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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97화 (297/299)

< 297화 > 걱정 (4)

{네, 내일…10시쯤부터 될 거에요.]

계속 힘들다고 하다가 갑자기…?

나야 래피드랑 데이트할 수 있으니 좋지만, 조금 당황스럽다.

혹시…내가 친구가 없다고 하니까 불쌍해서?

왠지 정말로 그런 이유일 것 같으니, 깊게 생각하지 말자.

그냥 잘 생각해보니 시간이 될 것 같았던 거겠지.

분명 그럴 거다.

[그럼 내일 볼까요?}

{네!]

[기대되네요, 어디서 보는게 좋을까요?}

{이런 저런 일 겪으셔서 피곤하실테고…앵거 씨 지금 머무는 곳에서 가까운 곳이 편하지 않을까요? 제가 갈게요.]

[그러면 15번 구역에서 어때요?}

{아하…네, 좋아요.]

[어디서 놀면 좋을지 알아보고 있을게요.}

{네!]

15번 구역은 별로 볼 것도 없는 한적한 장소가 많지만, 놀 게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가까운 구역 공장에 일용직 노동자로 온 사람들이 열심히 번 돈을 소모시키기 위한 유흥단지도 적절히 구성되어 있…지만, 인구가 많은 구역과는 다르기는 하다.

그럼…15번 구역에서 재미있는 곳이 어딜까….

{저는 애쉬가 불러서 일단 가 볼게요!]

{훈련하러!]

{내일 봐요!]

그때, 래피드의 메시지가 비전폰 화면을 밝혔다.

시야에 두 글자로 이루어진 이름이 선명하게 꽂혀 들어온다.

그 순간, 나는 피하고 외면하듯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을 날카로운 통증과 같이 떠올렸다.

래피드와 더 가까워지지 말고, 먼저 연락하지도 말고, 래피드가 만나자고 할 때는 거절하지 말라.

리프의 비밀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은 얘기하지 마라.

그리고 래피드가 대화를 하며 지금까지 보인 반응…애쉬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고,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모습.

애쉬는 래피드와 함께, 같은 구역에서 거주한다.

훈련도 같이, 생활도 같이…아마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겠지.

그런데도 애쉬는 래피드에게 나를 만난 사실을 전혀 얘기하지 않았다.

이건 애쉬가, 래피드와 내가 계속해서 연락하는 걸 눈감아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를 그렇게 고문하고 협박하지도 않았겠지.

그날 있었던 일은 정말로 래피드가 알아선 안 되고, 알리고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걸 어긴 순간 나는 애쉬에게 노려지게 될테고, 죽게 되겠지.

래피드와 더 가까워지려 해선 안되고, 래피드의 연락을 무시해서도 안되고, 래피드에게 애쉬가 뭘 했는지를 얘기해서도 안된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애쉬에게 들키지 않게 더 조심하며 래피드와 만나면 된다는 얘기다.

안 들키면 그만이지 뭐.

15번 구역의 유흥시설은 다른 구역에 비해 수준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구역에 게임센터가 있다면 여기는 개인용 게임방, 여럿이 들어가는 노래방 대신 작고 좁은 코인 노래방, 영화관 대신 영화방…좀 더 저렴하고 장소와 유지비가 적게 드는 시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좁고 어두운 실내…어디까지나 우연하다고 우길 수 있을만한 터치가 일어나기 쉬운 장소….

안전하면서도 은밀한 데이트가 될 것 같다.

영화방처럼 가만히 앉아서 손을 살짝 잡는게 좋을까…아니면 노래방처럼 신나서 춤추다가 분위기를 탄 척 껴안거나 하는게 좋을까….

노래라고는 군가하고 어릴 때 본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주제가밖에 모르니 안 가는게 좋으려나.

래피드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보고 싶은데….

역시, 게임방이 제일 무난한가…그치만 저번에도 게임 센터 가 놓고 또 게임으로 가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고민하는 그때, 비전폰이 진동하며 메시지 도착을 알렸다.

[레스토랑 가고 있어요?]

그레이프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정신없이 대화하며 잊고 있던 허기가 뱃속을 울린다.

나는 레스토랑으로 가는 네비게이션을 키고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슬슬 배도 고프고, 식사를 하면서 생각하다 보면 좋은 생각이 나겠지.

# # #

레스토랑 건물은 15번 구역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형상으로 되어 있었다.

