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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지존은 서역에서 다시 산다-6화 (6/56)

〈 6화 〉 처음, 새로운 추억.

* * *

새 날이 밝았다. 로즈의 체온은 뜨거웠다. 같은 이불 속에 있으니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지존은 먼저 일어나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옷이 없으니 밖으로 나가기도 애매했다. 머리를 긁적이고 있으니 로즈도 깨어났다.

"잘 잤어?"

"더워서 잠을 설쳤다. 몸이 뜨겁구나."

"그래서 너랑 같이 잔거야. 네 몸이 얼마나 차가웠는지 아니? 너가 쓰러졌을 때, 나는 죽은 줄만 알았어. 시체처럼 차가웠다니까?"

"... 배려는 고맙다만, 아까도 말했던 것이다. 어찌 부끄럼 하나 없는가? 이 몸이 아무리 어려 보인다 할지언정, 사내 옆에 알몸으로 눕는가? 이 몸은 벌써 열아홉은 된 몸이다! 서역 여인들은 다 이러한가?"

"흐음~ 동방의 왕자님은 예의범절에 민감하시구나~"

그녀는 핀잔 주는 지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몸을 일으켰다.

"하암~ 누나는 잘 잔거 같네."

로즈는 풍만한 유방을 가릴 생각도 않고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묶었다. 어찌나 큰 가슴과 연약해 보일 정도로 가녀린 등인지, 뒤 돌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보였다.

지존의 몸 상태는 새벽에 잠깐 깼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내공을 자주 다뤄보지 않은 미숙한 신체였었다. 이전까지는 그랬다.

어제의 결투에서 내공을 싣은 장법을 날렸을 때, 청년의 신체에 변화가 일어난 듯 했다. 그의 몸은 아직 내공이 쉽게 흐르지 않는 상태였다.

비유하자면 흐르지 않는 고인 연못 같았다. 기가 흐르는 문들이 모두 단단히 길을 막아서서 내공이 제대로 순환 되지 않았다.

어젯밤 지존은 난생 처음 상대해 보는 풀 플레이트 아머에 당황했었다. 솔직히 조금 치욕스러운 일이었지만, 자칫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사내의 몸 속 세포들은 본능적으로 기문을 열어젖혔고, 그 덕에 지존의 뜻대로 유연하게 내공이 흘러 장에 실릴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체질이 변화한 것이었다. 지존의 옛 육체에 아주 조금이나마 닮게 된 것이다.

"... 색목인 여인을 안아 본 적은 없었지."

지존의 혼잣말이었다.

로즈는 그것의 숨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응? 어제 누나가 껴안고 잤잖니? 그럼 안아본 적은 없어도 안겨본 적은 있는거네?"

"..."

이제 막 여인을 품을 만한 청년의 몸. 세포들은 양기로 가득 차, 살짝만 건드려도 터져 나올듯 했다.

그런 몸에 기맥이 뚫리니 온 몸 구석구석에 샘솟는 생명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양기를 가득 품은 혈액은 아래에 뭉쳐 분출하는 용암처럼 열을 내고 있었고, 심장은 사냥감을 쫓는 맹수처럼 힘차게 뛰었다.

지존은 지쳐 있었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었다. 잠을 자는 것도 말 위에서 선잠을 잤을 뿐이었다. 거기에 온 몸 가득히 멍과 상처로 가득했었다.

식사를 한 뒤에 한 숨 돌리고 나니, 더 이상 그런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농익은 여인의 향이 비강을 타고 올라와 뇌를 찔렀다. 그 뇌는 아직 세상의 경험이 부족한 말랑한 소년의 것과도 닮았다.

무엇을 느껴도 예민하고, 무엇을 보아도 새롭게 받아 들이는 어리고 싱싱한 뇌.

향기는 구름처럼 뭉쳐 몽실몽실 두뇌를 감쌌다. 자극적이었다.

꽃을 발견한 나비처럼.

손끝에 오르는 정전기처럼.

"로즈."

"응?"

"홍매의 살냄새도 너와 닮았었지."

"홍매…?"

"옛 기억이다. 네 눈에는 내가 그저 어려 보일테지. 그러나 나는 지존이었다. 중원의 정점에 서 무림의 모든 것을 내려다 보는 사내였다."

"...?"

로즈는 뒤돌아 지존을 바라보았다. 동방의 사내는 자주 본 적이 없어 나이가 가늠되질 않았다. 앳된 청년의 모습은 사라졌고, 전장을 헤치며 수많은 적들을 도륙한 거친 사내의 모습이 느껴졌다.

