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복숭아(?)가 하늘(?)을 날면 천도(??)복숭아인가.
* * *
프레데릭은 평상시에도 진지한 얼굴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목소리도 저음이고, 행동거지도 묵직한 사람인지라 그의 부탁은 왠지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좀 뒤돌아 있어 주면 좋겠어. 미안하네."
"... 안될 것 없지."
그가 꺼낸 나무 대롱(통아??, 덧살.)은 속이 빈 원통을 세로로 쪼갠 것처럼 생겼다. 굵기는 엄지손가락보다 살짝 두꺼웠고, 길이는 보통 화살과 맞먹었다.
곧이어 조그마한 화살을 몇개 꺼냈는데, 길이는 화살의 반의 반 정도 되었다. 길이만 짧을 뿐, 모양새는 여느 화살과 다름이 없었다.
일전에 그의 짐을 우연찮게 보게 된 이가 그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쓸모도 짧은 화살을 여러개 가지고 있으니 의문이 드는 건 당연했다.
'다트인가? 화살인가? 놀이용으로 만든 거야? 애들 주면 좋아하겠군.'
프레데릭은 깜짝 놀라서 얼른 그의 손에서 짧은 화살을 빼들곤 나무에 던졌다. 그것은 다트처럼 날아가 박혔다.
'그래. 다트야. 언제든지 활 쏘는 생각을 하고 연습을 해야 훌륭한 궁수가 될 수 있지. 활이 없을 때도 연습하고 싶어서 말이야.'
'호오… 그거 일리 있군 그래. 나도 하나 줘 보게 가지고 놀다가 돌려 주지.'
'...'
거짓말이었다. 그가 거짓말까지 해서 짧은 화살의 정체를 숨기는 까닭이 있었다.
'솔레나리온(Solenarion)' 숙련된 궁수 중에서도 소수만 알고 있는 기술이었다. 화살이 짧으면 시위에 오늬(활줄을 거는 화살의 홈.)를 물려도 소용이 없다. 눈먼 화살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쐈을 때, 궁수의 왼손이나 꿰뚫지 않으면 다행이다.
기형적으로 짧은 화살을 쏘기 위해서는 시위를 당길 때까지 위치를 잡아줄 도구가 필요하다. 프레데릭이 꺼낸 나무 대롱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서 활을 쏘면, 관통력과 속도 등에서 이점을 얻을 수 있다. 특히나 좋은 점이 있었다. 마주보고 있는 적을 방심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롱에 끼워 시위를 당긴 후 발사한다. 그 과정을 거치면 화살은 날아가고 덧살은 넘어지듯 떨어져 끈에 매달린다. 멀리서 보면 마치 발사에 실패해 화살을 쏘지 못한 것 같다. 짧은 화살은 일반적인 화살보다 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솔레나리온은 그것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하는 적일수록 효과가 좋다. 프레데릭은 그런 이유에서 짧은 화살을 다트라고 설명하며 넘어갔었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가 활을 쏘려고 할 때, 길리엄에게 뒤를 돌아 달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동료라 한들 모험이 끝난 다음에는 적으로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레데릭은 솔레나리온이라는 기술을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고 싶었다.
그러나 숲과 바위산의 거리는 일반적인 화살로는 도달하기 힘든 거리였고, 프레데릭은 솔레나리온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이 비기 외에도 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길리엄의 ‘바디 체인지’, 루돌프의 ‘팬텀 소드’ 같은 거창한 이름은 없으나 엄연한 스킬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은 무림에서 말하는 장풍과도 닮아 있었다.
장풍이라 하면 지존이 중원을 호령했을 때의 실력과 같이 고도의 내공을 쌓은 강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프레데릭의 기술은 그것과 비슷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는 화살을 쏘기 직전, 화살이 나아갈 방향으로 마나를 쏘아낸다. 마나를 응축하여 자그마한 구슬처럼 된 마나는 공기를 갈라낸다. 화살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것으로 프레데릭의 화살은 더욱 정확하고, 빠르고, 멀리 날아가게 된다.
