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뉴 비즈니스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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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아는 입을 떼었다가도 다시 침묵하길 몇차례, 망설임이 끊이질 않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 무언가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몸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내 그녀는 얼굴을 가렸다.
“어디 한번 보자꾸나. 뭘 부끄러워 하느냐?”
지존은 그녀의 손을 잡고 얼굴을 드러내었다.
*
그 때쯔음, 화원의 왕언니와 그 휘하의 어여쁜 여인들은 물론이거니와 평범한 아녀자들도 두려움이 최고조에 달하였다.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옆마을의 광기어린 살인마 날다람쥐 잭이 범행 장소를 넓힌 것이었다. 지존이 길리엄과 프레데릭, 루돌프를 만나 그리핀 알을 얻으러 떠난 이후로 벌써 두명의 여인이 희생되었다.
왕언니는 화원의 여인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주의를 주었다.
“발정난 똥개새끼가 우리 마을까지 영역 표시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왕언니의 말에 여인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앞으로는 무조건 세명이서 한몸이 되어 움직여야 해. 정신병자 잭은 혼자 있는 여인을 목표로 하는 것 같아. 아, 팡틴이랑 로즈는 내 쪽으로 와. 너희는 존이랑 친하잖아. 존이 돌아오면 셋이서 설득을 한번 해 보자고.”
로즈와 팡틴은 왕언니가 갑자기 함께 다니자고 하니 의아했다. 내심 기쁜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따지자면 왕언니는 직장상사이자 기업체의 회장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설득이요? 어떤 설득 말인가요?”
“그건 따로 셋이서 이야기 하자꾸나.”
*
지존과 릴리아는 붕붕이에 올랐다. 붕붕이는 등에 지존을 올리는 것도 그닥 달가워 하지 않는 눈치였는데, 거기에 릴리아까지 올리니 성질이 뻗쳐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피오오! 피오!”
붕붕이의 성질머리를 드러내는 괴조음에 릴리아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비명은 하늘을 날 때 더욱 심해졌다.
“흐아아아! 주인님! 주인니이임! 좀! 좀만 천천히 날 수는 없나요오오오!”
지존은 릴리아의 볼을 쭈욱 늘여 꼬집으면서 말했다.
“이 정도면 한참 느리게 나는 거다. 겁 먹지 말아라. 너는 내 거다. 내 것이 된 이상 너는 내 보호 아래에 놓여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다칠 일은 없을 거다. 있더라도, 너를 다치게 한 녀석은 내 손에 으깨지겠지.”
“흐우우…”
힘 조절이 잘 안된 탓일까 볼을 꼬집힌 그녀는 눈물이 맺힌 채 신음했다.
릴리아는 볼을 꼬집힌 것에 복수라도 하듯 지존을 꽉 껴안았다. 귀여운 복수이자, 하늘에서 떨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지존의 웃옷은 릴리아가 입고 있었다. 지존은 상의를 벗은 채 붕붕이가 인도하는 하늘길을 나아갔다. 앞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몸을 때리고, 뒤에서는 릴리아가 껴안은 탓에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좋은 감각이었다.
등에서는 그녀의 말캉한 젖가슴이 느껴지곤 했는데,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중원에서 말을 탄 일이 많고도 많은데, 이런 식으로 여인을 뒤에 태운 적은 없었던 것 같군. 게다가 말도 아니라 그리핀이라는 영물이라니. 그것 참…’
지존은 새로이 얻게 된 삶에 감사를 표하며 마을을 향했다.
*
한밤중이었다.
말을 탔으면 며칠을 더 걸렸을 것을, 과연 하늘을 날아가니 시간을 무척이나 아낄 수 있었다. 하늘 높이서 마을 위를 내려다보니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마을 대문을 지키고 서있던 병사들도 지존과 릴리아가 하늘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긴, 누가 이 밤에 하늘을 날아 마을로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할까. 경비병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로 두 몬스터, 그러니까 릴리아와 그리핀이 지나가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저기 저 건물이 화원이다. 보이느냐?”
“네 주인님. 저곳으로 들어갈 생각이신가요?”
“그래. 벌써 다 왔다. 내가 여인들과 이야기 하는 동안 최대한 공손하게 있거라. 내가 너를 화원의 여인들처럼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이니.”
