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수집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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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착지하듯 조심스럽게, 조용하게 잭은 남자의 등에 올라탔다. 떨어지며 축적된 중력의 힘과 더불어, 잭의 각력(力.다리힘.)이 더해진 무릎이 그의 등뼈를 찍었다.
코끼리의 척추도 깨부술 강한 타격이었다. 뼈가 뒤틀리며 깨지는 소리가 어두운 밤공기를 적셨다.
흉추가 꺾인 사내는 일격에 무력화 되었다. 격통을 표현할 단말마를 내지를 기회조차 없었다.
그의 최후를 애도하듯, 또는 무시무시한 공포심을 내지르듯,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니, 그랬어야 할 터였다. 그것은 단숨에 저지당했다.
날다람쥐 잭은 여인이 비명을 지르기 직전, 그녀의 턱을 후려쳤다. 힘 조절은 절묘했다. 그녀의 숨통을 끊지도, 불구로 만들지도 않는, 딱 적당한 정도의 충격이었다.
과연 날다람쥐 잭은 실력 있는 인간 사냥꾼이었다.
쓰러진 채 눈을 부릅뜨고 잭을 바라보는 남자, 그의 눈동자는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척추를 따라 이어져야 할 신경은 어디에선가 뭉게져 버렸고, 몸은 뇌의 신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눈을 뜬 채 잭을 바라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분노의 고함을 지르는 것조차 몸은 허락하지 않았다.
목숨을 잃기 직전임에도 공포심보단 분노가 타오르는 것을 보니 과연 나중에 훌륭한 기사가 될 재목이다. 그렇기에 더욱 살인의 감미로움이 느껴진다.
무엇도 아닌 허접스런 인간을 죽이는 건 소금 없이 감자를 씹는 것과 같다. 무척이나 심심한 행위일 뿐이다.
적어도 날다람쥐 잭에겐 그랬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기름칠을 해둔 쇠발톱이 달빛에 비쳤다. 이제 드디어 몸을 적실 수 있게 되었다. 날붙이의 완성은 살을 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피가 검신을 타고 내려 손잡이에까지 촉촉히 적시면 완성되는 것이다.
“자네 눈빛이 살아 있군.”
잭이 쓰러져 움찔거리고 있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잭은 쇠발톱을 그의 목에 가져다 대더니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웅취(??). 자네 웅취라고 아는가 모르겠군.”
웅취란, 거세하지 않은 수컷 돼지고기에서 나는 냄새를 일컫는 말이다. 후각이 예민한 잭은 인간 남성을 해체할 때에도 그런 냄새를 느끼곤 했다.
그것이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냄새인지, 그저 잭의 환취였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말인데, 쇠발톱이 처음 마시는 피는 그런 잡내가 없는 피였으면 좋겠단 말이지.”
그는 사내의 목덜미를 움켜쥐며 맥박을 느꼈다. 비록 척추가 뭉개져 꼼짝할 수 없는 몸이지만, 생명력 만큼은 여실히 느껴지는 맥동이었다. 사냥개에게 물어 뜯기면서도 투지를 잃지 않은 산돼지처럼.
“... 그러니 너는 네 칼로 죽는 편이 좋겠다.”
잭은 사내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장검을 뽑아들었다. 잭은 검끝을 사내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심장 바로 위에 세워진 장검은 심장이 내뿜는 진동을 검신에 전달했다.
잭의 예민한 손끝은 그 섬세한 떨림을 느꼈고, 그의 몸은 서서히 기울어지며 검에 무게를 더했다.
우직, 지직.
살갗을 가르고 연조직을 파헤치며 심장을 꿰뚫은 검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심근이 수축하며 연약한 최후의 경련을 전달했다.
사내는 눈을 뜬 채로 죽었다.
낚시꾼이 흔히 말하는 ‘손맛’. 손맛이 그의 손에서 온몸으로 퍼졌다. 생명을 취하는 활력 가득한 감각!
사내를 죽이는 것은 여인을 희롱하다가 처리하는 것 보다는 재미가 없지만, 오늘 걸린 이 녀석은 손맛이 썩 괜찮다.
말했듯이,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잭은 사내를 내팽개치고 쓰러져 있는 여인을 안아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납치된 공주를 구해낸 용사처럼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흔히들 표현하는, ‘공주님 안기’ 라는 것이 있잖는가.
그는 잠든 듯 기절해 있는 여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뺨 바로 아래 턱은 벌써 푸르게 멍이 들어 있었다.
“내가 예쁜 얼굴에 실수를 했군. 음… 아냐, 이건 이거 나름대로 관능적이야. 난 그렇게 생각해.”
그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범죄적인 미학을 읊조리곤 하늘로 날아올랐다. 인간의 각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지면과 멀어져갔다. 아니, 애초에 인간은 그렇게 뛰어오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호수를 박차고 날아 오르는 백조 조차도 이렇게 가볍게, 혹은 우아하게 상승할 수 없을 것이었다.
*
당장에라도 쇠발톱을 피부 아래에 우겨넣고 찢어 발겨야 할 것인데 어쩐 일인지 잭은 그러지 않았다.
