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자각몽 속의 서큐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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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는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지존에게 가르치려 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수행승이건 무엇이건 당장에 목을 떨어 트리는 것이 지존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입 닥쳐 노인네! 아깐 무슨 짓을 한 건진 몰라도 두번은 없다! 저승에선 예의를 차리고 살아라!”
라마승이 명상에 빠져 있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눈을 뜨고 천둥같은 호통을 치고 난 이후엔 달랐다. 그의 해골처럼 마른 몸에는 근육 따윈 그저 중력을 이겨낼 정도만 붙어 있을 뿐이었으나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달랐다.
젊은 시절 소림의 장로와의 격투에서 진 적이 있었다. 나물과 거친 곡식만 먹으며 살아가는 늙은이에게 패배하다니 큰 치욕이었다. 그러나 패배 후 지존은 깨달았다. 소림의 장로가 단전 깊숙히 응집시켜 놓은 내공을 느끼곤, 그가 승려라 다행이었다고 느끼게 될 정도였다. 만약 그가 불살생의 원칙을 지키는 수도자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미 가루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 경험은 지존이 상대의 무공을 알아채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 눈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있는 라마승은 예의 그 소림사 장로와도 비할 수 없는 상당한 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존은 자신의 제자를 굳이 말리지 않았다. 아둔한 제자놈은 바위도 쪼갤 듯 가득 힘을 실어 승려의 머리통에 칼을 내리쳤다.
승려는 칼이 떨어지는 궤도에 미리 손을 가져다 대고 허공을 꼬집었다. 어린 아이 볼살을 꼬집는 듯 가벼운 동작이었다.
파리도 잡지 못할 빈약한 손에 제자의 칼이 잡혔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칼은 단단히 고정된 채 빼지도, 밀어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수행승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저승에선 이미 죽어 있는데 예의를 차리고 살라니 말이 안 되지 않느냐. 극락왕생이라도 하라는 뜻으로 받아 들이면 되는 거냐?”
“요사스런 땡중놈! 술수를 부리지 말고 정정당당히 맞서라!”
“정정당당은 개뿔. 나처럼 마른 노인네에게 할 말이냐? 어떻게 생각하나 이름 없는 무림인?”
그의 말에 지존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팔짱을 낀 채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제자를 구경할 뿐이었다. 어차피 라마승에게 적의는 없었으니 제자가 다칠 일은 없었다.
“... 이리 와 앉아라.”
제자는 억울한 듯 소리쳤다.
“그렇지만 이 중놈이 지존에게 모욕을 했는데…!”
“저 승려는 너희 둘로 어찌 해볼 상대가 아니다. 잔말 말고 오너라.”
“... 알겠습니다.”
제자 둘은 풀죽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숙인 채 지존의 옆에 앉았다. 조용한 토굴 속은 다시금 밖의 빗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 잠시나마 격앙되었던 순간이 지나니 굴 속의 흙내음과 비냄새가 친밀하게 다가왔다. 지존이 먼저 정적을 깨트렸다.
“바르도 될카. 당신이 해주고 싶다는 말이 무엇인가?”
라마승은 지존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거리는 꽤 되었으나 그가 쳐다보니 꼭 자신과 이마를 맞대며 말하는 듯 했다. 거리감은 희미해지고 승려의 몸집도 가늠할 수 없었다. 산처럼 거대한 듯, 벼룩처럼 조그마했다.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같았다. 어두운 토굴 속에서 발하는 그의 안광은 꼭 범을 마주본 것 같기도 했다.
“넌 목숨이 둘이다. 그 중 하나는 피로 물들어 있구나. 네가 뿌린 피로 강을 만들 수 있겠어. 또 다른 목숨으로 언제 살아갈진 나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네 목숨이 둘인 것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사람은 하나인데, 목숨은 둘이라니. 파드마삼바바께선 너를 보면 뭐라고 하셨을까.”
“해괴한 말은 듣기 싫다 하지 않았는가. 알아듣기 쉽게 말하라.”
“그래. 단순하게 말하마. 이번 생이 끝나면 다음 기회가 있을 거다. 그 때는 피를 뿌리지 말고 닦아라. 그 때에는 가능할 것이다. 다만 하나의 목숨을 끊음으로 둘의 목숨을 살리는 때라면 망설이지 말아라.”
“... 그래 알았다.”
