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지존은 서역에서 다시 산다-40화 (40/56)

〈 40화 〉 괴력의 찬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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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뚫고 말을 달리는 거한이 있다. 그 몸체는 여느 건장한 남성을 압도할 정도였고, 선 키는 보통 남자 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굵직한 손목을 따라 올라가는 팔뚝은 통나무가 연상되었다. 다만 특이한 사항이라면 사내 답지 않게 피부가 매끈하고 체모가 도드라지질 않았다.

꽉 다문 턱은 농축된 분노 같은 것이 서려 있었는데, 누군들 쉽사리 말을 걸고 싶지 않아지는 모양이었다. 성난 이를 건드려 좋을 것이 있으랴.

온 몸을 뒤집어쓴 후드는 빗물이 가득 흘러내리고 있었다. 표면을 미끄러지며 내려간 빗물들은 말의 등을 적셨고, 말의 따뜻한 체온은 빗물을 김으로 바꾸고 있었다.

도로에는 자갈이 드러나고 빗방울은 계속 눈알을 때리는데, 이런 여행은 누구에게나 사절이다. 말의 입장에서도 그랬다. 등에 타고 있는 사람이 야속한지, 자꾸 걸음이 꼬였다.

진창을 건너는 것이 기분 나쁜 것은 물론이요, 등에 올라탄 이는 사실 주인도 아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찬드라 타파사.

중원에서 서쪽으로, 남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당도하는 거대한 산맥을 뒷편에는 천축이라 불리우는 땅이 나온다. 그 산맥의 험준함은 높고도 거대해서, 하늘을 가르는 칼날처럼 보일 지경이다.

구름을 뚫고 달까지 찢으려 하는 봉우리와 그 근처의 창같이 솟은 땅에서는 물이 흘러 천축의 평야까지 적신다. 그런 산의 기운을 머금기라도 했는지, 강 하구의 땅은 옛부터 수많은 인구를 부양했다.

찬드라는 그 곳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출났다. 산의 물이 앞서 말했듯 기운을 머금고 있는 것이 맞다면, 그 기운은 찬드라에게 몰려간 것이 분명했다.

“찬드라는 산도 뽑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들은 말이었다.

*

찬드라 타파사는 여인이다.

찬드라의 어린 시절부터, 그리고 비를 맞으며 말을 달리는 때까지의 간략한 생애이다.

위로는 오빠만 셋, 아래로는 여동생 둘과 남동생 하나. 벌이가 시원찮은 찬드라의 아버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식만큼은 부자였다.

그래도 그 심성은 어질고 선하여서, 빈곤함을 깔보는 이는 있던들 심성을 흉보는 이는 없었다.

오빠 셋은 모두가 장사여서, 셋이 모이면 골목의 미친 개도 꼬리를 말고 줄행랑을 쳤다. 큰오빠가 열살쯤 되어서는 동네 꼬마들의 대장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말썽꾸러기 형제 삼인조에 왠 꼬마애가 끼어들었는데, 그게 바로 타파사였다.

“야아! 지지배가 집에서 어무이 빨래나 도울 것이지 오빠들 노는거 방해 말어!”

큰오빠는 찬드라를 밀쳤는데, 걸음마 뗀지가 엊그제 같은 꼬맹이가 밀리기는 커녕 장승마냥 땅에 붙어 있는 것이다.

자존심 상한 동네 골목대장 큰오빠가 이대로 물러서랴, 얼굴이 벌게지게 성을 내곤 어깨를 밀어부쳤다. 왠걸 꿈쩍도 없었다. 나중엔 분을 못 이겨 주먹을 들었는데,

“오빠보다도 싸움 잘 하는데! 왜 나랑은 안 놀아줘!”

타파사는 소리를 빽 지르곤 큰오빠의 턱을 후려쳤다. 큰오빠는 일격에 혼절, 나중에 깨어난 큰오빠는 부모님께 타파사를 이르지도 못 했다.

여동생에게 쳐맞고 기절했다는 걸 아버지가 알게 되면 아버지는 아마 웃다가 배꼽이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큰오빠의 턱을 후려친 것으로 처음 알게된 남다른 힘은 동네 꼬마들에게도 가차 없었다. 수많은 개구쟁이들을 혼절시키고 나서야 찬드라는 오빠들과 함께 어깨를 펴고 골목을 누빌 수 있었다.

여타 여자아이들의 어린 시절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찬드라의 오빠들은 여동생보다 강해지기 위해 마음가짐부터 남달랐다. 오빠들은 옆 마을에 있는 파사(??. 페르시아.)식 체력 단련장에 매일같이 뛰어가 훈련을 하곤 했다.

