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8화 〉 걱정 (5)
* * *
일렁이는 그림자가 삐걱거리는 손 같은 것을 들어올려 내 얼굴을 핥는다.
질척하고 미끄럽다.
목소리는 에스더인데…드러난 모습은 노이즈 라고 해야할까…어딘가 이상하다.
“사, 살아…살아.”
갑자기 왜?
무슨 일로 나타난거지…?
네거티브가 근처에 있는 것도 아닌데…저번처럼 부른 것도 아닌데….
아니 그보다 이건…이건, 에스더…?
에스더가 맞겠…지?
뭐지?
영상이 끊기는 것처럼 지직거리며 이리저리 비틀렸다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얼굴도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다.
아니, 일그러진 게 아니라 얼굴이 안 보인다.
그런데도 왼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에스더가 확실하다.
“에스더?”
묘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에스더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에스더는 흠칫 놀라며 내 얼굴을 핥던 손을 치웠다.
몸을 움츠리고, 좀 더 투명해진 에스더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 있었구나….”
“어? 어…응.”
“...그래…마법소녀니까, 그럴리가…그럴리가 없지…아, 하하….”
에스더는 눈을 질끈 감고 감정을 애써 삭였다.
일렁이는 그림자가 조용히 내려앉으며 형태를 굳혀간다.
그 모습이…아니, 잠깐만…눈을 감았다는 걸 이 모습을 보고 대체 어떻게 아는거지?
애초에, 이걸 내가 어떻게 에스더라고 알아차린 걸까.
왼손을 통해서 에스더라는게 느껴지긴 하는데….
뭐라 하기 힘든, 기묘한 감각이다.
“그래…하지만, 그러면…아니…후우….”
에스더의 날개와 얼굴이 일그러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에스더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에스더는 진정한 듯,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뭔가 이유가, 있다고 해도…그건….”
…아까부터 혼자 뭘 중얼거리는 걸까.
의문을 가지고 에스더를 바라보자, 에스더는 천천히 내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본 에스더는 이상한 말을 했다.
“…멀쩡하네.”
“응?”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멀쩡하다니…갑자기?
나는 뭘 보고 멀쩡하다고 하는건가 싶어 나 자신을 내려다봤다.
옷이 멀쩡하다는 건가 아니면 몸이…?
그러고보니, 에스더는 리프의 비밀 연구소에서 날 도와주고 난 뒤 지금 처음으로 만나는 거였지.
애쉬가 나한테 뭔가 하기 전에 사라지긴 했지만,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불안했던 걸까.
애쉬랑 무슨 일이 있었긴 했지만…지금은 에스더가 말한 대로 멀쩡하다.
잠깐만, 그러면 이거 지금 날 걱정해 주는 거 아냐?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
“걱정해 주는 거야?”
에스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 자체가 대답이 되었다.
아무래도 걱정되서 갑자기 나타난게 맞는 것 같다.
에스더가 날 걱정해 주다니…믿기 어렵지만 이건 현실이다.
하긴…에스더는 내가 도와달라고 부르면 바로 달려오기까지 했으니까…나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거겠지.
1번 팬이라고 말해줄 정도니까.
리프 X를 상대할 때, 에스더의 도움을 많이 받기는 했다.
에스더가 없었으면 지금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솔직하게 감사 인사를 하며 칭찬해 주도록 할까.
“후…정말 에스더의 1번 팬이어서 다행이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야, 에스더 덕에 멀쩡한 거라는 얘기지…정말 에스더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 했어.”
“뭐?”
“역시 에스더가 최고야, 에스….”
“다물어.”
나는 잔뜩 화가 난 듯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하던 말을 멈췄다.
에스더는 팔짱을 낀 채 내게서 완전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듣기 싫다는 의지가 팍팍 느껴진다.
“어, 음…아니…나는…그냥, 그, 고맙다는…인사를 하려고….”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
이게 아닌가?
이상하다…왜 갑자기 화가 난 거지.
나는 머쓱함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하려던 말을 설명하다가,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말을 돌렸다.
“에스더는 괜찮아?”
“뭐?”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건 아는데, 눈 앞에서 그렇게 되는 걸 보니 좀 걱정했거든.”
조금 전까지 깜빡 잊고 있긴 했지만, 아무튼…아마도 걱정했다.
에스더는 나의 진심어린 걱정에 멍하니 서 있다가 홱 하고 등을 돌렸다.
목소리에서 정말로 어이없어 하는 게 느껴진다.
“하? 너 대체 누굴 걱정하는거야?”
“에스더를 걱정하는 건데…?”
“입 다물어, 팬의 걱정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대체 뭘 보고 걱정하는 거야?”
“한 눈에 봐도 평소랑 다르다는게 보이니까….”
