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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지존은 서역에서 다시 산다-20화 (20/56)

〈 20화 〉 루돌프의 요구사항.

* * *

느긋하게 절정을 맛보는 기분은 각별하다.

잇몸에선 시큰한 느낌과 함께 짜릿함이 백회혈에서부터 회음혈까지 타고 내려온다. 점막과 점막을 맞대고 부르르 떨리는 허벅다리의 탈력감을 견디며 가만히 상대를 안고 있는 것,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남아 있는 나른한 취기가 그 맛에 조미를 해주니 더욱 기분 좋은 것은 당연지사다.

팡틴의 풋풋함, 로즈의 탄력과는 또 다른 농향의 맛이었다. 그 둘과 달리 그녀는 지존이 가져다 주는 쾌감을 온전히 받아내었다. 그건 지존에게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정력을 쏟아 부어 여인을 쾌감의 바다에서 몸부림치게 하는 것도 사내에게 있어 큰 기쁨이 되리라. 그것과는 또 달리, 왕언니 그녀와의 정사는 합이 맞는 동료와 척척 떨어지는 대련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숙이면 칼날이 머리를 스치고, 고개를 틀면 살수가 사혈을 빗겨가는 대련의 즐거움, 그녀는 음양의 합일이라는 과정에 있어서 지존과 궁합이 잘 맞았다. 경험치의 차이일 수도, 재능의 차이일 수도 있으리라.

지존의 성격상 그저 남녀간의 합에 ‘재능’ 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 것이다.

“헉… 허억… 헉… 좋았어… 여태까지 만나 본 사내들은 다 가짜였던 것 같아…”

그녀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지존의 귓가에 속삭였다.

“... 과찬이군.”

"진심이야. 여자로 살아가는 기쁨이라는 게 바로 이런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야."

빳빳했던 남근이 힘이 빠짐과 동시의 그녀의 몸 안에서 빠져나왔다. 그와 함께 양기를 가득 담은 듯 짙은 농도의 정액도 스며나왔다.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괜한 짓을 한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

"네 자식이라면 낳고 싶은걸? 하하하 나 진짜 미쳤나봐. 별 소리를 다 하네. 난 지금 정말 힘이 하나도 없어. 누워서 쉬고 싶네. 너 진짜 대단한 남자구나? 겉모습은 허약해 보일지 몰라도… 진짜…"

"..."

지존은 탈진 상태 직전인 그녀의 몸을 들어 올렸다. 풍만한 육체에 비해 꽤 가벼운 몸이었다. 깡마른 그의 몸으로 들어 올리기엔 살짝 무거울 수도 있겠지만, 내공을 다루며 근육에 기력을 보충하는 상태의 지존에겐 거뜬한 수준이었다.

"깜짝이야! 너 힘도 꽤 세네?"

"당신이 가벼운 거다."

그녀를 근처의 소파 위에 눕히고 지존은 옷을 입기 시작했다.

"가려고?"

"그래. 가보는게 좋을 것 같다. 당신 말대로 자주 놀러 오고 싶어지는군."

"그런데 뭐 이렇게 급하게 가? 좀 더 있다가 가지? 아 참, 그러고 보니 아직 내 이름도 알려주질 않았네. 우리 정말 바보같아. 이름도 안 알려주고 몸부터 섞다니.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아. 나 스무살 때쯤으로."

땀을 흘린 채 소파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몸은 한 폭의 유화 같았다. 벌거벗은 미녀가 그려진 고급스런 색감의 유화 말이다. 풍만한 가슴과 매끈하고 도톰한 허벅지와 엉덩이는 서역에서 칭송 받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그린 것 같기도 했다.

"더 있다간 한번 더 당신을 안을 것 같군. 당신은 아직도 스물 즈음 여인 같은 몸 맵시를 가졌어. 이름이 무언가?"

"비비안느. 비비라고 불러도 돼."

"예쁜 이름이네. 로즈, 팡틴, 비비안느, 셋의 미녀를 알게 되다니, 이 몸의 옛 주인은 출세한 남자로군."

그녀는 지존의 말에 소녀처럼 웃었다. 까르르 웃는 비비안느의 표정은 마흔이 넘은 원숙한 여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순수해 보였다. 맘에 드는 사내 앞에서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여인 특유의 미소이리라.

"매일 와. 아니면 여기서 살아도 되겠네. 네가 여기 있으면 어떤 강도도 들어오지 못할 것 아니야?"

