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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최면물-285화 (285/299)

< 285화 > 기둥서방 (2)

“...전 앵거 거 말고는 넣어본 적이 없거든요?”

“어? 딜도…아니, 아닙니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지는 내 것 밖에 넣어본 적이 없다는 얘기겠지.

나는 더 이상 말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레이프는 바짝 긴장한 나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다가 갑자기 화가 풀린 듯 웃더니, 다시 내 팔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정말...한번만 더 그런 이상한 소리 하면 가만 안둬요?”

“네.”

“점심으로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저 이번에 파견 갔다 와서 돈 나오니까, 조금 비싼 거여도 괜찮아요!”

“그렇게 말해도 나 매일 샌드위치만 먹어서 아는 식당이 없는데.”

그보다 파견을 갔다 오면 마법소녀도 따로 돈이 더 나오는 건가.

처음 알았다.

그레이프는 내 대답을 듣고 주머니에서 비전폰을 꺼내 잠시 고민하더니 지도를 켜며 말했다.

“그럼 여긴 어때요? 런치 코스가 있는 레스토랑인데…앵거 아직 퇴사 안 했을 때 데려가려 했던 곳이거든요....”

“나를?”

“그...전에, 같이 식사하자고 하니까 거절했을 때...분위기도 좋고, 맛있어요.”

대체 언제 데려가려 한 거지…?

어딘지 몰라도 그레이프가 가자고 한 곳이면 맛있는 건 확정이다.

나는 기억을 떠올리는 걸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하지만...그, 어떤 일이신지….”

“식사하러 왔는데요?”

“...옆에 분하고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아 도착한 레스토랑에서 그레이프와 나는 입장을 거부당했다.

직원은 입구를 막고 서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그레이프를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체 왜, 이 둘이 같이 있는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저...거지는...입장이 안됩니다.”

“거지라뇨? 지금 손님한테 무슨….”

“아! 죄송합니다, 그, 복장이...아무튼 입장이 어렵습니다.”

“멀쩡한 사람을 거지 취급하다니,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그레이프는 직원에게 화를 내다 말고 내게 시선을 향했다.

그대로 침묵한 그레이프는 굉장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레이프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앵거...그, 여기 말고 다른데 맛있는데서 먹고...옷부터 사러 갈까요?”

“옷…?”

“그, 가방은 근처에 짐 보관소에 잠깐 맡기고! 아, 머리도 좀 하고...비전폰 불탔다고 했죠? 우리 쇼핑센터 가서 밥 먹을까요?”

“어...난 상관 없는데...그레이프는 괜찮아? 점심시간 지날텐데?”

나는 갑자기 늘어난 일정에 그레이프는 괜찮은지 물었다.

나야 어차피 할 일도 없고, 그레이프랑 식사한 후 카드를 받아서 혼자 가서 비전폰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같이 가도 상관은 없지만...그렇게 이것저것 하면 점심 시간이 다 가버릴 텐데…?

그런 내 생각을 이미 알고 있는지, 그레이프는 비전폰을 꺼내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뭐 해?”

“과장님한테 보고서 메일로 보내라고...휴가 처리도 해달라고 하고 있어요.”

“또 휴가 내게? 그래도 돼?”

“네.”

이렇게 휴가를 막 내도 정말 괜찮은 걸까….

팀장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그레이프는 막무가내로 휴가를 내 버린 뒤, 내 팔을 다시 안았다.

“갈까요?”

# # #

“저거 봐...저거….”

“뭐야? 왜 거지랑….”

“미인이랑 거지라니...무슨 상황이야 저거…?”

회사들이 밀집한 10번 구역 옆의 번화가, 쇼핑센터에 도착한 그레이프는 나를 데리고 짐을 보관하는 보관소에 먼저 들렸다.

쇼핑센터와 길 위의 여러 가게들을 오가며 쇼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받고 짐을 잠시 맡아주곳이다.

나는 곧바로 카운터로 가 가방을 등에서 내려 한 손으로 들었다.

"어, 어서오세요…윽."

그대로 가방을 내밀자 웃는 얼굴로 인사하려던 직원이 물에 젖은 퀴퀴한 냄새를 맡고 인상을 썼다.

아주 잠시, 손을 댈까 말까 고민하는 듯 했던 직원은 눈을 질끈 감으며 배낭을 받아 들고,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직원에게는 너무 무거웠던 건지, 들지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무, 무게가….”

