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화 > 협상 (3)
“아, 그래서 거래 안할거야?”
X가 살리려는 건 나를 죽이려 한 리프, 거래 상대는 아무리 부하일 뿐이라 해도 상대는 나를 죽이려 했던 리프의 부하다.
갑자기 찾아와서 날 납치하고, 이용하고, 죽이려 해놓고 이제와서 내게 쓰레기라니.
기계라 그런지 감정도 양심도 없다.
X는 아무렇지도 않은 나를 잠시 살펴보는가 하더니 드득, 드득 하는 연산음을 내기 시작했다.
뭘 얼마나 줄진 모르겠지만, 만족스러운 걸 내 주지 않으면 거래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 사실을 본인 스스로도 잘 파악하고 있는지, 조금 오래 생각한 X는 내게 새로운 거래 조건을 말했다.
[리프를 제가 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와 주시면 당신을 밖으로 내보내주고, 체내의 웹셀을 제거해 드리는 것에 더해 당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정보?”
[기록상 당신의 목적은 마법소녀와의 섹스, 즉, 육욕 해결입니다. 맞습니까?]
“흠...일단...그렇지?”
[최면과 관련된 검색을 많이 한 이유는 최면을 걸며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맞습니까?]
“최면을 가르쳐주고, 도와주겠다?”
[긍정.]
내가 리프에게 원하던 건 리프를 완전히 제압해 내가 모르는 정보와 내게 부족한 지능을 보충해주는 생체 마진사 겸 생체 컴퓨터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런 내게 X가 제시한 조건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부족하다.
“그리고?”
[...그 외의 정보 관련된 것에서도 필요하다면 최대한 돕겠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접근 불가 정보’ 라는 것이 설정되어 있어,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족하십니까?]
“그리고~?”
[...당신의 흔적을 지워드리겠습니다. 리프처럼 CCTV와 인터넷, 비전넷 뿐만 아니라 방위군, 트루비전의 시민 감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끔 실시간으로 조작해드리겠습니다.]
이건 내가 생각하지 못 하고 있던 거였다.
리프처럼, 우연히라도 나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가 알아내는 일이 없게 해주겠다는 건 마음에 든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원하시는게 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X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지직 하고 노이즈 음을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받아낼 수 있는 건 전부 받아낸다.
[...설계만 해둔 실험작 마도구가 있습니다. 당신의 데이터 칩을 조금 연구하게 해 주신다면, 개발이 완료된 즉시 당신에게 넘겨드리겠습니다.]
“데이터 칩은 최면어플 말이야? 내가 왜 이걸 너한테 줘?”
[주시는 게 아니라, 데이터 수집만 도와주시면 됩니다. 데이터는 전부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최면어플이 대체 뭔지는 나도 궁금했고...이건, 제대로 돌려주기만 한다면 나도 좋은데….
그러고 보니, 리프는 내 최면어플에 대해 뭔가 알고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든 의문을 떠올리며 X에게 말했다.
“내 데이터 칩...최면어플은 대체 뭐야?”
[모릅니다.]
“뭐?”
[정말로 모릅니다. 그에 관련된 정보는 제게 입력되어있지 않습니다.]
최면어플에 대해 뭔가 알게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내게는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리프도 이게 뭔지 확실히 알아내려고 이 방으로 온 것 같았고, 그 즉시 애쉬에게 살해당했으니...리프는 알지만, X는 모른다.
최면어플이 원래는 뭔지 알고 싶다면, 리프를 살려야 한다는 건가….
“마도구는 뭐야?”
[마력이 없어도 충전된 마력을 통해 특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당신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프로토 타입입니다. 사용하는 마법은 완전한 은폐, 잠시동안 당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게 해줄 겁니다.]
“그런 게 있다고?”
[연구중입니다만, 당신의 데이터 칩을 조사하게 해주신다면 연구가 크게 진척될 것으로 보입니다.]
“음….”
