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아불리가(???.Africa.)인 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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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본지 얼마나 오래 되었다고 사람이 저리 바뀔 수 있을까. 거의 시체처럼 말라붙은 피에르의 몰골을 보니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피에르는 움푹 꺼진 눈으로 지존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사히 돌아 왔네. 궁금했다구. 그리핀도 잡아 왔고, 대단한데? 그 잘나신 도련님은 어떻게 되었고?”
시체 같은 몸에 비해 목소리는 청명했다.
“그건 차차 말하도록 하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몇년만에 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말랐어? 중병에라도 걸린 거냐?”
피에르는 잠시 생각하곤 말했다.
“음… 중병이라면 중병이지. 이질이라도 걸린 것 같군.”
“음식은 들어 가나?”
“들어가면 뭘 하나. 들어가 봤자 바로 나오는 걸. 나만 그런 것도 아니야. 요즘 여기 고아원 주변에서 유행하고 있어. 아픈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 돈도 좀 벌었겠다, 좋은 것 좀 먹으러 가자고 하려 했는데 뭐 먹을 수도 없겠군. 그거야 그렇다 치고. 난 피에르 너 먹고 자고 하라고 돈 좀 쥐어주고 간 거였어. 이래서야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인걸. 꼬맹이들 도우라고 준 돈이 아니란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진짜 내가 도둑놈이 된 것 같구만. 거, 좀 봐줘. 공덕 쌓은 셈 치자구.”
“...”
뭐라 화 내기도 애매했다. 무엇보다 저 중환자 같은 사람과 입씨름을 하는건 또 무슨 그림이란 말인가.
지존은 그에게 무어라 설득을 했다. 피에르는 극구 싫다고 반항했지만 무의미했다. 손가락으로 혈자리를 짚으니 피에르는 말린 생선처럼 딱딱히 굳었다.
"으… 뭔, 뭔짓이야 이거!"
"가만히 좀 쉬어."
그는 피에르를 말린 생선마냥 번쩍 들어올려 붕붕이의 등에 태웠다. 사실, 태웠다기보단 짐을 싣는 모습에 가까웠다.
붕붕이는 날아올라 화원으로 향했다.
지존은 화원의 여인들에게 피에르를 맡겼다. 그를 좀 씻기고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곤, 은전 몇닢을 건네주었다.
여인들은 요즘 벌이가 시원찮은 판에, 꽤 괜찮은 돈을 받게 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들은 싱글벙글 하며 피에르를 안고 화원으로 들어갔다.
"익… 이익…! 싫어…! 이거 놔!"
피에르는 그녀들의 손길을 뿌리치려 했으나 마비가 풀리지 않아 의미 없는 꿈틀거림에 불과했다.
지존은 모험가 협회로 향했다. 또다시 붕붕이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새벽까지만 해도 붕붕이와 함께 다니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위험한 마물을 함부로 거느리고 다니는 것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불법일 것이다.
그 탓에 밤이 되어 보는 눈이 없어질 때에야 붕붕이를 타고 날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돌프의 아비 판텔로프를 만나니 그에게서 둔감함이 전염되기라도 한 듯, '들키면 뭐 어쩌겠냐.' 라는 느낌이었다.
붕붕이는 모험가 협회의 건물 앞에 내려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가던 행인들은 죄다 고개를 돌려 지존과 붕붕이를 쳐다보았다. 의외로 포졸 같은 치안유지대원들은 오지 않았는데, 아마 누구도 의심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사람이란 때때로, 너무 특이하고 당당한 것을 보면 '음, 저건 이미 사전에 신고하고 행동하는 것이겠군.' 하고 생각을 마는 경향이 있다.
지존은 또한 복식이며 얼굴이며 동방의 것을 하고 있으니, '동방 상인들은 마물을 타고 다니기도 하는구나.' 하고 넘겨짚게 된 까닭도 있다.
어쨌거나,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지존은 협회의 문을 열었다.
이번 모험에서 명성을 얻어서, 길리엄이나 프레데릭에게 한 자리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모험가 등급을 올리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우연이 다 있나.
그리핀이 어디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쉽게 보기도 힘들고 잡기도 힘든 몬스터다.
모험가라고 해서 아무나 잡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뜻이었다.
그런데 그걸 타고 온 지존도 놀라운데, 그곳에는 마크 클레망이란 남자와 그 일행이 있었다. 그는 일전에 성체 그리핀을 죽이고 그것을 통째로 가져온 자였다.
무언가를 생포하는 건 죽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었다. 그런데 지존은 그리핀을 살려서 데리고 오니 자신이 진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마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들 지존을 쳐다보며 한마디씩을 하는데, 그는 애써 지존을 쳐다보지 않았다.
마크와 마주한 곳에는 덩치 좋은 흑인이 서 있었다. 그 또한 마크와 마찬가지로 패배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똥씹은 얼굴로 지존을 노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선을 느낀 지존은 그 흑인을 쳐다보았다.
다소 신경질적인 눈빛이었다. 지존의 눈빛도, 흑인의 눈빛도 그랬다. 서로 눈을 피하지 않고 쳐다보고 있으니 협회 안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 했다.
다들 긴장한 채로 두 사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중, 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뭐야, 한 따까리 하려고 그래? 나는 샘록한테 건다. 둘 다 꼴아보지만 말고 한번 붙어 봐.”