여자는 수련할 수 없는 곳이었는데, 오빠들을 보내고 골목에서 심심한 시간만 보내길 몇개월, 찬드라는 결심을 했다.

“아 나도 배울 거예요. 오빠들보다 힘도 센데 왜 나만 안 된대요?”

단련장의 관장 아저씨는 기가 찬다는 말로 거절했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너가 이걸 배워서 뭐에 쓰겠단 말이냐? 군대의 장군이라도 되겠더냐? 아니, 여인을 뽑는 군대도 있더냐? 소가 고기를 씹고 사자가 풀을 뜯는 소리구나.”

“그 여자가 누구보다 쎄면요?”

“바위보다 큰 자갈이 있겠느냐?”

“아저씨야말로 남자답질 못해요. 말로만 이러저리하고. 보여 주면 되잖아요. 바위도 무서워 하는 자갈이 있을 수도 있다구요.”

그렇게 말한 찬드라는 마치 중원의 씨름꾼이 솔교(??)를 걸듯 몸을 웅크렸다. 그녀는 관장의 발목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들어올려 버렸다. 나뭇가지를 쥐어 올리는 듯 가벼웠다.

뒤켠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오빠들도 턱이 빠질 듯 헉 소리를 냈다. 천장에 머리를 부딛힐 뻔한 관장이 오빠들보다 훨씬 놀랐을 것이 당연했다.

그 일이 있고선 그 단련장에 여인이 출입하지 못하는 규칙 따윈 사라졌다.

훗날 누군가 그 일에 대해 물었을 때 관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씨팔, 천장에 머리 박을 뻔 했을 때 뭘 봤는지 알아? 시바신이 보였다고. 안 된다고 하면 내가 죽을 뻔 했지.”

그녀는 그렇게 유일한 여자 수련생으로써 지낼 수 있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려서부터 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던 찬드라에게 근력 단련이라는 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체육 활동 이상의 것이었다.

파사식 근력 훈련법을 가르치는 관장은 천축식 종합 무예인 칼라리 파야트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파사식 훈련으로 몸놀림이 잡힌 아이들에게 칼라리 파야트의 정수를 알려주곤 했다.

찬드라의 오빠들도 찬드라 만큼은 아니지만 용력이 뛰어났으니, 금새 무예 훈련도 시작했다. 타파사 4남매의 위용은 점점 높아져만 갔고, 찬드라의 이름도 어느새 마을과 마을을 거쳐 퍼져나갔다.

찬드라는 무예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파사식 훈련에서 오직 곤봉 훈련만을 고집했다. 관장은 그녀가 무예까지 가르쳐 달라고 하면 어쩌나 내심 골머리를 썩었었다(그는 도저히 여자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도 찬드라는 훈련장에서 묵묵히 곤봉만 휘둘렀다.

그렇게 건기와 우기가 뒤바뀌길 십수번. 큰오빠는 아내를 들여 벌써 아이를 두었고, 다른 오빠들도 모두 아내를 들였다. 그럼에도 뭉쳐 다니기는 멈추질 않았다. 용맹과 무력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는 4남매에겐 일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타파사의 집안은 그렇게 일어나는 듯 했다. 귀족들의 호위 임무를 맡기도 했고, 도적떼를 추적해서 멸절시키기도 했다. 인생에 순풍만이 부는 듯 했다.

“찬드라야. 너 이제 시집 갈 때도 되지 않았느냐?”

첫째의 말이었다.

“무슨 말이야 오빠. 나보다 강한 남자가 나오지 않으면 결혼 같은거 생각 없다고 했잖아.”

그녀는 곤봉을 돌리며 말했다. 수박이 연상되는 큼지막한 어깨는 아이 몸통보다도 큰 곤봉을 휘둘러도 끄떡 없었다.

따라서 운동하던 셋째가 말했다.

“평생 혼자 살래? 너보다 쎈 남자는 이 세상에 없을걸?”

“그럼 오빠들보다 쎈 남자는 있을 것 아니야?”

“푸하! 그것도 세상에 몇 없을텐데? 우리보다 강한 남자는 마을 몇개를 뒤져도 없을걸. 결혼하기 싫은 건 아니냐? 그래도 얼른 해야 한다. 여자는 나이가 좀만 지나면 금새 초라해진다. 제일 예쁠 때 시집 가야지.”