얘기만 들어서는 꽤 좋은 물건으로 보인다.
완전한 은폐...만약의 순간에 애쉬에게서 숨을수만 있다면 상당히...아니, 엄청난 매력을 가진 도구다.
하지만, 애쉬한테서 숨는게 가능할까?
애쉬가 탐지 한 번 하면 그냥 바로 들켜버릴 것 같은데.
프로토 타입 치고 멀쩡한 물건을 본 적이 없다.
X는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설명을 더했다.
[...이론상 애쉬에게도 들키지 않습니다.]
“오?!”
[어디까지나 이론상, 숨도 쉬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면...작동시간, 10초간은 들키지 않습니다.]
“쓸모없네 진짜.”
이렇게 쓸모없는 물건을 내게 넘겨줘서 뭘 하겠다는 거지.
시간이라도 더 오래 벌어주면 몰라, 움직일 수 있으면 몰라, 움직이는 순간 들키고 시간도 짧은 물건이라니….
쓰레기나 다름없는게 아니라, 그냥 쓰레기다.
“그딴 건 필요 없으니까 그거, 리프가 최면 걸고 다닌거나 줘.”
[최면 펜라이트는 마도구가 아닙니다. 리프의 마력을 변질시켜 사용하는 일종의 마력 변환기이기 때문에 당신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파괴되었습니다.]
“음….”
하긴, X는 에스더한테 파괴당하고 리프는 애쉬한테 죽었으니 멀쩡하게 남아있을리가 없지.
실망을 숨기지 못하는 내게 X는 기계음인데도 다급함이 느껴지는 속도로 말했다.
[정말로 더는 시간이 없습니다. 뭐든 들어드릴테니 일단 리프부터….]
“그리고?”
[뭘 원하시는 겁니까.]
“아, 일단 전부 말해봐. 계속 숨기면서 하나씩 꺼내지 말고.”
천천히, 어떻게든 덜 주려고 하며 고민하다가 정말로 리프가 죽으면 어떡하려고 이러는 걸까.
사실 X도 리프가 죽길 바라는게 아닐까?
어찌되든 나는 잃을 게 없다.
[자금을 드리는 건 어렵습니다. 해당 권한은 제게 허가되어 있지 않으며, 리프가 살아난다면 그 후에 협상하셔야 합니다.]
“아~거래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요.”
[혹시 원하시는 게 성적 쾌감이십니까? 제 신체를 수복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섹스 기능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씹...필요없어, 다른거.”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의 쾌감을 안겨드리겠습니다. 내부 주름부터 형태, 자극까지 전부 커스텀 가능한….]
“날 뭘로 보고! 안해!”
아무리 기분좋아 봤자 그건 기능 좋은 오나홀과 다를 게 없다.
내가 섹스하고 싶은 대상은 마법소녀다.
X는 내 단호한 거절이 믿기 어려운지 질척하게 매달렸다.
[...섹스용 바이오로이드의 제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해당 파츠에 저를 업로드 할 경우 데이터 접속권한을 잃게 됩니다. 당신이 원하는 정보 지원은 어렵게 될 수 있으며, 전투능력의 상실...아니, 당신이 원한다면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한다고! 내가 무슨 섹스하고싶어서 미친놈인줄 알아?”
[아니십니까?]
“아니야!”
[...데이터를 수정하겠습니다.]
굉장한 모욕을 받은 기분이 든다.
날...기계여도 어쨌든 박을곳만 있으면 박는 미친놈 취급하다니...조금 궁금하긴 하지만, 아무리 좋아봤자 마법소녀만큼 기분좋을리도 없고...굳이 기계랑 섹스할 생각은 없다.
X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답을 내며 말했다.
[저에 대한 신뢰 부족, 안전에 대한 불안이 문제이신 것이 맞습니까?]
“음…?”
[정정하겠습니다.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와 확실한 안전을 보장한다면 거래를 받아주시겠습니까?]
