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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지존은 서역에서 다시 산다-19화 (19/56)

〈 19화 〉 기우(??), 용해(??).

* * *

“내 본래 나이가 환갑도 넘은 백발의 사내라는 걸 말한다면 믿겠는가?”

“... 믿어 볼게.”

긴 얘기였다.

자신이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제자들이 주술을 걸었는가에서부터 시작했다. 제자들의 이름… 병에 걸려 은거하던 동굴의 위치… 그런 세세한 것까지 이야기했다.

이 몸에 들어온 때, 밧줄에 목이 매여 죽을 뻔한 것, 몸의 주인이 가진 기구한 이야기들도.

이름 없는 그에게 딱 한명 잘 대해준 아이, 아멜리까지도.

무궁무진한 지존의 삶은 대서사시와도 같다. 맛깔나는 말주변은 없으나 담백하게 과거의 일들을 나열하는 것 만으로도 그녀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그녀도 어느 정도는 믿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한 사람만이 아래에 여러 사람을 거느리며 통솔할 수 있는 법이다.

수많은 여인들을 가족처럼 여기며 보살피는 그녀 또한 그런 통솔자의 자질이 있었다.

“음, 존, 정말 생생하고… 지어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얘기였어. 꼭 잘 만든 연극 하나를 본 것 같아. 네 말을 전부 믿어버리기 일보 직전이야. 그래도 한 가지 걸리는 건 있지. 그런 네가, ‘날다람쥐 잭’ 일수도 있는 것 아니야?”

“당신은 참 의심 많은 여인이군.”

지존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연거푸 의문을 토했다.

“중원을 호령하던 무예의 달인이라면 여인들을 죽이고도 신출귀몰 도망치는 것도 쉽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의심 되는걸?”

“... 앗아간 생명도, 키워낸 생명도 많았다. 하지만 난 쾌락 살인마 같은 것이 아니야. 쾌락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런 허무맹랑한 동기 만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중원의 죽고 죽이는 나선(??)은 장난질이 통하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

“한 가지 옛 이야기를 해 주지.”

지존은 자신이 있었던 중원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한 도적떼가 있었다. 결국은 지존의 손에 의해 해체된 도적단이었으나, 전성기 시절의 놈들은 지방의 관리들도 굽신 거릴 정도였다.

극악무도한 일도 서슴 없이 벌이는 잔인한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한가지 절대적인 규칙이 있었다.

‘성욕에 휩싸여 다른 이를 해하지 말라.’

언제부터 이런 철칙을 지켜왔는지는 알 수 없다. 추측컨데,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도적단의 두목은 동생을 하나 두고 있었고, 그 아이는 사내 아이 답지 않게 곱고 수려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한창 짓궂은 장난을 칠 법한 소년의 나이에 이미 원숙한 여인의 용모처럼 사내들의 마음을 홀리게 할 외형이었다. 남색엔 전혀 흥미 없는 사내조차 마음을 흔들리게 할 정도로.

결국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거칠고 무법자적인 사내들이 모인 도적떼다. 들끓는 짐승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한 녀석이 두목의 남동생을 덮치고 만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라면 녀석의 고깃덩이가 동생의 몸에 닿기 직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끼는 동생을 건드리다니, 두목은 화가 하늘을 찌를 듯이 났다. 즉결로 칼을 뽑아 짐승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 일 이후로 그 규칙이 생겼으리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두목의 동생도 성징을 거쳐 어느새 사내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여자를 알 때이고, 여자를 안고 싶을 나이가 된 것이다.

여느 때처럼 한 마을을 골라 약탈을 했다. 그 마을엔 두목의 동생에게 정욕을 일으키는 예쁜 처녀가 있었다.

수려한 자신의 외모를 믿고 좀 다른 방향으로 그녀의 마음을 훔쳤다면 좋았을 것을, 동생 녀석은 몸과 마음을 강압적으로 빼앗으려 했다.

강간이었다. 자신의 형이 그토록 싫어하는 사악한 행위. 불쌍한 처녀를 잡아먹듯 놈은 그 행위를 했다. 울부짖는 처녀를 깔아 눕히고 부르르 떨며 토정(??)했다.

마을을 떠날 때가 되어도 동생이 나타나지 않으니 두목은 마을을 뒤지며 동생을 찾아 나섰고,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두목은 그때 왜 그랬을까. 두목은 천지가 떨 정도로 역정을 내며 동생의 고간을 쥐어 뜯었다. 아끼는 동생이 그런 짐승 같은 행동을 한 것이 화가 났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동생은 그 일로부터 성(?)에 있어 불구가 되었다.