등 뒤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였다. 험악한 말투인데, 목소리는 여인의 것이었다. 그것도 꽤 맑은 고음의 것이었다.
그녀는 노출도 높은 의상을 하고 있었다. 배꼽이 보이는 가죽옷에, 머리를 뒤로 넘겨 땋았다. 몸을 가린 부위보다 드러난 부위가 많았다. 창부로 오해할 만한 복장이지만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몸에는 흉터가 군데군데 나 있었고, 몸은 잔근육이 들어차 있었다. 게다가 왼눈에는 얼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큰 칼자국이 나 있었다.
지존은 뒤를 돌아보고 그녀에게 말했다.
“내 얘기냐? 말투에 예의가 없군.”
인상을 찌푸리며 쳐다보는데 그녀는 눈 하나 깜짝 없었다.
“예의는… 씨팔… 그거 꼭 차려야 하나? 내가 좀 좆같은 곳에서 자라서 이빨이 좀 험해. 미안. 미안.”
“... 미친년.”
지존의 욕설을 듣더니 그녀는 까르르 웃었다. 그녀는 지존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마크가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마크, 그리고 흑인의 일행이었다.
지존의 얼굴은 분노로 약간 붉어졌다. 그의 발걸음은 잠시 멈추었는데, 일갑자를 훨씬 웃도는 햇수를 살아왔어도, 이런 경우 없는 상황은 겪어 보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할 말도 잃고 갈 곳도 잃은듯 보이는 지존을 보고 그녀는 웃기다는 듯 다시 한번 까르르 웃었다. 그러곤 지존에게 손짓했다.
“아, 오빠! 화났어? 미안하다고 했잖아. 이리 와서 우리랑 얘기 좀 해! 미안하니까 내가 맥주 좀 살게.”
사람이 아무리 속이 없다거니와, 방금 시비 붙은 사람이 부른다고 바로 갈 수 있겠는가. 지존은 인상을 찌푸리고 그녀를 외면했다. 그러자 거구의 흑인이 지존을 향해 걸어왔다.
‘싸움이라도 하자는 건가? 왠 왈짜패가 모험가 길드에 죽치고 있는 거야?’
지존은 그렇게 생각했다.
흑인은 성큼성큼 걸어왔다. 지존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싸움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싸움을 피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피에르의 건강이 성치 못해 기분이 나쁜 참이었다. 아끼는 사람이 아프니 목구멍이 칼칼했다. 이 기회에 저 거구놈을 피떡으로 만들어 그걸 안주삼아 낮술이라도 한잔 하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먼저 때려라. 얼른.’
지존은 흑인이 자신에게 먼저 손을 쓰길 바랬다. 그래야 싸움의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먼저 주먹을 쓰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지존 앞에 우뚝 선 흑인은 왠걸,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미안. 저 여자는 이름 베티. 내 이름은 샘록. 그리고 우리 단장은 마크.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이다. 아까 쳐다본 것, 미안. 그리핀 잡았다길래, 신경 쓰였다. 베티, 성격 더러워. 내가 대신 미안하다. 우리는 너랑 얘기 하고 싶었던 것 뿐. 시간 되면, 같이 이야기 하자.”
“여기 말은 아직 익숙하질 않은 것 같군.”
“응. 맞아. 어려워. 아직.”
지존은 그렇게 마크 일행이 있는 곳에 앉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중원에서 청년 시절을 보낼 때에도 별 시정잡배 같은 놈과 시비가 붙었는데 알고 보니 호걸인 경우가 있었다.
샘록이라는 흑인에게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는 베티에 대해 거듭 사과하며 어떻게 그리핀을 잡았는지 물었다.
마크는 그리핀에 관련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입을 닫았다. 속이 끓는, 무언가 기분 나쁜 응어리가 목구멍 안에 엉겨붙어 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화제가 그리핀으로 옮겨간 건 잘된 일이었다. 길리엄과 프레데릭의 공이 컸다고 말하기 좋은 때였다. 그건 실제로도 맞는 말이었다.
프레데릭은 화살에 복숭아를 끼워 날려 주었다. 터무니 없고 어이가 없는 요구를 받아들여준 것도 놀랍지만, 제일 놀라운 것은 활의 사정거리였다.
대막(大?)이나 대초원(大??)의 숙련된 궁수도 그렇게 멀리 화살을 날리는 건 힘들었다. 게다가 그건 화살 뿐만이 아니었다. 주먹보다도 큰 복숭아를 같이 날렸는데,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길리엄이라는 검사랑 프레데릭이라는 궁수가 다 한 일이지. 나는 운 좋게 그들과 함께 한 공밖에 없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베티가 끼어들었다. 샘록이 무언가 말하려 하는 것을 당차게 끊어내고서 말이다.
“그래? 그런 대단한 사람이 있단 말이야? 그거 잘 됐는데? 오빠도 그렇고, 그 두 사람, 우리한테 들어와. 마크는 요즘 큰 건을 하나 하고 싶어 한단 말이야. 사람이 필요하거든. 그렇지 마크?”
마크라는 사내는 턱을 괴고 있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그들을 향하지도 않았다. 창문도 없는 협회의 건물 안에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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