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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지존은 서역에서 다시 산다-47화 (47/56)

〈 47화 〉 아편향???.

* * *

닭 한 녀석이 기운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산발적인 닭의 울음이 들려왔다. 그걸 들은 붕붕이도 숨을 들이켜 거센 소리를 내려 했으나…

“이런! 이 녀석아! 네놈이 소리치면 마을 사람들 기절한다!”

지존 자신도 모르게 부리를 움켜쥐었다. 녀석은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은 채 풀이 죽었다. 윽박지르고 혼내는 것으로만 붕붕이를 다루려다 보니 녀석은 분을 삭히느라 속이 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랴, 붕붕이는 지존이 묶어둔 끈에 목이 걸려 오라는 곳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릴리아에게 있어서도, 처음에는 사냥감 쯤으로만 여겼던 지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주인이라 여기고 섬기게 된 것이었는데, 이것은 붕붕이가 현재 느끼는 감정과 사뭇 달랐다.

붕붕이는 그야말로 마지못해 지존을 따르는 것이었다. 지존 또한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라, 오늘은 녀석에게 살아 있는 생고기를 줘야겠다 생각했다.

그 덕에 붕붕이는 오늘 지존을 따라 나설 수 있었다.

본래 계획은 화원에 붕붕이를 두고 일을 보는 것이었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그게 될리가 없었다. 여인들만 가득한 곳에 그리핀을 두고 간다니, 녀석의 머리에 천을 씌우고 밧줄로 꽁꽁 묶어 둔다고 한들 여인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 것이다.

여린 마음씨를 가졌을 것 같은 팡틴이 눈사람처럼 꼼짝 않고 서서 얼어붙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리핀을 데리고 마을을 활보하기가 영 꺼려지긴 했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루돌프의 아버지를 찾아 갔을 때, 루돌프의 희생으로 이 녀석을 생포할 수 있었다며 보여 주기에도 참 좋을 것이었다.

"다녀오세요."

릴리아가 지존을 반겨 주었다. 붕붕이가 무서워 가까이 다가오진 못했다.

"꼭 아내랑 신혼살이 하는 것 같군. 이른 시간이니 더 자둬. 서큐버스도 잠이 필요할 것 아니더냐."

"앗… 네, 네…"

다시 한번 귀까지 달아오른 릴리아를 뒤로한 채 화원을 나섰다.

이른 새벽인지라 사람은 그닥 보이질 않았다. 길을 걷다 보면 몇몇 부지런한 상인들이 바닥을 쓸고 있거나, 걸레 빤 물을 버리고 있거나 했다.

그들은 모두 그리핀이라는 것을 난생 처음 본 것인지라 비명을 지를 듯한 표정이 되었다. 붕붕이의 머리에 천을 씌워 놓아 망정이었지 아마 눈이라도 마주쳤으면 비명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한참을 잘 따라 오던 붕붕이는 불현듯 걸음을 멈추었다.

"응? 갑자기 왠 고집이냐? 붕붕아! 얼른 가자!"

피오, 피오, 피오­.

붕붕이는 거칠게 숨을 쉬었다. 머리에 씌운 천이 콧구멍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지길 여러번, 지존은 녀석이 왜 걸음을 멈추었는지 깨달았다.

짐승 냄새, 그리고 계분(닭똥)냄새였다.

"너 배가 고프구나. 그래 알았다. 너 나한테 잡히고 나서 맛대가리 없는 육포만 먹었지. 오늘은 싱싱한 고기 맛좀 보아라."

골목 끝자락에 퍼덕이는 닭 소리가 들려왔다. 집주인이 아침에 먹을 요량인지 알을 꺼내고 있는 것이었다.

지존은 그를 향해 걸어갔다.

“좋은 아침이오 선생. 닭이 참 싱싱해 보이오.”

“응? 안녕하쇼? 어느 동네서 오셨, 응? 이잉? 히에엑! 그, 그거 뭐요? 몬스터? 이히익!”