“해괴한 소리나 지껄이는 정신 나간 노인네처럼 보는군. 믿지 않는 것도 좋다. 잊고 지내다가 떠오를 때가 있을 거다. 그 때 바르도 될카라는 범부(凡?)가 그런 말도 했었구나, 하고 기억해주길 바랄 뿐이다.”
정적.
토굴 속에서의 정적은 바깥의 배는 된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이 곳에서 수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존은 그렇게 생각했다.
소림의 장로에게 당했던 생각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너희 라마승이나 중원의 승려들은 벽이나 보고 앉아 수행만 하는데 어떻게 무림인과 대등한 내공을 쌓았는가? 그리고 너희들이 말하는 진리를 전파하는 것에 있어 어찌 그리 무심한가? 너희들의 진리를 알리려면 싸우며 영토를 넓히고 이름을 알려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렇지 않은데 어찌 대중이니, 중생이니 하며 가여워만 하고 있는 게냐. 그건 모순 아니던가.”
“수레에 사람을 올리기엔 산 사람만으로도 벅차다.”
“... 여전히 해괴한 말 뿐이군.”
“해괴한 질문엔 해괴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아. 그럼 나도 질문을 간단히 하지. 벽만 뚫어져라 보며 앉아 있을 뿐인데 무공은 어떻게 쌓은 건가? 소림의 승려들은 역근경이니 뭐니 하며 육체 단련에도 힘을 쏟는다. 너희 라마승들은 그런것 조차 없는데 어떻게 내 제자의 칼을 막아낸 건가? 내 제자가 아둔하긴 해도 무림에서 이름 몇자는 내걸 실력인데.”
승려는 피식 웃었다.
“간단한 질문이라더니.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게 없잖나. 좋을대로 설명하면 알아 듣겠나? ‘툭담’ 이니 ‘뚬모’ 이니 하는 것들을 설명하려면 하룻밤으론 모자른 것을.”
“...”
“간단하게 말하지. 몸이 움직이기 전에 마음이 움직이는 법이다. 마음을 계속 바라보았다. 내 마음이 보이니 타인의 마음이 보였다. 그러니 동작도 보이는 것이다.”
“...”
“무반응이 재밌군. 내일 동이 트기 전까지 하나만 알고 가라. 네 두 목숨 중 하나에는 쓰일 곳이 있을 테니.”
라마승은 미소 지으며 그에게 걸어왔다. 오랜 시간을 결가부좌 한 채 바위처럼 앉아 있던 그였으나 그의 걸음걸이는 깃털 같았다. 그의 얼굴에서 은은히 피어오르는 웃음은 염화미소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가 지존에게 전한 지식은 자각몽이었다.
라마승은 보름이 넘는 시간을 자각몽 속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식이 깨어 있을 때에는 자연히 번뇌가 생기고 몸에 오물이 쌓이는 감각이 수행을 방해했다. 그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토굴 속에서 무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색이 없는 공 속에서 무의식이 빚어내는 색들을 헤엄치면서.
기다린 보람대로, 지존은 자각몽에 돌입하는 방법 하나를 배운 채 다음날 제자와 함께 떠나갔다. 훗날 바르도 될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릴 거라고는 까마득히 잊었다.
*
‘돌이켜 보니 헛소리가 아닌 것이 맞았구나. 두 목숨이라는 게 이런걸 의미하는 거였군. 잊고 지내라더니, 진짜로 잊고 지냈고… 이제야 바르도 될카라는 이름이 떠오르는구나.’
꿈에서 먹잇감을 찾는 몬스터라니, 그 때 토번 지역에서 만났던 라마승은 이것까지 보았던 것일까.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그 기억들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최대한 생각을 비웠다. 호흡이 숨구멍을 타고 넘어와 온몸에 퍼지는 것만을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점점 그것조차 희미해졌다.
라마승이 가르친 대로 순조로웠다. 곧이어 지지직 지지직, 종이를 찢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꿈에 돌입하기 전에 들리는 괴음이었다.
이상한 소음에 기분이 나빠지기도 전에 감미로운 음성이 들렸다. 언제 꿈 속으로 들어 온 것인지 지존도 눈치채지 못했다.
“자기… 나를 그렇게 밀치더니 내가 그리웠던 거야? 아깐 본심이 아니었던 거지? 내가 그리웠지? 그래, 우린 천생연분이야.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을 그토록 기다렸던 것처럼 당신도 나를 기다린 것 아니겠어? 나를 다시 안아줄래?”
