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 걱정 (2)
{D시 도착했어요! 통신 지구 바꾸느라 연락이 늦었어요!]
{뭐 하고 있어요?]
{혹시 자요?]
{일어나면 밥 먹어요!]
{구출 임무 들어가면 당분간 연락 못해요.]
마지막으로 읽은 메시지로 저절로 스크롤이 옮겨진 대화창에 그레이프가 D시에 도착하고 난 뒤 보낸 메시지들이 보인다.
래피드한테 집중하느라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들이 드문드문 쌓여있는게 보인다.
바쁜 와중 틈을 봐서 메시지를 보낸 건지, 메시지와 메시지 사이의 시간이 상당히 길다.
{임무 끝났어요, 뭔가 좀 이상한 일이 있었네요….]
{예상보다 조금 일찍 일이 끝나게 되서, 뒷처리를 하는 동안 시간이 좀 빌 것 같아요.]
{내일은 앵거가 말해준 곳에 좀 가보려고요.]
{전화하고 싶다…앵거는 시외전화 가입 안해뒀죠…?]
{제가 돈 내줄테니까 가입할래요?]
그 후의 메시지는 구출 임무 후, 그레이프의 말대로라면 괴수교의 사람들과 무슨 일이 있던 뒤 보낸 것 같다.
다음 메시지는 그 다음날 아침에 보내져 있었다.
계란말이가 찍혀있는 사진 메시지가 보인다.
{(사진)]
{계란말이 맛있어요!]
{이따가 앵거가 예전에 살던 집에 가볼 생각이에요.]
{시간 날 때 답장해주세요!]
{집 왔어요! 집주인 할머니도 잘 계세요!]
기억 속에 있는 모습 그대로인 집주인 할머니와 그레이프가 함께 찍은 사진, 내 물건들이 가득한 상자를 열어보고 있는 그레이프의 모습이 찍혀있는 사진이 연속해서 보내져 있다.
내 어린 시절 모습이 찍힌 사진도 보인다.
그리고….
“음…?”
짧은 두통과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원래대로 돌아온다.
뭐였지?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화면에 다시 초점을 맞췄다.
{(사진)]
{(사진)]
{(사진)]
{(사진)]
{앵거 어릴 때는 되게 잘 웃었네요?]
비전폰에는 그레이프가 보내준 부모님과 내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부친은 소방관, 모친은…애니메이션 성우.
둘 사이에서 소화전의 머리 부분과 비슷하게 생긴 소방관 모자를 쓰고, 장난감 마법봉을 들고 웃고있는 어린 내 모습이 사진에 찍혀 있다.
{나중에 앵거랑 같이 와 보고 싶어요.]
{앨범 빈 자리에 앵거 요즘 사진도 넣어두고 싶다….]
{할머니가 앨범 가져가는 건 안 된대요…앵거가 자꾸 버리려 한다고….]
{할머니가 뭐 좀 먹고 가라 하셔서 같이 식사하려고 해요, 이따가 앵거가 말해준 다른 곳도 다 가볼까 하고 있어요.]
{(사진)]
기억에 있는, 집주인 할머니가 해준 요리가 담긴 그릇들이 놓여진 테이블에 그레이프가 앉아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 그레이프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다.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스크롤을 내렸다.
{D시에 몇번 와 보긴 했는데, 이렇게 많이 돌아다녀 본 건 처음이에요.]
{전화하고 싶다….]
{앵거 많이 바빠요…?]
{저기…?]
{무슨 일 있는거 아니죠…?]
생각보다 정상적이었던 분위기가 갑자기 급변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록 답장이 없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걱정이 가득하면서도 혼란스러워 하는게 메시지에서 느껴진다.
{혹시 화났어요?]
{저 뭔가 잘못했어요…?]
{앵거가 좋아하는 거 먹지 말라고 잔소리 해서 그래요…?]
{앵거 혹시 지하철 있던 거 아니죠?]
{11번 구역 갔어요?]
처음에는 내가 화가 나서 메시지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가,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생각이 바뀌었는지, 내 위치를 묻는 질문이 가득하다.
시간대는…내가 리프에게 납치되고 있을 때 쯤이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라도 들었던 걸까.