“난 아무렇지도 않….”
말하고 보니, 에스더는 별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애초에, 지금의 모습은 에스더조차 아닌, 그냥 어쩐지 에스더라고 느껴지는 일그러진 아지랑이같은 무언가다.
에스더도 그런 자신을 자각했는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그래, 당분간은 위험하다고 불러도 못 도와주니까, 알아서 조심하고 다녀.”
“많이 안 좋아?”
“부활한지 얼마 안 되어서 구성이 덜 된 것 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거고…더 자세하게는 알 거 없어.”
어쨌든, 상태가 안 좋은 건 사실이구나.
당분간은 에스더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니…하지만, 별로 상관 없다.
지금은 무슨 일이 생기면 그레이프를 부르면 된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몸이 안 좋다는 듯 말하니 좀 신경 쓰인다.
에스더는 내가 위험할때 구하러 와줬고, 정말 필사적으로 도와주기도 했고, 뭐…네거티브라 해도 나한테는 꽤 친절하니까…보답으로 이 정도는 해 줘도 되겠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꼬치구이를 내밀었다.
“...꼬치 먹을래?”
“안 먹어.”
“아, 네.”
에스더는 내가 내민 꼬치구이를 힐끔거리고는 짜증내며 말했다.
선물을 줬는데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라니…상처 받을 것 같다.
네거티브여서 이런 건가.
“네거티브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어.”
“어? 그래?”
“그래. 그런 배고픔도 못 느껴...너나 많이 먹던가.”
자세한 내용은 조금 달랐지만, 정말로 네거티브여서 내 꼬치구이를 거절한 게 맞았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에스더의 눈치를 보며 꼬치구이를 뜯어먹었다.
“너….”
“응?”
“어쩐지, 좀 안 좋아졌네.”
“뭐?”
조금 전에는 멀쩡하다고 뭐라 해놓고, 이번에는 어쩐지 안 좋아졌다고?
대체 뭐가 안 좋아졌다는 거지?
이야기의 맥락을 모르겠다.
“혹시…아니, 당연한가….”
“아까부터 혼자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혼자만 알지 말고 나한테도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담아 묻자, 에스더는 입가를 만지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금 망설이듯,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애쉬랑 아무 일도 없었어?”
당황한 나는 에스더와 마주보고 있는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여기서 애쉬 얘기를 왜 꺼내는 거지.
대체 무슨 질문인지,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건지는 몰라도 대답해선 안 된다.
“무슨 일?”
나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친 뒤, 태연하게 물었다.
애쉬가 나를 고문하고 입막음을 하려 했다는 건, 애쉬와 나만 알고있어야 하는 사실이다.
적어도 애쉬를 내가 어떻게든 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그래야만 한다.
에스더는 네거티브긴 하지만, 마법소녀였던 과거 때문인지 마법소녀와 싸울 때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에스더에게 말했다가 자칫 잘못해 래피드나 애쉬에게 나를 고문했던 일을 꺼내기라도 하면, 애쉬를 자극하게 된다.
괜히 위험 부담을 늘리고 싶지 않다.
“그래, 그렇지…그럴 거야.”
에스더는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대체 이게 무슨 질문이었는지, 또 무슨 말을 혼자 중얼거리는건지 묻고싶어졌지만, 어쩐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아 의문을 삼켰다.
그때, 에스더의 몸이 질척하게 녹아 흘러내렸다.
“...한계인가.”
생각보다 훨씬 더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에스더는 뭉개진 팔을 지면에 떨어뜨리며 작게 혀를 찼다.
에스더는 바닥에 떨어진 팔이었던 무언가를 줏어들고는, 곧바로 허공에 대고 선을 그었다.
“볼일은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겠어.”
“어? 가는거야?”
“그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나는 당분간 불러도…아니.”
에스더가 공중에 그은 선이 서서히 찢어지며, 차원문으로 변한다.
에스더는 급하게 차원문 안으로 점점 무너져가는 몸을 집어넣었다.
그대로 점점 차원문에 삼켜지던 에스더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나를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생기기 전에 불러.”
“뭐? 아니, 잠깐….”
“그럼.”
에스더에게 대답하기도 전에 차원문이 빠르게 닫힌다.
갑자기 나타난 에스더는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나는 에스더가 사라진 허공에 대고, 말하지 못한 대답을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터질지 어떻게 알고 일이 터지기 전에 부르라는 거야….”
상태가 안 좋다더니, 이런 당연한 것도 모를 정도로 많이 안 좋은 건가.
부활한 지 얼마 안 되서 그렇다고 했고 온 몸이 흐물흐물 일그러졌던 걸 봐선…탈피를 막 마친 갑각류랑 비슷한 상태인 걸까.
모르겠다.
대체 뭐였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