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시험 삼아 죽여 봤지.
* * *
곱사등이 같은 몸을 하고 있으면서 어찌나 재빠른지, 가슴뼈를 부술 각오로 날린 장법을 피해냈다.
“@#%^!!!”
“뭐라는 거냐 역겨운 것아.”
고블린들은 품에 있던 나무 대롱을 꺼냈다. 그것은 입으로 불어 독침을 발사하는 원시적인 사냥 도구였다. 위력은 형편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맹독이 발라져 있으니 단 한발도 허용해선 안 되었다.
퓩! 슈슉! 퓩! 퓩!
전투의 긴장감. 그 덕에 흐릿한 옛 기억들이 살아났다.
사천 지방에서 만난 당혁소. 녀석도 독의 달인이었다. 당혁소 녀석과 맞붙었을 때, 녀석은 절대 거리를 주지 않았다.
지존의 사거리에 들어가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 뻔하니 계속 거리를 벌리며 암기를 날려댔었다. 결국 급소를 피해가며 달려드는 수밖에 없었다.
온갖 암기들이 몸에 박혀 고슴도치 꼴이 되어서야 당혁소를 붙잡을 수 있었다. 목숨을 건 사투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실전이었다면 맹독에 중독되어 죽었을 것이다.
당혁소의 옷깃을 부여잡고 땅에 내려쳤었다. 그제서야 당혁소는 껄껄 웃으며 항복을 선언했었다.
“아이고! 졌다 졌어! 그만! 그만! 너처럼 지독한 싸움 방식을 쓰는 녀석은 처음이야. 내가 졌으니 술 한잔 하러 가세나. 내가 사겠네.”
“온몸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네가 독이라도 발랐다면 내가 졌겠지. 암기를 쓰는 녀석들이랑 싸우면 이겨도 이긴게 아니다.”
“크하핫! 미안하게 됐군. 내가 약도 발라주마.”
그와 대결을 마치고 함께 술을 마시며 그에게 들은 좋은 정보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떠오른 것이다.
당혁소는 지존의 귀에 속삭였었다.
“꺼윽, 암기술로 먹고 사는 내가 할 말은 아니네만, 한 가지 좋은 기술을 알려주지. 자네한테 상처를 너무 내서 미안해서 말야.”
“한번 들어나 보겠네.”
“적이 암기를 던질 때, 옷이나 망토를 펼쳐서 휘둘러 봐라. 내공이 실리지 않은 투척은 그 정도의 잡기술로 궤도를 틀어 버릴 수 있거든. 기억해 둬. 나중에 분명 유용하게 쓸 일이 있을걸? 크하핫!”
‘재밌는 옛 추억이 떠오르는군.’
지존은 가죽옷을 벗어 날아오는 독침들 향해 휘둘렀다. 당혁소의 말대로 고블린들이 쏘아대는 허접스런 독침은 옷에 박히거나 튕겨져 버렸다.
당황하는 고블린 한 마리에게 얼른 뛰어갔다. 달려가는 힘과 내공이 실린 장법으로 놈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쩌어억!
수박이 터지는 통쾌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머리가 우그러지더니, 눈알 두개가 빠져 버렸다. 녀석은 끔찍한 몰골로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했다.
남은 고블린은 셋. 놈들은 괴성을 지르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지존은 즉시 몽둥이를 든 쪽의 어깨를 강타했다.
쇄골이 빠개지는 소리와 함께 몽둥이는 저 멀리 날아갔다. 뼈가 부러진 통증에 울부짖는 녀석의 가랑이를 걷어찼다.
고깃덩이가 뭉개지는 감각이 발목을 타고 전해져 왔다.
“이것 밖엔 안 되냐! 고블린들!”
게거품을 물고 나뒹구는 고블린의 머리를 짓밟았다. 턱뼈가 부숴졌다. 덜렁거리는 턱으로 괴성을 지르는 고블린은 정말 시끄러웠다.
“좀 닥치거라.”
내공을 실은 다리로 힘껏 진각을 했다. 다만 땅이 아닌 고블린의 배 위에서였다.
“궤에악!”
피 섞인 토사물은 지존의 얼굴에까지 튀었다. 내장이 뭉게지는 말캉한 감각이었다. 두 번째 고블린은 그렇게 숨이 끊어졌다.
나머지 두 마리의 고블린은 공포에 질렸는지 선뜻 공격을 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눈으로 지존을 바라봤다.
“덤벼. 쳐다 보지만 말고.”
녀석들은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돼지의 목을 땄을 때 같은 찢어지는 소리었다.
“끼아아아악! 꾸아아악! 끼아악! 악!”
“시끄러워!”