"여기 살면 널 매일 안고 싶어지겠군. 날 말려 죽일 셈인가?"

"그것도 재밌겠는데?"

"어쨌건 다음에 보세. 비비안느."

"잘가 존."

그녀는 한 팔로 가슴을 가린 채 누워 손을 흔들었다. 왜인지 부끄러운 느낌이 드는 건 그녀도 알 수 없었다.

*

하루가 지났다. 시간이 흘러 루돌프 놈이 제안한 점심 식사 때가 되었다. 지존은 길리엄과 만나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길리엄은 그와 만나는 것이 꽤 긴장되는 듯 했다. 안절부절 함과 동시에 약간의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루돌프가 이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산해진미로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자신들을 기다릴지 상상만 해도 입에 침이 돌았다.

그와는 반대로 지존은 영 귀찮아했다. 산해진미라 한들 서역의 음식들은 입맛에 썩 맞아 떨어지질 않을 것이 뻔했고, 무엇보다 루돌프 같은 후레자식과 함께 동석하여 먹는 음식은 소화도 잘 안 될 것이다.

식사 시간이란 음식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함께 수저를 드는 이의 인품도 중요한 법이니까.

“존, 너는 뭐 기대하는 음식 없나?”

“글쎄, 서역 음식은 입맛에 맞는게 그다지 없다 보니. 아, 고기 요리는 좋았다. 맥주도 좋고.”

“블랑코 축산 협회를 후원하는 집안이니 분명 고기도 많이 먹겠군. 난 아침도 걸렀어.”

길리엄은 나이에 맞지 않게 어린애 같은 말을 해댔다.

협회에 도착하니 루돌프가 문 앞에 앉아 있었다. 햇빛이 짜증난다는 듯 한껏 얼굴을 찌푸린 채였다. 길리엄과 지존이 온 것을 발견한 녀석은 괜시리 침을 탁 뱉었다. 제 딴에는 그런 모습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보충하려는 것이었다. 지존의 눈에는 그게 참 같잖고 짜증나 보였다.

“왔나? 원숭이?”

길리엄은 모자를 벗어 그에게 예를 표했다. 길리엄이라고 그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언행과 모양새가 맘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길리엄은 사회 생활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권력자, 자본가 앞에서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그것이 길리엄이 습득한 삶의 지혜였다. 여기저기 모험가로 떠돌아 다니면서, 이런 행동으로 손해 본 적은 없었다.

“반갑습니다 루돌프. 점심 식사에 초대해 주시다니 참 좋군요.”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는 길리엄과 달리 불편한 속내를 참기 힘든 지존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못생긴 루돌프 녀석이 시야에 들어가 있는 것도 짜증이 나는데, 만나자 마자 원숭이니 뭐니 하는 무례를 범하니, 당장에라도 때려 죽이고 싶었다.

“...”

“아아 길리엄 씨. 나도 반갑소. 그런데 여기 이 원숭이 선생은 날 만난게 영 아니꼬운 모양이야?”

결국 지존은 인내하기를 포기했다. 욕지거리를 한다 한들, 루돌프가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해치려 한다 한들 그의 칼날이 지존의 몸에 닿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임무를 맡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개새끼야. 왔다. 넌 언제 와 있었나?”

“...!”

길리엄도 루돌프도 갑작스런 욕설에 깜짝 놀랐다. 길리엄은 굳은 채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루돌프는 깜짝 놀란 것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과장된 몸짓을 하며 크게 웃었다.

“... 풋, 푸하하! 큭큭큭… 재밌네! 재밌어!”

“아쉽게도 난 재미가 없다. 한번 더 원숭이라고 하면 후회할 거다.”

사내들은 기싸움에서 괜히 허세를 부리곤 한다. 루돌프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지존의 앞에 섰다. 팔을 휘두르면 그대로 지존을 때릴 수 있는 위치였다.

지존은 루돌프가 그러거나 말거나 짜증이 가득 섞인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지존 또한 당장에라도 그의 목뼈를 부숴 버릴 수 있는 거리였다.

“어쩔 생각인데? 뭐, 한대 칠 생각이냐?”

“개새끼가 사람 말 하는 거,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혓바닥을 찢어서 벙어리 개새끼로 만들어 주마.”

길리엄은 두 사내의 신경전에 어찌나 초조해 했는지 식은땀이 뻘뻘 흘러나왔다. 그는 얼른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말렸다.

