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002화 TUTOTIAL. (2/348)



〈 2화 〉002화 TUTOTIAL.

002화. TUTOTIAL.


고급 가죽으로 덮인 중후한 의자에는  명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남성의 머리카락은 눈처럼 새하얗게 새어있어 연륜과 나이를 엿볼 수 있었고 이마에 깊게파인 주름에서는 강인해 보이는 성격과 고집을 엿볼 수 있었다.


남성은 흑단 원목으로 제작된 책상 위에 놓인 장의 자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책상에 놓인 명패에는 <온누리 대표 이건우>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온누리>는 국내에서 첫 번째로 손꼽는 기업이었다. 아니 국내뿐만 아니라 최근 평가에 의하면 세계 기업 10위권에 포함될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이었다.

“보신대로 낙원 시설은 이미 한 달 전에 완비되었고 참가자에 대한 정보수집도 모두끝났습니다.”

이건우에게 보고하는 여성은 177cm, 장신의 미인이었다.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그리고 늘씬한 맵시를 자랑하는 다리로 여성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유명한 모텔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성적 매력을 풍기는 몸매와는 반대로 무표정하고 차가워 보이는 얼굴에서는 높은 지성이 엿보였다.

이 여성의 이름은 안세경. 바로 이건우의 직속 비서이자 국내 최고대학을 수석으로 조기 졸업하고 미국 유명 대학에서 유학까지 마친 엘리트였다. 그리고 <낙원 계획>의 모든 것을 전담하고 관리하는 책임자였다.

“그렇군…. 언제 실행이 가능한가?”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다만 모든 참가자를 모으기에는 2~3일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알았네. 그럼 바로 실행하도록.”

“네.알겠습니다.”

안세경은 뒤돌아 방을 나섰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이건우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것이 정녕 올바른 길일까? 하지만 그 고민은 빠르게 사라졌다.

지금 당장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났을 때는 이해해줄 것이다. 이건우는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나도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군…. 그는  선물을 기뻐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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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은 방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간이침대 하나, 그리고 성인 남성 한 명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샤워 부스와 변기가 있었다.


방은 4~5평 정도 될까? 벽면은 모두새하얗게 칠해져 있었고 입구는 마찬가지로 새하얗게 칠해진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그 철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위아래로  개의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었다.

유민은 자기 전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분명 여동생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 평소처럼 자신의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이 방이었다.


살짝 나른하고 몽롱한 걸 제외하면 몸은 전혀 이상이 없었다. 다만 입고 있던 옷만은 바뀌어 있었다. 하늘색 반 팔 티와 품이 넉넉한 바지, 그리고 왼편 가슴팍에 <이유민>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래…. 마치 죄수복 같았다. 그러고 보면  방도 감옥의 독실 같은느낌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유민은 철문을 열어보려고 시도를 해보고 방을 구석구석 살펴보기도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철문은 너무 단단했고 5평 남짓한 방은 더 이상 살펴볼 것도 없었다.

유민은 또 하나 이상한 점을 더 발견했다. 그것은 왼쪽 팔목에 채워져 있는 금속 팔찌였다. 아주 단단하게 채워져 있는 이 팔찌는 파괴도 해제도 불가능해 보였다.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철문 밖이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철문 하단에 뚫린 구멍으로 식판 하나가 들어왔다. 식판을 넣어준 사람은 이내 자리를 떴는지 조용해졌다.

유민은 급하게 철문으로 다가가 소리쳐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식판에는 밥과 국, 그리고 3가지의 반찬이 놓여 있었다. 식수는 없었다. 그래도 샤워 부스가 있으니 목이 말라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샤워 시설과 변기가 제대로 작동되는 것은 이미 확인했다.

유민은 음식을 보자 배가 고파졌다. 아니 배는 진작에 고팠지만, 지금 처한 상황이 당황스러워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유민은 일단 침대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음식은 나쁘지 않았다. 맛보다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등 삶에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갖춘 건강 식단 같은 느낌이었다.


유민은 이 영문 모를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식사는 하루 세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왔고 매번 반찬이 조금씩 변했다. 여동생에대한 걱정과 지루하다는 것만 빼면 특별히 힘든 점은 없었다.

벽면에는 지켜야 규칙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식사 후에는 식판을 밖에 내어놓을 것, 떠들지 말 것, 지시 외의 행동은 하지 말  등이었다. 하지만 며칠 지내는 동안 지시가 내려온 적은 없었다.