“제가 옮겨 놓을게요.”

“어?”

그 모습을 본 그레이프가 한 손으로 가볍게 배낭을 들어 카운터 너머로 들어가 내려놓고 오자 직원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그레이프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레이프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거운 배낭을 들고 옮기는 게 신기한가 보다.

“저거 봐...백수같은데 옆에 데리고 다니는 여자는….”

“와...돈 많은 백수인가봐.”

“부럽다 부러워.”

가방을 보관소에 맡기고 오자 나를 거지로 보며 이상해 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변했다.

아무래도 내가 거지로 보이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집어넣은 낡고 커다랗고 냄새나는 배낭 때문이었던 것 같다.

거지에서 돈 많은 백수로 신분상승한 나는 그레이프와 함께 식사부터 해결했다.

식사는 쇼핑센터쪽으로 걸어가다가 발견한 푸드트럭 샌드위치였다.

빵, 고기, 야채의 구성으로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을 한번에 섭취할 수 있는 샌드위치는 완전식품이다.

그레이프는 내가 샌드위치를 사달라고 하자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카드를 내밀었다.

“배가 많이 고플테니까 어쩔 수 없긴 한데...정말 이걸로 괜찮아요?”

“왜? 별로야?”

“아니...이건 그냥 길거리 샌드위치잖아요….”

“난 평소에 먹던 샌드위치의 몇 배는 맛있어서 좋은데.”

나는 그레이프와 함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내 거는 햄 치즈 베이컨, 그레이프는 닭고기 샌드위치다.

그레이프는 닭고기를 작게 한입 물고는 눈을 감은 채 음미하듯 씹어 삼켰다.

“으음...재료는...나쁘지 않은 걸 쓰긴 했는데...앵거 너무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맛있고 편하잖아.”

“...저 없는 동안 편하다는 이유로 이상한 것들 사 먹은 건 아니죠?”

“안 먹었어.”

그레이프가 말하는 이상한 거라는 건 주로 튀김을 말한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레이프에게 거짓말했다.

어차피 집에서 쫓겨났으니 튀김 냄새를 맡을수도, 튀김을 먹고 나온 쓰레기를 확인할수도 없다.

“이따가 집 가서 확인할 거에요.”

“무슨소리야? 나 이제 쫓겨나서 집 없다니까?”

“네?”

“아까 말 했잖아.”

그레이프는 이미 내가 집이 불탔다는 얘기를 했는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반응했다.

“말 안 했어요! 불 났다는 말밖에...배낭을 메고 있던 게 그럼 수리기간동안 짐을 들고 나온 게 아니라 쫓겨나서 메고 있던 거였어요?!”

“응, 짐 전부 들고 나온 건데.”

“아니...아니, 집에 불이 났는데 왜 쫓겨나요?”

“관리 미흡?”

“그건 말이 안 돼요, 불법이라고요. 불이 나는 사고로 관리미흡이라며 강제 퇴거를 시키는 건 재난시민 보호법에….”

불이 난 건 그레이프의 말대로 얘기만 잘 하면 재난시민 보호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거시설 고의 파손은 명백한 강제 퇴거 사유에 속한다.

내 방에는 누가 봐도 일부러 부순 것 같은 흔적들이 가득했다.

“불 때문이 아니라, 불이 나서 집주인이 왔는데 집이 엉망이라서 쫓겨났어.”

“갈때마다 앵거 자고있을 때 청소했는데, 겨우 며칠 비웠다고 그렇게 엉망일 리가….”

“그거 있잖아? 바닥 부서진 거랑 벽에...그레이프가 낸거.”

“아….”

그레이프는 내 말을 듣고 내 방에 가득한 짐승같은 섹스 흔적을 떠올렸는지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

얘기하고 보니 이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쫓겨난 이유가 그레이프 때문인 것처럼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틀린말도 아닌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그건 수리하면 되는데….”

“월세도 밀려서...뭐, 그래서 보증금도 못 돌려받고 내보내졌어.”

“월세는 또 왜 밀렸어요? 돈 빌려달라는 게 그거 때문이에요?”

“아니, 그냥 보증금 안 주고 알아서 처리해 주려는 것 같던데?”

“수리 비용...청소비...집주인이 좋은 사람이네요.”

나는 그레이프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법대로 한다면 나는 밀린 월세도 전부 집주인에게 지불해야만 한다.

그걸 그냥 내가 불쌍하다고 봐준 거니까, 확실히 지금 시대에 보기 힘들 정도로 착한 사람이다.