콘크리트 위에 투명한 외벽을 씌워서…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던 것 같지만 내 눈에는 잘 만든 폐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깔끔하고…뭐, , 쓸데없이 화려하게 만들어 싸구려같아 보이는것보다 이게 훨씬 분위기 있어 보이긴 한다.

{직접 가 보니까 어때요? 외관 궁금해요!]

[비전넷에 올라온 사진하고 똑같아.}

{사진 찍어줄 수 있어요? 가게 유리문이 이쁘던데 그것도 다 나오게!]

레스토랑에 도착한 뒤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그레이프에게 레스토랑 사진을 보내는 것이었다.

왜 굳이 나중에 또 오자면서 사진을 찍어달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레이프의 카드로 결제할 예정이기에 보내달라는 대로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사진을 찍는 동안 내 옆에 서서 기다리던 커플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간다.

레스토랑 안에는 커플…커플…커플들 뿐…15번 구역에서 인기있는 레스토랑이 여기밖에 없는걸까….

하긴…15번 구역이니까….

오늘 먹어보고 맛있으면 다음에 래피드도 그레이프도 여기로 데려와야겠다.

“어서오세요, 몇분이신가요?”

혼자서 당당하게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간 나는 점원에게 자신있게 손가락 하나를 내밀어준 뒤,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받고 대충 인기있다는 메뉴 몇개를 곧바로 시킨다.

좀 많이 시키긴 했지만, 내 돈이 아니니까 괜찮다.

메뉴를 시키자 점원이 내게서 카드를 받아가고, 잠시 후 영수증과 함께 돌려줬다.

아무래도 이 레스토랑은 선불 결제를 하게 되어있는 것 같다.

A 시 라고는 하나, 15번 구역이기도 하니…먹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어서 이런 거겠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쁘게 조리된 요리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재료들은…인공 식재료는 아니고, 저장에 용이하게끔 가공된 재료들이 사용된 것 같다.

이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식재를 사용하는 레스토랑이다.

{옆에 누구에요?]

[옆에?}

식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일하느라 바쁘기라도 했는지 잠시 답장이 없던 그레이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는 내 옆에 누가 있나, 그레이프가 어디에서 보고있기라도 한건가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 옆에는 아무도 없고…그레이프도 보이지 않는다.

[무슨 소리야?}

{혹시 레스토랑 누구랑 같이 갔어요?]

[혼자 왔는데…?}

{정말요?]

뭐지…갑자기 왜 이러지….

그레이프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생겨난 의문이, 자연스럽게 카드 결제로 이어진다.

혹시 내가 너무 많이 시켜서 결제 알림에 뜬 금액을 보고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화 내는 건가…?

[미안, 그냥 먹어보고 싶은게 많아서 그런 건데…좀 많이 시켰나.}

{네?]

[그레이프가 먹고싶은 거 사먹어도 좋다고 해서 내가 너무 들떴나봐….}

이 정도 사과하고, 그레이프가 그래도 된다고 해서 이런 거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면 화가 가라앉겠지…?

그레이프는 내 답장을 보고 생각에 빠진 듯 잠시 말이 없더니, 귀여운 캐릭터가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먹고싶은게 많았어요?]

{혹시 어떤 거 시켰어요?]

{사진 보여주세요!]

화 풀린건가…?

풀린거 맞겠지?

나는 그레이프의 요구대로 시킨 음식들 사진을 찍어 보냈다.

{이렇게 가까이서 말고…상이 전부 보이게 찍어주면 안돼요?]

{많이 시켰다고 하니까 양이 얼마나 나오는지 궁금해서.]

[응, 알았어.}

다시, 테이블 전체가 다 보이게 사진을 찍는다.

원형의 그리 크지 않은 테이블에 내 쪽에 놓여진 포크와 나이프를 제외한 공간에 여러 요리들이 가득 올려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사진을 보내고 나자 그레이프는 이상한 캐릭터가 웃는 이모티콘을 여럿 보내왔다.

{와, 진짜 많이 시켰네요!]

[미안.}

{아니에요, 앵거가 많이 먹으면 좋죠, 빨리 먹어요!]

{저야말로 갑자기 이상한 거 물어봐서 미안해요! 맛있게 먹어요!]

…풀린 거 맞지?

자꾸 여러 이모티콘을 보내는 걸 보니, 맞는 것 같다.