옷은 지금 입고 있는 옷 외에도 여유분이 2벌 더 있었다. 속옷은 없었다. 옷은 얇은 편이었지만 춥지는 않았다.

유민의 기억으로는 방에서 마지막으로 잠든 게 12월 말이니 분명 겨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얇은 옷을 입고도 전혀 춥지가 않다. 난방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이곳은 한국이 아닌 걸까?


또 며칠이 흘렀다. 온통 벽으로 둘러싸인 이 방은 창문이 없었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세 끼 식사가 오는 시간과 소등을 통해서만 알  있었다. 식사가 오는 타이밍을 통해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소등을 통해 밤이 왔다는 걸 유추할  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낙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민은 평소와 같이 점심시간이 되어 배급된 식사를 했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으로 오고처음으로 듣게 된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감옥과 같은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량하고 밝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곧 문이 개방될 예정이니 화살표를 따라 중앙 광장으로 모여주세요. 소란을 피우거나 지시 사항 외의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 강한 제재가 가해질 수 있으니 유의해 주세요.]


곧 철문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민은 철문을 살짝 밀어 보았다. 지금까지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정면의 벽에는 오른편으로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었다. 유민은 일단 지시 사항에 따르기로 했다. 여기서 반항을 해봤자 다시 방에 틀어박힌다는 방법 외엔 없다.

복도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지시 사항에서 말했던 원형의 중앙 광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앙 광장에는 광장 주위로 방사형으로 뚫려있는복도에서  명씩 사람들이 나타났다.


유민은 깜짝 놀랐다. 중앙 광장으로 모인 사람들은 자신 포함 18명가량. 그중 아는 얼굴들이 제법 보였다. 특히 여동생인 가영까지 있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가…. 가영아?”

“오빠…. 흑흑….오빠도 왔었어?”

“유민?”

“유민 오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보…. 당신도 있었어?”

“정호 오빠. 여기가 도대체 어디에요?”

.....

광장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각자의 지인을 보고 급하게 달려갔다. 그리고 반가움, 절망, 황당함, 괴로움 등이 섞인 목소리로 광장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유민은 마주 달려온 가영을 껴안았다. 그런 유민의 주위로 몇 명의 여성들이 다가왔다. 유민의  조교인 정수지와 과외를 하던 신민서였다.

[조용히 해주세요. 이대로 소란이 멈추지 않으면이곳 낙원에 관한 설명과 낙원 탈출을 위한 방법을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소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민도 이곳에서 지인들을 만났다는 것이, 특히 여동생을 만났다는 것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오랜만에 만났다는 반가움보다는 이런 감옥과 같은 곳에 함께 오게 되었다는 괴로움이 앞섰다.


[조용히 해주세요. 경고입니다.조용히 해주세요. 경고를 어길 시 강한 제재가 가해질 수 있습니다.]

[낙원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제 지시 사항에 충실히 따라주셔야 합니다. 이대로 소란이 멈추지 않을 시  단계 제재로 모든 식사제공을 멈추겠습니다.]

조금은 소란이 잦아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울먹이는 소리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자자. 잠시만 조용히 하고 일단 말을 들어봅시다.”

한 명의 여성을 껴안고 있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말을 꺼냈다. 이 둘은 유민도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바로 낙원에 오기 전까지 유민의 옆집에 살았던 이웃이자 결혼한 지 1년째인 신혼부부였다.

남자의 이름은 김정호, 나이는 34세. 여자의이름은 안서현, 나이는 28세로 부모님 없이 둘만 살고있는 유민과 가영을 친동생처럼 챙겨주는 고마운 이웃이었다. 수시로 반찬이나 생필품 등을 챙겨주며 신경 써줬다.

“아저씨가 뭔데 나서는데요? 아저씨도 여기 관계자예요?”

시비조로 말하는 저 남자도 유민에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름은 장우혁, 유민의 고교동창으로 들리는 소문으로는 재벌 3세쯤 되는 것 같았다. 세상 두려울  없이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철부지였다.


우혁은고교 시절 거칠 것이 없었다. 교장이나 이사장도 어느 정도 우혁의 눈치를 봤고, 학생 중에서는 소위 꼬봉들을 이끌고 다니며 왕 노릇을 했다. 손해 보는 성격인 유민 역시 우혁에게 많이 당했었다.


