이고 부모님의 원수다.
유민은 아주 잠깐이지만,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지금은 어떻게 하지 못하더라도, 낙원을 탈출하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유민에게 낙원을 탈출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추가되었다.
중앙광장 개방이 끝나며 유민은 개인실로 돌아왔다. 잠시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자 갑자기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참가자 이유민.]
“응? 뭐죠?”
[이건 전체 공지가 아니라 참가자 이유민에게만 들리는 개별 공지에요.]
[아니…. 왜?]
[따로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요.]
유민은 생각했다. 이 건 좋은 기회가 아닐까? 지금까지 혼자서 끙끙 앓고만 있던 일들을 물어볼 기회였다. 아무래도 그런 내용을 지인들에게 상의할 수는 없었다.
“저기. 제가 몇 가지 질문 좀 해도 될까요?”
[어떤 거요? 제 쓰리싸이즈요?]
“아뇨…. 다른 거예요.”
[네. 물어보세요.]
“혹시 이 낙원이라는 것이 절 중심으로 모인 건가요?”
[어머. 그렇게 안 봤는데. 왕자병?]
“아니에요!!…. 아니 참가자들을 보면 대부분 저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 그런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죠.”
[그렇군요.]
“....그래서 그게 맞나요?”
[전 질문을 하라고만 했지, 대답한다고는 안 했는데요?]
“…네?‘
[헤헷….]
유민은 정말 앞에 있었다면 꿀밤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너무나 얄미웠다. 그래도 여기서 무의미한 실랑이를 벌어봤지 이득이 될 것도 없다.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제게 개별 공지를 하는 이유가 뭐죠?“
[우선 정면을 보세요.]
1. 자유참가 – 본인 미션 참가 여부 선택
2. 미리보기 – 미션내용 미리 보기
3. 미션보호 – 미션에서 완전히 안전 (1인 선택, 변경 가능)
4. 참가자변경 – 본인 미션 미참가 시 미션 참가자 1인 랜덤 변경
5. 식단개선 – 하루 3끼 식단 고급화
6. 파트너변경 – 본인 미션 참가 시 파트너 1인 랜덤 변경
[보셨죠? 이건 각 라운드에서 가장 미션 참여율이 높은 참가자에게 부여되는 특권이에요. 선택은 불가능하고 순서대로만 받을 수 있죠.]
[이틀 후부터 진행되는 1스테이지는 총 6라운드로 구성되고 각 라운드는 5번의 미션으로 구성되죠.]
[각 라운드별로 참여율이 가장 높은참가자에게 순서대로 하나씩 특권이 지급되는 형식이죠.]
[다만. 이 특권에 관한 것은 특권을 부여받는 참가자에게만 개별 공지하는 내용으로 다른 참가자에게는 될 수 있으면 비밀로 해주세요. 그러는 것이 본인에게도 좋을 거예요.]
[튜토리얼에서 가장 활약한 참가자 이유민에게는 1번 자유참가 특권이 부여됩니다.]
[자유참가는 다음 미션에 참가, 불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에요.]
[참가, 불참가 여부는 미션 전날까지 개인실에서 절 불러서 알려주시면 돼요.]
”잠시만요. 제가 천사님을 어떻게부르죠?“
[그냥 천장에 대고 절 부르시면 돼요.]
”아니 그렇다면 절 모니터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죠. 전 참가자 이유민이 자위하는 모습도 매번 보고 있답니다.]
”네?“
[아! 제가 이런 말을 했다고 그만두면 안 돼요. 참가자 이유민의 자위를 딸감삼아서 저도 자위를 하거든요. 그러니 절대 그만두면 안 돼요. 알았죠?]
”....“
[혹시 지금 할 건가요?]
”아뇨!! 절대로 안 해요.“
[쳇…. 아무튼 절대 그만두면 안 돼요. 그만두면 강력한 제재를 가할 거에요. 제 독단으로….]
[그럼 좋은 밤 되세요. 그럼 6일 후 미션이 있기 전까지 참가, 불참가를 알려주세요. 전 이만….]
유민은 천사의 황당한 말들로 잠시 정신이 없었지만, 가까스로 수습할 수 있었다. 유민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건 정말 중요한 이야기였다.
사실 튜토리얼 최다참가도 자신이 원해서 한 것도, 자신의 능력으로 따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특권을 받게 되었다.
유민은 벽에 떠올랐던 특권들을 떠올려보았다. 자유참가, 미리보기, 미션보호. 식단개선, 참가자변경, 파트너변경.
아무래도 가장 끌리는 것은 미션보호였다. 이것만 확보해도 여동생인 가영의 안전은 확실히 보장된다. 그 외에도 자신과 지인들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서라면 모두 확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미션 참여율이 높아야 한다.미션을 많이 참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도 커진다는 의미이다. 특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5번 중 최소 3~4번 이상은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유민의 선택은 참가로 굳혀졌다. 특권도 확보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남자들에게 자신의 여성 지인을 내주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가영은 동생이다. 가영의 경우는 다른 남자가 아니라 자신이 만나도 난감해진다. 하지만 특권을 모두 획득한다면 그런 일까지 없어진다.
