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몹쓸 아비.
* * *
윽, 헤윽, 컥, 크으으윽!
그런 소리가 나올 상황이다. 비명도 좋다.
“......!”
독약을 먹은 쥐새끼처럼.
“.......!!”
올무에 걸린 산토끼처럼.
그러나 어떤 소리도 목에서 나올 방법이 없었다.
발작적인 최후의 경련 끝에서 간신히 살아 있었다. 두툼한 나뭇가지에 목이 메달려 있는 것이다.
동공은 최대로 확장되고, 오체의 구멍이란 구멍에선 오물이 흐르기 직전. 더욱 시간이 지난다면 나무토막처럼 뻣뻣이 경직될 몸이다.
이 맥락도 개연성도 없는 급작스런 통증에 뭣 하나 대비하는 것이라곤 불가능했다. 의식이 생기자 마자 이런 상황이라니.
팔다리는 희미하게 남은 저릿한 감각 뿐, 근육엔 어떤 힘도 없었다. 혈관 속을 따뜻하게 흘러야 할 강물도 느릿하게 침체되어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 내공! 내공을 이용하자!
필사의 각오로 내공을 끌어모아 팔에 전달했다. 팔은 실에 메달린 목각인형처럼 차가운 움직임으로 치켜올라갔고, 손가락은 목과 밧줄 사이를 파고들었다.
모을대로 모은 내공이 이토록 없다니! 중원을 평정한 무(?)의 고수로 살아온 그에게 한줌 모래만큼의 내공도 없는 몸을 느끼는 것은 지독한 탈력감을 주었다.
필사의 각오로 끌어낸 내공. 하늘도 진심에 감동한 것인지, 밧줄이 낡아빠진 탓인지, 목을 옭아매던 밧줄은 끊어졌다.
“케흑! 헥! 에으으으에윽, 우웨에엑! 웨엑.”
눈알이 빠져나간 줄 알았다. 다행히 앞은 보였다. 주르륵 흐르는 침과 토사물엔 핏물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캄캄한 동굴 속에서 여정을 떠난 혼백이 시간과 공간을 떠돌아 이곳에 도달한 것이다. 하필이면 나무에 목이 메달린 반 시체로.
“이 썅! 뭔 일이야?”
강변이었다. 나무에 메달려 있던 탓인지 한동안 바닥에 자빠져 있었다. 시각은 한참을 지나서야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이 흐르는 강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되고서 처음 뱉은 말이다.
머리통은 쪼개질 것만 같고, 상황 파악은 안 되고, 무림에서 지존으로 불리운 그였어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머릿 속을 휘젓는 개같은 기억들. 이 몸이 지닌 기억들의 편린이었다. 기억의 조각들이 머릿속을 휘젓는 느낌이다.
그래, 그래. 천천히 생각해 보자. 나는 분명 죽었으리라. 동굴 속에서 제자들을 곁에 두고서.
멍청한 제자놈이 그토록 하지 말라던 주술을 쓴 것이 분명했다. 다시 만나게 되면 크게 경을 칠 일이다.
막상 새 삶을 얻고 나니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공 따윈 하나도 없는 빈 껍데기 같은 몸이긴 했지만,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슬슬 온몸에 혈액이 제대로 돌기 시작하니, 창백하기만 해 보였던 살갗이 제 빛을 찾았다. 건강하다고는 못 할 마른 팔뚝. 소년의 것이었다.
흐르는 강물로 다가가 목을 적셨다. 이제야 피맛이 사라졌다. 맑은 강물에는 얼굴이 비추었다. 앳된 소년의 얼굴. 그럭저럭 미소년으로 보아 줄만한 모습이었다.
“욱! 우웩!”
구토를 참을 수 없었다. 개같은 기억. 자신의 새 얼굴을 보자 이 몸의 전 주인이 받았던 고통들이 느껴졌다. 정말로 역겨운 기억 뿐이었다. 딱 하나, 아멜리라는 귀여운 여자애, 그 기억만 빼고.
이 녀석은 고아였다. 그리고 이 곳은 색목인들의 땅. 서역이다. 고아 중에서도 좀 별다른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동방 출신의 고아였으니까.
“웨에엑!”
녀석의 아비를 자처하는 개새끼. 디트리히는 정말 빌어먹을 새끼였다. 누구에게나 멸시 받는 동방의 고아를 거둬들였다며 밖으로는 성자처럼 구는 새끼.
그 속은 시커멓다 못해 무저갱에 가까웠다. 디트리히는 요즘 새로운 돈줄을 찾았다. 한 용병단에 소속되어 아들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은 양자 를 팔아먹는 것이다.