지존은 다시 한번 장을 날렸다. 비명을 지르던 녀석의 가슴뼈에 지존의 손바닥이 닿았다. 갈비뼈가 부숴지는 소리가 났다. 녀석은 즉시 잠잠해지더니 앞으로 고꾸라져 죽어 버렸다.
아마 심장이 터졌을 것이다.
함께 비명을 지르던 녀석은 줄행랑을 쳤다. 몽둥이도 집어 던지고 오직 살아남기 위한 달리기였다. 지존은 녀석을 쫓았다.
고블린의 키가 작아서였는지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소년의 몸으로도 충분히 따라 잡고도 남았다.
달려가는 힘을 실어 힘껏 고블린의 허리를 밀어 찼다.
또각!
놈의 척추뼈는 두 동강이 났다. 털썩 소리와 함께 녀석은 쓰러졌다. 척추뼈가 박살나도 두 팔은 쓸 수 있는지 팔로 기어 도망치려 했다.
겁에 질린 녀석의 뒷통수를 후려찼다. 그제서야 녀석의 움직임은 멈추었다. 정수리가 뭉게진 고블린처럼 눈알이 튕겨져 나왔다.
“고블린이란 놈들은 눈깔이 잘 빠지는 체질인가 보군.”
고블린에 의해 끔찍히 훼손된 아기의 시체. 그냥 길바닥에 둘 수는 없었다.
그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삽이라던가 여타 땅 파기에 도움이 될 만한 도구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맨손으로 땅을 파야 했다.
단련되지 않은 연약한 소년의 손이다. 거친 흙 때문에 손끝이 아려왔다. 시체를 구덩이에 넣고 흙을 다 덮기도 전, 고블린들이 또 나타났다.
고블린들이 목청이 떨어져라 울부짖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동료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
“왔냐.”
가장 먼저 지존에게 덤벼든 용감한 고블린은 가장 먼저 죽었다. 벗어둔 웃옷에 박혀 있는 독침을 녀석의 눈깔에 찍어 버렸다. 독침은 아마 눈을 꿰뚫고 뇌까지 파고 들었을 것이다.
장법에 배를 맞고 절명한 고블린이 셋, 목뼈가 부러져 죽은 고블린이 하나, 주먹에 맞아 죽은 고블린이 둘, 독침에 찔려 죽은 고블린이 넷이었다.
더욱 빨리 끝낼 수도 있었지만 내공을 순환하고 기운을 바로 잡는 것에 집중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다. 수련의 목적 없이 단순히 고블린을 죽이는 것이 목표였다면 고블린 한 녀석마다 십여초면 충분했을 것이다.
지존은 소년의 몸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무공을 전혀 배우지 않은 연약한 신체였던 것 또한 기맥이 뚫리고 내공이 순환하니 금새 튼튼해져 가고 있었다.
‘감을 되찾는 데에 안성 맞춤인 녀석들이군. 한동안 고블린만 죽이러 다녀야 겠다.’
상의는 죄 뜯겨져 옷이라 부를 수 없는 형태가 되었다. 옷을 벗고 싸운 탓에 그의 상체는 피와 땀으로 잔뜩 엉겨붙어 있었다.
검은 더벅머리는 굳은 핏물 때문에 고슴도치 처럼 일어섰다. 수련도 잘 했고, 이제 마을에 가서 좀 쉬고 싶었다.
말에 올라타니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고블린의 간은 비싸진 않아도 나름대로 돈이 된다고 했다.
“이런… 생각해 보니 칼을 안 챙겼구나…”
지존은 급하게 오지 말고 준비 좀 해서 올 일이었다며 후회했다. 뱃가죽을 따야 간을 뜯어낼 수 있었다.
고블린 녀석들이 쓰던 조악한 날붙이를 사용해 봤지만, 날이 하나도 살아 있지 않으니 작업이 생각처럼 되질 않았다.
간신히 간을 드러내자, 그의 장법에 당한 탓에 간은 그 형태를 잃은 상태였다. 터진 위장에서 흘러나온 액과 창자 속의 오물이 버무려져 있었다.
“이래서야 팔아 먹긴 글렀구나.”
빈손으로 돌아가긴 뭐하고, 고블린을 여럿 잡았다고 증명할 것이 필요했다. 현재 모험가 등급이 최하위라 했으니, 조금 올려두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뭐로 증명할지 한참 고민하던 지존은 고블린의 몸에서 그것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총 25개였고, 떼어내는 것도 쉬웠다.
너덜너덜한 상의를 잘 오므려 그것을 담았다. 나무에 매여 풀을 뜯던 말에 다시 올라 마을로 향했다.
*
몬스터가 나타날 기미는 없고, 출입하는 사람도 적으니 문지기들은 심심했다. 피끓는 나이대의 청년들 답게 껄렁한 농담을 하고 있었다.