어쨌거나, 유민은 천사가 갑자기 튀어나오며 정신을 헤집어 놓은 결과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러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특권들을 잘 이용하면 원수를 갚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유민은 다음 날 저녁 바로 천사를 불러 1스테이지, 1라운드, 첫 미션의 참가 의사를 밝혔다.
----------
유민은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의 모습을 둘러보았다. 모두의 얼굴이 낙원에 처음 왔을 때는 생각할 수도 없이 밝아 보였다.
표정만 밝은 것은 아니었다. 뻣뻣했던 머리카락도 다시 부드러워졌고 다소 푸석푸석했던 얼굴도 촉촉해졌다. 바로 튜토리얼 포상으로 받은 샴푸, 린스, 로션 등의 영향이었다.
거기다 유민 본인도 그렇지만, 정호 또한 면도를 해서 그런지 한층 깔끔해졌다. 물론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여성들의 겨드랑이도 깔끔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6일 동안 미션이 없었다는 것에도 영향이 있었다. 3일에 한 번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 전날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하니 일주일의 휴가는 상당히 컸다.
아마도 여성들에게 가장 불안한 것은 미션 자체보다는 모르는 남자에게 몸을 맡길지도 모른다는 것 아닐까? 유민은 현재 이 테이블에 있는 여동생 이가영과 신민서를 제외한 모든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
만약 미션에서 만나는 사람이 유민뿐이라면-서현의 경우는 정호- 이렇게 불안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일부는 반가워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포상으로 주어진 몇 가지의 세면용품과 다소 긴 휴식으로 조금은 피폐해졌던 심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써 끝이다. 오늘이 바로 휴식의 마지막 날, 내일부터 다시 미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새로운 단계가 시작된다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요?“
서현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바로 옆에 앉아있던 남편인 정호가 바로 말을 받아주었다.
”단계가올라가는 셈이니 더 쉬워질 거란 낙관은 하기 힘들겠지.“
아무래도 모두의 생각이 비슷할 것이다. 튜토리얼보다 본 스테이지가 더 쉬워지는 게임은 없다. 아마 이 낙원도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다. 듣고 있던 수지가 희망 사항을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미션을 원하는 사람과 할 수만 있기만 해도 좋을 텐데….“
”그렇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유민은 수지의 말에 동의하는 민서를 보며 살짝 어이가 없었다. 넌 아직 한 번도 미션에 참여한 적 없잖아. 그리고 원하는 사람이면 좋다고? 누구랑 할 생각인데?
”모르죠. 혹시 훨씬 쉬워질지도. 일단 시작이 반이라잖아요. 어쨌거나 튜토리얼을 넘어섰으니 낙원 탈출을 향해 한 발 내디딘 셈이잖아요.“
”그래. 유민이 말이 맞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고민한다고 더 쉬워지지도, 어려워지지도 않을 텐데 에너지 낭비만 하는 거지. 좋게 생각하자고.“
”네. 여보.“
유민 일행은 다소 무리해서 밝은 분위기를 만든 후 광장개방 시간이 끝나며 해산했다. 모두는 각자의 개인실로 돌아갔다.
유민 역시 개인실로 돌아가 침대에 앉았다. 잠자리에 들기는 아직 이르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눕기는 싫었다.
다른 이들은 내일 있을 미션을 걱정하고 혹시나 그 미션에 본인이 참여하게 될지 불안해하지만, 유민은 이미 참여가 확정되어 있다.
불안해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유민은 바지를 끌어 내리고 발기가 되지 않은 남근을 손으로 잡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단단해져 가는 남근을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유민이 매번 하는 섹스 트레이닝이었다. 천사가 엿본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며칠 쉬었지만 계속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제부터 매 라운드마다 최소한 3~4번 이상은 참여해야 한다.
광장개방 시간이 연장되며 취침 전 트레이닝 시간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유민은 남근의 마지막 점검을 한 후에 소등과 함께 침대에 누웠다.
----------
낙원 참가자 모두는 천사의 미션 공지를 듣고 새롭게 시작된 스테이지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광장에 모였다.
[그럼 1스테이지. 1라운드. 1번째 미션을 공지합니다. 미션 참가자는 이유민. 서소영. 미션 참가자는 미션룸으로 입장해주세요.]
유민은 이미 참여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소영은 본인의 이름이 불리자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거부할 수는 없었다.
유민과소영은 미션룸으로 입장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그렇다. 튜토리얼에서는 미션 참가자. 미션 내용. 미션 제한 시간 그리고 벌칙까지 한 번에 말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유민과 소영이 미션룸에 입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션 참가자 외의 상세한 내용을 설명해주지 않고 있었다.
곧 중앙 바닥이 열리며 튜토리얼 때 자주 봤던 침대 하나가 올라왔다. 그리고 침대가 바닥에 고정되자 천사의 공지가 이어졌다.
[미션은 참가자 이유민. 참가자서소영의 안면 사정 1회, 질내 사정 1회입니다. 제한시간은 1시간.]
미션이 두 개로 늘었다. 제한시간까지 늘어난 것은 다행이지만, 난이도가 올랐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놀라긴 아직 일렀다.
[미션 실패 시의 벌칙은 미션 참가자 두 명의 ”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