계란을 꺼내던 와중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 주인은 닭장 천장에 머리를 쳐박았다.

꽝!

그 소리에 놀란 닭들은 사방팔방으로 푸드덕대기 시작했다. 한 녀석은 주인이 열어둔 문 틈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닭의 운명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조금 덜 놀라는 성격이라, 주인장이 큰 소리를 내건 말건 닭장 안에 가만히 있었더라면 삶을 좀 더 이어갈 수 있었을 텐데.

붕붕이의 머리를 감싼 천은 좀 전에 벗겨둔 상태였고, 닭이 뛰쳐나가는 것을 보니 붕붕이는 눈동자가 확장되며 흥분했다.

덥썩! 까득!

뼈가 부숴지는 소리가 나더니 바닥에 남은 것은 닭의 꽁지깃 조금, 닭발 두개 뿐이었다. 날카로운 부리가 꽁지와 다리의 윗부분만 절단해 먹어버린 것이었다.

주인 얼굴은 새파래져선 그대로 굳었다. 한 몇초가량 정지했을까, 주인은 대번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 사람이! 남의 닭을 그렇게 먹어 치우게 하면 어떡한담! 물어내시오!”

지존은 생긋 웃었다.

“미안하오. 혹시 씨암탉이오?”

“아니…! 그건 아닌데! 그게 뭔 상관이란 말이야? 돈 내놓으시오!”

지존은 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며 큼직한 은전 하나를 꺼냈다.

“닭 좀 사려고 했는데, 이 녀석 성미가 급해서 흥정도 전에 먹어 버렸군. 미안하오. 닭 두 마리만 더 꺼내 주겠소? 이 정도면 값이 될 것 같은데.”

닭 주인은 은전을 받곤 공손해 지더니, 얼른 닭 두마리를 더 꺼냈다.

붕붕이는 단숨에 두마리를 삼켜 버리더니, 만족스러운 듯 새소리를 냈다.

“저거 그리핀이오? 어디서 난 게요?”

“잡아 왔소. 한번 키워 볼까 해서 말이지.”

“엄청나게 잘 먹는구만. 식비 감당이 안 되것소. 한 마리 더 드리오? 모자라 보이는데.”

“됐소. 그나저나 루돌프라는 사람 아시오? 나 그 사람 집에 좀 가야 하는데. 판텔로프의 외아들이라던가?”

닭 주인은 루돌프라는 사람의 이름을 듣자 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녀석은 마을 내에서 영 평판이 좋지 않은 녀석인 듯 했다.

“루돌프라구요? 그 망아지 같은 놈?”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 보며 듣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 하고 말을 이었다.

“아주 빌어먹을 놈이지. 저번에는, 시장 상인들한테 자릿세를 걷는답시고 깽판을 놔서 좌판이 다 부숴지고 아주 지랄 났었다 이 말이오. 거 새끼 집은 왜 간답니까?”

“그런 일이 있소. 그 사람 집 위치가 어디인가?”

닭 주인은 설명을 했다. 시골 아저씨 특유의, 묻지도 않은 자질구레한 것까지 말하는 그에게 붙잡혀 십여분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번엔 여기서 닭을 사긴 영 아니겠군.’

지존은 그렇게 생각하며 붕붕이를 끌고 루돌프의 집으로 향했다.

꽤 저택이라 할 만한 곳이었다. 문지기 둘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지존과 그리핀을 보고서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말을 걸었다.

“동방에서 오셨나요? 그건 그리핀이구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렇소. 중원에서 왔소. 그리핀 맞소. 루돌프 관련 이야기가 할 것이 있어서 아침부터 오게 되었소만.”

문지기 둘은 이마를 쓸어내리더니 둘이서 작게 소곤거렸다.

“그것 참. 또 뭔가 무슨 일이 있었나보구만.”