“아무튼, 이것저것 불타기도 해서 그레이프한테 돈 좀 빌리려고...아, 비전폰 사고 결제 카드만 재발급 받으면 돈은 전부 돌려줄게.”

“...비전폰은 사줄게요, 저도 이번에 돈 받았으니까...선물로….”

“응? 진짜?”

“앵거 일 안하니까...돈 많이 없을테고.”

“아니, 돈이 없는 건….”

나는 얘기하다 말고 문득 든 생각에 말을 멈췄다.

내가 퇴사했는데도 돈 걱정이 없었던 건 마진사에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팔아서 돈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진사에 접속할 구세대 노트북도, 래피드의 머리카락을 사주는 단골손님인 리프도 없다.

“그래, 사줘. 고마워.”

나는 돈을 주려 했는데 그레이프가 굳이 사주려 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레이프도 돈이 생겨서 사주고 싶다는데, 이건 받는게 예의 아닐까?

선물을 너무 사양하는것도 좋지 않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같다.

“그러면...가방에 챙긴 거 말고는 전부 불에 타서 버리고 온 거에요?”

“아니, 스프링클러에 젖어서 망가진거랑 쓸 수 없어 보이는 거, 필요없는거 버리니까 짐이 별로 없어서...불에 탄 건 별로 없어. 지갑, 멀티탭, 영양제, 비전폰….”

“...영양제?”

“그레이프가 사온거, 나 먹던거...그거.”

“그거?!”

그레이프는 내 말을 듣고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고 얼굴을 붉히며 천천히 앉은 그레이프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상당히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하필 그게...싱크대에 올려놨는데, 왜 그게….”

“아...싱크대 쪽에서 합선된 것 같아. 지갑도 내가 자주 거기에 두는데 같이 탔으니까.”

“왜 하필...하아아….”

“많이 먹었잖아…? 더 안 먹어도 돼.”

“먹고 남은것만 팔아도 그게 얼만데….”

그레이프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을 손끝으로 톡톡톡톡 치며 힘들어한다.

영양제는 이미 대부분 먹은 상태였지만, 그 남은 약들의 가격이 아까운 모양이다.

“하아아...그래도 앵거가 안 다쳐서 다행...응?”

약에 대해서 계속 미련이 남는 것인지 계속해서 한숨을 쉬며 속상해하던 그레이프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앞으로 어디서 자요?”

“잘 곳 없어.”

“없어요?”

“응, 그래서 호텔비도 좀 빌려달라고 하려고 한 건데.”

나는 샌드위치를 삼키고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핥아 먹으며 태연하게 돈을 요구했다.

비전폰 문제는 그레이프가 사주겠다고 하며 잘 해결됐지만, 어찌됐든 내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오늘 잘 곳이다.

일단 그레이프한테 돈을 빌려 호텔에서 머물다 X가 깨어나면 어떻게든 할 생각이다.

해킹을 해서 돈을 넣어달라고 하든, 부서진 잔해를 주워다 팔든, 마진사에 접속할 다른 방법을 알려달라고 해 리프의 자료를 싼 가격으로 올리든...방법은 많다.

정 어쩔 수 없으면 리프의 비밀 연구소 한쪽에 방을 만들어 자면 되겠지.

그때까지는 그레이프의 돈을 조금 빌려 쓸 수밖에 없다.

“호텔비…아, 아~호텔비가 필요하구나? 그런데 계속 호텔에서 머물 수는 없잖아요?”

“일단 며칠 정도만 머물고, 따로 잘 곳을 구하려고.”

“요즘 A시에 빈 방 없을걸요...?”

“뭐, 어떻게든 되겠지...아무튼, 일단 일 주일 정도만이라도….”

“아! 그러고보니까 저도 어디 낼 돈이 밀려서 호텔비까지는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요?”

“어?”

그레이프는 내 부탁을 갑자기 거절했다.

마법소녀도 빚에 시달리는 건가…하긴, 그레이프는 최상위급 마법소녀 치고 언제나 돈이 부족하다며 힘들어 하는 거로도 유명했다.

아무리 파견 갔다 와서 돈을 받았다 해도...아니, 파견을 그렇게 갑자기 갔다온 것도 내야하는 돈 때문에 갔다온 걸지도 모르겠다.

“어...그러면….”

“그러면~오늘 일단! 제…우리 집에서 자는 건 어때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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