“알겠습니다…”
붕붕이는 화원의 문 앞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녀석은 습관대로 괴조음을 울부짖으려 했다. 붕붕이의 습관을 지존이 모를 리 없었다. 지존은 녀석이 시끄러운 소리로 마을 사람들을 깨울까봐 염려되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닥치고 있으라는 무언의 눈빛. 지존이 붕붕이를 노려보여 손을 올리니 녀석은 꿀밤 맞는 것이 고개를 숙인 채 잔뜩 풀이 죽었다. 그리핀은 땀샘이 없어 땀을 흘릴 수 없었지만, 녀석의 표정은 꼭 정신적인 식은땀을 흘리는 듯 했다.
“그래 그래. 마을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 하는 거야. 잘 했다.”
지존은 가방을 뒤져 육포를 던져주곤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똑똑.
한밤중인지라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이전에 화원에 방문해본 적이 있기에 건물의 구조를 아는 지존이었다. 그는 골목쪽으로 들어가 창문을 두들겼다.
똑똑똑.
“이보시오. 누구 깨어 있는 사람 없소? 이보시오!”
몇차례 창문을 두들기니 안에서 사람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한차례 침묵이 있더니 창문 안쪽에선 비상이라도 걸린 듯 호들갑을 떨었다.
“히익! 잭? 날다람쥐 잭이 온 것 아니야? 세상에! 하느님 맙소사!”
여인들 몇이 등불이 켜고 창가에 다가왔다. 여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헉.. 하나… 둘… 셋! 하면 커튼을 여는거야!”
뭐 저리 소란들인지 지존은 알 겨를이 없었다.
“아 그것 참. 나 이상한 사람 아닐세. 나 존일세 존. 이전에 왔었잖나.”
커튼이 젖혀지고 지존의 얼굴이 나타났다.
“끼아아아악!”
여인들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창문의 높이는 바깥 기준에서 꽤 높은 위치였다. 제 아무리 키가 큰 사람일지라도 창문에 얼굴을 들이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떡하니 사람 얼굴이 기다리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지존이 벽을 붙잡은 채로 매달려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탓이었다.
잠들어 있던 다른 여인들도 모두 일어나 창문으로 달려왔다. 개중엔 냄비 뚜껑과 국자를 들고 당장에라도 후려칠 듯 기세등등한 여인도 있었다.
“때…! 때릴거야! 당장 꺼지지 못해!”
“나라니깐. 존. 내 얼굴 아는 사람 없나? 왕언니를 좀 불러 주길 바라네. 아니, 문부터 좀 열어 주면 좋을 것 같군.”
한밤중에 달도 구름에 가려져 어두운 탓에 얼굴이 잘 분간되질 않았다. 여인들은 한참동안이나 수군대다가 왕언니를 불러왔다.
“존? 밤중에 왜…? 모험은 어떻게 됐어?”
“반갑네 비비안느. 일단 문부터 열어줘.”
왕언니 뒤에 서 있던 로즈와 팡틴도 손을 흔들었다. 팡틴은 생긋 웃은 채 누구보다 힘차게 손을 휘저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잠깐만 기다려. 대문으로 와.”
팡틴이 문을 열어 주었다. 팡틴은 문을 열자마자 지존에게 달려가 안길 생각이었는데 그 반대가 되었다.
왠 그리핀이 지존과 함께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깜짝 놀라 뒤로 폴짝 뛰어오르더니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리핀…! 그리핀? 그리핀이 왜 여기 있어?”
“반가워 팡틴, 로즈. 굉장히 실례되는 부탁이긴 하지만… 이 녀석이랑 같이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비비안느는 그리핀을 실내로 들이는 것이 굉장히 꺼림칙했지만 별 수 없었다. 저런 무시무시한 마물을 밖에 방치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붕붕이는 아직 성장이 멈추지 않은 작은 개체였기에 날개를 접으니 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복도에 걸려 있는 액자가 녀석의 덩치에 부딛혀 마구 떨어지려 하니 비비안느는 두통을 느꼈다.
“하아… 존… 반갑긴 한데… 그건 그렇고 데려온 그리핀 말고 다른 소개가 늦은 것 같은데?”
