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묘한 인간.
* * *
여시종은 따끈한 차를 내왔다. 차의 재료는 꿀에 절인 과일 같은 것으로, 향이 강했다. 그 강한 맛이 나쁘지 않았다.
"목이 비틀려 죽었다는 것까지 이야기 했지? 그러면 그건 누가 죽인 건가?"
붕붕이를 데려온 이유에는 녀석을 혼자 둘 수 없다는 것이 있다. 그게 가장 큰 이유이지만 둘째로는, 녀석을 보여주고 붕붕이를 포획하다가 그만 죽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직접 목을 꺾었다고 말을 하기엔 부모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허나 그렇게 생각한 것도 기우였는지, 판텔로프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지존은 생각 끝에 붕붕이를 팔아먹지 않기로 결정했다.
무엇이듯 꿰뚫어 볼 것 같은 냉철한 눈빛은 거짓말이라는 것도 금새 알아낼 것만 같았다.
"내가 죽였소."
"..."
그 말에 판텔로프의 눈썹이 작게 떨렸다. 그러나 침착함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는 아편 연기를 빨아 삼키더니, 인상을 쓰며 질문했다.
"당신이 날 찾아온 시점에서 예상은 했는데… 막상 귀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야… 이미 죽은걸 되돌릴 수는 없지. 그런데…”
그는 지존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구렁이가 나무 뒤에 숨어 사냥감을 바라보는 듯한 끈적하고도 징그러운 시선이었다.
그는 마치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듯 했다. 말투도 느릿하고, 행동도 느릿했다. 이 역시 아편의 작용이라 생각하고 넘길만한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한 위화감…
입 안에서 무언가 쓴맛이 맴돌았다.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징그러울 정도로 침착한 판텔로프다. 그에게 생리적 거부감을 느끼는 것인가?
그가 분노하고, 억울해 하고, 고통스러워 하길 내심 바라는 거였나?
쓴맛의 원천은 어디서 나타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유적 표현이었을 뿐인가? 씁쓸한 감정이 자아내는 공감각인가?
판텔로프의 움직임 없이 고정된 눈은 꼭 뱀의 눈 같았다.
싸늘하게 쳐다보는 뱀눈의 응시를 느끼며 도저히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떨쳐내려 할 때, 지존은 깨달았다.
입안에 오묘하게 감도는 쓴맛은 기분 탓이 아니라는 것, 꿀에 절여진 새콤달콤한 차는 자극적인 맛으로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함이라는 것, 지금 자신은 중독 되어 가고 있다는 것도.
‘몽혼약!’
중원에 있을 때에도 몽혼약에 당해 일을 그르친 적이 있었다. 씁쓸한 맛이 그 때의 기억까지 되살려, 지존을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즉시 품 안에 있던 단도를 꺼내 판텔로프를 향해 뛰었다. 옆에 있던 붕붕이는 자신의 주인이 별안간 뛰어오르니 자신도 흥분해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펼쳤다.
“수작질을 해?!”
단도가 판텔로프에게 닿기도 전에 그의 뒤에서 두 자루의 창이 튀어나왔다. 역시 판텔로프의 뱀 같은 눈은 믿고 있는 구석이 없는 자가 따라할 만한 눈빛이 아니었다. 독니 같은 한 쌍의 창은 각각 지존의 목과 심장을 노린 채 멈추었다.
여유롭다는 듯 아편을 깊게 빨아들인 판텔로프가 손짓했다. 그러자 창은 뒤편의 베일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미안하게 됐군. 약을 먹인건 사과하네, 일단 칼을 좀 내려놔. 다시 대화를 좀 하자구.”
“미안하다고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오!”
지존이 화를 내자 판텔로프의 뱀같은 눈은 다시 한번 미동도 없이 그를 쳐다 보았다.
“그럼, 네가 내 아들을 죽인 건 될 일이고?”
“그건 정당한 행동이었소! 자고 있는데 검으로 내 심장을 쑤시려고 했다고! 잠결에 반격하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된 거였지! 따지고 보면 당신 아들이 자초한 일이고, 사과 받아야 할 건 나라고! 그리고 날 죽이려던 게 이거 한번 뿐인 줄 알아!”