{(그레이프 님이 위치 공유 요청)]
{(취소됨)]
{앵거? 어디에요?]
{(그레이프 님이 위치 공유 요청)]
{(취소됨)]
{(그레이프 님이 위치 공유 요청)]
{(취소됨)]
{(그레이프 님이 위치 공유 요청)]
{(취소됨)]
{답장해주세요…걱정돼요….]
{어디에요]
{사고자 명단에도 없고]
{제발]
{화난거면 욕이라도 해줘요]
{(그레이프 님이 위치 공유 요청)]
{(취소됨)]
{(그레이프 님이 위치 공유 요청)]
{(취소됨)]
{(그레이프 님이 위치 공유 요청)]
{(취소됨)]
그 뒤로도 계속해서 내게 위치 공유 요청을 보냈던 기록이 가득하다.
한 페이지…두 페이지 정도, 밤을 새우며 보내져있다.
그렇게 아침이 되고 난 후, 그레이프는 또 생각이 바뀌었는지 한동안 위치 공유 요청을 하지 않았다.
{화난거면 제발 얘기해줘요.]
{이런식으로 화났다고 하는 건 별로 안 좋은 방법이에요.]
{잘못했어요.]
{읽기라도 해 주세요.]
{방위군에 기기 추적 신청 하니까 앵거 계속 집에 있는 거로 나와요…집에 있는거잖아요….]
방위군에 기기 추적이라니…마법소녀는 그런것도 신청할 수 있구나….
그건 그렇고, 이건 좀 이상한 메시지다.
메시지가 보내진 시간대를 보면 내가 아직 리프에게 잡혀 있을 때인데, 집에 있는 거로 나온다니…?
리프가 뭔가 해 두기라도 했던 걸까.
그레이프랑 내가 어떤 관계인지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일부러 그레이프가 없는 타이밍을 노려서 왔다는 듯이 말하기도 했으니…리프가 내 위치 정보를 조작한게 맞겠지.
그 탓에 그레이프는 내가 일부러 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무시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제가 연락하는게 싫어졌어요…?]
{이유라도 얘기해줘요….]
{얘기하면 고칠게요….]
{오해에요]
{고칠게요….]
뭐가 오해고 뭘 고친다는 거지….
메시지는 또다시 한동안 오지 않다가, 그레이프와 만난 당일 오전으로 이어졌다.
보내진 시간대는 점심시간이니, 아마 이게 나랑 만나기 직전에 보낸 마지막 메시지일 것이다.
{저 A시 왔어요]
{전화 왜 안받아요….]
{전화 받아주세요….]
{이따 집에 가서 얘기해요]
{답장해주세요….]
나는 대화창을 전부 읽은 뒤 생각에 잠겼다.
메시지가 좀 많은게 무섭다 싶었는데, 다 읽고 보니 무섭다기보다는…조금 미안해지는 내용이었다.
그레이프가 나랑 연락이 안 되는 동안 이렇게까지 걱정해줬을 줄은 몰랐다.
회사 앞에서 봤을때 그렇게 예민해져 있던 게 내가 답장을 안 해서 그랬던 거였나.
내 위치를 추적하고, 답장이 없는데도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는게 무섭기도 하지만, 그건 뭐…걱정해서 그랬다고 치고….
리프에게 비전폰을 뺏겨서 답장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 전에 보내진 메시지에도 전혀 답장하지 않은 건 미안해할 만한 일이다.
래피드랑 사이가 틀어졌을까봐, 그쪽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건 전혀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이건 내가 사과하는게 맞겠지…?
나는 그레이프에게 답장을 보냈다.
[미안}
그러자 2초도 지나기 전에 내가 보낸 메시지에 읽음 표시가 떠오르더니 그레이프가 보냈던 메시지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걱정이 가득한 문장 대신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 라는 차가운 문장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레이프는 집주인 할머니랑 같이 식사를 하고 있는 사진 이후의 모든 메시지를 삭제해 버렸다.
{아니에요! 오해였는걸요. 어디에요? 집?]
[아니, 카드 재발급 받으러….}
{운전은 잘 했어요?]