릴리아를 보고 말한 것이었다. 윗층의 비비안느 방에 들어가서 소개하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그녀의 심기가 여간 불편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지존은 비비안느에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존이 말을 끝마치자 그녀는 머리를 감싸며 읊조렸다.
“세상에… 존… 너는 정말 미친놈이야. 진정제라도 먹지 않으면 기절할 것 같아.”
“그렇게 됐어 비비.”
거슬리는 액자와 장식물을 모조리 넘어뜨리며 위층에 올라간 붕붕이는 제 집인 양 편안하게 쪼그려 앉았다. 두 사람의 무게와 짐을 짊어지고 하늘을 날았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녀석은 이내 고개를 꾸벅꾸벅 떨구더니 졸기 시작했다.
“피오… 피오오…”
잠꼬대를 하듯 조그마한 소리를 내는 붕붕이를 보니 세 여인도 안심할 수 있었다. 구석에 웅크려 졸고 있는 그리핀을 누가 맹수라고 생각하겠는가. 언뜻 보면 졸고 있는 병아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 말대로 잘 길들인 것 같네.”
비비안느가 한숨 쉬듯 말했다. 팡틴은 졸고 있는 붕붕이를 쓰다듬고 말했다.
“그런데 저 언니는 누구야? 얼른 옷부터 가져 와야 할 것 같네?”
“쉿, 팡틴. 소개하려던 참이겠지. 먼저 물어보는 건 실례야.”
로즈는 릴리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아랫층에 내려갔다. 팡틴은 미안하다는 듯 엉거주춤 서 있더니 붕붕이를 만지는 것에 집중했다. 붕붕이는 남이 자신을 만지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은 채 졸고 있었다.
이윽고 로즈가 돌아와 릴리아에게 옷을 입혔다.
“피부가 참 좋으셔요. 제 옷인데 맞을까 모르겠어요. 내일 옷을 사러 갈까요? 오늘은 이걸로 참아 주세요.”
릴리아는 로즈의 호의에 감동해 살짝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로즈는 그녀가 눈물을 가리려는 것을 보고 말없이 릴리아를 안아주었다.
“자, 존. 이제 로즈랑 팡틴에게도 소개 시켜 줘. 저분이 어떤 분인지 말이야.”
비비안느가 고압적인 자세로 팔짱을 낀 채 말하니 꽤나 무안했다. 지존은 머리를 긁적이며 로즈와 팡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 여기 이 여인은… 여인이라고 해야 할까…? 음… 서큐버스야. 어쩌다 보니 만나게 됐고, 어쩌다 보니 날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하는군.”
팡틴은 그녀 특유의 크고 동그란 눈이 더욱 커지더니 슬금슬금 로즈 뒤에 숨었다. 로즈도 팡틴과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듯 했으나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서큐버스라는 종족은 우리 인간이랑 잘 어울려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은 거야. 게다가 날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한 이상… 초원 속 동굴에 방치해둔 채로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고…”
비비안느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이야기 해 보라는 뜻이었다.
“내 계획은, 우선 이 아이 이름부터 말할까? 릴리아라고 해. 자 릴리아 다시 한번 인사하도록 해라.”
릴리아를 비비안느의 눈치를 살피며 주춤거린 채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 분을 주인으로 섬기기로 맹세한 서큐버스 릴리아입니다…”
“그래. 그래. 릴리아. 잘 했다. 다시 말하자면, 내 계획은… 서큐버스라는 존재는 남자의 정기를 취하며 살아가는 존재잖아? 나는 처음 알게 된 거지만, 다들 알고 있었지?”
팡틴과 로즈가 말했다.
“실제로 서큐버스라는게 존재하는 건지는 몰랐어…”
“맞아 맞아. 그냥 변태 아저씨들이 야한 꿈 꾸고 나서 핑계거리로 하는 소리인 줄만 알았지.”
“계속해줘 존.”
“그래. 사내의 정기를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몰래 훔치는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화원에서 일하면 자연스레 정기도 얻을 수 있고, 화원에 방문한 사내들은 미녀와 동침할 수 있으니 좋고… 누군들 손해 보지 않는 좋은 장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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