같이 일을 할 때도 그레이프는 머쓱하거나 자기가 착각한 일이 있으면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 같았으니까…맞겠지.

근데 애초에, 그레이프가 화낼 일도 아니지 않나?

자기가 맘대로 사먹으라고 카드 줘 놓고….

난 잘못한 거 없다.

{먹어보고 맛있는 거 있으면 다음에 같이 갔을 때 가르쳐 주세요!]

[응.}

[이거 맛있어.}

{딱 봐도 앵거가 좋아할 것 같은 요리네요….]

그레이프도 그렇게 생각하는건지, 계속해서 이모티콘을 보내며 내게 말을 걸었다.

요리는 맛있었다.

괜히 15번 구역 커플들이 많이 오는 레스토랑이 아니구나 싶어지는 맛이다.

그건 그렇고, 그레이프는 15번 구역 근처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이런 레스토랑도 잘 찾는구나….

래피드랑 어디서 노는게 좋을지 정 모르겠으면 그레이프에게 한번 물어볼까.

왠지 좋은 곳을 추천해 줄 것 같다.

“후우….”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나는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다.

그럼 이제…뭐 하지….

지금 당장은 뭔가 할 게 없다.

집에 돌아가도 그레이프는 아직 일 하는 중이고, 래피드는 지금 훈련 중이고….

식사하면서 알아본 데이트 장소들이나 좀 알아보러 다녀볼까….

그 순간, 나처럼 레스토랑에서 막 나온 커플이 내 옆을 지나치며 말했다.

“잘 먹었다…그치?”

“응, 배도 부른데 우리 거기 갈까?”

“거기? 전에 갔던 데?”

“나 거기 좋아, 분위기도 좋고….”

“...그럼 오늘도 거기서 저녁까지 있을까?”

“좋아~”

거기…?

거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분위기가 좋다고 하는 걸 보면 이 근처에 사는 커플들이 가는 데이트 명소인 걸까?

가만히 자리에 서서 점점 멀어지는 커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게임방이나 노래방, 영화방은 딱히 분위기가 좋다고 할만한 곳은 아니다.

그 세가지를 제외한, 현지 커플이 분위기가 좋다고 하고 여러 번 갈만한 데이트 장소라면 나쁘지 않은 곳이겠지.

한번 따라가보고, 괜찮은 곳이면 나도 래피드랑 같이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커플을 미행해 도착한 곳은 인공숲의 산책길이었다.

사람들도 없고, 나무가 가득한 미로같은곳 한 쪽에 높은 언덕이 있고, 그 위에 여러 커플들이 앉아있었다.

느긋하게 풍경을 보거나 잔디밭에 누워 얘기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내가 원한 건 좀 더…어둡고 분위기 있으면서도 야한 것도 하기 좋을만한…그런 데이트 장소인데….

이곳은 내가 원하는 데이트 장소가 아니다.

“아이고, 맛있게 드세요.”

실망을 뒤로 하고 산책로를 걷자, 작은 카트를 끌고 와 꼬치구이를 팔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곧바로 후식 겸 해서 꼬치구이를 몇개 산 나는 자극적인 조미료 맛을 즐기며 고기를 씹었다.

저렴하면서도 중독적인 맛이다.

그런데, 식감이 길거리에서 사먹은 것 치고는 나쁘지 않다.

자연산이나 가공육은 아닐테고, 그런데도 소고기 같은 식감과 닭고기같은 풍미가…인공육같지 않은 결감이 느껴진다….

인공육 브랜드 중에 이렇게 고기의 결을 잘 내는 게 있었나…?

“응?”

꼬치구이를 씹으며 산책로를 걷던 나는 갑자기 왼손이 따끔거려와 걸음을 멈추고 주먹을 쥐었다.

뭔가에 반응하듯, 손등 위의 핏줄이 움찔움찔 하고 떨린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주변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할까.

햇빛이 내리쬐는 산책로인데도…네거티브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지하철에 와 있는 듯한…뭔가,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감각이 뱃속을 불안하게 간지럽힌다.

그 순간, 눈 앞의 공중이 작게 찢어졌다.

“어?”

그와 동시에,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예고도 없이 투명한 불꽃 같은 일렁임이 공중에서 뛰쳐나왔다.

서서히 형태를 갖춘 그것은, 반쯤 펼쳐진 검은 날개를 접으며 꼬치구이를 쥔 내 손목을 잡았다.

에스더는 놀란 눈을 하고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앵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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