프레데릭은 시위를 당겼다. 그는 활 여러개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중 가장 강한 장력의 활이었다. 프레데릭의 몸통보다도 긴 롱보우였다.
그것은 어지간히 힘 센 사람도 당길 수 없는 강궁이었다. 체격이 좋은 루돌프는 당연하고, 모험가로 잔뼈가 굵은 길리엄에게도 불가능했다.
지존 또한 내공의 개입 없이는 당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정자세로 수평과 가깝게 당기는 것도 힘든 강궁이다. 프레데릭은 바위산 중턱을 날아다니는 그리핀을 쏘기 위해 상체를 젖혀 하늘을 바라본 채로 당겼다.
근육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자세다. 부자연스럽게 굽혀진 상체 탓에 다른 근육의 개입이 제한되는 탓이다. 그럼에도 프레데릭은 어깨와 팔 힘을 끌어내어 당겼다. 뼈가 변형될 정도로 연습한 명궁이기에 가능했다.
힘줄과 뼈, 연골이 비명을 질렀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 근섬유들은 하나하나 미세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앙다문 이빨을 깨질듯 빠드득 소리를 냈다. 그 정도로 용을 써서 당긴 활이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심장이 박동을 멈춘 순간...
그가 타인에게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은 비기, 솔레나리온을 묶어둔 목줄이 풀려났다. 사냥감을 향해 달리는 미친 수렵견처럼, 화살이 뛰쳐나갔다. 근육이 찢어질 듯 용을 쓰는 것과 동시에 날려보낸 마나의 구체가 미친 수렵견의 진로를 뚫어주었다.
미친개가 돌진하는 길을 가로 막는 것은 어느 것도 없었다. 미세한 산들바람마저 마나의 구체가 가차없이 찢어버렸고, 미친개는 힘을 온전히 보존한 채 그리핀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윽고 마나의 구체가 그리핀의 옆구리에 부딛혔다. 그것과 동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찰나의 순간, 솔레나리온이 가죽을 뚫었다.
갈비뼈를 스치고 늑막을 찢고 허파에 들어갔다. 폐포들을 뭉개고 찢으며 나아간 화살은 반대편 허파에 박히고서야 힘을 잃었다.
그리핀의 눈동자는 어디서 이 격통이 찾아온 것인지 찾아나섰다. 그러나 어딜 쳐다 보아도 살이 터지고 찢기며 일어나는 작열감의 근원을 알 수 없었다.
“피오오오! 끼오오…!”
그리핀은 어쩔 줄 몰라하며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금새 가래 끓는 소리로 바뀌었다. 열탕지옥의 용암이 끓는 소리가 그럴 것이다.
“부르륵! 우르륵!”
녀석은 콧구멍에서 피를 쏟아내며 한계까지 날개를 저었다. 녀석은 결국 경련하듯 몸통을 뒤틀더니 하늘에서 떨어져 버렸다.
그리핀이 피를 토하며 비명을 지른 덕분에 지존은 그곳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지존은 프레데릭이 근처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빈사 상태가 가까워져 조만간 그리핀에게 참살 당하는 상황이 눈 앞에 있었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흐려지는 와중에도 정신을 집중해 마지막 공격을 받아냈다.
그리핀의 유연한 목은 마치 뱀 같았다. 일직선으로 명치를 노려 부리를 쪼아대었다. 방어하지 못한다면 위장이 뽑혀나올 것이다. 그러나 남아 있는 내공은 턱없이 부족했고, 사용할 수 있는 권법은 동작이 작고 치밀한 것이어야 했다.
단교협마(???馬. 짧고 곧은 직선 중심의 타법과 보법을 의미함.)의 이치를 담은 체술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안짱다리처럼 보이는, 언뜻 보기엔 우스꽝스러운 다리의 모습은 어느 방향에서 공격이 들어와도 즉각 튕겨나가 방어할 수 있는 용수철이 되었다.
손은 반월을 그리며 그리핀의 목을 후려쳤다. 그러나 그리핀의 목은 말했듯 뱀처럼 유연하고 교활했다. 녀석은 순식간에 궤적을 틀어 머리를 노렸다.