{무섭진 않았어요?]
[자동운전인데 무서울 게 뭐 있어}
{지금은 그러면 카드 재발급 받는 중?]
[재발급 받았어}
{빠르네요! 밥은 먹었어요?]
{고생했으니까 제 카드로 맛있는 거 사 먹어요!]
[어, 아니, 지금 사먹으러 가려고….}
나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얘기하는 그레이프에게 답장하며 걸음을 옮겼다.
조금 미안하게 생각했는데, 그레이프는 그리 신경쓰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레이프는 내게 계속해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 오늘 저녁에 튀김 해줄까요?]
{좋아하는 튀김이 뭐에요?]
{새우? 닭? 돼지? 소?]
{맛있는 거 먹고, 사진 찍어주세요!]
{지금은 그러면 어디에요?]
{조금 이따가 먹을거면 점심시간에 갈까요? 점심 같이 먹을래요?]
부담스럽달까, 조금 무섭다.
메시지만으로 무지막지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점심시간까지는 아직 한시간 반이 넘게 남았고, 한창 일할 시간인데…일 안 하나?
[새우, 이따가 찍어서 보여줄게. 15번구역 은행 앞. 점심은 나 혼자 먹어도 될 거 같은데…일 안 바빠?}
{바쁘긴 한데, 괜찮아요!]
[아니…일해…그레이프…팀장이잖아….}
{아무리 바빠도 앵거랑 얘기할 시간은 있어요.]
[일해…나랑은 집에 같이 있을 때 얘기하면 되잖아.}
그레이프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면 팀장이 아니어도 좀 쉬는 거로 뭐라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답장하는 내가 힘들다.
우르르 쏟아지는 문장을 보고있자니, 내 기운이 빨려나가는 기분이 든다.
다행히 그레이프는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말을 들어줬다.
{그러네요…집에 같이 있을 때 하루동안 뭐 했는지 얘기하면 되죠….]
{그럼 이따 저 퇴근할 때 집에서 기다려줄거에요…?]
[어…응…그럴게…어차피 밖에서 할 것도 별로 없고.}
15번 구역에서 혼자 할 것도 없으니, 점심만 맛있게 먹고 나면 집에 돌아갈 생각이다.
그레이프가 퇴근하는 저녁 쯤에는 집에서 그레이프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집에서 게임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게임이나 하며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면 되겠지.
{집 도착하면 연락해주세요!]
[알았어.}
{아…그래도 점심은 같이 먹고싶은데…주말에 시간 괜찮아요?]
[주말에? 왜?}
{평일엔 제가 일 하니까…시간 많을 때 같이 식사도 하고? 같이 놀거나…? 하고 싶어서…?]
같이 놀고 싶다….
주말은 래피드와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그레이프에게 미안하지만, 이건 양보할 수 없다.
[미안, 그때는 내가 좀 바빠서.}
{무슨 일 있어요…?]
[어…나도 취업해야지? 취업 준비를 좀….}
{그건 평일에 하면 안돼요?]
[음….}
{그리고 취업은…당분간 그냥 우리 집에서 쉬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래도 괜찮은데.]
적당히 취업준비라는 말로 둘러대려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 내가 취업준비때문에 바쁜 거였다면 나도모르게 그럴까? 하고 대답해버릴만한 달콤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주말에 바쁜 건 취업준비 때문이 아니라, 래피드랑 데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니,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다.
래피드와 데이트해야 하니 안된다는 사실을 그레이프에게 대놓고 말하는 건 어째서인지 조금 꺼려진다.
나와 섹스한 상대이기도 하고, 왠지 말하면 안될 것 같기도 하고….
적당한 이유를 말해서 그레이프를 납득시켜야 할텐데, 뭐라고 하는게 좋을까.
{불?? 불요?]
{안 다쳤어요?]
{훈련하느라 답장 확인이 늦었어요!]
{괜찮아요??]
{어디에요?]
고민에 빠져있는 그때, 래피드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많이 당황했는지, 걱정스러워하는 문장이 줄줄이 쏟아진다.
나는 곧바로 그레이프와의 대화창을 닫고 래피드에게 답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