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토굴 속의 라마승
* * *
프레데릭은 마비독의 여운 탓에 아직도 침을 흘리고 있었다. 발음도 어눌하고 행동도 느릿했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그는 루돌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루돌프는 그의 앞에 서서 말했다.
“중독은 어느 정도 해결 된 거요? 그런데 무슨 일로 깨웠소? 말하긴 뭐하지만 아주 좋은 꿈이었단 말이지. 몬스터라도 나타났나?”
“아무… 래도… 이곳은… 몽마의 소굴인… 것… 같...소... “
루돌프는 그의 말에 소름이 쭉 돋았다. 혹시 방금 전의 그 꿈이 몽마에게 사로잡혀 죽을 뻔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공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 그런건 좀 일찍 말해야지! 그리핀 구경도 못하고 자빠져 자다가 죽을 뻔 한거 아니요! 내가 이럴까봐 당신 고용한 것 아니야!”
루돌프의 신경질에 프레데릭도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뗐다. 그러나 떼진 입에선 어떤 말도 나오지 않고 잠시 정적이 흐를 뿐이었다. 그건 욕설을 하려다가 참아낸 것이었다. 만약 참지 않고 소리쳤다면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이런 씨팔 새끼야! 내가 마비독 때문에 계속 말 하려고 했는데 못 한거 아니야! 들으려는 척도 안 하더만! 돈만 많은 멍청이가 성내고 지랄이냐!’
프레데릭은 누구도 쉽게 당길 수 없는 강궁을 사용하는 궁수였다. 궁수의 미덕은 침착함과 정확함이다. 순간 화를 낼 뻔 했지만 이런 것에 동요할 프레데릭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루돌프가 자신에게 돈을 주는 고용주라는 것만 아니었으면 욕을 했을 것이다.
자신의 돈줄이 어리석고 못났더라도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건 프레데릭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일류라 불릴 만한 모험가였다. 프레데릭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인상을 편 뒤 말을 꺼냈다.
“마비… 독,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지.. 않, 쿨럭! 소…!”
“환장하겠군! 그럼 이제 어째야 하는 건가? 잠만 자지 않으면 괜찮은 거겠지?”
“그… 렇소… 돌아가며… 잠을 자고… 무언가, 이상, 반응이… 나타… 난다면… 깨우는게… 좋소… 그렇게, 하면… 안전하지…”
프레데릭의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차라리 짐을 싸서 동굴을 빠져 나가 버리는 것이 낫지, 이곳에 뭐 금덩이라도 숨긴 것도 아닌데 굳이 돌아가며 잠을 잘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이 동굴을 벗어나자는 것과 프레데릭의 말대로 하는 것에 대해 토론을 했다. 다들 피곤한 상태였기에 조용한 말투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영 기력이 없었다.
결국 얘기 끝에 프레데릭의 말대로 돌아가며 잠이나 자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의 지식에 따르면, 자신의 정체가 들킨 몽마는 왠만해선 다시 접근하지 않는다고 했다. 듣고 보니 이젠 꽤 안전한 것 같기도 했다.
잠자코 대화를 듣던 지존이 입을 열었다.
“이 동굴에서 잠이 들면 그 개년을 만날 수 있는 건가?”
“아마도… 그럴 테지… 이 동굴에서… 쿨럭! 꿈에 빠지면… 그 녀석은… 항상… 꿈… 속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다… 기회를… 봐서... 유혹, 할거다…”
지존은 침묵 끝에 다시 한마디 입을 열었다.
“그러면 만나고 오겠다.”
“...?”
일동은 그의 말에 무슨 헛소리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길리엄은 지존에게 따지듯 물었다.
“뭐? 미쳤나?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정좌하고 있을 테니 자세가 틀어지거나 하면 깨워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내 지존은 결가부좌를 한 채 손을 단전 위에 가지런히 한 후 눈을 감았다. 길리엄은 그의 행동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괴이한 자세도 40이 넘도록 처음 본 것이고, 몽마를 만나러 가겠다는 헛소리 또한 처음이었다.
“무슨… 짓을 하겠다는… 거야?”
프레데릭도 지존의 행동에 의문을 품긴 마찬가지였다. 루돌프는 한숨을 푹 내쉰채 괜히 말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화풀이를 했다.
*
한낮의 먼지는 모조리 가라앉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동굴 밖 저 멀리에서 째르르 우는 귀뚜라미 소리 뿐이다. 때때로 들리는 부엉이의 훌쩍임이 괜시리 사람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한밤중이었다.