사마귀가 몸을 숙인 듯 웅크렸던 다리가 튀어나갔다. 그리핀이 목덜미를 찢으려 하기 직전, 지존은 방어보다는 공격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공을 최대한 아끼기 위한 방편이었다. 방어에조차도 투자할 힘이 없었다.
반보 전진함과 동시에 주먹을 질렀다. 하삼지(下三?. 중지, 소지, 약지 또는 주먹의 관절.)가 그리핀의 차골(조류의 쇄골. V자로 되어 있다.)에 직격했다. 놈의 차골이 동강나며 녀석이 동작을 멈추었을 때, 그 때가 기회였다.
지존은 얼른 둥지의 입구 쪽으로 굴러 화살이 날아온 곳을 찾아냈다.
“프레데릭! 내 짐 안에 복숭아가 있다! 그걸 당장 쏘아 올려!”
지존의 외침을 듣자 마자 프레데릭은 당황을 금할 수 없었다. 그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쁜 것은 잠시, 왠 복숭아를 쏘아 올리라니,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이보다는 이치에 맞을 것이다.
“......?! 뭔 미친…!”
뭐라 하소연할 틈도 없었다. 그의 외침엔 농담 따윈 일절 들어 있지 않았고, 상황 또한 농담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다급해진 프레데릭은 솔레나리온의 덧살을 집어던지고 얼른 지존의 짐을 뒤졌다. 언제 숨겨둔 것인지, 그곳엔 울룩불룩한 형상의 복숭아가 있었다. 그는 얼른 화살을 역수로 쥐어 복숭아에 내려찍었다. 화살촉이 복숭아의 딱딱한 씨앗에 박혀 고정되었다.
프레데릭은 얼른 허리를 뒤로 젖혀 자세를 잡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니 아까보다 더 허리를 젖혀야 무거워진 화살을 날릴 수 있었다.
그는 시위를 잡아당겼고, 동시에 자세도 더욱 낮추었다. 아까보다 훨씬 부자연스러운 자세는 근육에 심각한 무리를 주었고, 힘줄은 끊어질 듯 긴장했다. 그의 괴물같은 등근육이 이완했다. 동시에 복숭아를 꿴 화살이 하늘을 향해 분출했다.
이빨이 깨질 듯 앙다문 턱은 부들부들 떨렸고, 눈동자 옆의 흰자위는 혈관이 터져 버렸다. 코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렀다. 마나를 순식간에 너무 뿜어낸 탓에 반동이 심하게 온 탓이었다.
아까 솔레나리온을 강력히 날리기 위해 마나를 발사했었다.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한 자그마한 구체를 쏘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그 용도가 아닌, 복숭아의 질량을 밀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마나를 사용했다. 마나의 사용량이 비교가 안 되는 것이 당연했다.
프레데릭은 주저 앉아 길리엄을 바라보았다. 길리엄은 코피를 뿜어대는 그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달려왔다. 그는 얼른 천 조각을 찢어 콧구멍을 틀어막았다.
“프레데릭! 이게 도대체 뭔! 복숭아는 왜 쏴 달라고 한 거고, 넌 또 왜 쏜거야? 이런 씨팔! 진짜 하나도 이해가 안 되네! 뭔 미친 상황이야?”
“으으 머리가 울리니까 소리치지 말게. 뭐 내가 할 수 있는게 이것 밖엔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니 뭐 됐어. 뭘 그렇게 놀라? 검은 머리 자식이 해 달라는 대로 했으니 이젠 저 놈이 죽건 말건 신경 끄겠어. 저 놈도 생각이 있어서 그런 요청을 했겠지. 그리고 그게 코피 터질 정도로 힘든 것도 알았을 테고. 그럼 됐어.”
“돌아 버리겠네 진짜.”
길리엄은 환장하겠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프레데릭도 어깨와 힘줄을 혹사하면서까지 복숭아를 쏘아 올려야 했던 이유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복숭아는 두 사내의 깊고 깊은 의문을 싣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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