사나흘 굶은 똥개처럼 눈 앞에 고기가 있으면 미쳐 버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는 꽤 오랜 기간 살인을 참았던 터라, 인내심이 그 똥개보다 적으면 적었지, 많진 않으리었다.
허나 그는 각력 만큼이나 뛰어난 인내심으로 여인을 해체하는 것을 미루기로 다짐했다. 좋은 미술 작품은 왜인지 집에 전시해 두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감상하고, 음미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
잭의 경우에도 그랬다.
싸구려 창녀 같은 경우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서 즉시 팔다리를 끊어내고 피끓는 신음을 즐겼을 것이다. 뱃가죽을 가르며 사각사각, 서늘하면서도 독특한 고기 자르는 맛을 느꼈을 것이다.
극동의 한 섬나라에서는 무사들이 *시참(??. 이 문장에선 츠지기리?り라는 뜻으로 사용됨. 칼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행인을 시참하는 것을 의미. 토오리마?り?라고도 표현함.)이라는 것을 한다고 한다. 그런 무사처럼 쇠발톱을 휘두르며 절미(味. 물체를 자르는 맛.)를 느끼면 그만이었으나, 굳이 참아내며 수고를 들이는 까닭이 있었다.
동전 몇푼으로 뒷골목에서 간편하게 사먹는 창녀와는 다른 것이다. 어디가 다른가 하면 우선은 용모가 다른 것이다. 피부는 희고 잡티 하나 없어서, 햇빛 볼 일 따윈 일절 없는 양갓집 규수일 것이 분명했다.
중원의 학자들이 말하길,
“수상은 관상만 못한 것이며, 관상은 골상만 하지 못하고, 골상은 심상만 못한 것이다.”
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골상이란, 뼈의 생김새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며 가문의 귀중함을 뜻하기도 한다. 뼈대 있는 가문이라는 표현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잭은 조금 일차원적으로, 뼈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수려한 용모가 관상이라면, 그것 또한 매력적이었지만 시원시원하게 뻗은 골격에 한번 더 매료된 것이었다.
천한 것들의 뼈잭의 표현을 빌리자면를 보면 무언가 부러졌다가 붙은 자국이라던가, 짜리몽땅하다던가, 잭의 미학적 기준에 못 미더운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아랫것들을이 역시 잭의 표현이다 사냥할 때에는 그것을 기념할 만한 신체가 필요 없는 것이었다.
추한 것을 굳이 집안에 진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듯이 말이다.
이 여인의 것은 다를 것이다. 희고 고운 피부처럼 뼈도 매끈하고 금간 자국 하나 없을 것이다. 그는 여인을 해체하고, 해체된 그 끔찍한 모습을 상상하며 기뻐했다.
흥분이라거나, 성적 도취감이라던가 하는 저열한 기쁨이 아니었다. 도자기를 굽는 명장이 수십일이 걸려 간신히 빚어낸 상급의 도자기를 바라보는 마음인 것이다.
그는 사악한 살인마임에 틀림이 없지만, 어떤 관점으로는 치열한 예술가였다. 잭은 자신이 확고히 이루어낸 미학을 숭배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어쩌면 그에게, 삶의 가치는 모조리 그 미학을 만끽하기 위함에 있을지도 몰랐다.
잭은 자신의 아지트에 금새 도착했다. 공주님처럼 안겨 있는 여인, 그러나 죽음이 눈 앞에 있는 여인과 함께.
그는 희생양을 안고 지하실을 향했다. 그는 제단처럼 꾸며진 틀 위에 여인을 올리고 구속했다.
틀 주변은 매끄럽게 미장된 바닥을 하고 있었다. 물을 다뤄도 쉽게 스며들지 못할 것처럼 매끈하고 청결했다.
그러나 그런 깔끔한 바닥과는 대조적으로, 각종 도구들이 산만하게 늘어져 있었다. 벽은 핏자국을 닦아낸 얼룩들로 더럽혀져 있었다. 도구들은 하나같이 흉악한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모습만 봐도 대충 그것이 어떤 용도로 만들어진 것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조이고, 부수고, 끊어내고, 들어내는 도구들.
이를테면 외과 수술에서나 쓰일 법한 장비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턱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구석에 가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어보니 그곳엔 하얀 가루가 있었는데, 그는 붓 같은 것을 문질렀다.
하얀 가루가 털끝에 달라붙었다. 그는 여인의 멍든 턱을 매만지며 하얀 가루를 덧칠했다. 옥에 티를 가리듯이 말이다.
"아까 생각엔 말이지. 이건 이거대로 요염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또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해골 아가씨?"
구석진 곳에 비단으로 감싸여진 두개골을 바라보며 한 말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미 죽은 시체의 뼈가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퀭하니 어두컴컴한 머리뼈의 눈구멍을 쳐다본들 그곳에 눈동자는 없다.
"아아! 이럴 때 가끔 살인이라는 게 싫어 진다니깐!"
그는 그렇게 탄식하더니, 그 두개골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곤 고개를 숙여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농담이었어.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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