왜인지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어젯밤 결투 때도 청년이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었다. 그러나 단지 비범한 자, 대단한 무예를 다루는 자, 그 정도의 감상에서 멈추었었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사내의 모습은 거친 갈기털을 지닌 늑대, 절벽에서 울부짖는 우두머리 늑대의 것이었다.

강인한 수컷 앞에 알몸으로 묶여진 느낌.

"내 오늘 하루 너를 사겠다."

"......"

싫다, 알겠다는 의사 표현조차 나오지 않았다. 공포? 압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본능이었다. 온몸의 힘은 쭉 빠져 허공에 떠다니는 느낌. 모든 자유 의사를 거대한 무엇인가에 내맡긴 느낌.

지존은 로즈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 잘 익은 과실은 한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붉게, 또한 살짝 융기된 유륜은 소년의 몸이 기억하는 향수와 어우러져 더욱 강렬한 감각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미의 젖을 찾는 젖먹이처럼, 젖냄새를 그리워하는 갓난아이처럼…

말캉한 젖가슴을 움켜쥐며 목에 코를 가져다 대었다. 여인의 향기가 스며들어왔다.

팽창한 하반신의 그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맥동했다. 다른 한 손으로는 로즈의 온몸을 쓰다듬었다.

유선형의 몸을 타고 내려가는 손길. 로즈는 척추에서 전기가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보드라운 살결을 느끼며 성숙한 여인의 몸을 만지는 것. 그것은 도자기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과도 비슷했다.

세상의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곡선, 사내의 눈을 멀게 하는 곡선이다. 어깨에서부터 얇은 허리를 타고 다시 풍만해지는 선. 지극한 아름다움이었다.

사내의 초롱한 눈을 통해 바라본 그 곡선은 여느 누가 바라본 것보다 뇌쇄적으로 다가왔다. 청년의 눈동자는 그것을 처음 담아보았을 테니.

지존은 하얀 목을 당겨 그녀를 눕혔다. 바로 누운 그녀의 몸, 새하얀 도자기였다. 존재감을 발하는 커다란 젖가슴, 그건 매마른 사내의 마음에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다.

사내들은 그 때문에 더욱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에 매료되는지도 모른다.

지존은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연한 속살 같은 혀는 지존에게 단숨에 제압당했다. 몸 또한 그것처럼 힘을 잃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시작된 동굴이 있다. 사내 아이건 여자 아이건 그곳에서 시작된다. 사내는 연어처럼 고향을 그리워하기 때문일까. 자신의 단단한 하반신으로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길 원한다.

로즈의 닫힌 균열 속 동굴은 촉촉히 젖어 들어 갔으며, 지존의 그것은 더욱 단단해져 바위처럼 되었다.

색목인을 처음 안아보는 지존처럼, 로즈 또한 동방의 사내를 품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색목인의 물컹한 것과는 다른 바위 같은 강도가 새로웠다.

균열을 헤집고 물건이 들어갔다.

숨이 턱 막히는 이물감. 그러나 이내 놀랍도록 새로운 감각이 찾아왔다.

들어갈 때마다 내공이 오장육부를 감싸안는 느낌, 빠져나갈 때는 온몸이 끌어 당겨 지는 듯한 느낌. 본래 내 것을 빼앗기는 듯한 안타까움. 그 둘의 반복은 로즈를 거의 미치게 했다.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았는데 로즈의 허리는 붕 떠서 갈 곳을 헤맸다. 방황하는 허리를 부여잡았다.

음기와 양기가 충돌하고, 부숴지고, 뒤섞였다. 그 둘의 타액도 그러했다. 혀와 혀는 우애 깊은 형제처럼 서로를 다독여 주었다.

지존의 기맥은 이러한 격정적인 감정 속에서 다시 한번 크게 문을 열었다.

미약하게 있을 뿐인 내공이지만, 그 뿐이라도 좋다. 내공은 정기로 바뀌어 로즈의 몸 구석구석을 훑었다.

처음 느끼는 감각들이었다. 로즈는 여러 사내들을 품어 보았다. 하지만 여인의 몸이 이토록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에 감각이 새로 쓰여지는 느낌이었다. 몸이란, 이 정도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목에서 얇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본능이 자아내는 소리였다. 깜짝 놀란 근육들이 쥐어 짜여지며 나오는 신음이다.

"으으.. 흐으응… 으으으응…"

"..."

성숙한 암컷이 내는 이 음성에는 가청 주파수를 초월한 무언가가 담겨 있다. 수컷에겐 이 음이 천사들의 합창과도 같았다. 지존의 동작은 더욱 격정적으로 변하였고, 로즈의 눈에선 눈물마져 배어나왔다.