그렇게 일단락 되었으면 다행이었으련만, 결국 안 좋은 방향으로 동생의 심성이 틀어지고 말았다.

여인에 체내에 마음껏 씨를 배출하고 싶은 욕구, 여인을 마구 안고 싶은 욕구, 젖가슴을 마구 탐하며 허리를 흔들고 싶은 욕구, 그것들이 쌓이기만 할 뿐 해소할 수단이 사라진 것이다.

그것에 대한 반동이라도 생긴 듯, 두목의 동생은 훗날 천벌 받아 마땅한 변태 살인마가 되어 버렸다. 달군 쇠꼬챙이를 무고한 여인에게 마구 쑤셔 죽이고, 말뚝을 박아 버린다거나 하는 미친 짓들을 했다.

갑자기 왜 이런 역겹고 추악한 이야기를 지존이 했을까? 그 의문이 얼굴에 여실히 드러나는 그녀였다.

“... 잔인하고… 기분 더러운 얘기잖아…? 존…?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지?”

"그 일을 알고 깨달은 바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날다람쥐 잭' 그 놈은 연약한 여자만 죽이는게 맞지?"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야. 끔찍하게 훼손하기까지 해. 정말 쓰레기 자식이야."

"그래. 그건 분명 이성과 교류하지 못해 쌓인 분노를 어긋나게 표현한 걸 게다. 도적떼의 동생 놈의 경우가 딱 그렇다. 여인의 품 안을 파고들 수가 없으니 쇠꼬챙이로 몸을 쑤시며 쾌감을 얻는 것일테지."

"역겨운 얘기 좀 때려쳐 존."

"비유가 험한 걸 사과하지. 내가 결백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말이야. 여지껏 살아 오면서 안은 여인을 헤아릴 수도 없는데 내가 왜 그런 살인마가 되었겠나?"

“그럴듯 하네… 어쨌건 너가 우리와 함께 있을 동안 옆 마을에서 다시 놈이 활동할 때까지는 계속 의심을 사게 될 거야. 꼭 내가 아니더라도. 그래서 말인데… 일이 없다면 화원에 자주 오도록 해. 너라면 차와 다과를 언제든 내어 줄 테니.”

“차 한잔에 경호 임무라도 맡아 달라는 뜻인겐가?”

지존이 날카로운 음색으로 말하니 그녀는 잠시 주춤했다. 그런 실리적인 이유로 그를 초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인간적인 호감 때문이기도 했다. 날다람쥐 잭에 대한 건 부가적인 이유였다.

지존이 주장하듯 자신의 본래 나이가 환갑이 넘었다는 것처럼 실제로 말투 또한 그러했다. 적어도 그녀가 느끼기에는 더욱 그랬다.

화원에서 왕언니라 불리는 그녀는 아버지 없이 어른이 되었다. 그녀는 일반적인 색목인과는 살짝 다른 분위기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친부가 동방에서 온 상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배경을 가진 그녀에게 동방에서 온 검은 머리 사내가 말하는 신비로운 이야기는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듣는 옛 우화나 재담 같은 느낌이었다. 나이는 어느새 사십이 넘었지만, 어린 시절 결핍된 무언가는 평생 남는 것이다.

동방으로 사라진 친부… 그를 보고 있으니 가슴 한켠이 아련해졌다.

“내 말이 그렇게 들렸어? 그런 뜻은 아니야. 여기엔 팡틴도 있고 로즈도 있어. 서로 친하잖아? 얼굴 보러 놀러 오라는 뜻이지. 너가 자주 보이면 애들도 안심할 테고. 서로 좋은 것 아니겠어?”

지존은 우물쭈물 말하는 그녀를 보고 장난기가 살짝 돌았다. 추파를 던지는 듯한 가벼운 농담이 떠올랐다.

“팡틴, 로즈, 둘 다 좋은 여인이지. 당신도 그래 보여. 당신을 보러 오는 건 안 될까?”

귀여운 길고양이라도 부르는 듯한 지존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꽤 특별하게 다가왔다. ‘화원’ 을 세운 것이 서른살 전후였다. 지금은 마흔이 되었으니 화원을 운영한 지도 벌써 십년이 되어간다.

일종의 사장이 된 셈인데, 사장으로써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그것과 더불어 사내들의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 남자를 품지 않았다. 화원의 주인이 된 이후로 계속이다.