동굴 속에서 결가부좌 한 채로 앉은 지존의 모습은 꼭 불가의 수행승 같았다. 그리 보았다면 적합히 본 것이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만났던 토번의 라마승에게 배운 대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과거의 일이다.
이 몸에 들어오기 전의 지존은 굽이치는 강물처럼 중원 이곳저곳을 다녔다. 어느 날, 비가 우스스 떨어지는 선선한 저녁 때였다.
제자 한 녀석이 길앞잡이 처럼 훌쩍 달려 나가더니 저 멀리서 소리쳤다.
“지존! 여기 왠 토굴이 있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가 좋겠는걸요!”
함께 있던 제자놈은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목소리가 큰 녀석인지라 근처의 산에 목소리가 부딛혀 메아리가 쳤다.
“멍청아! 토굴이 아니라 무덤일 수도 있다! 무덤에서 잘 수는 없잖아!”
목청 큰 녀석이 옆에서 소리치니 지존의 귀도 메아리처럼 울렸다. 지존은 제자에게 꿀밤을 한대 먹이곤 말했다.
“귀 터져 죽겠구나 이 자식아. 아마 무덤은 아닐꺼다. 여기 지역민들은 시체를 묻거나 감추지 않는다. 새 먹이가 되도록 기꺼이 제 몸을 바친다. 조장(??)이라 부른다.”
“예? 뭔 그런 해괴한 일이 있답니까?”
“새는 하늘을 날지 않느냐. 놈들의 몸에 들어가면 조금이나마 하늘에 가까워지지 않겠느냐.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구나. 단지 내 추측일 뿐이다.”
“그것 참… 지존은 별걸 다 아는군요.”
“가본 곳이 많으니 알기 싫어도 알게 된다.”
앞서간 녀석을 따라 말을 움직였다. 좁디 좁은 절벽의 자갈길인지라 지존이 타고 있는 용맹한 말도 쉽게 걸음을 떼지 못했다. 헛디디면 그대로 떨어져 가루가 되고 말테니 제 아무리 용감한 말이라 해도 겁먹는 것은 당연했다.
제자가 소리친 곳에 도착했다. 제자는 동굴 입구를 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와 씨름하고 있었다.
“으기익! 지존, 잠시만 기다리십쇼. 왠 바위로 입구를 막아둔 걸 보니 금은보화라도 숨긴 것 같습니다. 오늘 밤 여기서 잠도 자고 보물도 얻어가면 딱 좋을 것 같군요.”
제자의 터무니 없는 망상에 코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존이 내공을 써서 근육에 힘을 보태면 금새 밀어 치울 바위였으나 지존은 제자들을 돕지 않았다. 제자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고 싶기도 했고, 약간은 그들을 놀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목청 큰 녀석이 팔을 걷어올리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
“임마! 그래가지곤 천년이 걸려도 이걸 못 치워! 비켜봐라. 내가 한번 시범을 보여주마.”
목청 큰 녀석은 목에 혈관이 잔뜩 올라올 정도로 용을 쓰더니 단신으로 바위를 밀어 버리는 것에 성공했다. 녀석은 지존에게 칭찬을 받을 줄 알고 어깨를 으쓱 거렸다. 그러나 지존은 칭찬은 커녕 다시 한번 꿀밤을 날렸다.
“아이고! 지존! 이번엔 어째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날 본거 다 알고 있다. 내공을 운용하며 힘을 써야지 막무가내로 힘만 써서 밀면 그것이 어디 무림인이겠느냐? 그런건 원숭이도 힘만 세면 할 수 있는 거다.”
지축을 흔드는 소리를 내며 바위는 밀려났다. 비를 피할 수 있게 되니 제자 둘은 신이 나서 미소를 지었다.
빗물이 잔뜩 묻은 짐을 풀었다. 그런데 토굴 깊숙한 곳에서 왠 사람의 형체가 아른거리는 것 아니던가. 제자들은 귀신이라도 숨은 토굴인줄 알고 깜짝 놀랐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결가부좌 한 채 명상하고 있는 수행승이었다. 바싹 마른 몸에 끄떡도 않고 앉아있는 모습은 황동으로 만든 불상과 다름이 없었다.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동조차 없었다.
제자 녀석은 칼을 빼들고 수행승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
“이봐라! 귀신이냐 사람이냐? 살아 있다면 대답해라.”
“...”
수행승은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제자는 지존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존, 이거 사람 아닌 거 같은데요? 누가 불상을 가져다 놨는가 봅니다.”
“... 그런가.”
지존은 수행승에게 다가갔다. 코 밑에 손을 대어보니 미약하지만 규칙적인 호흡이 있었다. 지존처럼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들숨과 날숨이었다.