지존이 소리를 질러 대어도 판텔로프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보통 실력이 아닌 것 같군.”
느닷없이 평가질을 하는 판텔로프의 말이 어이가 없었다.
“...”
“보통 실력이었으면 루돌프를 죽인게 큰일이었겠지만, 보통 실력이 아니니 필시 무언가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겠군.”
“...? 뭐라는 건가? 지금 말장난 하자는 거요?”
판텔로프는 지존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그의 말 뜻은 이러했다.
지존처럼 실력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루돌프 같은 사람과 사사로운 시비를 가릴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게 판텔로프의 뜻이었다. 물리력의 차이가 심하게 나니 홧김에 싸우다가 죽였을 리는 없을 것이었다.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상대와 굳이 죽음으로 승패를 가르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따라서 판텔로프는 필시 사고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사로운 것으로 싸워 죽였으면 제 자신이 부끄러워 도망을 치거나 할 일이지, 이렇게 찾아 오지는 않을 테니까.
판텔로프는 지극히 논리적인 인간이었기에 지존을 뱀눈으로 쳐다보며 이런 계산들을 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화내지 않고 무표정하게 아편이나 빨던 이유는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루돌프는 판텔로프에게 있어서 아픈 손가락, 아니 그 정도의 위치도 되지 못했다. 루돌프는 아둔해서 장래성이 밝아 보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감정적이고, 사리분별이 능하지 못했다.
언제 죽어도 신경 쓰지 않을 녀석이었다.
또 한가지, 루돌프는 자신을 판텔로프의 외아들이라며 떠들고 다니거나 행패를 부렸다. 그러나 이것은 맞는 말이면서, 틀린 말이었다.
판텔로프는 첩 사이에서 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이는 총명하고 무예에도 소질을 보이는 팔방미인이었다.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하지만 그 떡잎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고로 판텔로프에게 있어서 루돌프는 그저 화분에 피어난 잡초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녀석이 조용하기라도 하면 몰라, 틈만 나면 가문의 이름을 팔아 행패를 부리니, 언제든 죽어도 좋을 녀석이었다.
판텔로프와의 기나긴 설명 후에, 또 다른 설명이 이어졌다.
“그래서 몽혼약을 탄 이유는 뭐요? 뭐, 기절하면 만두로 만들어 팔기라도 하려고 했소?”
“... 그거 재밌군. 다음엔 그렇게 한번 해 봐야겠어.”
“...”
“농담이고, 나한텐 아주 사랑스러운 딸이 있거든.”
뜬금없이 딸 이야기라니, 순간 판텔로프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딸…?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딸이 괜찮은 남자를 찾으면 좀 기절 시켜서 묶어 놔 달라고 했거든. 그래서 딸의 부탁을 들어 주려고 했지 말인가.”
욕지거리라던가, 한탄이라던가 하는 것이 단전에서부터 끓어 올라 소리칠 뻔 했다. 지존은 화를 가라앉히더니 말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 얘기를 들어 보니, ... 난 이제 가도 되겠소?”
“그거야 당신 마음이지. 또 오게나. 다음엔 기절 시키려 하거나 하지 않을 테니. 필시 딸이 좋아할 것 같아.”
“...”
판텔로프는 크게 소리쳤다.
“손님 가신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창을 꺼내 겨누었던 사내 둘이 베일을 걷어붙이고 나와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평상시엔 늘 베일 뒤에 숨어 그를 지키고 있는 사내들인 듯 했다.
지존은 판텔로프의 기묘한 인간성에 감탄하며 집밖을 빠져나왔다. 저런 인간이라면 아들이 루돌프처럼 이상한 녀석이 되는 것이 필연적인 일이라며, ‘루돌프도 나름 피해자였군.’ 같은 사람 좋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괜히 쓸모 없는 일에 열을 올린 것 같았다. 아편 향기로 자욱한 방에 있는 것도 고역이었거니와, 판텔로프라는 인간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처럼 여겨지질 않았다. 꼭 뱀이 사람 가죽을 뒤집어 쓰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루돌프의 죽음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것으로, 길리엄과 프레데릭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 기뻤다.
프레데릭은 일이 틀어진 것에 크게 낙심했었고, 루돌프가 죽은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겼다. 판텔로프의 반응 여하에 따라 즉시 다른 마을로 도주할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으니 참 다행인 것이다.