근 십년간 사내에게 추파를 받은 적도 없었다. 사내들을 사무적으로 대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 동방 소년이 그러니 기분이 싱숭생숭 해지는 것이다.

또한 미청년의 모습이니 경계심이 많이 줄어들은 것도 사실이다.

“나를 보러 온다고…?”

“그렇소. 팡틴과 로즈도 좋지만 내 눈에는 당신도 참 아름답군.”

그녀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부채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녀의 가느다랗고 동시에 풍만한 몸매와 참 잘 어울리는 동양풍 부채였다. 부채로 얼굴을 가리니 꼭 화가 앞에 선 아름다운 피사체가 된 것 같았다. 자세도, 피부가 비칠 정도로 얇디 얇은 옷도.

“난 벌써 사십이 됐어. 농담이 지나쳐. 그리고 말야, 네 속에 들은 것이 할아버지라 한들 네 모습은 아직 한참 어리다구. 하룻강아지가 추파를 던지다니, 십년은 이른 얘기야.”

“추파라니.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말했을 뿐. 그리고 증명 하고 싶기도 하고.”

“뭘?”

“뭐겠나? 날다람쥐 자식이 아닌 걸 말이지.”

“어떻게…?”

“성(?).”

오랜만에 드는 감정에 가끔은 충실해 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부채를 접었다. 그녀는 부채를 옆 탁상에 올려두고, 그곳에 기대었다. 그녀의 시선은 벽 한곳을 향했는데, 그 이유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지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탁상에 걸터앉은 그녀의 몸선은 참 아름다웠다.

드레스의 갈라진 틈새로 매끈한 허벅다리가 노출되었다. 손은 뒤로 향한채 탁상에 엉덩이를 대고 있으니, 풍만한 유방이 더욱 도드라지는 자세가 되었다.

“놀리는 건 아니겠지?”

“산을 보고 산이라 했을 뿐, 물을 보고 물이라 했을 뿐.”

지존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했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벽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은 애써 태연한 척 무표정함을 연기했지만 심장은 그러지 못했다.

마치 처녀 때로 되돌아 간 것처럼 콩닥거렸다. 처음 사내를 품었을 때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가까이서 보니 더 아름답군.”

“장난은 그만 두래도.”

“그럼 바로 본론으로 가지.”

지존은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머리카락에선 꿀처럼 좋은 향기가 났고, 그녀의 살냄새와 어우러져 남자를 웃게 하는 최음향이 되었다.

지존은 부드러운 숨결을 뱉으며 다시 한번 그녀의 향을 음미했다.

목을 만지던 손은 미끄럼틀을 타듯 서서히 움직여 그녀의 젖가슴을 향했다. 피부에 난 고운 솜털을 타넘으며 겨드랑이에서, 마침내 두툼한 유방의 위로 안착했다.

손등으로는 얇고 부드러운 그녀의 옷감을 느꼈다. 손바닥 아래에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솟아오른 유두가 걸렸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 주인과 달리, 오랜만에 만난 사내에 손길을 환영하는 듯, 젖꼭지가 크게 발기했다.

풍만한 유방은 한 손에 다 잡히지 않았다. 떡을 만지듯 주무르자 어느새 지존의 물건도 그녀의 젖꼭지처럼 솟아올랐다. 열기를 가득 품은 쇳덩이 같았다.

어깨에 가까스로 걸친 드레스를 밀어냈다. 얇은 그녀의 옷은 무게감 없이 스르르 내려갔다. 시선을 돌린 채 얼어 있는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얼음은 금새 녹아 흘러 오랜만에 만난 벗을 포옹하듯 서로를 애무했다.

한참이나 서로의 타액을 섞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따끈히 달아올랐다. 딱딱히 굳었던 근육은 이제 여인의 부드러운 가슴과 같이 유연해졌다. 어머니의 품 속에 안겼던 시절, 젖먹이 때에 느꼈던 부드러움을 그녀를 껴안으며 느낄 수 있었다.

나신의 그녀는 아름다웠고, 그녀 가운데에 있는 균열은 오랜 만남에 기뻐 눈물이라도 나는 듯 촉촉해졌다.

육벽을 헤치고 불기둥을 집어넣었다. 날갯짓을 멈춘 수리가 유유히 허공을 유영하듯 천천히 밀고, 빼었다.

“아아…!”

그녀는 짧은 탄식과 함께 지존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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