그럭저럭 곱상하게 생긴 녀석은 용병단의 게걸스런 성욕을 지닌 이들에게 별미로 다가왔다. 디트리히의 장사는 꽤 쏠쏠했다. 용병단을 쫓아다니며 밤마다 화대를 받고 아들을 넘기면 되니까.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돈벌이였다. 그뿐이랴, 고아를 먹여주고 재워준 은혜를 알라며 매일 몽둥이질을 일삼았다. 재수 없는 검은 머리 애새끼를 거둬들인 자신이 얼마냐 착하냐는 것이 그 놈 입버릇이었다.
또 하나, 끔찍한 녀석이 용병단에 있었다.
‘철퇴의 두바인’
이 멧돼지 같이 생긴 자식은 디트리히의 최고 고객이었다. 동시에 최악의 진상 고객이었다.
돈을 많이 쓰는 놈은 맞지만, 소중한 상품에 상처를 내는 녀석이었으니까. 두바인 때문에 소년의 몸은 멍 투성이에 상처가 가득했다. 특히 좁고 앙상한 등짝에, 상처날 곳도 부족해 보이는 가엾은 몸통에 말이다.
“웨에엑! 웩! 죽여… 버릴 테다…”
지존의 마음은 어느새 이 이름 없는 사내에게 동화되었다. 얼마나 삶이 고통스러웠으면 어린 나이에 목을 메달았을꼬.
그 한을 풀어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일단은 그게 먼저였다. 자신을 아버지라 칭하는, 감히 그 존귀한 호칭을 자처하는 개새끼를 죽이리라.
그리고 이 바싹 마른 청년의 몸도 마음도 뭉게며 욕정한 돼지새끼, 두바인. 그 둘을 쳐죽일 것이다.
두바인 자랑하는 철퇴로 얼굴을 으깰 것이다. 지존, 그러니까 지금 소년의 몸에 들어와 있는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지친 몸을 움직였다.
강가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니 금새 용병단의 막사를 찾을 수 있었다. 일거리를 찾아 다른 마을로 가던 도중 며칠 쉬기 위해 막사를 쳐둔 것이다.
“어이, 예쁜이.”
“!!!”
두바인이었다. 탐욕스러운 눈알을 굴리며 위아래로 훑어 보는 듯한 끈적한 시선. 역겹기 그지 없었다.
중원에 있었을 무렵, 손가락 하나만 튕겨도 터트려 버릴 수 있는 허접한 존재다. 두바인이 바로 그 정도 수준이다. 하찮은 미물 수준의 무력을 지닌 것. 어떤 감정도 생기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다.
소년의 몸이 그 공포를 기억하는 것일까. 두바인을 보자마자 온 몸이 얼어붙었다.
“제, 젠장…”
동시에 두뇌를 뒤섞는 역한 기억들.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점심도 안 먹고 어딜 갔다오냐? 킥킥킥, 설마 날 피해 숨어 있던거야? 오늘 밤은 더 예뻐해 줘야겠는걸?”
두바인이 개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등 뒤로 다가왔다. 빌어먹을 그 놈은 어깨에 손을 올려둔 채 추가로 더욱 역겨운 소리를 해댔다.
젠장. 젠장. 젠장. 저런 하찮은 돼지 새끼에게 이토록 공포를 느끼다니!
지존 일생 최대의 치욕이리라.
어깨를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시던 두바인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일단은 디트리히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달리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는 없다.
청년의 기억 속에서 본 바에 따르면, 이 용병단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성미를 지닌 자들 뿐이었다. 두바인은 그 중에서도 악질이었다.
“어딜 쳐 갔다가 이제야 기어 들어오는 거야? 이 개새끼, 요즘 덜 맞았지?”
디트리히가 있는 막사로 들어가자마자 들은 말이었다.
“엎드려.”
“...”
가까운 거리. 발을 뻗으면 디트리히의 턱까지 닿을 거리였다. 지존이었던 그에게 이 정도 거리는 적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간격이었다. 하지만 이 가련한 소년의 몸으로는 디트리히의 말에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공포와 함께. 이래서야 두바인과 디트리히를 쳐 죽일 수도 없다.
결국 공포 끝에 무릎을 꿇자, 디트리히는 차고 있던 벨트를 풀렀다. 금속 징이 여러개 박혀 있는 그의 혁띠는 효과적인 형벌 도구이기도 했다.