“판텔로프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여는데, 지존은 너무 쉽게 문을 열어 주는 것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부잣집 주인을 만나려면 문 앞에서 사정사정 해야 한번쯤 봐주고 그러는 것 아니던가.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거요? 뭐 신분 검사 같은거 안 하오?”

문지기는 으레 듣는 질문이라는 듯 시큰둥하게 답했다.

“뭘요, 주인님께서 동방 분들이 오면 그냥 문을 열라고 하셨습니다요. 상인 분들이랑 친하게 지내야 한다시던가요.

“... 그렇군. 수고들 하게.”

“예.”

마당에 나와 무엇인가를 나르고 있던 여시종을 불렀다. 그녀에게 판텔로프를 만나러 왔다 하니 안내를 자처했다. 그녀 또한 문지기들과 마찬가지로 붕붕이에게 전혀 놀라지 않았다.

여시종이 데리고 간 곳에서는 멀리서부터 감초향 비슷한 탄내가 났다. 단내음 같기도 하면서 한약방 같은 냄새가 났는데, 한번쯤 맡아본 향이었다.

“주인님, 손님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 해라.”

조금 뚱뚱한 체구의 남자. 한 눈에 봐도 부자처럼 보였다. 언뜻 보면 루돌프의 얼굴이 보였으나, 그보다는 나았다. 그는 양피지에 쓰여진 글들을 보며 아편을 피우고 있었다. 기묘한 향취는 아편을 태우는 냄새였던 것이다.

판텔로프는 양피지 뭉치를 ‘텅’ 소리 나게 덮고는 지존을 바라봤다.

“상인이오? 아침부터 무슨 일이오?”

지존은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극히 드문 그였으나, 자식을 잃은 부모 앞에서라면 예의를 차려야 할 것 같았다.

“아들 일로 왔소.”

판텔로프는 여시종을 가리키곤 말했다.

“아가야! 마실 것 좀 가져오너라.”

여시종은 문을 닫고 나갔다.

“아편 좀 하겠소? 이런 것 좋아 하는가?”

그는 선심 쓰듯 아편을 건네 주려 했는데, 지존은 거절했다. 그가 고개를 숙인 까닭과 마찬가지로 자식 잃은 부모 앞에서 아편을 하고 싶은 생각은 일절 없었다. 애초에 그런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약물을 싫어하기도 했고.

“먼저 사과부터 하고 싶소. 판텔로프 경.”

진중한 목소리의 지존이었다. 그것을 들은 판텔로프는 깊게 아편을 한모금 빨곤 손사레를 쳤다.

“잠깐! 푸후… 잠깐만. 아들 얘기인데, 사과부터 한다라…? 흠…”

연기가 어느새 방 안을 가득 에워쌌다. 그는 말을 이었다.

“추측컨데, 예사 일은 아닐 것 같군. 아침부터 온 것도 그렇고. 그래, 그 놈 죽었다던가? 멍청한 아들놈.”

얘기를 듣지도 않고 상황을 파악해버렸다. 아침부터 아편이나 하는 얼빠진 부자인 줄 알았으나 생각 외로 머리가 비상한 사내였다.

지존은 자신이 말 하려는 것을 대신 말해버린 판텔로프 때문에 벙 찐 느낌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내 추측이 맞는 모양이지? 얼마 전에 모험을 떠난다니 어쩐다니 떠들어 대구선 그 뒤론 보이질 않더니, 모험을 떠나서 뒈져 버린 것 같구만.”

“...”

“자넨 아마 그 모험을 같이 떠난 사람인듯 하고. 내 말이 맞는 건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몇가지의 상황 만으로도 보지 않은 것까지 추측해내는 것에 있어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쉽게 말해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인 것이다.

“그렇소.”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에 비해 판텔로프는 상당히 차분했다. 어쩌면 아편의 작용으로 감정이 분출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나, 결코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아편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와중에도 그의 눈빛 만큼은 제대로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죽었는가? 자네가 본 건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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