“크하하 큰형님 재촉하지 마쇼. 이런 근육 덩어리 선머슴애 같은 여자애한테 제일 예쁠 때라니. 제일 늠름한 때라고 해야 하지 않겠소?”

오빠들은 모두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찬드라의 얼굴은 벌게졌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곤봉을 툭 내던지니 땅이 울렸다. 그토록 무거운 곤봉이었다.

“오빠들 자꾸 그럴래? 내가 결혼 하는게 정말로 보고 싶으면…!”

찬드라는 말을 하다 말고 곤봉들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 곳에는 며칠 전에 새로 깎은 곤봉이 있었다. 그 곤봉은 아직 찬드라에게도 버거웠다. 크기는 성인 남성의 몸통보다도 커다랐다. 그녀가 방금까지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었던 건 이것을 들어보기 위한 준비 운동이었다.

찬드라는 손잡이를 움켜쥐곤 온몸에 힘을 가득 주었다. 빠드득 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찬드라의 오른팔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잠깐이지만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들려줄 무게가 아니었고 쿵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그녀는 두 손을 써가며 안간힘을 써서야 그 곤봉을 어깨 위로 올릴 수 있었다. 찬드라의 세 오빠들은 눈 앞에서 일어나는 괴력을 목격한 것으로 얼어붙었다.

찬드라가 말을 이어나갔다.

“이 곤봉을 들어 올릴 정도는 되는 남자여야 내가 사랑할 수 있다구. 이런 남자 어디 없어?”

어깨에 그것을 인 채 호령하니 누가 여동생이고 누가 오빠들인지 알 수 없었다. 과연 소문난 여장부 찬드라였다.

그 때에 홀연히 근처에서 못 듣던 음성이 들려왔다. 날카롭고 정제된 남성의 목소리였다. 목소리와 함께 피냄새와 같은 악취가 피어올랐다. 사신이 도래한 것이 아닌지 착각하게 되는 음산함이었다.

“도련님께서는 그 곤봉은 못 들겠지만, 금은이라면 그 무게의 갑절은 있을 것이다. 그런 사내라도 싫다는 것이냐?”

세 오빠들은 모두 깜짝 놀라 주먹을 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왠걸, 그 사내는 아주 가까이에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암행(?行)에 있어서 신기에 가까운 재주였다. 음산한 사내가 언제부터 자신들 근처에 있었는지 깨달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자식! 뭐 하는 놈이야! 타파사 4남매에게 원한이라도 있느냐? 어디서 떳떳히 모습을 밝히지 않고 쥐새끼마냥 몰래 나타나느냐?”

음산한 사내는 첫째의 호통에 즉시 겸손을 표했다.

“미안하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소. 나는 도련님께 부탁 받은 바 있기에 명령을 수행하러 왔을 뿐이오. 잠시 귀를 빌릴 수 있겠소?”

“헉!”

첫째 오빠가 거절의 의사를 표하기도 전에 음산한 사내는 첫째의 옆에 서더니 속삭였다. 눈 깜짝할 새에 근처로 다가오니 첫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도련님은… 가문의 적자… … … 인 것이오.”

음산한 사내의 귓속말이 끝나자 마자 첫째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을 동동 구르더니 넙죽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그러신 분이 찬드라를…?”

둘째는 팔짱을 낀 채 음산한 사내를 노려보며 경계했고, 셋째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며 성을 냈다.

“뭐야? 왜 갑자기 엎드리고 그래? 저 새끼 뭔데?”

찬드라도 셋째와 마찬가지로 소리쳤다.

“오빠? 왜 그래?”

첫째는 일어나자마자 셋째의 뒷통수를 움켜쥐고 사내를 향해 숙이게 했다.

“이 자식아 닥쳐! 귀하신 분이다! 찬드라! 너도 예절을 지켜라!”

첫째의 일갈에 동생들은 모두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숙였다.

*

수많은 여인과 동침하고, 몸에 좋다는 것, 나쁘다는 것, 즐겁다는 것, 불쾌하다는 것들까지 모조리 해 보고 나면 무력감이 찾아온다. 부자들이 때때로 느끼는 우울감에는 그런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찬드라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한 젊은 귀족이 음산한 사내를 시켜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오라 한 것이었다.

귀족은 성애(??)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고, 그곳을 부유하는 한 토막의 나뭇조각에 몸을 기댄 채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사정 후에 찾아오는 무력감과 똑같다.

풀 죽은 채 땅을 쳐다보던 막대가 다시 고개를 쳐드는 상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괴력을 지닌 여인을 마음껏 희롱하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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