세상엔 판텔로프처럼 나쁜 의미로 기이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또 그와 반대되는 의미로 기묘한 인간이 있기 마련이었다.
피에르는 지금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핀 알을 구한다며 떠나기 전, 그에게 돈을 좀 쥐어주었었다. 항상 노숙을 하고 먹을 것도 대충 걸식하며 지내는 피에르였다. 자신이 없는 동안 여관에서 지내며 좋은 음식을 먹으며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 돈이었다. 중원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시주였다.
(*시주?? :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절이나 승려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는 일.)
배움이 상당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학식이 깊은 사람이 그렇게 지내는 꼴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원에서 살아갈 때에도 여러 사상가들을 만나 보았던 지존이었다. 그가 마지막에 몸 담았던 마교에서도 피에르처럼 맑은 생각을 가지고 여러 대중을 돕겠다는 마음을 지닌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제일 마음에 드는 집단이 마교였음에도.
붕붕이의 등에 올라타 여관으로 향했다. 이 마을에 도착해서 처음 묵었던 여관이었다. 로즈를 처음 만났던 곳이었다.
졸고 있는 여관 주인을 깨워 피에르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일전에 루돌프에게 얻어 맞고 기절했던 바로 그 사내였다. 그러나 여관 주인도 그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아마도 뒷골목이나 어디 마굿간 같은 곳에 있지 않을까요?”
“여기선 하루도 묵지 않았소?”
“코빼기도 안 비췄죠. 원래 그래요. 아, 고아원? 그쪽에 있을 것 같긴 하네요. 사실 고아원은 말이 좋아 고아원이고, 그냥 널빤지 대충 기워둔 판자집이요. 한번 가 봐요. 위치가 어디냐며는…”
여관 주인의 설명대로 고아원으로 향했다. 붕붕이를 타고 하늘을 날아 갔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니 ‘널빤지 대충 기워둔 판자집’ 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곳에 내려 주위를 살피니 어느새 꼬맹이들이 꺅꺅거리며 주위를 뛰어다녔다. 동양인의 얼굴을 한 사람은 자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핀도 난생 처음 봤을 것이다. 꼬맹이들은 처음 보는 사내가 나타나니 흥분해서 붕붕이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다가왔다.
붕붕이는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입질을 했는데, 즉시 지존에게 얻어맞고는 얌전해졌다.
“우와! 아저씨 뭐예요? 왜 왔어요?”
한 꼬맹이가 붕붕이의 깃털을 만지며 물었다.
“피에르라는 사람 찾으러 왔다. 피에르 어디 있냐?”
“피에르 아저씨요? 그 아저씨 지금 나무 아래에 앉아 있어요. 이 시간쯤이면 항상 그래요.”
“안내 좀 해 줘라.”
지존은 꼬맹이의 옷을 잡고 들어올려 자신의 앞에 두었다. 꼬맹이를 등에 태운 붕붕이는 영 마음이 상했는지 움직이려 하지 않았지만, 지존이 살짝 꼬집자 긴 한숨과 함께 걸음을 떼었다.
꼬맹이의 안내를 따라 어느 고목으로 갔다. 나무 아래에는 꼬맹이가 말한대로 피에르가 앉아 있었다. 그는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원체 몸이 마른 피에르였으나 지존이 모험을 하는 도중 제대로 먹질 않은 것인지 더욱 말랐다. 그의 모습은 지존이 중원에 있을 적 승려에게 잠시 들었던 ‘고행하는 석가모니’ 와 유사할 정도로 말랐다.
승려가 읽어준 경전에서의 석가모니 묘사는 이러했다.
“살갗은 익지 않은 오이가 말라비틀어진 것 같았으며, 수족은 갈대와 같았고, 드러난 갈비뼈는 부서진 헌 집의 서까래와 같았으며, 척추는 대나무 마디와 같았다. 뱃가죽을 만지면 등뼈가 만져지고, 몸을 만지면 몸의 털이 말라 떨어졌다. 해골이 드러나고, 눈이 깊이 꺼졌으며, 일어서려면 머리를 땅에 박고 넘어졌다. 그러나 오직 눈만은 깊은 우물 속의 별과 같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