디트리히는 소년에게 벨트를 마구 내려쳤다. 이따금 징이 관절 부위를 때릴 때에는 뼈가 끊어지는 줄만 알았다.
“흐윽, 흑… 흑… 살려 주세요 아버지…”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지존이 목숨을 구걸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 바닥 없는 무력감은 눈물이 되어 얼굴을 적셨다. 눈물 또한 지존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누가 네 아버지냐? 더러운 고아 새끼! 이 새끼!”
철썩 철썩. 가죽이 가죽을 때리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결국 청년은 졸도하고 말았다.
수 시간은 흘렀을 것이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 있었다. 디트리히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이제야 깼냐? 기절하긴, 등신이. 야, 이거 쳐먹어.”
디트리히는 거친 빵 쪼가리를 던져주었다.
오늘 밤 반드시 죽여버릴 것이다. 지존은 그렇게 다짐했다. 얼른 이 사내의 몸이 기억하는 공포심을 극복해야만 했다.
“쳐먹고 두바인한테 가. 두바인이 오늘은 긴 밤이라 했다. 잘 됐지.”
거칠고 맛대가리 없는 빵을 먹었다. 중원에선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빵이었다. 입맛에 하나도 맞지 않아 던져 버리고 싶기까지 했지만, 살기 위해선 먹어야 했다. 청년의 앙상한 몸은 더 이상의 공복을 견딜 수 없는 상태였다.
두바인의 막사로 들어갔다. 그는 벌써부터 벌거벗은 채 가련한 청년을 유린할 준비를 갖추었다.
“왔냐. 예쁜이. 낄낄낄.”
“...”
온 몸을 얼리는 공포감이 다시 찾아왔다. 동시에 지존의 흉흉한 살의도 피어올랐다. 육욕을 탐닉할 생각이 뇌를 지배한 두바인은 청년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몰랐다. 멍청한 놈이었다.
두바인이 혀를 낼름거리며 다가왔다. 아랫도리에 달린 흉물은 잔뜩 융기한 채였다. 추하기 그지 없었다.
두바인은 서서히 죽음의 간격 안으로 들어왔다.
두바인의 역겨운 손이 그의 몸에 닿았을 때였다.
이 때다!
지존의 흉악한 살법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추한 놈에겐 추한 죽음이 제일이리라.
쥐똥만큼도 없는 청년의 내공을 끌어모았다. 내공은 단전에 모여 다리를 향했다. 온 힘을 다해 두바인의 가랑이를 걷어찼다.
“이익! 흐이익!”
어찌나 세게 찼는지, 두바인의 몸이 지면에서 살짝 뜰 정도였다. 두바인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하며 바닥을 굴렀다.
“흐이에에엑! 흐이! 히이! 으이익!”
주인을 잘못 만난 고환 두 쪽은 주인보다 세상을 조금 일찍 떠났다. 다음은 고환의 주인 차례였다.
두바인이 아끼는 철퇴를 꺼내들었다.
“이이익! 네녀석! 뭘 하려는 게야! 으아악!”
뻐어억!
수박통 깨지듯 두바인의 뇌를 담아두던 그릇은 산산이 조각났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퍼즐보다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부숴졌다.
그의 몸 속 깊숙히, 뼛속까지 사무친 공포심을 이겨냈다. 과연 지존이었다. 다음은 디트리히 차례였다.
두바인의 막사를 빠져나오자 다행히 다른 용병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각자 자신의 창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피가 떨어지는 철퇴를 감출 필요도 없었다. 곧장 디트리히에게 찾아갔다.
“뭐, 뭐야? 이 새끼? 그 피는 뭐냐? 어? 어어? 내려 놓지 못해? 으아악!”
디트리히 인생 최후의 말이었다. 두바인의 철퇴는 한번 더 퍼즐 조각들을 바닥에 흩뿌렸다.
이 어찌나 상쾌한지! 가련한 사내의 한도 적당히 풀린 것일까. 지존의 혼백보다 강하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몸의 마음이 옅어졌다.
즐거운 피맛. 중원의 지존은 방금 다시 태어난 것이다. 서역의 색목인 땅에서, 검은 머리를 한 미청년으로.
디트리히가 모아둔 금전 주머니, 그리고 검 한자루를 챙겼다. 디트리히가 타고 다니던 말에 올라탔다. 젊은 시절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달리는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흥, 빌어먹을 제자 놈들. 다시 만나면… 살짝... 덜 혼내야겠군.”
지존과 그가 탄 말은 달빛을 받으며 초원의 밤을 가로질렀다. 어느 마을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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