“라마승이군. 아무래도 깊은 명상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해치지 말아라. 우린 그저 하룻밤 자고 가면 되는 것이니, 서로에게 간섭 하지 않는게 좋다.”
“알겠습니다 지존.”
지존과 제자들은 토굴 입구에 누워 눈을 붙이기로 했고, 수행승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토굴 깊숙한 곳에서 결가부좌를 튼 채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제자놈 둘은 심심했는지 수행승의 근처를 왔다갔다 움직이기도 하고, 막대기로 팔뚝을 쿡쿡 찔러보기도 했다.
“이거 진짜 살아 있는 거 맞아? 뭔놈의 인간이 반응 하나 없냐?”
“그러게. 내 생각에 이거 인형인 것 같아.”
“그런가? 그렇다기엔 살갗이 말랑한데.”
“멍청아 그것도 모르냐? 가죽으로 잘 만든 거겠지.”
“그, 그런가.”
제자 녀석은 급기야 눈꺼풀을 열어 보기로 했다. 지존의 의견에 토달지 않고 믿는 녀석이었지만 이렇게 미동도 없는 것이 사람이라니 도대체 믿을 수 없었다.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만져 열어보니…
눈동자가 제자의 두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꺼풀이 열리기도 전에 눈동자는 그를 바라보고 있던 것 같았다.
“으히익! 뭐야! 이거! 으악! 이거 사람이잖아!”
제자는 뒤로 자빠지더니 칼을 움켜쥐고 수행승을 향해 겨누었다. 수행승은 제자를 노려보던 것을 멈추지 않더니 벌떡 일어섰다.
“수행하고 있는 것 안 보이더냐! 눈이 멀었느냐!”
수행승이 버럭 소리치자 꼭 사자가 우레같은 포효를 내뿜는 것 같았다. 목청 큰 제자도 한 수 접을 엄청난 소리였다. 그건 큰 소리가 아니었다. 큰 소리라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큰, 굉음이라 할 수준의 호통이었다.
동굴이 무너질까봐 걱정 될 수준이었다. 잔뜩 겁을 먹은 제자는 칼을 가져다 대고 소리쳤다.
“이 중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성을 내냐! 죽여 버린다!”
그러나 수행승은 칼이 눈앞에 있어도 무반응이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칼등을 붙잡았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거라.”
수행승의 말이 끝나자 마자 제자는 칼을 잡아당겼다. 왠걸, 칼은 수행승의 손에 단단히 고정된 채 움직이질 않았다. 칼은 마치 바위에 꽂힌 것처럼 부동 그 자체였다.
“뭐야! 요사스런 중놈이 무슨 요술을 부린 거냐?”
“보름 하고도 이틀 전에 꿈에서 보길, 오늘 독특한 중생 넷을 만나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 본 것 같구나.”
수행승은 피식 웃고 다시 앉았다. 칼은 수행승의 손을 벗어났으나 제자 녀석은 칼이 허공에 고정된 듯 회수하지 못하고 낑낑대었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지존이 수행승에게 말했다.
“제자가 무례를 저질렀소. 용서해주시오. 하룻밤만 신세 지겠소. 앞으론 조용히 있다 가리오.”
수행승은 지존을 쳐다보더니 휘둥그레한 표정이 되었다.
“어…? 셋이 아니라 넷 맞구나! 내가 옳게 본 거로군!”
“당신은 산수를 모르오? 지금은 내 제자 둘과 나뿐이오. 셋이오.”
“네놈이 둘이다.”
괴이한 말을 또랑또랑 하는 수행승의 모습은 왜인지 소름이 돋았다.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가슴에 창문이 생겨 그 속을 꿰뚫려 보이는 느낌이었다. 항아리 속에 담겨 관찰 당하는 붕어처럼...
“... 제자가 요사스런 중놈이라 한 것이 맞나 보군. 헛소리를 듣고 싶진 않으니 그냥 나가야겠구나. 차리리 비를 맞겠소. 얘들아. 짐 싸라.”
제자들은 얼른 그에게 달려와 가죽 주머니에 이것 저것 넣기 시작했다. 지친 말들은 다시 빗속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지 투레질을 했다. 그가 떠나려 하니, 수행승이 말했다.
“내 이름은 바르도 될카. 넌 이름도 없구나.”
“...?”
“쫓아낼 생각은 없다. 네가 비를 만난 것도, 네 제자가 이 토굴을 찾아낸 것도, 다 보았다. 아니, 보였다. 지금 여길 떠나느니, 내 얘기를 듣는게 너에게 더 도움이 될 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