고통의 눈물이 아니었다. 진정한 여인으로 거듭나는 듯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온 몸이 새로워지는 느낌. 여인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희열. 그 끝에서 지존과 함께 또 다시 음성을 토해냈다.

지존의 것은 용의 울음과 같았다. 용암 같은 불길을 쏟아내는 용처럼, 부르르 떠는 지존의 몸은 사방에 정기를 뿜었다.

혼백이 분리될 정도의 쾌감이다. 로즈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좋은 여인이군…"

용은 만족스럽다는 듯 이마의 땀을 훔쳤다.

*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에르였다.

"피에르인가? 들어오게."

남녀의 숨이 뒤섞인 새큼한 향, 피에르는 깜짝 놀랐다.

"옷 가져 왔어. 응? 이 무슨…"

로즈는 혼절한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물론 지존은 그녀의 나신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침대에 우두커니 걸터 앉아 있는 지존. 누가 보아도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과연 귀신 같은 놈이군. 로즈가 완전 죽어 버렸잖아? 네가 어제 한 헛소리들, 어느 정도 믿음이 간다."

"어제 무공을 사용하고 푹 자고 나니 기맥이 뚫린 모양이다. 기력이 너무 넘쳐 쏟아낼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로즈가 잘 받아 주었군. 좋은 여자다."

"터무니 없는 놈이야. 뭐, 됐고, 어제 네가 마을 안내를 해 달라 했었지? 따라와라. 음, 로즈는 한참이나 있어야 일어나겠군."

"그래. 잠깐만 기다려 줘."

피에르는 지존의 새 옷을 두고 방을 나갔다. 남녀가 격전을 벌인 장소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은 듯 했다.

지존은 기절한 로즈에게 옷을 입혔다. 이따가 기절에서 깨어 났을 때, 알몸으로 있다면 뭔가 부끄러울 것 같았다.

사내를 품었는데, 사내는 방에 없고 여인 혼자 방에 남아 알몸으로 있는 것, 그걸 상상해보니 여인에게 있어서 썩 유쾌한 상황이 아닐 것 같았다. 지존 나름의 배려였다.

속옷을 입히는 것은 쉬웠다. 펑퍼짐한 치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녀의 상의는 그 풍만함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던 것인지 잘 입혀지질 않았다. 단추를 끼워도 금새 튕겨져 버렸다.

"이 여인은 대체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니는 겐가…?"

지존은 방 문을 닫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피에르에게 향했다.

"왔다."

"어, 그래. 식사부터 할까? 아 물론, 나는 돈이 없어서 네 뜻에 따라야 할 뿐이야."

피에르는 능청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지. 수업료라고 생각한다. 이 서역의 풍습을 모두 가르쳐 줘라."

"물론이지. 어젯 밤에 네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넌 세상을 하나도 모르는 것 같더라?"

"세상을 모르긴… 서역을 모를 뿐이다."

피에르는 한 식당으로 그를 안내했다. 서민적인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그가 주문한 것은 돼지 창자에 피와 다진 고기를 넣고 찐 것과 빵 조금, 그리고 수프였다.

빵과 수프는 아직도 영 입에 맞질 않았다. 하지만 돼지 창자 요리는 중원에서도 가끔씩 먹던 것이었다.

아침부터 힘을 쓴 지존은 괴물 같은 속도로 창자 요리를 씹어 삼켰다.

"안 뺐어 먹는다구. 천천히 먹어."

"워낙 허기가 져서 말이지. 그나저나 너는 로즈의 기둥 서방 같은 거냐?"

피에르는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껄껄 웃었다.

"으응? 푸하하하! 내가 그렇게 보이나? 전혀 아니야. 난 알 아브 출신의 수행자다. 선대의 말씀을 전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왔지."

"그런데 왜 거렁뱅이처럼 골목에 있던 거냐?"

"그야 돈이 없으니까 말이지. 수행자가 어디 돈이 있겠어?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 그리고 가슴에 새겨진 말씀 뿐이지."

"재미있군. 난 네가 로즈와 친해 보이길래, 여인의 피를 빨아 먹는 기둥 서방 같은 놈인 줄만 알았다."

"하하하!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네. 전혀 아니야. 난 때때로 느티나무 아래에서 옛 말씀을 사람들에게 들려 주었지. 어느 날 부터인가 로즈가 매번 말씀을 들으러 오더군. 그렇게 친해졌지. 나중엔 친구들도 엄청 데려 오더라구."

"석가의 말을 따르는 중 같은 거로군."

"석가?"

"중원의 사람들이 존경하는 현자의 이름이다."

피에로와 지존은 서로의 말을 흥미로워 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긴 이야기였다. 돼지 창자 요리가 세 접시나 비워질 정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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