“어어! 이봐요들. 서로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어… 식사 하면서 천천히 얘기하는 것 어떻겠습니까?”

루돌프는 내심 길리엄이 말려 주길 기다렸다. 작은 체구의 지존 앞에 서긴 했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엄청났다. 조그만 몸이 점점 커지더니 태산 앞에 선듯한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애써 억지 웃음소리를 내며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흠, 푸후훗. 그래, 내가 좀 개새끼 같이 굴었나 보군. 미안하게 됐어. 원숭이라고 부르는 건 앞으로 그만 두겠어.”

“... 알았다.”

셋은 말 없이 식당으로 향했다. 어떤 말을 꺼내서 이 분위기를 깨야 할지는 길리엄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결국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까지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

길리엄의 예상대로 식당에는 미리 주문된 각종 요리들이 거하게 차려져 있었다. 역시 루돌프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자, 먹자고. 내가 점심에 보자고 한건 그리핀 알을 어떻게 찾을지 회의 하려고 한 거야. 나도 동행할 생각이거든. 내 고용인과 같이.”

길리엄은 큼직한 돼지 족발을 나이프로 썰며 질문했다. 루돌프의 발언은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 그럴 계획이었나요? 그리핀은 상당히 위험한 몬스터인데…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나와 존… 존도 그렇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저희 둘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거거든요. 놈들이 공중에서 무리지어 내리 꽂기라도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지도 모릅니다. 저희야 뭐 어떻게든 한다 쳐도…”

루돌프는 걱정 가득한 길리엄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무예 실력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값비싼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으면 그리핀의 발톱 따위 살갗에 닿지도 않을 것이다.

“흥, 모험가 선생. 날 너무 과소평가 하는군. 난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기사 수업을 시켜 주었다고. 스킬도 쓸 줄 알지. 왠만한 모험가보다 내가 나아.”

자신만만한 루돌프의 발언에 길리엄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고기를 씹는 것에 열중하기로 했다. 루돌프와 동행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그리핀에게 중상을 입거나 죽기라도 하면 골치 아픈 일이 산더미처럼 쏟아질 것 같았다.

길리엄이 고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존 또한 탐탁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루돌프라는 개새끼가 죽건 말건, 내장이 그리핀의 발톱에 끌려 나가건 신경 쓸 건 없지만, 루돌프가 굳이 그리핀 알 채취에 동행하는 *저의(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속에 품은 생각.)가 의심스러웠다.

구경꾼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존에 공격에 쓰러졌던 녀석이 바로 루돌프이다. 기사 수업을 제대로 받았는지도 의심스러운 놈이다.

실력은 논외로 한들, 루돌프는 지존을 좋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존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혹시 그가 그리핀 알 채취에 동행하는 목적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랜 세월을 죽고 죽이는 나선의 중원에서 보낸 탓에 생긴 편집증적 망상일지도 모르겠으나, 분명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굳이 루돌프의 동행을 말리고 싶진 않았다.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핀의 억센 발톱에 그의 목이 뽑히는 광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확실히 루돌프 당신은 묘한 ‘스킬’ 이라는 걸 쓸 줄 아는 것 같더군.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일전의 결투는 당신 몸 상태가 안 좋았던 탓이겠지. 내가 보아하니 복통이 있던 것 같더군. 안색이 썩 좋지 않았어.”

루돌프는 지존이 자신의 의견을 반대할 것이라 생각하고, 내심 반박거리를 잔뜩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도리어 자신을 변호하는듯 말하니 의외였다.

“흠? 뭐… 그렇지. 내가 진짜 결투를 너에게 건 줄 알았나? 천만의 말씀이지. 그냥 그 때 술에 취해서 잠깐 놀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넘어진 건 술에 취해서 그런 거였고.”

지존은 루돌프의 헛소리에 웃음을 참았다.

“과연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풀 플레이트 아머라는 건 상당한 방호력이 있어 보였다. 중원에서 그런 무구는 사용하지 않지. 분명 네가 나를 봐준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

루돌프는 지존이 갑자기 저자세로 나오는 것에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것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정도로 지혜롭진 못했다. 그냥 지존이 말하는 것에 맞장구를 치며 자신의 격을 높이는 것에 전념할 뿐이었다. 참으로 따분한, 보편적일 정도로 무능한 귀족 자제의 모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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