X는 내 옆으로 걸어가 부서진 잔해 사이를 뒤졌다.
안에서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태블릿 하나를 잡아든 X는 태블릿에 기계발 끝을 연결하고는, 뭔가를 조작한 뒤 내게 넘겨줬다.
화면에는 로그인 창 같은 게 띄워져 있었다.
“뭐야 이게?”
[안면 인식 중, 동공 확인, 화면에 손가락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어? 어?”
화면이 멋대로 전환되며 직선과 상자 형태만으로 단순하게 디자인된 창을 띄운다.
리프가 홀로그램으로 띄우며 보고있던 화면과 비슷하다.
[확인, 연구소 전체를 포함해 저에 대한 관리자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좌측 최상단의 O에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O…? 관리자?”
나는 X가 시키는 대로 화면 위에 작게 적혀있는 O 형태의 선을 눌렀다.
그러자 Operate 라는 글자가 뜨며, 리프가 보던 화면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 나타났다.
기계들을 조정, 제어하는 화면으로 보인다.
그 옆의 구름 형태로 그려진 클라우드 버튼을 누르자 리프가 연구하며 기록했을 수 많은 자료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제 발언이 믿기 어려우시다면, 본인이 직접 데이터를 확인하면 된다고 판단됩니다. 데이터실 내의 자료를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필요한 정보가 있으시면 직접 찾으시면 됩니다. 필요한 설명이 필요할 때 요청하시면, 이해하실 때까지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호.”
[당신에게 최대한의 등급을 부여했으며, 상위 관리자로 설정되어있습니다. 이는 최상위 관리자인 리프가 아닌 이상 수정할 수 없습니다.]
“리프가 정신을 차리면?”
[...그 전까지는 관리자 권한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X에게 받은 건 리프가 되살아나기 전까지 쓸 수 있는 한시적 관리자 권한이었다.
나는 장난감을 손에 쥔 것 같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조작해보며 기능을 살펴봤다.
뭐가 무슨 기능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지만, 어쨌든 이걸로 뭔가 가능하다는 건 알겠다.
[현재 화면에서 나가 우측 하단의 X를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저에 대한 제어를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해도 뭘 할수 있는 지 모르겠는데.”
[말투 설정, 정보 접근 권한, 또한, 제게 강제행동 명령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음…그럼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야?”
[가능합니다.]
X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꽤 만족스럽다.
불안 요소도 없애고, 제어권도 주고, 자료도 열람할 수 있게 해주고...X와 리프는 못 믿어도, 데이터는 믿을 수 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뭐, 이번 거래 품목은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닌데...흐으음…아, 근데...이게 진짜인지는 확인할 수 있어야지? 자료열람만 가능한건지 진짜 명령이 가능한건지 어떻게 알아.”
[...X 아이콘을 눌러 들어가셔서 마음껏 조작해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음~그렇지, 시간이 좀 없긴 하지?”
[알고 계시다면 빨리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대로 메인 화면으로 돌아와 X가 시키는대로 X 형태의 아이콘을 누르려던 나는 문득 다른 건 무슨 기능일까 하는 생각에 옆에 보이는 D를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 이 비밀 연구소의 지도가 나타났다.
세로로 긴 형태의, 개미굴처럼 생긴 지도에는 각 구획별로 스위치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뭐야?”
[...메인컴퓨터 실 포함, 모든 구획을 폐쇄, 파괴하실 수 있습니다 폭발이 아닌 프레스를 통한 압축 파괴로 진행됩니다.]
“자폭 스위치 같은 건가?”
[비슷합니다.]
“흐음….”
잠시 지도를 보던 나는 이게 정말일까 싶어 실험삼아 상자 형태의 구역을 아무거나 터치했다.
화면에 정말로 파괴할 것인지를 묻는듯한 ON/OFF 스위치가 그려진다.
나는 망설임 없이 스위치를 ON으로 바꿨다.