이전에 꿈에서 만났던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어느새 지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뒤에서 산들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향기는 최음향과 같았다. 분홍빛 비단결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감각을 향으로 표현한다면, 누구보다 아름답고 누구보다 풍만한 숙녀가 껴안는 감각을 향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의 미혹적인 체취였다.
그것은 향기의 감상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지존의 등을 어루만지고 껴안았다. 지존이 있는 곳은 아까와 같았다. 그녀와 정사를 나누었던 방 안이었다.
그녀는 지존의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이어서 할까 자기? 아깐 왜 도망친 거야?”
이어지는 감미로운 입맞춤. 감로수가 그녀의 혀를 타고 지존의 목으로 넘어왔다. 괘씸한 마음을 잔뜩 품고 꿈 속으로 들어온 지존이었으나, 어느새 그 달콤함에 그 마음도 녹아 버리는 듯 했다.
‘아까는 몰라서 당했다. 이번에도 당할 수는 없다.’
지존은 본심을 숨긴 채 그녀의 뜻대로 놀아나는 인형처럼 연기하기로 했다. 제 아무리 호랑이라고 한들, 발톱을 세운 채 으르렁 거리며 다가가면 도망치지 않는 산짐승은 없을 테니까.
발톱과 이빨을 숨긴 채 지존은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래, 네 몸을 잊을 수 없었지. 수많은 여인을 안아 보았지만 너보다 달콤한 여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깐 단지 두려웠을 뿐이다.”
그녀는 입맛을 다셨다.
“두려웠다구? 왜?”
“너무 행복했으니까. 다시 이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걱정 마 자기. 영원히 행복할 수 있어. 날 안아줘.”
그녀의 볼에는 홍조가 올랐고, 풍만한 젖가슴에 솟아오른 유두는 단단히 발기했다. 그녀는 지존에게 다시 입을 맞춘 뒤,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입맞춤은 입에서 가슴으로, 배꼽으로, 마침내 지존의 남근까지 내려왔다.
촉촉한 입술에서 나온 긴 혀는 꼭 액체 같았다. 따뜻했고, 액체처럼 부드러웠다. 혀가 지존의 정낭을 쓰다듬었다. 주름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는 감각은 남근에 혈액을 몰고 왔다. 뇌까지 짜릿해지는 달콤한 애무였다.
곧이어 지존의 남근은 돌처럼 단단해졌다. 그녀는 지존에게 무릎꿇고 앉아 젖가슴으로 그의 물건을 감쌌다.
수많은 여인과 잠자리를 가져 보았지만 이런 애무는 처음이었다. 새로운 경험에 그만 목적을 잊고 그녀의 몸을 탐하는 것에 집중할 뻔 했다.
그녀는 가슴으로 남근의 양 옆을 압박하며 위아래로 흔들었다. 가슴 계곡을 뚫고 튀어나온 귀두도 그녀는 잊지 않았다. 따뜻하고 뱀의 것처럼 긴 혀로 귀두를 자극했다. 고개를 숙여 그것을 빨아들이기도 했다.
“쌀 것 같아 자기? 마음에 들어? 싸고 싶을 때 언제든지 싸도 좋아. 먹고 싶어 당신 것.”
정신이 아득해지는 애무였다. 부드럽고 커다란 젖가슴으로 음경을 감싸 문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각적 자극이 강렬했다. 평범한 사내라면 그것만으로도 싸버렸을 것이다.
‘나는 발톱을 숨기고 있는 범이다.’
그것을 잊지 않았다. 지존은 괘씸한 마음에 그녀의 머리를 움켜쥐고 남근을 쑤셔박았다. 단단히 발기한 음경이 그녀의 목구멍을 파고들었다.
예상치 못한 지존의 행동에 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지존을 올려다 보았다. 일전에 그녀는 목구멍에 지존의 것을 가득 담고도 애무를 멈추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남근이 들어오면 제 아무리 그녀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케흑! 윽! 자기, 얼른 싸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래. 그렇지만 입에 싸지르기엔 아깝다는 느낌이 드는구나. 누워서 다리를 벌려라. 남녀의 유희에 서두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지존의 말에 그녀는 미소지었다. 그녀는 엎드려 엉덩이를 들고 속삭였다. 촉촉히 젖은 그녀의 균열은 깨끗한 분홍빛이었다.
“아까완 달리 너무 좋아 자기. 정말 남성적이야. 사랑해. 더 사랑해줘 자기. 얼른 넣어줘.”
지존 또한 미소지었다. 손바닥 속에 숨겨진 호랑이의 발톱이 근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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