“야, 방앗간집 딸래미 이쁘지 않냐?”
“이쁘긴 한데 내 취향은 아니야.”
“이쁘면 됐지 뭔 취향이야 새끼야. 뭐 땜에 그래?”
“가슴이 너무 작더라. 엉덩이도 영. 그게 뭐가 좋냐?”
“으유, 아무 것도 모르는 놈.”
문지기들은 낄낄거리고 있었다. 잠시 뒤 웃음이 가득하던 그들의 얼굴을 싸늘하게 굳히는 녀석이 나타났다.
“헉! 저거, 저거 뭐냐?”
“몬스터인가? 야! 다들 창 들어!”
“뭐지? 피범벅 된 것이 말을 타네? 말 타는 몬스터도 있냐?”
“닥쳐! 집중해!”
지존이었다. 고블린의 피와 땀으로 버무려진 지존의 모습은 사람의 꼴이 아니었다. 더구나 윗옷도 벗어둔 상태였고, 이곳에선 흔하지 않은 검은 머리라는 것도 그랬다.
그가 문에 가까워지니 문지기들은 창을 쭉 빼들고 소리쳤다.
“누구냐! 사람이면 대답해라!”
지존은 의아할 따름이었다.
“아까 봤는데 왜 그러나? 아까 내 등록증도 봤을 텐데?”
“너처럼 생겨 먹은 녀석은 없었다! 초원의 야만인 아니냐?”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느냐? 왜 기억을 못 하나?”
하는 수 없이 지존은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청년의 조그만 체구가 보이고서야 문지기들은 알아챘다.
“아, 아까 그 존 이라는 아이언 등급 모험가구나? 미안하다. 그 꼴로 다니면 누가 알아 보겠냐?”
“이제야 알아 보는군. 이렇게 더럽혀질 줄은 몰랐지.”
피땀과 오물의 냄새가 문지기들의 코를 찔렀다.
“으윽! 마을 들어가면 목욕탕부터 가라!”
“충고 고맙네.”
지존이 돌아가고 나서도 문지기들은 그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뭔 짓을 하고 왔길래 피범벅인 거야? 옷도 안 입고 말이야.”
“정신이 좀 이상한 녀석 아닐까?”
“모험가니까 사냥을 하고 온 거겠지.”
“야, 아이언 등급 밖에 안 되는 녀석이 뭔 사냥이냐? 몬스터한테 물려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음, 그런가. 아무튼 꿈에 나올까 무섭네. 피범벅 검은 머리 꼬맹이라니 윽…”
“꼭 귀신 같았어.”
떠들기 좋아하는 이 문지기들은 그를 귀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귀신으로 또 말 문이 트인 녀석들은 한참 동안을 귀신에 대한 주제로 열심히 토론을 했다.
*
지존이 말을 타고 마을을 활보하니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피했다. 별 미친 놈 다 보겠다는 눈빛이 반, 못 볼 꼴을 봤다는 눈빛이 반이었다.
지존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길드의 문을 열어보니 아침 때와 마찬가지로 사내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모두 장비를 정비하거나 임무 계획을 짜고 있었다.
“......?”
“귀신이 낮에도 다니나…?”
길드 내의 모험가들 눈에도 지존은 미친놈처럼 보였다. 웅성거리던 사내들은 다들 눈이 빠져라 지존을 쳐다봤다.
지존은 접수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시오?”
“어… 으윽, 예,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아침부터 접수대에 있던 미녀는 역한 피냄새에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모험가 등급을 올리려고 왔소만.”
“예? 하지만 임무를 완료하신 것이 없지 않습니까?”
“아침에 파스칼이란 자가 그러지 않았소? 고블린을 여럿 죽이면 등급이 올라갈 수도 있다 들었는데.”
“아… 흐음… 그렇다면 우선 파스칼 님이랑 얘기 하시죠. 파스칼 님!”
그녀가 파스칼을 부르자 아침에 봤던 그 사내가 왔다. 그가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아침에 봤던 그 동방 모험가 님이로군? 무슨 일이냐? 게다가 그 누더기 같은 꼴은 뭐고?”
“등급을 올릴 겸 해서 고블린을 좀 잡아 봤소.”
“뭐라고? 난 거짓말 하는 녀석을 제일 싫어해. 동료도 못 구한 녀석이 무슨 고블린이냐? 그리고 너 본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말이야. 구라를 치려면 입에 침부터 발라라 이놈아.”
“그럴 줄 알고 증거도 가지고 왔소.”
지존은 봇짐처럼 묶인 상의를 풀렀다. 그걸 본 메리는 입을 틀어막고 자리를 뜨고 말았다. 파스칼 역시 깜짝 놀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