“그게 아니라. 일단 말은 들어보자는 거죠. 저도 이곳이 어딘지 궁금하고 답답합니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떠들기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정호의 간곡한 말에 우혁도 일단 수긍했다. 다만 혼잣말로 “감히 나한테. 이 짓거리 한 놈들 나중에 다 잡아서 죽여버리겠어.”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면 완전히 수긍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제는 제법 조용해졌다. 이따금 흐느끼는 소리는 들려왔지만, 대화를 나누는 이는 사라졌다.


[이제야 제가 말을 이어갈 수 있겠네요. 우선,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충실한 낙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하고 이곳 낙원 시설의 유지 관리를 맡은 관리자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낙원에 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말투가 너무 딱딱하죠? 여러분들이 계속 떠들어서 그렇잖아요. 이제부터 편하게 말할게요. 마음의 준비는 되셨나요?]

[네. 되신 거 같네요. 우선 이곳 낙원이 있는 곳은 한국이 아니에요. 무려 개인 소유의 무인도랍니다. 지금 광장에 모여 계신 여러분들을 제외하면 저를 포함 관리자 몇 명 외에는 거주하는 주민이 전혀 없는 완전 무인도에요.]

[낙원은 그런 무인도에 설치된 거대한 시설이에요. 핵이 떨어져도 무사할 수 있도록 설계된 낙원이라 자력 탈출은 절대불가능해요. 그러니 괜히 용쓰지 마세요. 그럼 이곳을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하시겠죠?]

[지금부터 3일에 한 미션이 주어져요. 참가자도 랜덤, 미션 내용도 랜덤, 미션 실패시의 벌칙도 랜덤이에요 다만 미션 실패시 벌칙은 대부분 강력하니 유의해주세요. 최악 사망도 있답니다.]

[미션을 일정 이상 완료할 때마다 구역이 조금씩 개방된답니다. 이쯤 말씀드리면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이해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미션을 해나가다 보면 결국 모든 구역이 개방되고 탈출할 수 있어요. 참 쉽죠?]


[그럼  소개를 다시 할게요. 제가 여기 관리자라고 말씀 드렸지만, 관리자는 저 외에도 다수가 있거든요. 관리자들을 총괄하는 분도 따로 계시고. 그러니 저를 부를 때는 “천사”라고 불러주세요. 왜냐구요? 예쁘고 신성해 보이잖아요.]

자칭 천사라고 불러달라고 한 여성은 너무나 해맑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중간에 강력한 벌칙, 사망이라는 끔찍한 말도 밝은 목소리로 말을 하니 심각하게 와닿지 않았다.



[그럼 다들이해하신 것으로 알고 첫 번째 미션을 드릴게요. 초반부터 너무 힘든 미션을 드리면 적응하기 힘드시겠죠? 그러니 어느 정도 적응할 때까지는 간단한 미션으로 드릴게요. 게임의 튜토리얼쯤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저 너무 착한 것 같지 않나요?]

[우선 참가자. 이유민, 정수지. 둘은 앞에 열린 문으로 입장해주세요.]


광장의 한쪽에는 10평 남짓한 모든 벽이 통유리로 구성된 원형의 방이 있었고 그 입구가 천천히 열렸다. 아마 저곳으로 들어가라는  같았다.

유민은 가영과의 포옹을 풀고 언제부턴가 옆에 다가와 있던 수지를 바라보았다. 수지 역시 유민을 바라보던 중이라 둘은 이내 눈치 마주쳤다. 유민은 일단 지시 사항을 따르기로 했다. 지금 거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현명하지 않은 행동 같았다. 수지도 같은 생각인듯했다.


유민과 수지는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둘이 들어서자 문은 자동으로 닫혔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곧 방의 중앙 바닥이 좌우로 열리며 하나의 물건이 올라왔다. 그 물건은 두 명이 누울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침대였다.

[미션의 내용은 30분 이내에 참가자 이유민의 질내 사정 1회. 미션 실패시 벌칙은 낙원 참가자 전원 3일간 금식이에요.]

[참고로 현재 낙원 참가 여성들은 피임 호르몬 투여 중이니 임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럼 시작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자칭 천사의 시작 신호와 함께 방의 안쪽 벽에 00:29:59의 시간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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